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은 예전 그대로..교육부 직무유기

   
▲ 2017 수능을 치르기 위해 여객선을 타고 뭍으로 떠나는 여수 여남고 학생들 <사진 제공=전남교육청>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 가운데 절반이 훌쩍 넘는 학생들이 필요도 없는 수능 시험을 치르고 있다.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다. 올해도 60만 명의 수능 응시자 중 중 약 31만 명이 수능시험을 볼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수능 시험장을 찾았다.

수험생들 가운데는 '수험생 반값 할인' 같은 이벤트 기회를 얻기 위해 필요도 없는 수능 시험에 응시했다는 학생들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학생이 수능을 안 보면 쓰나!"라는 어른들의 눈총을 받기 싫어 수능을 치렀다고 털어놓고 있다.

31만 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불필요한 수능을 치르는 이유가 단순히 모멸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일 뿐이며, 결과적으로 31만 명의 소중한 시간과 자원이 수능 정시 등급 산출을 위한 들러리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불필요한 국가적 낭비이자 중대한 교육문제 중 하나이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올해 대입 수시전형에서 실제로 수능 성적이 필요한 학생은 학생부교과에서 수능최저가 있는 7만 여명, 논술에서 1.4만 여명, 정시 선발인원 10만명, 전문대 정시선발인원 3.4만 명 등 총 23만 여명이다. 반면에 수능 성적이 필요 없는 학생은 학생부종합에서 7만 2천 명, 학생부교과 중 수능 최저가 없거나 유명무실한 전형에 지원한 7만 여명, 전문대 수시 1, 2차 합격자 17만 여명 등 총 31만 명이나 된다.

참고로 2017학년도 수시 선발인원을 살펴보면 학생부교과에서 14만 1,292명(39.7%), 학생부종합에서 7만 2,101명(20.3%), 논술 위주로 1만 4,861명(4.2%), 실기 위주로 1만 7,942명(5%), 기타 2,473명(0.70%) 등 총 24만 8,669명으로 전체 대입 선발인원의 69.9%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정시는 수능 위주로 9만 3,643명(26.3%), 실기 위주로 1만 2,280명(3.5%), 학생부교과로 437명(0.1%), 학생부종합으로 671명(0.2%), 기타 45명을 선발해 총 10만 7,076명, 전체 대입 선발인원의 30.1%를 모집한다.

한편, 전문대는 모집인원 21만 1,200명 가운데 수시 1, 2차에서 84.7%인 17만 8,790명을 선발하고 정시에서는 15.3%인 3만 2,410명을 선발한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고등학생들은 수능시험에서 높은 점수와 등급을 얻기 위해 문제풀이 위주의 수업과 EBS 교재 중심 수업을 3년 내내 받고 있다. 이러다 보니 수능이 끝나고 나면 3년 동안 배웠던 교과 지식은 모조리 까먹고 만다.

고등학교 3년의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갈수록 수시 선발 비중이 늘면서 수능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 학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학교가 변화의 의지 없이 여전히 수능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학생들을 의미 없는 수능 시험 준비에 내몰고 있는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이 학생들에게 미래를 준비할 시간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큰 문제이다. 전국적으로 절반이 훨씬 넘는 학생들이 미래를 위해 다양한 진로 체험과 활동을 펼쳐야 할 황금 같은 고교 시절을 불필요한 수능 준비를 위해 허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학교에서만큼은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도 나올 정도이다.

또한 대다수의 학교에서 수능 대비 '야자'를 하고 있지만 수능이 필요 없는 학생들에게까지 사실상 강제하고 있어, 이들에게 야자 활동은 그저 시간 때우기에 지나지 않게 된다. 또한 많은 학교에서 야자 시간에 문제풀이 학습 외에는 일체의 시간 활용을 금지하고 있고, 금지 항목에 독서활동도 포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능을 치를 필요도 없는 학생들을 학교에 잡아두고 책조차도 읽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 학생들은 새장에 갇힌 새나 다름없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학습동기를 전혀 주지 못하고 오로지 지식암기형, 찍기식 문제풀이를 무한반복시키며 학생들을 밤늦게까지 붙잡아두고 있으니, 정신이 건강한 학생들이라도 이상이 생기는 것은 시간문제일 정도다

물론 학교에는 수능 시험이 필요한 학생이 있고 그들에게는 시험을 준비할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수능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 학생들까지 교실에 붙잡아놓고 무기력하게 앉혀두고 있는 것은 학교의 직무유기이자 학생 인권을 심각히 침해하는 행위이다.

야자 시간에 어떤 학습동기도 없이 자리만 채우고 앉아 있는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려보자. 이들은 불합리한 지시를 내리는 학교와 교사에게 불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제지간이라는 상하관계의 아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학교와 교사를 상대로 불만을 제기해 현실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불만은 무력감과 함께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분노로 더욱 확대되고, 학생들의 스트레스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 평택대학교 입학처 http://goo.gl/U8HF3S


고교 교사들은 학교에서 수능 이후 고3 학생들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학생들에게 강제되는 불합리한 교육과, 그로 인해 학생들이 갖게 되는 불만과 분노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이 나라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 그리고 학교와 교사들의 통렬한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대구 청구고 이동우 교사를 비롯해 현재의 수능 제도와 교육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여러 교사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으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주문하고 있다.

1. 3년 내내 수능 공부에 올인하도록 만드는 학교 내 교육과정을 혁신해야 한다. 학교교육과정의 혁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국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기 위해’ 시행되고 있는 현행 수능시험을 완전한 자격고사로 바꿔 ‘기초·기본학력을 확인하는 고교졸업자격고사’로 전환해야 한다.

아울러, 대학들이 공교육정상화법의 원칙에 따라 학생부종합전형과 대학별고사로 신입생을 100% 선발하도록 하는 과감한 대입전형의 혁신이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고교 교육과정은 그야말로 ‘국가교육과정’에 따른 창의교육, 인성교육, 진로교육으로 변모해 수업과 평가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2. 수능시험의 EBS 연계로 인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교과 교육과정의 왜곡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EBS 교재 연계 방식인 현행 수능시험 출제 방식을 기존의 ‘합숙 출제’에서 벗어나 ‘문제은행식 출제’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출제 방식의 변화는 당연히 수능시험의 성격이 전국 학생들을 한 줄 세우는 '상대평가'가 아니라 학생별 기초기본학력(또는 공통적인 대학수학능력)을 평가하는 '절대평가'로 변화됨을 기본 전제로 해야 한다.

이런 혁신이 이루어지면, 우리 고교 현장은 ‘국가(시교육청)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수업, 평가가 재구성돼,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 질문과 토론이 넘치는 수업으로 전환될 것이다.

3. 수시 합격이 99% 예정된 학생들에게 야간 자율학습을 의무적으로 하게 하는 행위는 금지돼야 한다. 지금도 방과후 자율학습은 학생, 학부모의 자율적 의사를 존중해 시행하도록 돼 있다. 고3 교실에서도 학생 개개인이 꿈과 끼를 발휘하고 가꾸어나갈 수 있도록, 현재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반강제적 야간 자율학습을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4. 학생들이 각자의 진로 희망에 따라 반드시 필요한 공부, 즐겁고 강력한 동기가 부여가 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대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특히 학교 내에서 무기력한 학생들, 학교공부에 부적응한 학생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교육과정을 지속적으로 혁신해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 희망과 계획에 따라 더욱 많은 과목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고교 평가 제도에서 현행 ‘상대평가 9등급제 병기’를 폐지하고, 하루속히 교육부가 지난 2014학년도부터 도입하고자 했던 ‘온전한 성취평가제’를 시행해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의 내신 등급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동일 과목의 이수학생 수를 늘리는 식의 왜곡된 학교교육과정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다행히 경기도교육청이 내년부터 전면적으로 야자를 없앤다는 발표를 했다. 학생에게는 무조건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어른이라면 반기를 들 수도 있지만, 수능이 필요 없는 다수의 학생들에게는 매우 유익한 정책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야자를 없애는 대신에 학생들이 지역 대학과 연계해 진로탐색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교육의 근본 목적을 견지한 유익한 대안 제시이다.

시간이 갈수록 정시는 축소되고 수시의 학생부 위주 전형은 확대될 것이다. 그래야 교육이 바로 선다. 지금도 수많은 교사들의 수업시간이 EBS 교재 문제 풀이에 함몰돼 수업이 수업이 아닌 채로 운영되는 학교가 상당수이다.

학교는 상위권 학생들을 위해 중하위권 학생들을 희생시켜 '밑돌 받치기'를 하는 교육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 현행 ‘상대평가 9등급제 병기’를 유지하고 있는 내신 평가 제도에서, 학교의 내신 등급은 기본적으로 밑돌, 즉 동일 과목을 이수하는 많은 이수학생 수가 없으면 다른 학교에 비해서 성적 우수 학생들이 불리하게 되므로 제대로 유지되지 못한다.

이런 교육평가 제도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절대평가제, 상대평가 9등급제 병기가 폐지된 완전한 성취평가제 도입이 필요하다. 이런 원리는 현행 수능시험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영어 절대평가제의 도입은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지만 이것 역시 9등급으로 나누어 놓음으로써 결국 기존과 동일한 상대적 평가일 뿐이라는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11월 17일 치러진 2017 수능 시험은 상위권 학생들의 변별을 위해 난이도를 높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수능 시험이 어려워질수록 대학들은 신입생을 ‘고교 교육과정 친화형 입학전형제도’인 학종 등을 통해 스스로의 시간, 노력, 비용을 투자해 선발하려 하기 보다는, 국가가 전국의 학생들을 한 줄 세워주는 수능시험 결과에 의존하려고 한다.

이러다 보면 결국 전국 대부분의 고등학교가 수능 시험 대비를 위해 지식암기형, 지식주입형, 찍기 문제풀이 무한반복형 수업과 평가 방식으로 교육과정을 후퇴시키게 된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이때,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과거퇴행적 교육 체제 속에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대학이 우수 인재를 선발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에서 우수한 미래 인재는 학생부종합전형에 다 몰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학종이 미래 인재 선발에 탁월한 거름망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이는 그동안의 학종 선발 학생들의 대학생활 지표와 졸업 후 취업 지표 등의 실적이 증명해주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학생들에게 무기력감과 절망감만을 주는 교육과 결별해야 할 때이다.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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