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 변화로 말미암아 10년 뒤 한국 최고대학 바뀔수도

   
▲ 충북 금천고 '여름방학 과학캠프' <사진 제공=충북교육청>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 스티브 첸….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 구글, 유튜브 등 현재 세계 IT산업을 주도하는 유수의 대기업을 청년기에 창업한 사람들의 이름이다.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에 이르는 지금까지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정보통신혁명의 거대한 물결에 젊은 나이부터 뛰어들어, 혁신적인 소프트웨어나 아이디어 하나로 세계적 기업을 일군 이 주인공들의 학력은 다양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게이츠와 페이스북의 저커버그는 둘 다 하버드대학을 중퇴했지만, 각각 응용수학(법학)과 심리학이라는 전혀 다른 분야를 전공으로 삼았다. 애플의 대명사로 불린 잡스는 리드대학의 철학과를 중퇴한 반면, 유튜브를 만든 스티브 첸은 일리노이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 구글의 공동창업자 페이지와 브린은 스탠퍼드대학원 컴퓨터공학과를 같이 다녔지만, 브린은 석사학위를 받은 반면 페이지는 중퇴했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기에 가장 화려한 사업적 성공을 거둔 이들이 이처럼 다채로우면서도 역동적인 학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학벌과 학력서열에 찌들어 있는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어떻게 하버드 같은 최고 명문대학을 다니다가도 가차없이(?) 중퇴를 감행할 수 있지?”
“철학? 심리학? 아니, 대학에서 그런 걸 공부하고도 정보통신혁명의 스타로 우뚝 설 수 있단 말이야?”

그러나 이런 문제의식은 ‘학벌파괴형 스타’가 등장할 때마다 한동안 매스컴에서 이야기되곤 하다가 예외없이 곧 관심의 뒤켠으로 밀려난다. 그 뒤엔 이런 넋두리 같은 촌평만 남아 떠돈다.

“그들도 만일 한국에서 태어났다면(현재와 같은 입학전형 체제 아래에선) 모두 서울대를 들어가지는 못 했을 것이다…그들도 만일 한국에서 사업에 뛰어들었다면 모두 지금과 같은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을 것이다.”

SKY 출신 엘리트, 산업화 시대 국가요직 차지하며 위력 과시
학벌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하버드대에 비견될 수 있는 한국의 대학은 서울대다. 일제가 동경제국대학을 모델로 본떠 만든 경성제국대학이 광복 직후의 혼란기에 국립 서울대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No.1 대학'으로 부상했다.

해방 뒤 한반도 전역을 통틀어 대학이라곤 경성제대를 빼면 서울에는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대와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대가, 평양에는 숭실전문대 정도가 꼽힐 정도였다. 건국 초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국립대라는 권위와 새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시작부터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로 채워진 서울대는 산업화 시대로 넘어가면서 더욱 독점적 학벌사회의 선두주자로 지위를 굳혀나갔다.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의 요직을 장악한 데 이어, 정부 주도의 경제계획에 따라 경제 분야의 요직까지도 대다수 차지하면서 '서울대 파워'는 갈수록 더해갔다. 특히 국가의 엘리트를 행정고시-외무고시-사법고시라는 국가고시로 선발하는 방식을 취함에 따라, 암기를 잘 하는 학생들로 채워진 서울대는 국가 행정부의 고위 공무원과 사법부의 판검사 및 변호사 등 주요 국가기관 지배층의 산실로 자연스럽게 자리잡기에 이른다. 국가고시로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의사, 약사, 회계사, 변리사, 관세사 등의 전문직을 비롯해 대학 등 학계도 이런 구조를 따라갔다.

서울대의 독주 아래 연세대와 고려대 등이 역시 암기형 인재들의 확보를 바탕으로 국가고시 등 국가엘리트의 충원에 참여하면서 상위 몇 개 대학 출신이 한국사회를 사실상 지배하는 ‘한국형 학벌구조’는 그 틀을 완성한다. 국가권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학벌구조는 이어서 국영기업체, 민간기업 등 경제 분야에도 그대로 확산돼 나갔다. 소수 명문대학은 서로의 교차인맥을 통해서 권력과 이권, 정보를 공유하면서 자기네 지배구조의 효율성을 시스템 차원에서 더욱 높여나갔다.

한국형 학벌주의, 정보화 시대에 길을 잃다
그러나 이런 비합리적이고 불공정한 게임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동안 산업화 시대를 통해 더욱 강고해진 ‘한국형 학벌사회’-‘고시형 국가엘리트 충원방식’은 이제 산업화 시대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경제사회적-산업기술적 동인에 따라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http://goo.gl/tnaJp2

무엇보다 산업화 시기에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 학벌구조는 정보화 시대가 성숙돼 가면서 새로운 변화에 직면해 있다. 정보화 시대, 사람들이 급격히 개인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산업화 시대에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암묵적으로 묶어주던 ‘우리’라는 가치가 아닌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주체로서의 ‘나’ 라는 개념이 의사결정에서 더욱 중요하게 됐다. 이제 ‘학벌’은 더 이상 최선의 가치가 아니라 ‘개인’ 앞에 묻힌 차선의 가치가 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또 다른 변화가 동시에 일어났다. 바로 돈의 흐름을 사람들이 눈치채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 압도적이던 ‘가족의 가치’보다 ‘돈의 가치’가 우선되는 사회가 되면서 학벌은 또 한번 거대한 벽을 만났다. 중고교나 대학에서 ‘금수저는 금수저끼리 흙수저는 흙수저끼리’ 어울리는 현상을 보면 이런 조짐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과거의 학벌’보다는 ‘현재의 돈과 개인’이 좌우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반론도 있을 수 있다.

“무슨 소리인가? 학벌로 그동안 쩡쩡 대온 유명대학을 보자구! 아직도 여전히 이런 대학 들어가려는 학생들로 넘쳐나잖아?”
“왜 지금이라고 같은 대학 출신이라는 의미가 완전히 무너졌나? 덜 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파워가 있어!”

하지만 지금 인류는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전혀 새로운 세계, 새로운 문명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학벌보다 개인 능력이 중요한 '제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IoT)을 비롯해 자율주행차량, 3D프린팅, 나노기술, 바이오기술 등 신기술이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하는 이 혁명은 인간과 시스템의 관계를 새로 정립할 것을 요구한다. 어느 의미에선 새로운 문명이 인간에게 새로운 인간관계를 강요하는 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이 디지털화한 시스템에 최적의 속도로 거의 즉시 적응해나갈 것을 최우선적으로 요구하는 거대한 압력 앞에서 과연 과거형의 학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연 과거형의 학벌이 의미하는 과거형 인간관계는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일까?

이제 그런 학벌이나 인간관계는 더 이상 최선이 아니라 차선이 될 수밖에 없다. 개인의 능력이라는 직접적인 요소가, 조직과의 관련성이라는 간접적인 요소보다 더 중요하고 더욱 우선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간상으로나 효율의 측면에서 모두 그렇다.

제4차 산업혁명의 시기, 창발적이고 능력있는 새로운 인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이 때, 몇몇 선도적인 대학들이 SW특기자 전형을 확대한다는 것은 이런 점에서 대단히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상황에 따라선 가까운 장래에 대학의 순위가 완전히 뒤바뀌는 거대한 흐름의 모멘텀이 될 수도 있다.

물론 SW만이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분야는 몇 가지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적어도 SW가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을 가장 효율적으로 구현하는 공통필수도구로서의 효용을 독점적으로 지니고 있다
는 점이다. SW가 바로 스마트공장을 위한 디지털 시스템화의 도구인 것이다.

둘째, SW 분야가 그래도 현재 한국이 상대적으로 강점을 지닌 정보통신기술(ICT) 후방산업의 가능성을 다른 분야보다 크게 가지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연장선에서 집중적인 투자와 노력이 경주된다면 SW 분야는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내며 발전할 가능성도 높다.

셋째, SW 분야가 다른 창업보다 개인의 아이디어와 능력만으로 창업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넓게 열려 있다는 점도 들 수 있다. 그만큼 리스크가 적어 쉽게 도전할 수 있고, 그만큼 정부나 공공의 정책적 지원도 쉽다.

넷째, 무엇보다도 SW특기자 전형의 확대가 앞으로 대학의 인재양성에 새로운 변화를 촉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주목해야만 한다. 적어도 이 전형의 성공을 계기로 앞으로 대학입시의 궁극적 혁신, 나아가 한국 미래인재의 양성에 거대한 혁신이 이뤄지기를 기대해볼 수도 있다. SW 특기자 전형이 중장기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다면 다른 국내외 올림피아드의 성과를 입시에 반영할 가능성은 훨씬 확대될 수 있다.

이를 두고 봤을 때, 교육부가 2018학년도부터 대폭 확대키로 한 'SW특기자 전형'이라는 혁신은 한국 대학사회가 제4차 산업혁명을 향해 내놓은 가장 바람직하고 주목할 만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성적이 낮아도 SW 능력이 특출나다면 기꺼이 선발해 미래인재로 양성한다는 'SW전형'의 성패에, 한국 대학의 서열과 위상 변화뿐 아니라 제4차산업혁명기의 한국의 미래가 달려있다.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966

 

   
http://goo.gl/bdBmXf
저작권자 © 에듀진 인터넷 교육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