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사진제공=뉴시스)

바야흐로 로맨스·멜로 드라마 전성기다.

외국 TV드라마의 영향으로 방송가에 불어닥쳤던 장르 드라마 열풍이 잦아들고, 남녀 간의 사랑을 최전선에 배치한 드라마들이 다시 득세하고 있다. 실험적인 드라마를 선보이는 장이었던 지상파 방송 3사의 밤 10시 월화, 수목 드라마는 현재 말 그대로 '사랑판'이다.

월화, 수목 드라마 6편 중 4편이 로맨스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KBS 2TV '연애의 발견'과 SBS TV '유혹',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MBC TV '운명처럼 널 사랑해'와 SBS '괜찮아, 사랑이야'가 방송 중이다.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후속작은 정통 멜로드라마 '내 생애 봄날'이다. '괜찮아, 사랑이야'의 후속 또한 멜로 드라마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다. 판타지의 옷을 입고 있기는 하지만 '야경꾼 일지' 후속작인 '아이언맨' 또한 멜로드라마다.

몇 달 전만 해도 밤 10시대 드라마에서 로맨스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월화 드라마의 라인업은 '빅맨' '기황후' '신의 선물'이었고, 수목 드라마는 '감격시대' '앙큼한 돌싱녀' '쓰리데이즈'였다. 6편 중 1편만이 이성간의 사랑을 주제로 했다.

방송사들이 멜로 드라마로 회귀하는 이유는 뭘까.

◇드라마도 결국 장사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 방송사는 시청률로 장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거액을 투자한 장르 드라마의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으면서 생각만큼 광고 판매가 수월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가까운 예로 100억원에 가까운 제작비를 들여 만든 SBS의 '쓰리데이즈'나 KBS 2TV '감격시대'는 10% 초반 시청률에 머물렀다. 방송사는 최소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시청률을 기대했을 것이다.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광고 판매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본방송을 보지 않고 인터넷에서 드라마를 내려받아 보는 젊은층의 최근 경향은 드라마 전체 시청률을 낮춰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큰 비용이 필요한 장르 드라마에 많은 금액을 투자한다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하지만 멜로 드라마는 제작비가 크게 들지 않는다. 굳이 해외 촬영을 할 필요가 없고, 대규모 액션 장면도 없으며, 세트를 짓는 비용도 적게 든다. 방송 관계자는 "장르 드라마 한 편 만드는 돈으로 일반적인 로맨스 드라마 두 편을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어차피 시청률에 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좋은 배우와 중간 이상의 극본만 있으면 장르가 어떻게 되든 시청률은 일정 수준 이상 나온다"며 "그런 점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사랑 이야기를 하는 게 정답"이라고 말했다.

◇장르드라마의 실험은 끝났다?

장르드라마의 '약발'이 떨어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주로 사극과 멜로에 치중하던 한국드라마에 스릴러 등 장르 드라마가 등장하기 시작한 건 2005년께다.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가 인기를 끌면서부터다. 본격적으로 미국드라마를 보는 시청자가 늘어나고, 드라마를 보는 눈높이가 올라가면서 이런 추세에 발맞춰 지상파 3사의 드라마국 또한 변화를 꾀한다.

한국형 첩보 액션 스릴러 드라마를 표방한 '아이리스'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일부 장르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성공을 거두면서 미국 드라마 형태를 한 다양한 드라마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런 과정은 한국 드라마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기는 했지만, 한계 또한 극명하게 보여줬다.

사전 제작이 불가능한 드라마 환경 탓에 많은 장르 드라마들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해외 드라마로 인해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올라갔지만, 소재와 제작비의 한계로 그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는 측면도 있었다.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해외 드라마를 인터넷에서 쉽게 내려받아 볼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우리나라의 장르 드라마를 볼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문원 문화평론가는 "한국 장르 드라마의 실험은 끝났다"고 진단했다. "시도할만큼 했고, 반응은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방송사가 택할 수 있는 카드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멜로드라마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남녀 간의 사랑을 가장 큰 축으로 그 안에서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게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배우의 힘이 크긴 했지만, 최근 가장 높은 시청률을 보인 SBS '상속자들'이나 '별에서 온 그대'도 결국 로맨스 드라마다.

◇예전의 그 로맨스가 아니다

SBS '괜찮아, 사랑이야'는 각각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인물'을 내세워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이 서로의 아픔을 사랑으로 감싸 안으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통해 사랑의 의미를 탐구한다. 정신질환을 앞세운 로맨스물은 이전에 없었다.

KBS 2TV '연애의 발견'은 지상파에서 볼 수 없던 솔직한 로맨스 드라마다.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평범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잤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고 성에 솔직해 신선한 느낌을 준다. 이전에 등장했던 드라마들보다 현실밀착형 대사들이 많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둔다.

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는 재벌남과 평범녀의 이야기를 비틀며 코미디와 정통 멜로를 자유자재로 오가고, SBS '유혹'은 극대화된 치정 멜로를 내세운다.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이 네 편의 드라마는 소재나 진행 방식 면에서 모두 다르다.

이처럼 기존의 로맨스 드라마가 남녀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나 출생의 비밀을 토대로 한 신파형 멜로에 머물렀다면, 지금의 로맨스 드라마는 사랑에 솔직해지고 개방적으로 변하는 세태를 적극 수용하며 통속을 벗어나고 있다. 표현의 수위가 높아지고, 시청자의 수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같은 사랑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더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있다. 따라서 사랑을 담은 드라마를 피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기존의 로맨스 드라마가 식상하게 느껴졌던 건 실제 연애 트렌드를 드라마가 쫓아가지 못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며 "사람들이 솔직해지는 것만큼 드라마도 솔직해지니까 현 로맨스 드라마가 다룰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저작권자 © 에듀진 인터넷 교육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