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부모와 교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한다. 그래서 믿어주는 걸 가장 좋아한다. 좋아하고 원하는 자유를 그냥 주면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쉽게 여길 수는 없다.

교육과 양육에서 공통적으로 필요한 영역이 바로 훈육이다. 억압하고 제재하며 구속한다는 의미의 훈육이 아니다. 훈육의 원래 의도는 아이 스스로 감정 통제 능력과 행동 통제 능력을 기르게 하는 것이다.

교사가 교실에서 아이에게, 부모가 가정에서 아이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 하고 아이도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왜일까?

자유에는 마땅히 그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받아들이기엔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은 의도된 과정을 통해 진행될 수도 있고 비의도적인 과정을 통해 진행될 수도 있다. 의도된 과정을 교육이라 하고 비의도적 과정을 사회화 혹은 관계 형성 과정이라 불러보자. 의도된 과정이든 비의도적 과정이든 실패라는 과정이 따른다.
 

   
▲ 울산과학대학교 입학처 http://goo.gl/uPKmM


애착기에는 아이의 거의 모든 행동이 수용되다가도 훈육기에 오면 통제와 제재의 지도를 받는 아이는 당황스럽다. 물론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가 잘 적응하긴 하지만 진폭과 수준의 차이는 있어도 혼란과 당황은 존재한다. 실패하고 깨지고 혼나며 부끄럽고 혼란스러움이 교차하면서 아이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에 적응한다. 칭찬, 보상 등을 받으려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고, 위축, 불안 등으로 소극적이거나 더욱더 움츠러들기도 한다. 바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수많은 양육지침서와 교육서적에는 부모와 교사가 어떻게 아이를 대해야 자립심이 높고 창의적이며 자율적 아이가 될 것인지 나와 있지만, 방법대로 따라 한다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오랜 교사생활을 통해 느끼고 있다. 방법이 나빠서가 아니다. 방법은 오히려 탁월하고 기가 막힌다. 문제는 그 탁월함과 기막힘이 읽고 있는 어른에게 딱 해당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살아있는 유기체다.
긍정과 부정의 양면이 다 존재하고 종잡을 수 없다. 1교시 때 깔깔거리던 아이가 2교시엔 침울하다가 3교시엔 광포해질 수 있다. 교우 관계, 부모와의 관계, 교사와의 관계 등 관계 속에 생기는 예측 불가한 속성이 행동에 책임을 지는 자율적인 아이로 성장하는 데 방해 요소임은 분명하다. 그런 아이를 우리는 자유를 방임하는 아이라 부른다.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고 말썽을 부리며 심지어는 나쁜 아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한다. 아이 처지로 돌아가 보자. 아이는 이성보다 본능이 강하다. 아이는 일신의 편함과 즐거움 그리고 재미를 좇는다.

그런 면에서 아기 때 부모는 자신의 즐거움을 제공하던 집사(?)였는데 어느 날 말귀를 좀 알아들을 만하니까 이것저것 시킨다. 처음엔 어렵지 않았고 해내면 부모는 뛸 듯이 기뻐한다. 나름 뿌듯하게 잘 지냈는데 어느덧 나이 먹어(?) 유치원, 초등학교를 다니게 된다. 부모와는 다른 선생님이란 존재를 만나고 또래의 다른 아이들도 만난다.

또래 아이들은 친구이며 경쟁자다. 교사는 부모와 다른 존재이면서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과 같다. 뭔가 불균형을 느끼지만 그 속에 부대끼다 보니 나름 재미있다. 자율을 찾아간다. 그런데 무슨 방법으로 찾은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하다 보니 된 것이다. 뭔가를 못하게 하면 안하고 뭔가를 해보라고 하면 한다. 처음엔 선생님의 눈치를 보는데 점점 눈치 보지 않는다. 자율은 이렇게 익혀간다.

 

그럼 교사는 뭘 하는가?
지켜본다. 아이가 안전과 관계형성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지켜본다. 꼭 도와줘야 할 것만 도와주고 관계 형성의 기회를 준다. 그리고는 다시 지켜보고 관찰한다. 지켜보고 관찰하는 과정. 이건 표가 안 난다. 하지만 꼭 이 과정이 있어야 아이에게 준 자유가 책임 있는 자율로 변할 수 있다. 아이는 반드시 실패하거나 성취를 못하는 상황이 온다.

울고, 떼쓰고, 고함지르고, 변명하고, 떠넘기고, 모른척하고, 숨긴다. 교사는 적당히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 대강 넘어가거나 철저히 지적하거나 그때그때 뭔가를 한다. 그렇지만 대신 해주진 않는다. 부모도 교사처럼 하면 자녀를 자율적인 아이로 기르는 데 반드시 도움 된다.

이제껏 교실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봐오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했고 직접 지도하며 지내왔다. 그렇다고 공학적으로 아이가 변하는 과정을 설명할 순 없다.

아이가 변하고 나면 추론할 수 있을 뿐, 다른 아이에게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것도 아니다. 아이는 자유를 원한다. 교사와 부모는 아이가 자율적인 아이가 되길 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자유를 주면 방종하는 아이도 있다.

그 과정은 숙성의 과정과 같다. 부글부글 끓는다. 아이도 끓고, 부모도 끓고, 교사도 끓는다. 그러나 한 가지 내가 배운 것이 있다. 아이가 어른보다 훨씬 회복탄성력이 높다는 것이다.

아이가 어른보다 훨씬 방임지향성도 높고 자율지향성도 높다. 문제는 아이의 변동성은 예측 불가하지만 경향과 추세는 어른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데 있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믿어주는 것이다. 아이를 기다려주는 것이다. 아이가 먼저 말하도록, 아이가 먼저 해보도록, 아이가 충분히 실패하도록, 아이가 충분히 시도해 보도록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어른의 태도가 필요하다.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어른의 선한 영향력이 필요하다. 좀 더 어른이 노력해야 한다.

   
 
학생 사용 설명서I 차승민 저                    
   
 

I 고래가 숨쉬는 도서관 출간 개구쟁이보다 더 장난꾸러기인 대마왕 차쌤은 아이들과 뒹굴며 놀 궁리를 연구한다. 아이들과 함께 10년 넘게 영화를 교육에 접목할 방법을 연구해 [영화를 함께 보면 아이의 숨은 마음이 보인다]를 세상에 내놓았다. 또한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생활을 위해 [선생님 사용 설명서]와 아이들의 마음을 훔치기 위한 비장의 기술인 [학생 사용설명서]를 출간했다.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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