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하지 않는 교육은 죽은 교육이다

   
▲ 경기도의 모 고교에서 역사동아리 학생들이 붙인 설문조사표. 현 시국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매우 높고, 시선 또한 성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교육법에서는 교육의 목적을 “바람직한 민주시민의 육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민주시민을 육성하기 위해 교육은 비정파적·초당적 입장에서 실시돼야 하고, 정권교체마다 교육내용과 방향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또한 특정 정권의 이해를 대변하는 역할을 제도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정치적 중립성도 확보돼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적인 시민을 육성하고 자유민주주의원칙에 따라 국민 개개인의 자유로운 자기실현 보장을 기본이념으로 한다. 모든 과정은 민주적인 형식과 절차에 따라 실시되어야 하고 어떤 생각이나 사상을 일방적으로 주입해서는 안 되며, 다양한 견해가 서로 존중되고 민주적인 대화와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해야 하고,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동원되거나 강제적으로 참가하도록 해서는 안 되며,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것에 대한 비판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므로 사회참여교육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박근혜 탄핵 및 하야정국에서 우리의 중고생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헌정을 유린하고 국가의 시스템을 완전히 붕괴한 놀라운 사건 앞에 학생들은 분노했다.

지난 11월 5일, 세종로 한복판에서 중고생들이 모여 시국선언문을 낭독한 것은 물론 시위에도 참여했으며, 대전, 전주, 대구, 부산 등 전국에서 들불처럼 시국선언문이 번지며 직접 참여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전국단위가 아닌 소규모 지자체에서도 학생들의 시국선언문은 계속해서 확대일로에 있다.

그런데 최근 고양시에서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학생들에게 교사가 “너는 투표권이 없으므로 시위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거나, 대전시에서는 교육청이 시위학생의 학교 교감에게 전화를 걸어 시위참여 사실에 대한 인지여부를 확인하게 해 학생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과연 누가 민주 시민이고 누가 전제주의적 사고로 학생들에게 굴종을 가르치려 드는지 매우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은 자신의 삶과 독서의 경험, 사유를 통해 자신 안에 있는 답답한 심정을 그냥 묻어버리지 않고, 자신들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굴종을 조장하는 우리 한국적 교육정서상 매우 의미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전근대적 사고의 기성세대
이제 제도개혁보다 국민의 의식개혁에 초점을 두고 민주주의 실현을 향해 노력해야 할 때가 됐다. 해방 후 서구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선거·정당·지방자치·의회 등 정치제도분야의 개선은 꾸준히 이루어져 왔지만, 이런 제도를 본래 의미대로 실천할 수 있는 국민 개개인의 민주시민의식은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시민의식의 결여로부터 나타난 부정적 결과는 국민들에게 지연·학연·혈연에 의한 전근대적 투표행태뿐만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의 비합리적·기형적 태도를 가져왔다. 많은 국민들의 의식 속에는 극단적 의기주의와 기회주의적 사고가 깊이 자리 잡게 됐고, 각종 크고 작은 규범의 위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장기간에 걸친 군사정부의 통치경험이 있는 기성세대는 정부주도의 동원 메커니즘에 익숙하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수직화된 질서에 기초한 사회를 통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수평적으로 재구성된 사회에서 협업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낼 줄 안다. 이렇게 21세기 젊은이들은 능숙하게 인터넷 환경을 이용할 줄 알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기도 한다.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성숙한 민주주의란 폭력 대신에 말로 사회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소통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그 무성한 말들 대신에 눈앞에 보이는 ‘행동’이 동반돼야 한다. 비판하는 사람은 많지만, 스스로 개선하는 사람은 적다. 사유는 자유로워야 하되, 그 사유의 결과는 책임 있는 행동으로 연결돼야 한다.


‘민주시민교육’ 이론만 있고, 현장 역량 부족해

   
▲ 경기도의 모 고교에서 역사동아리 학생들이 붙인 설문조사표. 검찰에 대한 불신이 학생들에게도 팽배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2015년 교육부 정책연구를 통해 한양대 김성수 교수는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 활성화 방안’의 연구결과물을 낸 바 있다. 김 교수는 이 연구에서 “교육부는 2010년 체험과 실천 중심의 민주시민교육 활성화 방안을 통해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의 내실화를 추진해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교육부는 2015년 핵심추진과제로서 관계부처 간상시·수시 협업 체제의 구성 및 운영을 통하여 통합 관리 체제를 구축하고, 체험활동과 실천 중심적인 민주시민교육의 내실을 기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민주시민교육의 필요성에 기초하여 학생들의 민주시민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이 개편되고, 개별학교 수준에서 교과편성 등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추세라고 하지만, 실제는 아직도 과거 군사정권시절에서 한 치도 앞을 내딛고 잊지 못한 게 우리 교육 현장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학교는 제도의 틀 내에서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민주의식과 시민성을 배우고 함양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민주시민교육의 핵심 공간이다. 학교는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지적, 정의적 자질과 덕목을 직접 가르침으로써 효과적으로 시민성을 기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공동체적 시민생활을 실천하고 참여할 수 있는 장이다.

그 동안 한국 민주시민교육은 국가 중심의 주입식 교육에서부터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고, 민주시민의 자질이 중시되는 교육으로 발전했다. 학교에서도 사회, 도덕과목을 중심으로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앞서 김 교수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은 불일치, 도구화, 무관심, 제도적 미비, 인식의 결여측면에서 다수의 문제가 존재한다.

불일치 측면에서 볼 때 학교의 비민주적 학교문화와 민주시민교육 내용의 불일치, 교사 학습에 있어 교육내용과 방식의 불일치, 학생의 이론과 실천, 인지와 정의 사이의 불일치, 순응적 시민과 비판적 시민 사이의 불일치가 존재한다.

도구화 측면에서 학교에서는 다원성이 부족하고, 교사는 자율성, 민주적 교직원 문화 등이 부족하며, 학생은 자율성이 부족하다. 때문에 전체적으로 교육의 정치적 도구화가 문제점으로 제기될 수 있다.

무관심 측면에서 학교는 학생자치활동 추진 동력이 없고, 교사는 자발적 모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행정 업무 부담이 과중하며, 학생은 참여의식, 의사결정능력, 실천능력, 책임성, 관용 등이 부족한 실정이다.

제도적 미비 측면에서 학교 내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민주시민교육 전담기구가 부재하고, 교사의 경우 민주적 협의문화가 부족하며, 학생은 체험이나 참여의 기회가 제도화되지 않은 문제가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인식의 결여 측면에서 학교의 장은 민주시민교육 활성화의 의지가 부족하고, 교사는 압축된 지식 전달에만 초점을 맞추거나 학교와 정부 지침만 따르기 때문에 전문성이나 역량이 부족하며, 학생은 생활양식으로서의 민주시민에 중점을 두기보다 점수 따기 경쟁에 그친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학교의 다양한 주체들 중 교사의 경우 학생들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는 점에서 민주시민교육의 핵심 주체라고 할 수 있다. 교사는 교육의 전문역량을 교과연구와 교수법에 반영함으로써 학생들을 민주시민으로 양성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현행 학교의 구조, 내용, 방식은 교사의 민주시민교육 역량 강화를 제약한다.
 

   
대림대학교 입학처 https://goo.gl/t5iQC2


우선 ‘구조적 측면’에서 입시위주, 교과서 진도 위주 학교 교육과정에서 형식에만 중점을 두다보니 민주시민으로서의 생활방식은 간과되는 문제가 존재한다. ‘내용 측면’에서 민주시민교육의 내용과 현실의 불일치 문제가 있으며, ‘방식 측면’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이 이론에 대한 학습, 교과 중심의 교육, 사회과나 도덕과의 특정 과목에서만 다루는 주제로 인식된다는 문제가 있다.

교사의 민주시민교육 역량을 강화함과 동시에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학교의 모든 주체가 의사결정의 권리를 가지고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시민성을 육성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교육내용과 방법을 고안하며, 일부 교과가 아닌 전 교육과정에서의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하고, 단순한 지식전달과 습득에서 벗어나 실제 생활에 민주적 시민성을 연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김 교수는 이같은 분석에 근거해 ‘학교 내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를 위한 지원 방안’과 ‘정책 및 제도화 측면’이라는 두 방향에서 “생활 속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참여와 토론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교과서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추상적인 정치제도, 선거 등의 설명에서 벗어나 직접 활동과 논쟁중심으로 교과서 내용을 개편해야 흥미를 이끌어 내면서 지식과 행동을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정책을 제안한다.

‘일방적 교화’ 아닌 ‘상호 인정의 의사소통’ 절실

   
▲ 경기도의 모 고교에서 역사동아리 학생들이 붙인 설문조사표. 현 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사에 대한 의견을 묻고 있다.

민주시민교육의 전문성 확보와 최소기준 설정이 요청된다. 특히 교사들의 시민교육 역량강화가 필수적이다.

민주시민교육이 전문성을 확보하려면, 개인적인 도덕적 혹은 정치적 신념에서 벗어난 기준에 따라 관련 교과와 영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교육적 실천을 개발하고, 검토 및 평가를 해야 한다.

전문성에 지향을 둔 민주시민교육 담론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학문적인 지식에 의존해야 하고, 교화의 금지, 논쟁점 반영, 학습자의 이해관계 고려 등의 원칙을 지켜야 하며, 참여자 혹은 학습자 지향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민주주의사회에서 시민교육의 주체는 국민 스스로이며, 그 대상도 국민이다. 여기서 정부, 더 엄격히 표현하면 국가는 지원자의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반대로 전체주의나 독재체제에서의 교육주체는 정부이며, 그 대상은 국민이다. 왜냐하면 민주시민교육은 상호 교호적인 의사소통의 성격을 지니는 반면, 후자에서의 교육은 주로 일방적 교화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스템과 생활세계 간의 상호연계 속에서 사회구성원들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진행되어야 한다. 과거 재건운동이나 새마을운동, 사회정화운동, 바르게살기운동, 제2건국운동 등과 같은 정부중심의 홍보·동원교육은 시스템을 생활세계에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교육으로 간주된다.

이와 반대로, 민주시민교육은 사회전체에서 각 영역의 주체들을 상호 매개·교통시켜 주는 수단으로 이해해야 한다. 특히 의사소통론적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민주시민교육의 실행과정에서 몇 가지 원칙들이 지켜져야 한다. 이들 원칙은 민주시민교육의 연구자와 실행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논의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첫째, 교화의 금지이다. 참가자들에게 특정 의견만을 갖도록 설득하여 각자의 자율적 판단에 의한 고유의견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해서는 안 된다.

둘째, 의견다양성의 보호이다. 학문분야나 정치현실에서 존재하는 다양한 관점과 의견들을 인위적 제외·선별·왜곡됨이 없이 교육 중에도 그대로 다루어져야 한다.

셋째, 정치적 영향력 함양이다. 참가자들이 정치적 상황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개인적 상황과 이해관계까지도 함께 분석하고, 아울러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유리하도록 정치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찾을 수 있게끔 해야 한다.

교육은 ‘영혼 없는 지식’을 전수해 ‘똑똑한 양떼’를 길러내는 교육이 아니다. 학생들이 ‘탁월한 개인, 책임 있는 시민, 성숙한 공동체 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이 돼야 한다. 현재의 한국의 중고등학교 현장은 진학만을 위한 영혼없는 교육이 된지 오래이며 이것을 뚫고 새롭게 개척해 가려는 학생들에게는 무덤이다.

사회의 모순을 바라보고 시정할 수 있는 행동이 없는 교육은 더 이상 교육의 의미가 아니다. 학생들에게 고전을 읽히고 토론 수업이 필요한 이유는 자신이 깨달은 바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행동이 없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독서는 죽은 독서와 마찬가지이다.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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