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상지여고 김민 교사 "창의력, 꿈과 끼, 적성 살리는 교육 돼야"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자기주도적인 창의형 미래 인재를 선발하는 전형이라는 주장과 일부 성적이 뛰어난 ‘금수저’만을 위한 전형이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학종에 대해 일선 교사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최근 서울시교육청에서 학종과 관련해 고등학교 교사 41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3%의 교사들이 학종에 대해 ‘학생 선발에 적합한 전형’이라고 답했다. 반면 ‘부정적’이라고 답한 교사는 23.9%로 나타나, 긍정적인 의견이 부정적인 의견보다 3배 이상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학종에 대해 교사 사회에서는 학종에 대한 논란이 무색할 정도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에듀진>에서는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당사자인 교사들이 학종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오늘은 원주 상지여고 김민 교사(교무부장)의 기고문을 싣는다. 

 

   
▲ 원주상지여자고등학교 김민 선생님과 학생들

 

저는 예비고사 세대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남들이 말하는 좋은 중학교를 가겠다고 자기주도적 학습의 의미도 모른 채 5~6학년에도 야간 자율학습을 했습니다. 불혹의 나이에야 예습과 복습이 곧 자기주도학습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자율학습은 나의 창의적 사고를 멈추게 한 것도 알게 됐습니다.

중·고시절도 밤 10시, 11시까지 자율학습을 통해 오로지 4지 선다의 선지 중 하나의 정답을 찾는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대학은 두 곳을 선택해 예비고사를 치른 후에 커트라인을 통과하면 두 지역에 원서를 내고, 한 곳만 통과하면 한 지역의 대학에만 원서를 내서 또 다시 대학별 고사를 보고 경쟁을 통해 성적에 따라 합격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거나 꿈꾸는 학생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느 학과에 진학을 해도 취업에 어려움이 없었기에 담임교사 주도로 성적에 맞춰 대학과 학과를 선택했습니다.

학교에 대한 평가도 ‘서울대에 몇 명을 보냈는가’로 결정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학교들이 소위 명문고로 인정받기 위해 학생 본의가 아닌 학교의 뜻에 의해 재수·삼수생을 양산했습니다.
 

   
▲ 원주 상지여고 김민 선생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교사들이 과거의 교육 방식을 답습하며 성적에 따라서 학생들의 진로를 결정하고 대학을 선정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사교육기관의 모의고사를 한 달에 두 번씩이나 보고 같은 지역 학교들과 성적을 비교했습니다. 교과별, 전체 성적이 나오면 이름과 성적을 써서 방으로 붙여 학생들을 자극하고, 학생들의 성적 향상만이 참된 교육인 것으로 생각해 성적이 올라가면 훌륭한 교사라는 착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진로에 관해 깊이 있게 고민하며 학생을 지도하지 못했기에 창의력을 살리는 교육, 학생들의 끼와 적성을 찾는 교육은 언감생심이었습니다. 소위 사교육기관에서 만들어낸 ‘장판지’를 놓고 학생의 모의고사 성적에 맞춰서 변환점수를 대입해 대학을 정해주던 시대의 교육은 학생들의 선택권을 빼앗았습니다.

어느 순간 학력고사 시대가 오고 수학능력시험 시대로 대학입시가 전환됐습니다. 한국 교육은 늘 뒷북을 칩니다. 시대가 변하고 학생도 과거의 학생이 아님에도 교육은 늘 제자리에서 중심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럴 즈음 정부가 대학 입시의 고삐를 대학 측에 맡기자 전국 4년제 대학들이 입시전형을 수시1차, 수시 2차, 정시로 구분하고, 거기에 더해 학교만의 전형을 각기 따로 만들어 200여 곳의 4년제 대학이 3,500가지가 넘는 전형을 쏟아냈습니다.

진학을 담당하는 교단의 교사는 입시전문가가 되기 위해 대학 입학처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사설교육기관의 입시설명회를 찾아다니며 자신이 속한 학교의 학생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날 불현듯 입학사정관제전형, 즉 지금의 학종의 등장으로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교육이 대전환을 맞게 됐습니다.

입사관제 이전의 모든 대학 전형은 대학의 주도에 의해 고등학교 교사는 그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문제만 푸는 능력을 길러줄 뿐이었습니다. 과거 입시제도 하에서 교사는 한 학생의 대학 진학 지도를 할 때 얼마만큼 학생의 모든 면을 파악하려고 노력했을까요. 진로 상담에서 어느 한 부분이라도 부족하면 학생의 인생은 또 다시 대학에서 혼돈을 맞을 수 있습니다.

학종은 안일하게 문제만 풀게 하던 고등학교의 교단에서 교사로서의 역할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해주며, 수시의 중심으로 당당히 서게 됐습니다. 고등학교 교사로서는 청량제 같은 전형이었습니다.

학생들도 이제는 자신의 앞날에 대한 설계를 스스로 합니다. 예전에는 학교 교사가 성적이 어느 정도 되면 학생의 재능과는 관계없이 ‘SKY대’로 원서를 써주고 학생도 군말 없이 따랐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미래를 고민하고 무엇을 하며 사는 것이 자신의 삶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기에 불확실하여 많이 흔들리지만, 바로 그런 학생에게 교사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근래 여러 언론사에서 학종에 대해 이런저런 논란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시행 초기에는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고 준비가 부족한 부분은 개선을 통해 고쳐나갈 수가 있습니다. 저는 현직 고등학교 교사로서 학종이야말로 고등학교 교육을 교육답게 만들 수 있는 전형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대입 방식은 학생부교과로 일부, 학생부종합으로 일부, 특기로 일부, 그리고 수능으로 일부를 뽑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내신 성적이 우수하면 내신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수능에 강하면 수능으로, 수능도 내신도 조금 부족하지만 잠재력과 창의력이 뛰어나며, 자신의 끼를 펼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학생이라면 그것으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종은 어려운 전형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학교생활을 보는 전형입니다. ▲학생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학교에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친구 사이에서 어떤 관계를 유지했는가 ▲학교생활에서 자신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지녔는가 ▲어떤 계획을 세워 봤고 그 계획을 어떻게 실행했으며, 실행 방법에서 다른 친구들과 차별화한 부분이 무엇이고 실행 후에 학생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그 학생은 어떤 학과를 희망하고 있으며 학교생활은 그 학과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등 학생의 학교생활을 다각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학종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학종이야말로 학생을 학생답게 만들고, 교사를 교사답게 만드는 전형이라고 믿습니다. 교사가 학생을 다각적으로 관찰하지 않으면 학종 서류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교사가 학생을 알고 나면 그 학생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만들고 학생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교사가 얼마나 학생의 모든 면을 꿰뚫고 있느냐가 학종의 평가 대상인 학생부의 기록에 드러납니다.

그 어떤 대입 전형도 학생을 이만큼 철저하게 분석하고, 교사와 학생이 교육의 장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학교는 큼직한 하드웨어가 되어 교사와 힘을 모아 학생이 마음껏 자신의 진로에 대해 탐색하고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학생들은 자신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과정의 중심에는 교사가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학종은 교사가 학생을 보다 깊게 이해해야 하는 전형입니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학생들의 끼를 바라봐 주고 조언하며 길을 제시했던 적이 있습니까? 학생들이 마음껏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진로를 찾도록 도와주고 함께하면서 꿈을 이루도록 하는 전형이 학종입니다.

학종 평가는 대학 입학처와 입학사정관들이 하는 일입니다. 객관성과 공평성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 평가해주면 됩니다. 선입관이나 편견은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학교에서 교사가 열심히 가르쳐서 길러낸 학생이 비록 교과에서 조금은 미흡해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갈 줄 알고,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아는 학생이라면, 입학사정관이 이를 꿰뚫어 보고 그 학생이 지닌 잠재력과 가능성을 서류와 면접에서 제대로 평가해 주길 바랍니다.

또한 대학에서도 입학사정관들이 학생 선발의 노하우를 쌓을 수 있도록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업무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주길 바랍니다.

며칠 전 재수생 비율을 졸업생에 대비해 통계를 낸 기사를 보며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명문이라고 얘기하는 고등학교 대부분이 많은 재수생을 내는 학교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런 기사를 통계로 분석해 내는 의도가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좋은 대학의 개념을 얘기할 때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대학이 모두에게 좋은 대학은 아니라고 합니다. 학생의 재능을 인정하고 학생이 바라는 진로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하는 대학이 가장 좋은 대학입니다.

큰 꿈도 꿈이지만 소박한 꿈도 어느 누군가에는 생명과 바꿀 수 있는 소중한 꿈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학생의 꿈은 모두 소중함을 생각하고 학생에게 접근한다면 그 교사와 만나는 학생은 세계 역사를 바꾸는 인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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