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사대부고 김현진 샘의 교단일기

   
▲ 옥천 관성회관의 정지용 시비 <사진 제공=구글>

윤동주를 읽으며 그가 많이 따르던 정지용 시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정지용 시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 ‘대한민국에서는 납북 여부와 사인이 모호하여 한때 이름이 '정X용'으로 표기되고 그의 시가 금기시 되었으나, 1988년 해금되어 국어 교과서에도 그의 시 향수가 수록되었다’라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우리 학교에서 선택한 국어 교과서에는 정지용의 수작 '향수'가 수록되어 있고, 문학 교과서에는 '고향'이 수록되어 있다.

향수(鄕愁)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지용은 감각적 이미지를 즐겨 사용했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향수’에는 여러 가지 감각적 표현이 나타나는데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곳’이나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등 다양한 감각적 표현이 사용되어 있고, 여러 번 봐도 뛰어난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문제는 이 작품을 수업할 때 아이들의 공감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나의 역량이 거기까지인지는 몰라도 시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감정의 연대가 이 작품으로는 이제 어려워진 세대의 아이들이 학교에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의 ‘고향’은 정지용의 ‘고향’과 매우 다르다. 가끔
놀러 가는 시골이나 혹은 조부모님댁 정도가 정지용의 고향과 유사하려나?

   
▲ 강원사대부고 김현진 교사
<사진=에듀진>

지용의 시를 평가절하할 자격이 내겐 없다. 하지만 시는 읽는 사람의 가슴을 울려야 한다. 학교 교육과정에 맞춰 만들어지는 시들은 많이 쉬워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예전엔 어려운 시를 읽으면 교양이 풍부하거나 많이 배운 사람 취급을 받는 우스운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는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읽고 자기 삶과 연결 지을 수 있는 시가 아이들에겐 더 좋은 시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교과서는 또 다른 학연과 권력이다. '어느 대학을 나온, 어느 교수와 함께 석사과정을 마친 식자들이 아이들에게 공감하지 않고 자신의 지적 허영심을 뽐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교과서를 재구성하면 될 것 아니냐?'란 반론이 들어온다면 응대할 근거는 있다.

결국 정지용의 시를 얘기하면서 그가 살았던 시대를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제국주의 침략의 한가운데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지 못하는 시인의 고뇌와, 제국주의에 의해 공동체가 오랜 시간동안 가꾸어 온 문화 정체성이 짓밟히고 결국 이 세계엔 몇 안 되는 나라의 문화만이 남게 될 뻔했던 아찔한 역사를.

그것이 윤동주와 정지용 그리고 그 밖에 그 시대를 살아내고 불의한 시대에 저항한 작가들이 모국어로 창작하지 못하는 데서 느낀 가장 큰 자괴감의 이유였다는, 역시나 아이들에게 공감받기엔 어려운 얘기로 마무리했다.

결국 제국주의의 야만과 폭력도 반인권적인 것일 수 있다. 한 개인과 그가 속한 사회를 억압하는 것 역시 넓은 의미의 인권 침해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빛나려면 그가 속한 사회가 안정적이고 건강해야 하는데, 일제 강점기는 그러하지 못했고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소시민들은 인권을 침해당한 것이다, 라고 다소 억지 주장을 펼쳐보며 내일은 또 어떻게 수업을 할까를 고민해 본다.
결론은 오늘의 시 수업은 실패한 걸로. ^^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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