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수 잘못 찾은 교육개혁 "성공 가능성 낮아"

   
▲ 충북교육청 전경 <사진 제공=충북교육청>

충북도교육청(교육감 김병우)이 특정 ‘명문고’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을 싹쓸이하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내년도부터 청주지역 고교 배정 방식을 바꾸겠다고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병우 교육감은 9월 5일 자신의 SNS에 ‘평준화고 배정방법 개선’이라는 태그를 단 게시물을 올리고, 이후 8일에는 충북교육청에서 ‘2017학년도 청주시 평준화고교 성적군별 배정계획’ 설명회를 갖는 등 고교 배정 방식 변경으로 인한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지역 학부모단체를 비롯한 적지 않은 교육 관련 단체들은 도교육청이 발표한 고교 배정방식 변경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학생이 원하는 고교에 배정될 확률이 비교적 높았지만, 배정 방식이 변경되는 내년부터는 학생들이 원하는 고교를 갈 확률이 뚝 떨어진다는 것이다.

청주시의 현행 고교 배정 방식을 살펴보면, 학생 당 평균 4~7개 고등학교를 지망하도록 하고 1지망 50%, 2지망 30%, 3지망 10%, 4지망 5%, 5지망 5% 순으로 추첨 배정한다. 그런데 2017학년도부터는 중학교 성적순으로 상위부터 10%, 40%, 40%, 10%로 각각 가른 뒤, 이들을 전체 남학생 14개, 여학생 13개 학교로 나누어 보내는 식으로 변경된다.

상위 10%의 학생들끼리 추첨해 남학생 14곳, 여학생 13곳 등 전체 일반고에 번갈아가면서 보내고, 하위 10% 학생들까지도 같은 방식으로 분류해 특정 고교에 몰리지 않도록 무작위 추첨으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충북교육청은 이렇게 고교 배정방식을 바꾸면, 성적 우수학생이나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특정 학교에 몰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청주지역의 수시 합격률이 높아지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충북교육청의 이유수 중등교육과장은 “청주시 소재 평준화고등학교의 성적 군별 배정은 우수 학생과 하위 학생의 쏠림 현상 해소로 학교 간 입학성적 격차를 완화하고, 수시전형이 크게 확대될 2020년 대학입학전형에서 높은 입시 만족도를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청주시학부모연합회 박진희 회장은 충북교육청의 결정에 반대의 소리를 높였다. 박 회장은 “청주시 고등학교의 서열화에 대해서 학부모들도 분명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짚은 뒤, “그러나 김병우 교육감의 생각처럼 학부모들이 명문고만 좇는 것이 아니라, 몇 년간에 걸친 학교의 변화를 보고 그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대다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교 배정 방식을 바꾸는 것보다, 교육 환경에 맞게 교사들부터 변화할 수 있도록 교육청이 나서주는 게 먼저다”라고 말했다.

또한 충북교육청은 고교 배정 방식을 바꿔 진학 실적을 올리겠다고 큰소리치고 있지만, 실제로 진학 실적이 오를까를 두고는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국내 최상위권 11개 대학에서 가장 많이 선발하고 있는 ‘학생부종합전형’은 학생 개인의 성적 말고도 학교의 수시 중심 교육과정 운영, 학생들의 질적 성장, 이를 충실히 기록한 학교생활기록부 등 학교의 노력 여부가 결정적으로 당락을 좌우하는 전형이다. 그런데 학교는 변화 없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학생들만 성적에 따라 배정한다고 실질적으로 수시에서 합격률이 높아지겠냐는 것이다.

국내 상위권 12개 대학의 대입 전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한양대, 성균관대, 서강대, 중앙대, 서울시립대, 건국대, 경희대, 한국외대, 이화여대에서 2016학년도에 총 4만 2,012명을 모집했으며, 이 가운데 수시로 64.2%인 총 2만 6,956명을 선발하고, 나머지 35.8%는 수능 정시로 1만 5,056명을 선발했다. 수시 전형별로는 학생부교과 2,103명(4.9%), 학생부종합 1만 3,872명(33.0%), 논술 7,691명(18.3%), 실기 3,290명(7.9%) 등이다.

고교 배정방식 변경이 영향을 줄 수 있는 전형은 학생부교과전형인데, 충북교육청의 논리대로 우수 학생이 여러 학교에 나누어 배치된다고 해도 대부분의 학생부교과전형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에 합격률 상승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또한 상위 12개 대학에서 학생부교과전형으로 4.9%, 총 2,103명밖에 선발하지 않기 때문에 전국 2,300개 고등학교에서 1명씩 진학하기도 힘든 수치다. 그렇잖아도 좁은 바늘구멍에 학생들을 무작정 밀어 넣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반면 학생부종합전형에 대한 대비는 변경 전보다 더욱 취약해질 공산이 크다. 학생부종합전형은 학생들의 성적 외 학교의 노력과 교육과정, 교장, 교사들의 변화 없이는 진학실적을 올릴 수 없는 전형이며, 그만큼 학교 교육의 중요성이 지대한 전형이다.

그런데 충북교육청에서는 학교 변화의 필요성을 외면한 채 무사안일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학교장과 교사의 복지부동은 본 체 만 체하고, 애먼 고교 배정방식을 트집 잡아 성적 줄 세우기식으로 고교 배정 방식을 바꾸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결국 학교의 발전적 변화는 더욱 멀어질 것이고, 이는 학생부종합전형의 부진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뻔하다.
 

   
http://goo.gl/QCNW50

충북교육청이 진학실적을 실질적으로 높이고 싶다면 중학교 교과성적 상위권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재배치하려 할 것이 아니라, 먼저 학교 현장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실제로 청주 지역에서 진학실적이 좋은 학교는 교장과 교사들이 다른 학교에 비해 2~3배 더 노력한 학교이며, 단순히 교과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나온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길 필요가 있다. 아직도 많은 고교에서는 야자시간에 책을 읽는다고 학생들을 꾸짖고 책을 빼앗고 있다. 이와 같은 학교 현장의 근본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진학실적은 결코 올라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김병우 교육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학교 주변 치맛바람'이라는 말로 학부모들을 비하하며 “진학실적에 대해 학교를 탓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학교는 학생 선발과 지도에 최선을 다할 뿐, 입시 결과의 최대 변인인 제도는 학교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입시 경향에 거슬러간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데도 교육당국이 두고만 보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밝혔다.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는 것이다.

김 교육감은 이어 “실제 청주 시내 명문고인 모 고교의 경우도, 현행 배정방식에 따라 최상위권(290/300점)학생 대부분이 지망해 몰려가지만, 뜻하는 대학 진학에 성공한 케이스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런 데이터를 가지고도 계속 학생과 학부모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며 고교 배정방식 변경의 이유를 설명했다.

김 교육감의 말처럼 교과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자사고나 특목고의 진학실적이 그것을 증명한다. 일반고의 경우에도 많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교과 성적이 낮은 학생이 학교의 적극적인 지원과 변화 노력으로 인해 좋은 진학 결과를 얻게 된 사례도 많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결국 우리 교육이 진정한 가치를 발현할 수 있으려면 학교가 먼저 변화해야 하며, 이 변화가 선행되지 않고는 어떤 정책도 현실에 뿌리내릴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학교가 있다. 작년까지 비평준화지역이었던 충남 천안의 복자여고다. 이 학교는 교과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너도 나도 들어가고 싶어 하는 ‘명문고’였다. 그런데 올해부터 평준화지역이 되면서 학교나 학부모들의 걱정이 커졌다. 평준화로 입학한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비평준화 시절 학생들보다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 ‘명문고’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복자여고 정명근 교사는 “올해 평준화로 들어온 1학년 학생들이 지금의 2, 3학년보다 더 우수한 진학실적을 이뤄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의 학업 성취도 차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문제는 학교가 학생들을 얼마나 제대로 잘 가르치느냐에 있다고 말한다. 결국 학교의 교육 시스템이 진학 결과를 좌우한다는 의미다.

정 교사는 “교과성적이 우수하지 않은 학생이 입학하더라도 학교가 잘 가르치는 시스템을 갖췄다면 학생은 몰라보게 성장할 수 있지만, 성적이 좋은 학생이라도 잘 가르치는 시스템이 없는 학교에 간다면 제 기량을 마음껏 펼치지 못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충북교육청의 실험은 변화를 원하는 교육감으로 인해 계속 진행될 듯 보인다. 하지만 학교 교육 시스템의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 실험은 그야말로 학생들을 ‘마루타’로 만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충북교육청은 교육이라는 큰 숲은 보지 못하고 고교배정이라는 나무 한 그루만 보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일이다. 

<에듀진>과 <나침반 36.5도>는 교육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학교들을 찾아 적극 취재해 왔다. 그 결과, 학교 현장의 변화와 좋은 진학실적을 얻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요소를 찾을 수 있었다.

첫째는 개혁적인 교장이다.
자신의 안위와 안전만을 생각하는 교장이 있는 학교는 절대 변화가 불가능하다. 첫째도 둘째도 제 안위만을 위하는 교장들이 다수라는 사실은 참 슬픈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리더십이 없는 교장, 복지부동한 채 안전하게 정년을 채우려는 교장은 학생들을 위한 학교의 변화를 꿈꾸지 않는다. 이들의 변화 없이는 학생들의 학업능력 향상은 물론 진학실적도 올라가지 않는다. 우수한 학생들을 받는다고 저절로 진학실적이 좋아지는 것이 없다. 교장이 바뀌어야 한다.

둘째, 변화에 능동적인 교사들이다. 교사들이 보신만을 생각하고 아무런 비전도 없이 교사 노릇만 해서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음식이 맛있으려면 조리사가 피곤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진학실적이 좋으려면 교사가 피곤해야 한다. 이런 고생을 선뜻 나서서 할 수 있는 교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학교는 진학에 대해 명확한 정책을 짜고 진행할 수 있는 교사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렇지만 학교 내의 보이지 않는 세력 다툼 와중에서 앞으로 나설 수 있는 용기 있는 교사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 때문에 학교마다 진학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교사들이 있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학교가 너무나 많다. 


 

   
http://goo.gl/bdBmXf
저작권자 © 에듀진 인터넷 교육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