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걱정없는 세상_안상진 부소장

저는 올해 3월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교육시민운동단체에 오기전
8년간을 일반고 고등학교 수학교사로서 있었습니다.

제가 8년간을 일반고 교사로 있었지만 우리나라 고입전형이 너무나 불공정하고 이상한 제도라는 사실은 학교를 그만두고 단체에 와서 관련 일을 하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반고 교사로서 겪었던 어려움의 원인이 이해가 되었고 이런 제도는 하루 빨리 개선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고입전형은 시기와 방법의 두 가지 측면에서 매우 불공정하고 일반고를 차별하는 정책입니다. 우리나라 고입전형은 두 가지 면에서 매우 불공정합니다.

첫째는 선발 시기에 있어서 일반고를 제외한 다른 학교들이 우수 학생들을 모두 선점하는 것입니다.

영재학교가 학생을 먼저 선발하고, 전기학교와 후기학교로 나누어 전기학교에서 학생을 먼저 선발합니다. 이 전기학교에 자율형 사립고, 국제고, 과학고, 외국어고와 같은 특수목적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전국단위 자율학교가 학생을 선발하고, 후기학교 순서가 되면 그때에도 먼저 자율형 공립고와 과학 중점학교의 중점학급 학생을 선발하고 나면, 비로소 일반고가 학생 선택제에 의해서 학생을 추첨에 의해 배정받는 기가 막힌 구조입니다.

<그림. 고교입학전형 시기에 따른 분류>

   
※ 마이스터고 불합격자는 특성화고 지원이 가능.
※ 자율형 공립고와 과학중점학교는 중복으로 지원이 가능.


두 번째 불공정 구조는 선발 방법에 있어서 일반고를 제외한 다른 많은 학교들이 학생의 중학교 성적을 반영하여 학생을 선발하는 것입니다.

자율형 사립고는 학생 선발에 있어서 중학교 내신성적 30% 또는 50%를 지원 기준으로 삼거나, 자기주도학습전형을 통해 역시 중학교 내신성적을 반영하여 학생을 선발하고 있습니다.

또한 특목고도 고등학교 특성과 관련된 중학교 과목들의 내신성적을 반영하여 학생을 선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고는 학생 선택 후에 추첨에 의한 강제 배정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고와 여타 다른 고등학교의 이런 선발 방식의 차이를 두는 것은 아무런 명분이나 이유가 없습니다.

 

이렇듯 고등학교 입시에서의 불공정성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만약 이런 일이 대학에서 일어난다고 가정해 봅시다.

대학들 중에서 서울대가 먼저 전국의 학생을 대상으로 신입생을 성적으로 선발하고, 다음에 연세대와 고려대가 신입생을 선발하고 다음에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과 지방 국립대들이 전국의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선발합니다.

그러고 나서 남은 학생들을 지역별로 가까운 대학에 그냥 가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그러면 그 지역적으로 가까운 학생들을 배정 받은 대학들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나라 고등학교 입학전형은 일반고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어이없을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제도입니다.

더욱이 이런 구조에서 일반고로 간 학생들은 앞선 특목고나 자율고, 중점학교에서 떨어진 학생들이 간다는 인식이 팽배하여 이미 일반고 진학이 고등학교 입학 실패라는 선입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는 실제 현상으로 연결되어 일반고의 우수 학생 비율이 고교 다양화 정책 시행 전보다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은 물론, 매년 더욱 나빠지고 있어 일반고는 정상적인 수업조차 어렵다는 얘기가 비일비재하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불공정 구조를 개선하고자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시안)’이 나왔습니다.

이런 불공정 구조를 개선하고자 교육부(장관 서남수)는 지난 8월 13일(화)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시안)’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방안의 핵심 내용은 일반고의 다양한 교육과정 편성권을 보장하고 지원금도 마련하는 한편,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자율형 사립고의 학생선발권을 제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율형 사립고의 성적별 학생 선발을 금지하고 ‘선지원 후추첨’제로 변경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자율형 사립고의 건학 이념에 공감하여 그 학교에 가고 싶은 학생들이 지원하고 지원 학생들 가운데서 추첨하여 신입생을 선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선발 시기도 후기 우선선발로 전환할 것을 명시했습니다.

 

이에 대해 자율형 사립고의 학부모들과 교장들은 격렬하게 반대하였습니다.
관련 공청회를 무력으로 무산시키고, 교육부 앞에서 집단 항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교육과정 편성권을 많이 준다하더라도 학생 선발권을 뺏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반고는 자율형 사립고가 생기기 전부터 이미 낙후되었다고 하며, 자율형 사립고를 죽여야 일반고가 살아나냐고 비판을 하였습니다.

 

이런 주장에는 일부분 일리가 있습니다.
자율형 사립고가 생기기 전에도 일반고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율형 사립고가 없어지면 무조건 일반고가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율형 사립고 때문에 일반고의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지라도 자율형 사립고로 인해 일반고의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또 자율형 사립고가 없어져서 일부 우수학생이 더 많이 들어온다는 것이 일반고의 문제 해결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반고 중에서도 노력하는 학교가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상황이 좋아질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 마련되기에 자율형 사립고의 학생 선발 개선은 잘못된 제도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였습니다.

이는 잘못된 우리나라 고입전형을 개선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안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버렸습니다.

 

교육부는 자율형 사립고 학부모의 시위 때문에 이상한 확정안을 내놓았습니다.

교육부(장관 서남수)는 지난 10월 28일(월),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시안)」에 대한 확정안을 발표하였습니다. 교육부는 시안을 발표한 이후, 공청회와 간담회, 세미나를 통해 다양한 의견수렴 절차를 걸쳤다고 밝히고 있으나, 발표 결과를 보았을 때는 지난 시안보다도 오히려 후퇴되었습니다.


특히 자율형 사립고 학생 선발 방식에서 면접 단계를 넣은 것은 큰 문제입니다.

면접은 시안에는 없었던 변화로 결국 자율형 사립고는 학생 선발권을 계속 인정받고, 선발 시기도 전기를 유지하며, 교육과정의 자율권도 대폭 확대되는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일반고의 교육 여건이 악화되는 요인으로 꼽혔던 자율형 사립고의 우수학생 확보는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번 방안에는 자율형 사립고의 입학전형 변화뿐만 아니라, 일반고 자체에 대한 개선방안도 있었지만 자율형 사립고의 입학전형 개선 없이는 실효성이 크게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부는 면접(가칭 창의인성면접)으로 학생의 꿈과 끼(진로계획 및 지원동기)와 인성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교육부의 의도대로 면접이 활용되면 좋겠지만, 지난 시안 발표 이후 노골적으로 내신 50% 성적 제한이 필요하다고 강변했던 자율형 사립고가 1단계를 통과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꿈과 끼, 인성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리라는 믿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적과 관련된 자료를 아무리 제한한다 할지라도 몇 마디 질문으로 학생의 성적, 교육환경, 선행 정도를 다 파악할 수 있는데도 자율형 사립고가 성적 관련 내용을 전혀 보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더 이상한 상황입니다.

 

이렇게 ‘일반고 역량 강화 방안’을 확정지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제도는 가장 악용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악용의 여지를 주고 나중에 그렇게 운영할 줄은 몰랐다거나,
그건 우리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면 안 됩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위와 같은 이번 ‘일반고 역량 강화 방안’에 심각한 우려를 느낍니다.
지금의 확정안은 개선의 방향을 거꾸로 만들 위험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확정안에 대해서는 국민적 여론 수렴을 실시하고 문제가 될 부분에 대해서 수정 ․ 보완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보편교육, 의무교육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고등학교 교육에서
집에 가까운 어떤 학교를 가더라도 다양한 학습이 보장되고
학생에게 필요한 교육이 주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서열화된 고교체제는 중학생, 초등학생에게까지 큰 입시의 부담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국민적 차원의 합의와 노력이 시급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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