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도 여전히 각종 고시에 집착하는 청춘들은 분명 있을 것이다.

어쩌면 먼저 합격한 사람들의 이런 불평과 투덜거림조차 부러울지 모른다. 수년간 고시에 매달려도 아무 성과 없는 자기 현실과 그들의 모습을 비교하며 비참함도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고시 준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 그토록 많은 비용과 화창한 젊은 날의 귀한 시간까지 모두 소진해야만 하는 이 일이 과연 스스로에게 행복과 만족을 안겨줄 것인가!

내가 각종 고시, 그중에서도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리는 청춘들을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청춘의 열정으로 뜨거워야 할 젊은이들이 너무 쉽게 현실에 안주하려다 결국 사회적 열정조차 식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우려감 때문이다.

일본이 장기 불황을 겪은 원인 중 하나로 젊은이들이 도전하지 않고 공무원으로 안주하려 하면서 일본 경제 전체가 식어버렸다는 분석도 있다. 사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공무원을 안정성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사회 기여성에 더 많은 의미를 둔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지나친 엘리트 의식이 사회문제를 일으킨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그런 반성을 통해 일본은 새로운 반전을 꾀하고 있다.

우리 역시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공황 상태의 일본처럼 사회가 활력을 잃어버리고 IMF 체제 때 이상의 대공황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 심히 우려스럽다.

그리 되지 않으려면 공무원에 대한 잘못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할 거다. 누구보다 공시생들이 왜 공무원이 되려는지, 스스로의 안위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단지 안정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공무원이 되려는 건 아닌지, 새로운 도전을 피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누구든 친절하게 응대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면서 사회에 공헌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등에 대해 진지하게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솔직히 나는 각종 고시에 대해 다소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다른 어떤 채용 제도보다 시험이라는 공정한 수단을 통해 사람을 뽑기에 합리적인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험 합격 발표의 순간, 각자의 희비가 엇갈리며 개인의 삶이 완전히 뒤바뀌는 장면에서 의문이 들지 않는가.

시험 점수 커트라인을 겨우 넘겨 합격한 사람과 고작 0.01점이 모자라 탈락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사회는 점수 상관없이 결과만 보고 이 둘을 판단하기 때문에 대우 역시 천지 차다. 공무원이나 판검사가 된 누군가에게는 박수를 쳐주고, 불합격한 사람에게는 백수라며 따가운 눈총을 보낼 것이다.

아마 내 생각에 반박하는 사람도 많으리라. 하지만 고시 제도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분명한 사실들을 먼저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오랜 기간 각종 고시에만 매달려 있기엔 그 시간과 열정이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그로 인해 사회적 손실까지 발생하고 있지 않은가.

한 방송에서 50대 중반 최고령 사법고시 합격생의 강연을 봤다. 기능공으로 일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계속 공부해 늦게나마 사법고시에 합격한 성공 사례였다.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일 것이고, 사람들에게도 분명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다. 무엇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공시생들에게는 또 한 번 희망을 주는 이야기일 것이다.

한편 고작 1년 준비하고도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단번에 합격한 괴물(?)도 간혹 있다. 하지만 이건 극히 드문 사례다. 막연한 꿈을 안고, 언제 올지 모르는 ‘그날의 영광’을 위해 시험에만 매달리면서 이런 이야기를 위안 삼는 건 위험하다. 실제로 그런 공시생이 너무 많다. 절반 이상이 이런 마인드라고 봐도좋을 정도다.

아무 수입원 없이 5~6년이나 시험에 매달리면 다른 식구들이 그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전적으로 떠안아야 한다. 당사자는 혈기왕성한 청춘을 담보로 시간과 열정을 쏟아야 한다. 시험에 불합격할 경우 그 청춘의 시간은 어디서도 보상받지 못한다. 사회·국가적으로도 열정 넘치는 젊은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니 인적 손실이 발생한다. 금전적 손실도 손실이지만, 무엇보다 청년들이 기가 죽은 채로 살아가기 때문에 사회 활력적으로 손실이라는 거다.

내게는 사법고시에 실패한 대학 친구가 하나 있다. 그 친구의 평소 학업 태도로 봤을 때 사법고시 도전은 무리로 보였다. 그런데도 친구는 졸업 후 계속해서 시험에만 매달렸다. 결국 사법고시에 실패하고, 7급 공무원으로 목표를 낮췄다가 7급에도 실패해서 9급 공무원으로 목표를 다시 낮췄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결국 만 35세 제한 연령에 다다라서야 모든 시험을 포기했다. 만일 요즘처럼 나이 제한이 없었다면 최소 몇 년은 더 도전하지 않았을까 싶다.

고시나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언제까지 시험에 도전하고, 언제까지 안 되면 포기하겠다’는 식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 1년이면 1년, 2년이면 2년이라는 시한을 설정하고 도전해야 한다.

포기도 전략이다. 어쩌면 그 어떤 전략보다 중요한 전략이 바로 ‘포기 전략’이 아닐까.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 교수 역시 “포기는 그 어떤 전략보다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사람이 쉽게 간과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살아생전에 강조했다.

당신은 어떤가. 긍정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포기를 부정적이라 여기며 의도적으로 포기하기를 피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출처: 도서 <따뜻한 독설> 중에서
 

   
 

커리어코치 정철상의 따뜻한 독설
I 정철상 저
I 라이온북스

정철상 부산외대 취업전담교수는 인재개발연구소 대표와 취업진로강사협회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 심리학이 청춘에게 묻다, 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가슴뛰는 비전, 청춘의 진로나침반, 커리어코치 정철상의 따뜻한 독설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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