남북전쟁을 통해 제국 통합 관철한 링컨..21세기에도 미국은 그 통합을 유지할 수 있을까

   
▲ 에이브러햄 링컨

“역사상의 모든 위대한 영웅과 정치가 가운데 링컨만이 오로지 진정한 거인이다. 알렉산더, 프리드리히 대왕, 나폴레옹, 글래드스턴과 심지어 워싱턴조차도 인격의 크기, 감정의 깊이, 그리고 어떤 도덕적 박력에서는 링컨에게 훨씬 뒤떨어진다.

…그는 그리스도의 축소된 모습이며 인간성을 풍부히 지닌 성자였으니, 그의 이름은 오고 오는 시대의 전설 속에서 앞으로도 수천년 동안 살아남을 것이다.”(러시아 문호 레프 톨스토이)
 

링컨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
구글(www.google.com)에서 링컨(lincoln)을 치면 검색 결과가 무려 ‘4억 7,100만 건’이라는 놀라운 사실과 맞부닥친다. 아마존 사이트(www.amazon.com)에서 역시 링컨(lincoln)을 치면 '9만 7,109권’이라는 책의 숫자를 만나게 된다.

이 엄청난 숫자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만큼 미국, 아니 세계에 에이브러햄 링컨의 이름은 유명하기 짝이 없으며 중요하다는 것이리라.

우리나라의 경우도 어느 정도 이런 흐름을 반영해 대부분의 사람이 링컨이라는 이름만큼은 한번쯤 들어보았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중학교 정도만 나온 사람이라면 그가 미국에서 흑인노예를 해방시켰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저 유명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라는 연설문 구절을 다 알 정도는 된다.

링컨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는 말을 한 미국 대통령
2. 노예를 해방시킨 미국 대통령
3. 남북전쟁에서 북부를 승리로 이끈 미국 대통령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이 인식하는 인물의 중요도도 이 순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거꾸로이다. 21세기 한국의 기준으로 볼 때, 나아가 비판적 관점을 적용한다고 할 때 의미 있는 링컨의 평가는 이 순서의 거꾸로라고 할 수 있다.

3번의 ‘남북전쟁에서 북부를 승리로 이끈 미국 대통령’을 변형해서 더욱 심화시키면 이렇게 된다. ‘전쟁을 통해 미국이라는 제국의 통합을 관철한 대통령’. 바로 이 관점이 맨 앞으로 나와야 한다는 의미이다. 다시 이것을 심화 발전시키면 이런 가설이 성립한다.

‘과연 미국이라는 제국은 21세기에도 통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선 1860년대 남북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수단까지 동원해 제국의 통합을 관철시킨 링컨과 당시의 미국을 정확히 연구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게 된다.

   
▲ 빅스버그 전투 장면도. 그랜트 장군이 이끈 이 전투의 승리로 북부군(깃발 든 부대)은 승기를 잡게 된다. <사진 제공=한겨레21>


에이브러햄 링컨은 1809년 미국 켄터키 놀린 크리크의 산골마을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 농부인 아버지를 도와 열심히 일한 링컨은 평생 정식 학교교육을 1년밖에 받지 못했으나 주의회 하원의원을 거쳐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된다.

일리노이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링컨은 몇 차례의 실패 끝에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된다. 그 뒤 다시 하원, 상원, 부통령 선거 등에서 실패했으나 당시 전국적으로 불길처럼 번지던 노예제 이슈를 타고 급격하게 정치적 논쟁의 중심인물로 부상한다. 결국 링컨은 1860년 11월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이듬해인 1861년 3월 미국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러나 링컨은 취임을 전후해 노예제에 찬성하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플로리다, 조지아, 텍사스 등 남부 7개주가 연방에서 탈퇴해 이른바 ‘남부연합’(the 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을 결성하는 총체적 국가 분열 사태에 직면한다. (나중에 이 남부연합에는 아칸소,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 4개주가 가담해 11개주가 된다.)

북부의 경우 공업이 발전해 노예제에 대한 필요가 점차 격감해가고 있던 반면 남부는 면화를 중심으로 농업이 발전해 토지에 긴박되는 노예와 그 노예노동에 대한 의존도가 점차 높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남북의 대립은 1861년 4월 남부연합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항의 포트섬터에 주둔하던 북군을 공격하면서 남북전쟁으로 발전한다. 링컨은 전쟁 초기 인구나 산업생산, 무기생산 등 기본적인 자원 면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해 3달 만에 남군에 이길 수 있다는 예상과 달리 크게 고전한다. 이에 따라 4년 동안의 장기간에 걸친 격전 끝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된다.

‘군사상의 필요’에 따른 노예해방령
링컨의 신화와 관련해 남북전쟁을 한번 개괄할 필요가 있다. 남북전쟁은 북군 사망자 36만명, 부상자 200만명, 그리고 남군 사망자 25만명, 부상자 70만명이라는 엄청난 인명을 희생시켰다.

국토도 황폐화됐다. 당시 북부의 인구가 2,300만명, 남부의 인구가 900만명 정도(그 가운데 400만명은 흑인노예)였으며, 전투기도 없는 등 무기 수준이 20세기나 21세기에 비해 대단히 낙후해 있던 점까지 감안하면 피해는 대단히 컸다.

이런 엄청난 피해까지 감내하면서 링컨은, 미국은 무력을 통한 제국의 통합이라는 첫 번째 신화를 완성했던 것이다. (나아가 이런 남북전쟁의 성격은 앞으로도 미국의 통합 문제를 해결하는 지렛대로서 상당기간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 흑인 병사의 사진. 노예에서 해방된 흑인은 북부군에 입대해 남북전쟁 승리에 크게 기여한다. <사진 제공=한겨레21>


링컨의 두 번째 신화인 노예해방에 대해 보자. 링컨은 원래 노예제 폐지론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를 지지한 사람들이 폐지론자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 투쟁에서 내 최고의 목표는 연방(미국)을 구하는 것이지, 노예제도를 존속시키거나 파괴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노예를 해방시키지 않고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노예를 해방시킴으로써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일부를 해방시키고, 일부의 노예들을 남겨둠으로써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링컨은 점차 노예해방을 요구하는 상황으로 이끌려간다. 링컨이 노예해방을 결행하지 못한 내부적인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는 헌법상의 문제다. 하루아침에 대통령령 같은 것으로 노예제를 폐지할 경우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대통령 취임선서를 어기는 것이다. 두 번째로 노예해방을 강행할 경우 노예제를 인정하면서도 북부에 가담한 델라웨어, 미주리, 켄터키, 메릴랜드 4개주가 북부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있었다. 어쨌든 링컨이 ‘군사상의 필요에 따라’ 노예해방령을 발포했다는 것은 스스로도 인정한 바 있다.

당시 남부연합은 인구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흑인노예들을 군수공장, 요새 및 진지 구축, 식량생산 등에 군 노무자로 동원해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링컨은 노예제의 토대를 흔들면 남부연합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다.

실제로 처음 발포된 노예해방령도 이런 군사상의 필요에 초점을 맞춰 남부연합주에 소속된 지역에서만 노예를 해방하는 안으로 진행됐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링컨이 노예해방령을 발포하고 그 결과 인류사에서 인권과 민주주의 신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사실은 결코 낮게 평가할 수 없다.

   
▲ 링컨의 암살 장면 상상도. 남부를 지지하는 배우 존 부스가 극장에서 링컨을 권총으로 쏘고 있다.

여기서 ‘제국의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21세기 미국의 상을 다시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현재 통합을 위협하는 몇 가지 단서들을 엿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이 지역적으로 산업의 편차가 심하다는 기본 특성도 주요 변수다. 이런 편차는 남북전쟁 당시 제국의 분열을 부른 결정적 동인이 되었던 것이다. 앞으로 예기치 못한 사태 발전에 따라 폭발이 일어나면 그 가능성은 더 높을 것이라는 논지다.

미국 군부의 영향력을 높여주다
첫째는 9·11 테러와 그 이후 부시 정권이 지속적으로 조장한 종교-문명 충돌적 성격이 미국의 다민족 국가적 통합원리에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슬람권을 겨냥해 일방적으로 몰아친 공격적 국제정책으로 미국의 ‘인종 용광로’의 효율성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용광로 내벽의 훼손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둘째는 인구 구성상의 불균형 문제이다. 현재 미국에는 그동안 다수를 차지하던 유럽계 백인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히스패닉계와 흑인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히 라틴아메리카에서 지속적으로 미국에 건너오고 있는 히스패닉계는 가톨릭 교리 등의 영향으로 낙태를 회피하면서 자녀를 상대적으로 많이 낳는다. 흑인들 역시 백인에 비해 이런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링컨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 정확히 6일 만인 1865년 4월 15일 남부를 지지하는 한 배우의 총격을 받고 암살됐다. 최초로 암살된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이다. 제국을 휩쓴 갈등과 대립이 종식됐어도 그 여진은 무섭다는 사실을 세상에 각인시킨 셈이다.

나아가 링컨의 남북전쟁 이후 전쟁영웅이 미국 대통령으로 등장하는 사례도 두드러진다. 북군 총사령관 출신인 율리시스 그랜트는 미국 제18대 대통령에 오르고, 제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영웅 아이젠하워는 제34대 대통령에 올랐다. 대형 전쟁 이후 미국 군부의 영향력은 놀랄 정도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예고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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