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 결정적인 상황에서 제갈량 아닌 의형제 선택해

   
▲ 유비는 관우의 복수를 위해 오촉동맹을 깨고 오나라를 침공한다. <사진 제공=한겨레21>

삼국지 시대는 사실상 관우의 북벌로부터 제1차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다. 그가 위나라 번성을 공격하면서 결국 오나라 여몽으로부터 불의의 기습을 당해 자신도 죽고 형주도 함락되는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형주를 둘러싼 오나라와 촉나라의 갈등은 어떤 식으로든 해결될 수밖에 없는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를 이어 유비가 곧바로 보복전쟁에 나서 오나라 정벌을 결행하면서 사태는 급변한다. 왜 유비는 제갈량의 반대를 무릅쓴 채 오나라와 전면전을 벌인 것일까? 과연 그는 승리를 확신했던 것일까?

이 의문은 대단히 중요하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전쟁을 결행한다는 것 자체가 천하통일을 포기하는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유비의 결정은 이성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유비는 참모 제갈량의 진언을 대부분 다 수용한 데 반해 이 문제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그 중요도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제갈량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가장 큰 사건이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비는 이 결정적인 상황에서 관우와 장비 의형제 그룹과의 임협적 의리를 선택하고 말았다. 바꿔 말해 유비와 제갈량의 관계가 이성적 관계라면, 유비-관우-장비의 관계는 더 근원적인 감정적 관계였던 것이다.

유비는 오나라와의 전쟁에서 결정적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을까? 개전 초기에는 현실로서는 확신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오나라와의 전투에서 연전연승하면서 차츰 승리를 확신한 성격이 짙다. 그러나 그 반대급부로 오나라를 가볍게 보다가 결국 육손의 계책에 말려 이릉전투에서 참패하는 재앙을 맞게 된다.
 

   
▲ 제갈량. 참모 하나의 능력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사진 제공=한겨레21>

촉이 패배한 것과 관련해선 1) 전쟁을 이끈 장군들을 보면 오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장군들이 <삼국지> 오서에 나올 정도로 관록과 경험이 많은 데 반해 촉나라의 경우 마량, 황권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 2) 전쟁이 길어지면서 공격군의 예봉이 둔화되는 반면 수비군인 오나라의 저력이 차츰 발휘돼 역전에 이른 점 등을 들기도 한다.

형주의 상실과 이릉전투의 패전은 촉나라에 매우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야기했다. 무엇보다 엄청난 전력 손실을 가져왔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형주의 상실로 북벌을 위한 물적 구조의 안정적인 수급 시스템이 무너졌는가 하면, 북벌의 루트가 한중 한 곳으로 고정돼 길목 하나만을 지켜도 되는 위나라의 방어 전략에 끌려가는 식으로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오나라와 촉나라가 이 전쟁에 투입한 모든 자원을 위나라에 대한 북벌에 집중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런 점을 종합할 때, 유비는 오나라와의 전쟁을 시작하면서 사실상 천하통일을 포기한다는 각오까지 한 게 아닌가 하는 추정도 가능하다.

이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던 제갈량의 심정은 참으로 비통했을 것이다.

::온 + 오프 항해지도::

▶ 중고생
- <삼국지> 박종화/어문각
- <소설 제갈공명> 진순신/까치

   
 

▶▶ 대학생 이상-
- <제갈량 문집-난세를 건너는 법> 오수형 편역/문학과 지성사
- <삼국지 100년 전쟁> 세토 타츠야/애니북스
- <중국역사기행-제2권 삼국 진 남북조편> 학습연구사(일본책)
- <삼국지신문> 일본문예사(일본책)(사진)
- <역사군상시리즈-삼국지 상하> 학습연구사(일본책)
- <중국통사> 해연출판사(중국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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