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과 흥미 있는 학과에서 미래 꿈 일궈야

   
▲ 수능 당일 부산중앙여고 교문 앞 '50대 아버지의 부정' <사진 제공=부산교육청>

A군은 중학교 때까지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지만 가세가 기운 고교 때부터는 학교를 다니는 둥 마는 둥하다 학교를 중퇴할 위기에 처하는 등 부모를 애타게 했다. 부모는 결국 그림을 좋아하고 건축에도 관심이 있었던 A군을 수도권 소재 모 전문대학 건축학과에 억지로 입학시켰다.

대학에 가서도 적응을 못하던 A군은 공부가 싫다며 군에 입대했다. 군대를 다녀온 후 A군은 달라졌다. “네 학비는 네가 벌어서 다니라”는 부모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 학비는 장학금으로 해결할테니 생활비를 보태 달라는 것이었다.

A군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실력이 쌓여 유명 건축디자인대회에서 대상까지 받게 된다. 이 일로 A군의 대학은 일약 유명 대학으로 이름을 날리게 됐고, A군은 졸업 후 서울 유명 대학원에 진학했다. 실제 이야기이다.

A군은 자신의 흥미 분야와 소질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부모의 뜻에 따라 대학에 진학했지만, 다행히 부모가 정해준 학과가 흥미와 적성에 잘 맞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렇듯 자신이 흥미를 느끼고 소질을 계발할 수 있는 학과에 진학한다면 언제라도 빛을 발하는 날이 오는 것이다.

한국만큼 뜨거운 교육열을 가진 국가는 많지 않다. 이것이 지나쳐 이제는 ‘헬리콥터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자녀가 성인이 되어도 헬리콥터처럼 자녀 주변을 맴돌면서 온갖 일에 참견하는 엄마들 등쌀에, 기업 인사담당자에게는 사원 부모의 전화가 가장 피하고 싶은 전화 1순위가 됐다는 보도가 나오는 요즘이다.

물론 부모가 회사에 전화할 정도로 과보호 속에서 자란 학생을 선발하는 기업이 많지는 않겠지만 이런 문제가 심심찮게 언론에 조명되고 있는 것을 보면 기업의 인재 선발 방식에 구멍이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경험이 적고 판단력이 미숙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모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수능이 끝나고 초중고 12년 학습의 성패를 가르는 대학 지원만이 남은 지금,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지원해야 할지를 놓고 학부모와 학생 사이의 갈등이 심심찮게 불거져 나오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대학과 학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소위 명문대 진학을 위해서 6수를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6수를 선택한 학생을 안타까워는 할지언정 적극적으로 말리기란 쉽지 않다. 우리 사회의 지나친 학벌주의 때문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학벌주의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청년기를 대입 준비라는 명목으로 쓸데없이 흘려보내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졸업한 고교에서 재수학원으로 위로방문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학교의 위로방문이 없으면 재수학원 학생들이 이를 섭섭해 한다고 한다. 이는 우리가 조장한 학벌주의의 일그러진 단면이며 이런 요령부득의 일이 무시로 터지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이다.

이런 학벌주의는 사실 학교, 기업, 학부모를 비롯한 우리사회 모두가 만든 백해무익한 학력 프레임이다. 평균 수명 80세인 현재의 학생들은 평균 수명 120세의 미래를 살아가야 한다. 미래에는 더 이상 학벌 위주의 진로 설계는 무의미하며, 개인당 평균 2~3개의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120세 시대를 살아야 할 학생들은 학벌이 아니라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진로를 계발하고 발전시켜가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학벌주의의 틀에 여전히 갇혀 있다. 흥미와 적성에 맞는 학과가 있는 대학에 성적에 맞춰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간판을 좇아 점수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만연해 있다.

또한 성적이 낮으면 적성에 맞춰 학과를 선택하는 것이 무의미한 것인 양, 취업만 잘되면 그만이라며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하기 일쑤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오늘도 수험생들의 가정은 바람 잘 날 없다.

성적 여하를 떠나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공부에 흥미를 느껴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할 수도 있고 취업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성세대는 스스로 만든 프레임에 갇혀 대학 간판이 전부라고 우기고 있다. 소위 명문대 ‘꼬리학과’에 합격하는 것이 비명문대 ‘머리학과’에 합격하는 것보다 성공한 입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선택의 이면에는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고려가 아니라 학부모의 자존심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자녀의 입시를 겪은 학부모라면 다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상위권 학생들만의 리그인 몇몇 고시를 제외하면 간호사 자격시험이나 임용고시 등은 유명대 출신 여부와는 전혀 무관하게 합격생이 배출되고 있다.

물론 직업 피라미드 상단에 위치하는 전문직들 가운데 유명대 출신이 많을 수 있지만, 이는 그 사람의 학업능력이 우수함을 의미하는 것이지 출신 대학이 유명대여서 전문직을 가진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능력본위의 사회에서는 학벌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한국의 최고 재벌인 삼성과 현대의 창업자가 그렇고 지금도 잘나가는 벤처의 오너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학벌만을 고집하고 있는 현재 기성세대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학생의 미래는 대학에 들어가서 어떻게 소질과 재능을 계발해 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많은 대학들이 수능 성적으로 뽑은 정시 합격생들보다 학생부 활동상황으로 선발한 수시 합격생들이 대체로 훨씬 뛰어난 역량을 보인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고 있다. 학생의 역량을 성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임을 현실이 증명하고 있다.

전문대 4년제 간호학과에서는 일반 4년제 대학 못지않게 간호사 국시 합격자를 배출하고 있으며, 100% 합격률은 물론이고 취업률까지 100%에 도달하는 지방대학가 있을 정도이다. 그만큼 학생의 역량은 학벌이 아니라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와서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공부를 했는지에 따라 키워지는 것이다.

중학교 입학성적이 고교까지 유지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이 역시 50%를 넘지 못한다. 당장의 성적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학벌 중심으로 인재를 채용하는 대기업은 모래 위에 성을 쌓고 있는 것과 같다. 아직도 전근대적 패러다임에 갇혀있는 기업이라면 과감히 버려라. 그런 기업의 생명력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학생들은 학부모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아가야 하지만 학부모들은 여전히 그들이 살아온 세상을 움직이던 패러다임에 갇혀 자녀들을 움직이려 한다. 그러나 이는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학생들에게는 독과도 같다.

학부모는 학생들에게 스스로 미래를 헤쳐갈 수 있는 자세를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만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미래가 있다. 더디지만 혼자서 헤쳐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역량 교육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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