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엄마 홍미혜 씨의 자녀교육

   
▲ '아이의 자존감, 믿음이 키운다' 저자 홍미혜 씨

부모의 믿음은 구속력이 강하다. 비록 부모님이 큰 틀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었어도 나도 그렇고 내 동생들도 크게 엇나간 적이 없다. 잠시 잠깐 이탈해 밖으로 나가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원래의 자리에 돌아오곤 했다.

자식은 부모를 보며 배운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나를 한없이 믿어주던 부모님 밑에서 자랐으면서도 처음에는 내 아이를 믿어주는 데 서툴렀다. 왠지 아이가 불안해 보여 일일이 지시하는 일이 많았다. '손 씻고 밥 먹어야지’, ‘간식 먹고 숙제하자’, ‘잘 시간이니 어서 이 닦자.’ 등 세세한 것까지도 일러주느라 바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그렇게 일일이 챙기고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아직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어떤 상황이 위험한지 모르는 어린아이들에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당연히 알려주어야 한다 여겼다.

하지만 자녀교육도 습관이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때까지만 챙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시하고 체크하는 게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우리 아이들은 비교적 스스로 알아서 하는 편이다. 그런데도 편하게 믿지 못하고 아이들을 살피고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며 아이들이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곤 했다.

내 부모님이 그랬듯이 적어도 아이에게 큰 방향은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너무 작은 것까지 시시콜콜 지시하고 지적하는 것은 아이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소한 부분까지 지적했을 때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작은 것에 집착하다 정작 큰 것을 놓치는 경우도 많다. 온 가족이 미국에 살 때 경험한 일이다. 미국에서는 글쓰기를 무척 중요시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글쓰기를 많이 하는데, 미국 선생님들은 아이가 쓴 글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지적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한국 엄마인, 게다가 이과생이었던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내가 아는 글이란 도입부가 있고, 본론을 말하고, 결론은 내리는 형태였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당연히 지켜야 했다. 그런데 미국 초등학교에서는 문법이 이상하거나 철자가 틀려도 그냥 놔두었다.

아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선생님이 읽어서 이해가 되면 그걸로 오케이였다. 예를 들어 ‘I like you’를 ‘I you like’라고 써도 상관없었고, ‘teacher’를 ‘techer’라고 잘못 써도 의미만 통하면 문제 삼지 않았다. 나중에 선생님과 면담하면서 왜 아이의 작은 실수를 지적하지 않는지를 알게 되었다.

“저학년 아이들이 단어와 문법에 신경 쓰다 보면 생각이 막혀요. 자유롭게 사고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고학년이 되면 글의 형식이나 문법, 맞춤법 등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까지는 문법이나 철자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이의 작은 부분을 지적하다 오히려 큰 것을 놓치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큰 방향, 큰 틀만 제시해주고 나머지 소소한 부분은 아이 스스로 찾고 채워 나가게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이의 자존감, 믿음이 키운다

아이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렸을 때는 분명 아이들이 지켜야 할 큰 틀은 부모가 정해 주어야 한다. 적어도 아이들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는 알려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글쓰기를 할 때 일일이 문법과 단어를 지적하면 그것에 신경 쓰느라 생각이 막히는 역효과가 나듯이 부모가 길을 너무 좁게 내면 안 된다. 가능한 한 널찍하게 길을 내놓고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한다.

초보 엄마일 때의 나는 고작 1차선을 만들어놓고 아이를 그 길로 가라 재촉했다. 길이 너무 좁아 그 길로 몰고 가는 나도 힘들고,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가야 하는 큰아이도 무척 힘들고 답답했을 것이다. 이후 내 생각이 유연해지면서 길을 좀 더 넓게 내고 아이들을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1차선이었던 길이 2차선으로 확장되고, 다시 4차선, 8차선, 10차선으로 넓어지면서 나도, 아이도 좀 더 편해질 수 있었다. 내 부모님은 일찌감치 왕복 10차선 이상의 넓은 길을 내고 우리를 믿고 기다려 주었다. 덕분에 나는 넓은 도로에서 스스로 어떤길로 갈 것인지 선택할 수도 있었고, 살짝 엇나갔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책임감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부모가 정해놓은 좁은 길로만 다닌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스스로 생각하지 못한다. 요즘 직장에서 상사가 시키는 일 외에는 스스로 일을 찾아 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다고 한다.

소위 명문대를 나온 우수한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주로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세세한 것까지 지시하고 이를 따르면서 자란 사람들이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 아이가 커서 혼자서는 결정도 못 하고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지 못하는 마마보이, 마마걸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부모가 노력해야 한다.

길을 넓게 내고 아이가 자유롭게 넓은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 넓은 길을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앞으로 가는 속도는 다소 느릴 수 있지만 결국 아이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니 너무 조바심 낼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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