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경영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병법가

약 2500여년 전 중국 대륙에선 제자백가들의 토론과 저술, 유세 등으로 사상의 대폭발이 거듭됐다. 유가(儒家), 도가(道家), 음양가(陰陽家), 법가(法家), 명가(名家), 묵가(墨家), 종횡가(縱橫家), 잡가(雜家), 농가(農家)….

후세에 모두 189개로 분류될 춘추전국시대의 이 사상가 집단은 저마다 천지의 도와 인간의 본질 그리고 치세와 천하통일을 위한 방략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로부터 2500여년이 흘렀다. 천하를 주름잡던 제가백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느 문파가 끝까지 살아남았을까? 과연 21세기에 이르러 마지막 승자는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

오자서의 추천으로 오나라 장군이 되다
진시황의 천하통일로 최초의 패자임을 자랑하던 법가는 진나라에 이어 통일천하를 장악한 한나라가 유가를 국가의 기본이념으로 삼으면서 역사의 전면에서 후퇴해야 했다. 그 유가조차 지금은 국가의 지도이념이라는 지위에서 내려와 그저 개인의 처세나 인생관의 토대로나 작동할 뿐이다.

여기 한 사상가가 있다. 그는 무엇보다 유가, 도가 등 형이상학적 우주관이 주류를 이루다시피 하던 춘추시대에 국가사회의 물적 토대를 이루는 자원의 제한성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전쟁은 국가의 대사로서 백성들의 생사와 국가의 존망이 걸려 있어 신중하게 살피지 않을 수 없다. …무릇 군대를 운용할 때는 마차 1천대, 군수품 수송용 마차 1천대, 무장병 10만으로 구성된다. 1천리나 되는 곳에 군량을 보내려면 안팎의 경비와 빈객들의 접대비, 군수물자의 조달과 차량과 병기의 보충 등을 위해 1일 1천금을 써야 10만 군대를 일으킬 수 있다.

전쟁에서 이길지라도 오래 끌면 병사들이 지쳐 전력이 약화된다. …그러므로 전쟁은 서툴더라도 빠르게 끝내야 하며, 오래 끌면 안 된다. 전쟁을 오래 끌고서 국가에 이익이 된 적은 여태껏 한번도 없었다.” 

이 대전제 아래 그는 전쟁을 이기기 위한 기술-병법을 시계(始計), 작전(作戰), 모공(謀攻), 군형(軍形), 병세(兵勢), 허실(虛實), 군쟁(軍爭), 구변(九變), 행군(行軍), 지형(地形), 구지(九地), 화공(火攻), 용간(用間) 등 13편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 세상에 전했다.
 

   
▲ 전쟁에 이기기 위한 기술을 책으로 펴낸 손자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제공=한겨레21>

<손자병법>, 제가백가 가운데 21세기 들어 사라져가는 다른 문파를 압도한 채 오히려 더욱 각광을 받는 문파는 바로 손자를 시조로 둔 병가인 것이다.

그러나 병가의 부활을 가져오는 이유는 슬프도록 역설적이기도 하다. 아직도 세상 곳곳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전쟁을 이기려는 사람들의 경쟁은 무제한적으로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처절한 현실 때문에 지금도 웨스트포인트로부터 화랑대에 이르기까지,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케이프타운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사관학교에서는 손자의 병법이 어김없이 강의되고 있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손자-오기열전’ ‘오자서열전’ 등을 종합하면 손자는 대략 이런 인물로 묘사할 수 있다.

“손자는 본명이 손무이다. 제나라 사람으로 병법이 뛰어나 오자서의 추천으로 오나라 왕 합려의 장군이 됐다. 손무는 합려가 오른 지 3년째 되던 해 오자서 등과 함께 초나라를 쳐서 서라는 지역을 빼앗고 예전에 초나라에 투항한 두 공자를 사로잡는 승리를 거둔다. 합려는 승세를 몰아 초나라의 수도 영(?)까지 쳐들어가려 했으나 손무가 만류했다.

“백성들이 지쳐 있으니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합려 4년, 오나라는 다시 초나라를 공격해 육과 잠 땅을 차지하고, 그 이듬해에는 월나라를 공격해 승리했다. 합려 6년에는 초나라가 오나라를 쳐들어왔으나 오자서가 나가 예장에서 초나라 군대를 크게 무찌르고 초나라의 거소까지 빼앗았다.

합려 9년, 오나라 왕은 오자서와 손무에게 물었다.

“앞서 그대들은 초나라의 수도 영을 칠 때가 아니라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소?”

두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

“초나라 장군 자상은 탐욕스러워 속국인 당나라와 채나라가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왕께서 대대적으로 초나라를 치려면 반드시 당나라와 채나라를 우리편으로 끌어들이십시오.”

합려는 이 조언을 좇아 군사를 모두 동원해 당, 채 두 나라와 힘을 합쳐 초나라를 공격했다. 승기를 잡은 오나라는 5차례의 접전 끝에 마침내 초나라 수도 영을 함락시켰다. 이렇게 오나라는 오자서와 손무의 계책을 채용해 서쪽으로는 강한 초나라를 깨뜨리고, 북쪽으로는 제나라와 진나라를 눌렀으며, 남쪽으로는 월나라를 복종시켰다.”

   
▲ 손자가 오나라 왕의 후궁에 있는 미녀 180명을 동원해 군사훈련을 하는 장면의 상상도(왼쪽). 손자의 조각상(오른쪽) <제공=한겨레21>


<손자병법>, 일본 경영자 추천도서 1위
<사기열전>에 따르면 손무는 여기까지만 나온다. 오나라가 합려의 아들 부차로 넘어가 ‘와신상담’으로 유명한 오월전쟁의 국면으로 넘어간 뒤에는 손무의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와 명콤비를 이루던 맹장 오자서는 계속 오나라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데 반해 손무는 그 사이 죽었는지 은퇴했는지조차 전혀 기록돼 있지 않다.

어쨌든 <손자병법>,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손자>라는 저서는 후세로 전해져 21세기의 승자로 부활한 셈이다.

21세기 들어 손자병법은 군사 세계뿐만 아니라 오히려 비즈니스 세계에서 그 탁월성을 인정받아 더욱 화려하게 각광받고 있다.

-<불패전략, 최강의 손자>(일본)
-<자기관리 손자병법>(일본)
-<손자병법과 전략경영>(싱가포르)
-<손자와 비즈니스의 기술>(Sun Tzu and the Art of Business)(영국)
-<경영자를 위한 손자병법>(The Art of War for Executives)(미국)
-<관리자를 위한 손자병법>(The Art of War for Managers)(미국)
-<투자 손자병법>(Sun Tzu on Investing)(미국)
-<파란 눈이 들려주는 손자병법 세일즈 이야기>(The Art of War & The Art of Sales)(미국)
-<일하는 여자들의 손자병법>(Working Woman’s Art of War: Without Confrontation)(미국)….

일본에서는 경영자를 위한 추천도서 가운데 1위를 다투는 책이 바로 <손자병법>이다.

싱가포르의 위초후 교수 같은 사람은 “일본의 최고경영자들이 <손자병법>을 애독했다는 역사적 맥락과 함께, 남이 개발한 아이디어와 작품을 더욱 완전하게 만들어내는 일본인의 독특한 개선기술을 고려한다면, <손자병법>이야말로 오늘날 일본의 성공을 가능케 한 그들 특유의 경영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책”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일본이 2차대전 이후 수많은 제품과 산업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지배하고 석권해나가는 전략이 군사적이며 손자의 전쟁전략과 매우 유사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 주택 및 화학제품으로 유명한 세키스이(積水) 그룹은 <손자병법>의 군형편에 나오는 표현을 따서 그룹의 이름을 짓기까지 하고 있다.

“승리하는 자는 싸움을 주도하면서 천길 높은 골짜기에 ‘가두어둔 물’(積水)을 한꺼번에 쏟아내듯 쌓여 있는 힘을 최대한 발휘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승리의 기세인 군형이다.”

일본의 맥주업계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던 기린맥주를 시장점유율에서 추월한 아사히맥주의 나카조 다카노리 회장을 비롯해 스미토모생명의 우에야마 야스히고 회장, NEC의 세키모토 다다히로 회장 등 유수한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손자병법을 응용한 경영 성공 사례를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도 손자 마니아로 유명하다.(사진=AFP연합)

21세기형 금융과 IT분야에서도 위력
이른바 최첨단을 자랑하는 21세기형 금융과 정보기술(IT) 분야에서도 손자의 위력은 똑같이 발휘된다.

손자 마니아로 유명한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는 아예 손자의 이론에 자신의 경영철학을 합쳤다는 ‘손자의 제곱병법’을 세상에 공개하기까지 했다. 

일류공수군(一流攻守群)
도천지장법(道天地將法)
지신인용엄(智信仁勇嚴)
정정략칠투(頂情略七鬪)
풍림화산해(風林火山海)

“일류 경영은 공격과 수비의 균형을 취하며, 무리를 지어 싸워야 한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선 도(깨끗한 정치), 천(날씨 등 기후조건), 지(지리), 장(지도자), 법(규율·효율)의 5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장수(지도자)는 지혜, 신뢰, 어짐, 용기, 엄격함의 5가지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서 전체를 바라보고 전략을 세운 뒤 7할의 승산이 있을 때라야 싸운다. 이동은 질풍처럼, 정지 상태에선 숲처럼, 공격은 거센 불길처럼, 방어는 산처럼 하며, 삼킬 때는 바다처럼 하라.”

컴퓨터업계의 최강자이자 세계 최고의 부자이기도 한 빌 게이츠도 <생각의 속도>에서 손자를 자주 인용하고 있어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에 끼친 그의 영향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고, 휼렛패커드 회장인 칼리 피오리나 회장도 취임식에서 손자를 인용한 바 있다.

국경을 넘어, 산업의 경계를 넘어, 시대의 차이를 넘어 손자의 신화는 세상을 여전히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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