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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메트② 마호메트의 죽음, 그 뒤이슬람은 과연 본질적으로 호전성을 안고 있는 것일까?
오귀환 콘텐츠큐레이터  |  webmaster@eduj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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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05  14:5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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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 점령 뒤 이슬람 세력은 629년 비잔틴제국이 지배하던 시리아에 원정대를 보내는 등 세력 팽창에 진력한다. 곧이어 거의 모든 아랍 부족들이 움마의 구성원이 되겠다는 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그러나 서기 632년 메카 순례를 마치고 메디나로 돌아온 마호메트는 갑자기 고열과 두통을 동반한 병에 걸려 죽고 만다.

   
▲ 예멘군을 공격하는 새의 그림. 새들이 메카를 공격하는 군대를 격퇴했다는 신화적 이야기를 묘사한 것이다. <사진 제공=한겨레21>

마호메트가 후계자를 정해놓지 않은 채 갑자기 죽는 바람에 벌어진 이슬람교의 위기를 맞아 무슬림들은 고심 끝에 쿠라이시 부족 출신인 아부 바크르를 ‘칼리파’라는 직함을 가진 공동체의 ‘이맘’(예배인도자)으로 결정한다. 신권적 군주제를 채택한 것이다.

아부 바크르는 이슬람 세력을 다시 결속하기 위해 대외전쟁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이 전략은 절묘하게 성공한다. 양 강대국 비잔틴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가 서로 반목하고 견제하는 상황과, 무슬림의 기동성 높은 전투 능력이 결합해 군사적 승리를 잇따라 거둔 것이다.

그 결과 이슬람 세력은 채 30년도 안 되는 시기에 시리아, 이라크, 이집트, 북아프리카, 호라산(오늘날의 투르크메니스탄)을 정복한다. 마호메트는 죽었어도 그 후계자들은 그가 남긴 강력한 정복국가적 신정일치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가동해 세계 역사를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서기 610년 무렵 마호메트가 처음으로 설교하기 시작했을 때 그의 교리를 따라 개종한 사람은 부인인 하디자와 두 양아들 알리와 제이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처음 메카 세력을 공격했을 때 무장병력의 규모는 수십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세력이 불과 30년밖에 안 되는 시간에 세상을 뒤흔들 만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우리는 가장 강성한 왕국, 막강한 힘, 엄청난 수의 백성을 거느리고 다른 국가들을 지배하고 있는 초강대국 페르시아와 비잔틴제국에 맞섰다. 무기도 장비도 식량도 없이 맨몸으로 나가 맞서 싸웠다. 신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다. 우리가 그들의 나라를 정복해 그들의 땅과 집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게 허락해주셨다.” (후대의 한 이슬람 작가)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종교적으로는 가장 후발 종교라 할 수 있고, 군사적으로는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무기 체계도 우세하지 않던 이 집단이 단기간에 가장 놀랄 만한 성공을 거둔 원인은 무엇일까?

신정일치와 무력주의의 결합
마호메트의 성공 원인을 대략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일신교와 민족적 정체성의 통일 등 이론화 작업에서 성공했다
2. 신정일치 체제+무력주의=전면전 시스템의 완성
3. 종교공동체주의를 성장엔진으로 삼아 성공했다
4. 교리에 현세주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5. 물적 토대를 중시했다

첫 번째로, 이론화 작업을 보자.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마호메트의 지렛대가 종교이고, 종교는 본질적으로 메시지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아라비아반도에선 곳곳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야훼(여호와)의 유대교를, 일부 아랍인들이 비잔틴제국의 영향으로 예수의 그리스도교를 확산하는 등 유일신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다.

구약성경과 탈무드 등으로 이미 수천년 역사를 관통하는 종교적·역사적 이론작업을 완성해놓았다고 할 수 있는 유대교와, 세계제국 비잔틴의 문명을 뒤에 업는 등 앞서가는 그리스도교를 따라잡기 위해선 아라비아의 새 종교는 이론 면에서 발군의 비약이 필요했다.

   
▲ 아랍어로 마호메트라고 쓴 서체 <사진 제공=한겨레21>

마호메트는 이미 다른 종교의 교리와 움직임에 누구보다 정통해 있었다. 대상이었던 그는 여러 종교와 접촉할 기회도 많았다. 결혼 뒤 부인 하디자의 조카로 학식이 높은 바라카를 통해 그가 시리아의 그리스도복음서를 히브리어와 아라비어로 옮긴 것이라든가,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에 속하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일신론인 ‘하니프’를 접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

그 결과 마호메트는 혈통적으로는 유대교나 그리스도교 모두에서 ‘믿음의 조상’으로 간주하는 아브라함(아랍어로는 이브라힘)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을 선조로 규정한다(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정실 부인 사라의 몸종 출신인 하갈이 낳은 아들이 바로 이스마엘이다).

교리적으로는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와 비슷하게 계시나 예언 그리고 유일신인 하나님(알라)을 채택한다. 자연스런 결과로, 이슬람 경전인 코란에 등장하는 28명의 예언자 가운데 21명이 그리스도교의 예언자이기도 하다. 나아가 그리스도교 성경의 마리아가 신의 계시로 예수를 수태한 것을 인정하고, 예수도 예언자로 인정한다(그러나 그 신성(神性)은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요소에 더해 마호메트는 새 종교의 민족주의적 성격을 극적으로 확립한다. 헤지라 3년인 서기 624년 바로 기도의 방향(키블라)을 예루살렘이 아닌 메카로 바꾼 것이다. 이슬람교를 교리상의 뿌리가 유사한 유대교의 아류가 아닌 아랍의 종교로서 정립한 것이다.

두 번째, 신정일치와 무력주의를 결합한 부분도 매우 중요하다. 뛰어난 비교종교 연구가의 자질을 갖춘 것으로 추정되는 마호메트는 신정일치의 특장점도 잘 이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대교의 경우 역사상 신정일치의 시기를 넘어 왕정의 형태를 유지하다 멸망한 적이 있었다.

그는 나아가 신정일치 체제에 최초로 무력 해결 방식까지 도입한다. 아라비아반도 유목민의 약탈 전통에서 비롯된 이 방식은 애초 메디나로 망명한 마호메트 세력의 생존을 위해 채택한 뒤 종교적 독트린으로까지 발전해나갔다. 그 결과 호전적 유목민이 종교적 열정을 안고 싸우는 강력한 군사집단으로 변모한 것이다.

생계를 절대적으로 보장해주는 시스템
세 번째, 종교공동체주의를 성장엔진으로 삼았다는 부분은 다른 일반적인 제국과 비교할 경우 훨씬 그 효과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종교공동체인 움마는 급속도로 다른 모든 기존 조직을 해체하고 종교의 우산 아래 기존의 역량을 재결집했다.

이제 아랍인들은 그 혈통을 떠나, 그 계급을 떠나 이슬람의 깃발 아래 단결해나간다. 움마는 정복전쟁의 경제적 이익을 분점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군대의 병력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다른 제국의 팽창 과정을 보면 기존 세력과의 연대나 견제가 불가피해 성장 속도가 느린 사례가 얼마나 많았던가?

네 번째, 이슬람의 현세주의적 요소는 다른 세계 종교와 상당히 구별된다. 사후의 심판에 대해 규정한 부분은 대단히 놀라울 정도이다. “죄가 없는 자는 천국에 가고, 거기서 생전에는 얻지 못했던 것, 즉 나무 그늘이나 시원한 동산, 맑은 물, 훌륭한 음식, 빛나는 눈을 가진 아름다운 여성 등을 얻게 된다.”

어느 종교도 이처럼 사후의 보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현세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았다. 이와 함께 일부다처제 등의 요소는 확실히 다른 문명권으로부터 비판받는 요소이다. 그러나 내부 신자들에게는 더 실질적이고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보상 체계를 제시해 이슬람교가 일정 정도 ‘현세적 경쟁력’을 갖추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 7세기 양피지에 고대 아라비아 문자로 쓴 코란 <사진 제공=한겨레21>

마지막으로, 물적 토대의 요소를 보자.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의 5가지 의무인 ‘오행’ 가운데 법적 의무로 보시라는 뜻의 ‘자카’는 이슬람 세력의 강대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이 자카의 목적이 바로 ‘메디나의 무슬림을 먹여 살리고 강군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세금을 내는 것’이다. 강력한 군대가 목적이었던 것이다. 나아가 서기 626년부터 도입된 ‘지지아’라고 불리는 새 인두세 역시 그런 목적으로 시작됐다.

10세기에 성립한 <리잘라>라는 규범집은 이슬람교의 물질주의적 관점을 잘 보여준다. 이른바 ‘지하드’(성전)가 끝나고 전리품을 나누는 방식을 참가자의 종류, 성격, 계급 등에 따라 대단히 자세하게 분류돼 있다. 사원이든 군대든 이슬람에 복무할 경우 그 생계는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시스템을 지향한 것이다. 어느 누가 용감히 싸우지 않겠는가?

이슬람은 본질적으로 호전적인가
9·11 테러를 계기로 한국은 이라크 파병의 소용돌이 속에서 끝내 김선일씨 살해사건까지 경험하는 등 이슬람 세력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경착륙적인 충돌 국면으로 돌입하기 시작했다.

이런 문명론적인 성격과 별도로 한국의 현재 경제-기술적 성격은 불가피하게 중동의 에너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에 고착돼 있다. 인류의 문명론적 충돌이 한국의 경제-기술적 생존을 위협하는 극도로 불안정한 국면으로 들어선 것이다.

이슬람은 과연 본질적으로 테러 등 호전성을 안고 있는 것일까? 한국은 과연 무력을 피한 채 에너지 생존전략을 평화적으로 펴나갈 수 있을까? 마호메트가 일으킨 모래폭풍은 1400년을 지나 이제 한반도에까지 밀어닥쳤다.


온 + 오프 항해지도

   
 

▶ 중고생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이슬람사> 프랜시스 로빈슨 외/시공사
-<마호메트-알라의 메신저> 시공디스커버리 총서/시공사
▶▶ 대학생 이상
-<마호메트 평전> 게오르규/초당
-<마호메트 평전> 카렌 암스트롱/미다스북스
-〈Islam in the Context〉 Peter Riddell/Baker Academic
-〈Muhammad〉 Martin Lings/Inner Traditions International
-〈The Sword of the Prophet〉 Serge Trifkovic/Regina Orthodox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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