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종의 지방국립대 확대가 교육혁신 첩경

   
▲ 장흥고 ‘행복한 꿈을 찾아 떠나는 진로비전스쿨’ <사진 제공=전남교육청>

입학사정관 전형이 도입됐을 때 많은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열광했다. 학생들의 꿈과 진로, 소질과 특성, 잠재력에 따라 입학생을 선발한다는 방식은 분명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지나치게 스펙 위주의 방식으로 선발하는 흐름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정부는 학생부종합전형이라는 형태로 수정에 나섰다. 스펙보다는 학교생활중심의 평가로 방향을 틀어본 것이다.

스펙 위주의 선발은 어느 정도 제어하는 듯하더니 다시 새로운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학생부종합전형의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겨냥한 새로운 유형의 사교육까지 확산되면서 그 진실성과 공정성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퍼져나갔다.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이 높아갔다.

‘자소서가 아니라 자소설이다!’는 비난에서 보듯 학생부종합전형은 지금 이곳저곳에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깜깜이 전형이다”, “학생부를 기록하는 교사와 학교를 믿지 못하겠다”, “선생이 갑질을 해도 참아야 한다”... 최근 터져나온 일부 학교와 교사들의 비리는 이런 여론의 거센 불길에 기름을 붓고 있는 형국이다.

대학입학의 경쟁을 수능 시험으로 가리는 방식 자체는 겉보기에 공정해 보인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대학입학을 시험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세상의 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낡고 비효율적인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주장하기도 한다. “아, 우리 기성세대도 다 시험 봐서 고등학교 가고, 대학 가는 시대를 살았어. 그래서 한국을 이만큼이나마 발전시키지 않았어?”

분명히 지금 50~60대가 살아온 시대에는 대학만 졸업하면 일자리를 지금처럼 걱정하지 않았다. 그때는 경제성장률이 10%를 넘었다. 그때도 빨랐다고는 하지만 지금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도 아니었다. 그저 외우기만 잘 해도 먹고사는 데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외우기만 잘 해서 성공하는 시대를 만들었다가는 개인도 나라도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가 다시 1970년대 산업화시대로 돌아가 살 수 없는 이치와 마찬가지다.

21세기인 지금은 창의력과 협업적 문제해결능력 등 이전과는 전혀 달라진 새롭고도 도전적인 관점과 지향성을 가지고 교육에 접근해야 하는 시대다. 세상은 순식간에 똑같은 정보가 수십억명에게 퍼져나가고, 수십억명이 저마다 핸드폰 하나로 전 세계 도서관에 보관된 책보다도 많은 정보에 아무 때나 접근해서 공유할 수 있는 시대로 바뀌었다.

그러면서도 인류는 난민과 에너지문제와 환경오염, 엄청나게 벌어지고만 있는 빈부격차, 그리고 지진과 원전사고의 위험성은 물론 테러와 전쟁이란 도전과 공포와도 맞서야 한다. 이렇듯 급변하는 복잡계의 세계를 이 나라의 수능중심체제는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이 복잡계의 세계에서는 인류 최고의 두뇌게임 가운데 하나인 바둑에서 세계 최고수의 인간을 이긴 인공지능이 앞으로 10년 정도면 전 세계 인류의 일자리 40% 이상까지도 대체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모든 자동차를 무인으로 운행하는 것이 가능해져 오히려 인간이 차를 모는 게 불법이 될지도 모른다는 호언장담도 나온다.

나아가 제4차 산업혁명의 확산과 가속화로 국가간, 국내 계층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승자와 패자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라는 경고도 이어진다. 이렇듯 놀랍고 충격적이면서 동시에 인류 스스로 그 불안정성과 불확실성 때문에 으스스하게 위축되는 세상이자 시대다.

그러면서도 의약기술의 발달로 선진산업국가의 경우 평균수명은 80~90대로 치솟는 초고령화의 양상이 동시에 펼쳐질 가능성도 매우 높다. 지금 청소년들이나 어린이들은 바로 이런 복잡계의 세계, 이런 불확실성의 세상을 직접 살아가야 한다. 우리 기성세대 모두가 이 지구에서 사라진 뒤에도 살아내야 하는 게 그 세대다.

이런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현재의 수능을 강요하는 게 맞을까? 아니, 합당하지 않다. 무엇보다 이런 세계, 이런 세상은 현재 수능이 요구하는 것과 같은 선택형이나 단답형의 정답과는 거리가 멀다. 외우라고 할만한 하나의 해답이 없을 가능성이 오히려 훨씬 더 높다. 어쩌면 정답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A방안은 긍정적인 것이 이러저러한 것이고, 부정적인 것이 요로조로한 것이다...B방안은 이러저러한 것이 부정적인 것인데 이를 해소하려면 요로조로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 그 대신 원래 긍정적인 것으로 돼 있던 저러한 것이 부정적인 것으로 뒤바뀔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교육 자체가 달라져야 하고, 교육의 평가방법 자체도 달라져야 한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고등학교를 자율고, 특목고, 일반고, 특성화고로 나누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때는 학교내에서 상위권과 하위권으로 나누어 수업하면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등의 취지 때문에 정부가 감히 나서지 못하다가 결국 고교유형을 자사고, 특목고, 일반고로 나눠버렸다. 고교 진학 때부터 성적을 기준으로 상하로 나누어 고교를 다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학교는 이렇게 상위권-하위권으로 나눠놓고는 막상 일반고에서는 상위권-하위권으로 학생을 나누어 수업할 수 없도록 하는 자가당착도 서슴지 않는다. 그 결과 학생들은 사교육으로 몰려가 성적관리, 진로관리 등까지도 학원만을 신뢰하는, 그야말로 “학원에 영혼을 맡겨놓는” 사태가 벌어졌다. 교사들은 그렇게 학원에 영혼을 빼앗긴 채 교실에는 몸만 출석한 학생들을 향해 오늘도 수업을 진행한다. 학종은 여기에서 한줄기 빛이 되고 있다.

현재 학생부종합전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은 본질을 제대로 통찰하고 그 바탕에서 현명하고 적합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맞다. 표면에 드러난 것만 쫒아가서는 제대로 해결책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적으로 현재의 이 논란에서 직시해야 할 요소는 대략 2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자사고와 특목고가 학종 아닌 수능 위주의 입시를 지탱하는 주요요인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고교준비과정상 자사고와 특목고는 수능에서 일반고에 비해 절대적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학생선발도 고교교과도 모두 성적 위주로 할 수 있고 다 그렇게 몰고 간다.

그 종착역은 이른 바 명문대학의 수능 중심의 전형일 수 밖에 없다. 자사고는 아니면서도 평준화가 돼있지 않은 시골의 학교로서 학생모집을 해당 군은 물론 주위 시군에서도 모집할 수 있는 학교들이 자사고와 비슷한 입시실적을 올리고 있는 사례를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또 하나는 4년제 대학의 정원을 상당수 차지하는 지방의 국립대와 지방대가 여전히 수능을 기조로 하는 수시의 학생부교과와 수능 정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방의 학생들 가운데 수도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괜찮은 학생들이 지방의 국립대, 그리고 지방대에 상당수 지원한다. 그런 상황에서 정작 이 대학들이 전형상 학종을 제대로 운영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금세 이해할 수 있다.

지방의 일반고가 자연히 멀고도 먼 수도권 대학의 학종 대신 가까운 지방대의 수능에 올인하도록 끌려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수도권 대학은 대학 대로 지방 일반고의 잠재역량을 갖춘 학생들이 학종으로 지원해올 가능성과 비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지방 일반고의 학종 우수학생에게 돌아가야 했을 수도권 대학의 합격자 몫이 편법적으로 특목고 등 다른 유형의 고교로 빠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전제 아래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은 어느 정도 추려질 수 있다.

첫째, 자사고와 특목고를 일반고로 원상회복하는 결단이 이제는 필요하다. 학종을 비난하는 많은 사람들이 특목·자사고 대 일반고의 상위권 10개 대학 합격생 숫자를 비교한다. 일반고 1~2등급보다 특목·자사고 6등급의 수능성적이 높다는 사실은 간과한 채 말이다. 특목·자사고 학생들은 일반고 학생들보다 성적만 높은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학습 동기와 자기주도학습능력이 강해 학종에서 중요한 항목인 학업 태도와 학교생활 면에서도 일반고 학생들보다 좋은 평가를 받는다.

즉 일반고가 특목·자사고에 비해 여러 면에서 상당히 떨어지지만, 그나마 학종이 있어 성적만으로는 불가능한 상위권 대학 진학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합격 비율만을 놓고 특목·자사고와 기계적인 비교를 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자사고와 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것이다. 특목·자사고에 들어가는 우수한 학생들을 일반고에 골고루 안배해 일반고의 진일보를 꽤하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특목고와 자사고를 현행대로 유지한 채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일반고와 특목·자사고를 동등하게 놓고 평가하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특목·자사고에 대해 이른바 대한민국의 기득권 세력과 언론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안다면 왜 이들 학교를 일반고로 전환해야 하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특목·자사고는 본질적으로 수능체제에서 가장 큰 혜택을 입는 수능유지세력일 수밖에 없다.

수능체제가 이미 세계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시스템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그나마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려는 지향성을 가진 학종의 발목을 잡는 형국인 것이다. 만약 학종을 일반고에 불리하다고 생각해 학종을 비난한다면 이런 학교들의 정체성을 다시 따져보고 새로운 결단을 내려야 한다.

둘째, 지방국립대도 학종의 선발비율을 서울대처럼 확대해야 한다. 아직도 수능은 고교 서열을 결정하는 절대적 지표다. 서울대를 제외하면 서울 상위권 대학조차 전국 일반대학의 평균보다 많은 인원을 수능에서 선발하고 있다. 물론 서울 상위권 대학이 학종으로 많은 인원을 선발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수능 선발인원 역시 줄이지 않고 매년 같은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학이 얼마나 성적지향적으로 대입 전형을 운영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가운데 지방국립대는 일반고가 여전히 수능 지향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지방국립대의 학종 선발비율은 매우 낮다. 지방국립대도 학종의 선발비율을 서울대와 같은 방식으로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국의 고교교육 정상화가 더 빠르게 정착될 수 있다.

지방국립대가 학생부종합전형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채 수능최저가 있는 학생부교과 위주, 수능 정시 위주로 선발하고 있기 때문에 지방 일반고의 변화가 더딜 수밖에 없다. 지방국립대는 이제는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학종이 새로운 시대의 인재상을 선발-양성하는 데 수능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고교교육정상화에 동참해야 한다.

셋째, 학종의 비율을 전체적으로 지금보다 더욱 높여야 한다. 현재의 고교체제상 수능은 없애고 싶어도 없앨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수능을 없앤다면 자사고 특목고의 중하위권 학생들이 갈 대학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 학생들이 들어가고 싶은 상위권 대학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학종이나 학생부교과는 이들 하위권에게 매우 불리한 전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매번 학종은 일반고에 불리한 전형이라고 매도당하고,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언론사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언론사들은 어떤 때는 불리함을, 어떤 때는 유리함을 강조하면서 ‘클릭 수 낚시’를 하고 있다. 매우 무책임한 처사다.

학종은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을 키울 수 있는 전형이고 시대적 요청의 산물이다. 더 엄밀히 말하면 교과성적을 중요하게 여기는 학종보다는 창의력, 소질과 특성, 잠재력을 보고 선발하는 입학사정관전형이 바로 그것이다. 학종을 둘러싼 논란이 궁극적으로 급변하는 세계,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미래를 준비하는 첩경이라는 각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기만 하다.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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