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36.5도> 12월호 발행인 칼럼에서

   
▲ <사진 출처=ko.wikipedia.org>

김영삼 전 대통령은 누가 뭐래도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그의 외침에 수많은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연호하며 거리로 나섰다. 그의 지난했던 민주화 투쟁 과정은 우리가 꿈에 그리던 대통령직선제를 관철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군부세력의 집권을 종식시키며 1993년 대한민국 1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문민정부의 시작이었다.

중고교 시절 벽에 붙여놓고 하루도 빼먹지 않고 다짐했다는 간절한 대통령의 꿈을 그는 결국 이뤘다. 그의 취임 이후 행보는 놀라웠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육군 하나회 조직을 하룻밤 새 쓸어버렸고, 경제 투명성을 위해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했다. 또한 일제 강점기 시대의 상징과도 같았던 구 총독부 건물인 중앙청을 해체해 한때 80% 이상의 국민이 그를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민정부는 삼당합당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야당 총수 시절 그가 그토록 성토해 마지않았던 독재세력에 투항해 집권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하루아침에 자리를 옮겨 앉은 것이다.

삼당합당을 두고 민주세력들은 ‘삼당야합’이라고 비난하며 그를 등졌고, 그 삼당합당으로 인해 지역주의는 더욱 심화됐다. 수많은 국민들의 삶을 파탄에 빠뜨린 IMF 대환란으로 결국 그는 쓸쓸히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예기치 못한 IMF 사태는 또 다른 민주화의 기수 김대중 총재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뒤를 권력기반이 전혀 없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이어받았고, 그렇게 민주화 세력의 정권창출이 계속되며 민주화의 진전은 거침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물러나자 이명박 서울시장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그 뒤를 박근혜 정부가 이어받으면서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는 해가 갈수록 후퇴하고 있다. 국가권력의 선거개입이 사실로 밝혀졌으며, 일부에서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대선개표 조작의혹 등은 현 정부의 정통성에 상당한 흠집을 내고 있다.

또한 이명박 정권 시절의 차벽, 이른바 ‘명박산성’이 ‘근혜산성’으로 별명만 바뀐 채 정부의 불통정치를 상징하듯 시위 현장마다 설치돼 길을 차단하고 있다.

최근에는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쌀값하락 문제로 시위에 참여한 백 모 노인이 엄청난 수압의 직사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경찰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귀에서 피를 흘리며 쏘지 말라고 손을 흔드는 노인의 몸에 계속해서 직사 물대포를 발사했으며, 다친 시민을 구조하기 위해 시위현장에 들어온 구급차와 구조자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물대포를 직사했다.

사실이 이런데도 책임자인 경찰청장과 그를 임명한 대통령은 사과는커녕 오히려 국민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현 정부의 민주와 인권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민주주의가 퇴보를 거듭하고 있는 현재의 정치상황은 역설적이게도 김영삼 전 대통령을 재평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공은 공이고 과는 과이다. 그의 야합이 잘한 일이라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를 위한 그의 노력을 인정하고 그 뜻을 이어가자는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없었다면 현재의 우리는 지금보다도 더 암울한 시대에 살아야 했을지 모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좋은 곳에서 영면하기를 기원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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