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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들의 진로 탐험 ③ 위대한 남극탐험가, 아문센노르웨이 효자의 꿈 이룬 이야기
오귀환 콘텐츠큐레이터  |  webmaster@eduj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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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1.10  15: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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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극점 첫 도달 이후 아문센(가운데)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가 됐다.

극지 탐험의 꿈 품은 노르웨이 소년
한 소년이 있었다. 노르웨이의 차디찬 겨울밤에도 잠자리에 들기 전 창문을 열어놓길 고집하는 소년이었다.

“지구의 끝을 탐험하려면 이런 추위쯤 이겨내야지!”

눈을 감아도 그의 마음에는 하나의 이미지가 크게 채워져 갔다. 상상 속에서 소년은 어느덧 북극의 바다를 누비는 거대한 탐험선에 올라 있었다. 그는 이전 선조 바이킹과 달리 쌍도끼가 아닌 장거리 항해용 망원경을 손에 들고 미지의 섬과 피오르를 응시하고 있었다.

소년을 사로잡은 탐험선은 30년 전 북극을 향해 출항했다. 129명을 태운 영국 해군의 북극 탐험선 두 척은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를 사랑한 젊은이 100여 명이 아직껏 그 어떤 인간도 가보지 못한 지구의 극지에 도전했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는 ‘존 프랭클린 탐험대’의 장렬한 실종기를 보는 순간 소년의 가슴은 큰 울림으로 뜨거워졌다. 그리고 깊은 곳으로부터 이 세상에 태어나 해야할 만한 그 ‘무언가’에 대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알! 우리한테 언제 올 거야? 선장 시험은 자신 있지?”

바다의 나라, 바이킹의 나라 노르웨이는 그렇게 한 소년을 탐험가의 길로 유혹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어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오늘도 셋째 아들이 자는 방의 창문을 닫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가며 깊은 상념에 잠긴다. 친정어머니가 루터교로 개종한 이후 그녀 역시 어머니를 따라 루터교로 바꾸고 독실하게 신앙을 이어왔다. 하지만 결혼 이후 첫 아들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더욱 조심하며 세 아들을 낳아 정성껏 키웠다.
 

   
▲ 1911년 남극점에 도달할 무렵의 아문센. 사진 위에 아문센 자신이 친필로 서명했다.

남편의 집안은 오랜 선장이자 선주 가문이라 유복했다. 하지만, 바다일이 늘 그러하듯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정정하던 남편마저 영국을 다녀온 뒤 시름시름 앓다 죽은 이후 그녀의 걱정은 온통 셋째 아들로 쏠려가고 있었다.

“로알은 절대 다른 길을 걸어야 해. 걔도 첫째보다 튼튼해 보이지 않아. 아무리 돈이 있으면 뭐 해.”

노르웨이는 14세기 흑사병으로 인구의 절반이 죽은 나라였다. 1812년 나폴레옹의 편에 섰다가 영국군의 해상봉쇄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와 굶주림으로 죽어갔다고 그녀의 친정아버지는 되뇌곤 했다.

어머니의 반대에 ‘잠시’ 굴복한 꿈
우리나라의 대다수 가정이 겪고 있는 크고 작은 갈등의 근원인 ‘진로 문제’는 19세기 말엽인 1887년 북유럽 백야의 나라에서도 엄연히 존재했다. 로알 아문센, 나중에 전 세계 교과서에 그 이름을 올릴 이 위대한 탐험가도 정작 자신의 진로를 ‘탐험’해 내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어머니 한나 아문센이 아들에게 간곡하게 권한 진로는 바로 ‘의사’였다.

56세,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와 같은 나이였다. 아문센의 효도 기간은 이제 끝난 셈이다. 그는 의대를 그만뒀다. 그리고 엄청난 시간을 투여하며 몸만들기에 들어갔다. 의대에 다니던 샌님 같은 얼굴은 점차 강인하고 다부진 체격으로 성장해갔다. 키도 185cm에 육박하게 됐다.

그는 선장이 되는 것을 1차 목표로, 탐험가가 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고 바로 선원 시험에 응시했다. 22세에 그는 벨기에 국적의 화물선으로 남극 지역의 자남극 탐험에 나서는 벨지카호를 탔다.
 

   
▲ 아문센의 남극 원정대. 북서루트 개척 때처럼 남극에서도 썰매개를 이용했다.

오랜 항해 끝에 멀리 남극대륙을 둘러싼 채 떠받치고 있는 듯한 거대한 얼음절벽을 난생 처음 본 순간, 그는 금방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맑고 투명한 대륙은 복잡다단한 문명세계로부터 다가온 인간들을 침묵 하나만으로 완전히 압도했다.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를 합친 것과 비슷한 크기의 이 거대 대륙은 아직껏 그 어떤 인간도 자신의 심장부에 진입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막다른 길에서 돌파구 찾아 선장 자격 따내
아문센이 선장이자 탐험가로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한 것은 남극 대륙을 본 지 6년 뒤의 일이다. 그가 탄 어선이 북극해 북서항로에서 얼음에 얼어붙어 갇혀 버렸을 때, 선장은 보급품이 떨어지면 죽는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보급품을 그저 아끼기만 했다.

선원들은 영양실조와 괴혈병으로 쓰러져나갔다. 답답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선장은 자신마저 병에 걸려 눕게 되자 사실상 항복 선언을 한다.

“아문센, 네가 이제 선장이다.”

대리 선장으로 지명되자 아문센은 전혀 딴판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남은 보급품을 몽땅 털어 선원들이 그나마 기운을 쓸 수 있도록 먹였다. 그리곤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선원을 동원해 곧바로 물개사냥, 펭귄사냥에 나섰다. 비장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현실적인 이 생존책 덕에 선원들은 살아날 수 있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곧바로 선장 자격을 땄다.

그 뒤 그는 유럽으로부터 시작해 북극해를 거쳐 아시아 동북 끝으로 빠져나와 알래스카로 가는 북서항로를 인류 2번째로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곤 대망의 남극정복에 나선다. 이미 영국의 섀클턴 탐험대가 남극을 향해 출발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그는 섀클턴 탐험대의 모든 것을 치밀하게 공부하기 시작한다. 또 다시 그는 장기전 채비에 들어갔다.

‘해양 대국’ 영국에 맞선 남극 탐험
1910년 8월 아문센은 남극을 목표로 삼고 있었지만, 북극에 도전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프람호를 출항한다. 프람이 모로코 해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선원들에게 선포한다.

“우리는 이제 남극으로 간다! 아직 누구도 가보지 못한 남극점이 우리의 최종 목표다!”

심지어 그는 노르웨이 정부 관리들에게도 북극행이라고 거짓으로 알리고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한다. 당시 영국은 세계 최강의 해양대국이었다. 아문센보다 남극을 먼저 도전한 섀클턴도 영국인이고, 아문센과 비슷한 시기에 남극행에 나선 스코트도 영국군 장교였다.

그뿐인가? 어릴 적 아문센을 사로잡았던 북극해의 존 프랭클린 탐험대 2척도 모두 영국 해군의 탐험선이지 않았던가? 소국 노르웨이 출신으로서는 바다의 무법자처럼 군림하는 영국에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는 게 절대 필수 사항이었다.

   
▲ 1911년 아문센은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뒤 동료 대원들과 함께 3일 동안 남극점에 머물렀다.

영국의 섀클턴은 남극점에서 97마일 떨어진 곳까지 갔다가 포기하고 돌아섰다. 남극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남은 것은 노르웨이의 아문센 탐험대와 영국의 스코트 탐험대 둘뿐이었다. 두 탐험대의 대결은 인류 역사상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경쟁 레이스’로 전 세계에 비쳤다.

어느 팀이 어디까지 접근했는지, 어느 팀이 이길 것인지가 최고의 뉴스로 그 시대의 미디어를 강타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1812년 영국군의 포위로 숱한 사람이 굶어 죽어간 사건을 되살리며 아문센의 승리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다.

영국은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영국인들은 자랑스러운 영국군이 국가적 지원까지 받아 밀어붙이기에 소국 노르웨이의 풋내기 선장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여겼다. 스코트 탐험대는 말들을 동원해 가능한 한 다량의 보급품을 여러 보급기지에 비축하는 전략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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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달리 아문센은 보다 실전적이고 치밀한 계획 아래 움직였다.

일찍이 북극의 북서항로 개척에 나서는 등 스코트보다 극지에서 실제 경험을 더 축적한 아문센은 북극 원주민인 이누이트의 조언에 따라 보급품 수송에 썰매개를 동원했다. 북극에서 수세기 동안 썰매를 끌어와 극지 조건에 최적화한 개들을 골라 효율적으로 운용했다.

나아가 식량이 떨어지면 개 일부를 잡아서 먹었다. 동양 전쟁역사를 빌어 표현하면 ‘극지 탐험 전쟁’에 이른바 ‘둔병제’를 동원한 것이다. ‘둔병제’는 전쟁에 나서는 군대가 ‘전장 현지에서 농사를 지어 식량까지 조달하는’ 이 전례 없는 전술을 말한다.

아문센은 나중에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썰매개들을 ‘우리 아이들’(our children)이라고 불렀다. …우리에게는 개들이 가장 중요했다. 이 원정의 모든 성패는 바로 이 개들한테 달려 있었다.”

1911년 10월 18일, 아문센 탐험대는 11개월 전 영국 섀클턴 탐험대가 포기하고 돌아섰던 지점을 통과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들은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했다.

최고의 탐험가에서 구조대원으로 전향한 이유
아문센은 이제 문명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됐다. 1926년 그는 이탈리아의 항공엔지니어인 움베르토 노빌레와 함께 팀을 이뤄 비행선으로 북극점을 통과하는 데도 성공한다.

그러나 노빌레는 북극점 통과 비행 때 무전기를 조작해 아문센을 제치고 첫 교신하는 등 자신이 주인공처럼 행세했다. 그는 나중에 아문센의 극지 비행선 ‘노르게호’에 대항해 ‘이탈리아호’를 새로 만들기도 했다. 명예욕 때문에 아문센을 배신한 것이다.

   
▲ 아문센이 탔던 초기 탐험선 마우드의 잔해

2년 뒤, 아문센은 노빌레가 북극해에서 이탈리아호를 운항하다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자 곧바로 자신의 비행기를 동원해 구조작업에 나선다. 그리곤 북극해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구조작업에 목숨을 바친 것이다. 노빌레는 다른 구조팀에 의해 구조됐다.

아문센은 목숨까지 건 구조작업에 나서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어머니한테 한 약속,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되겠다는 약속을 이제 그는 극지에서 실종한 동료의 목숨을 구하러 나서는 결단으로 대신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문센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진로는 바로 ‘구조대원’, 의사가 되라는 어머니의 바람처럼 생명을 구하는 일이었다.

■ 극지 탐험가 아문센의 성공 요인

1. 꿈을 향한 의지와 집념은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아문센에게 의사가 되라고 강권했을 때, 효심이 깊은 그는
어머니 말씀을 따랐다.
- 그의 나이 21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는 바로 의학 공부를 중단하고 원래의 꿈을 찾아 선장 자격을 갖추기 위한 준비에 들어가며 치열하게 노력한다.
- 아마도 아문센은 어머니가 그의 나이 41세에 돌아가셨더라도 그때부터 선장-탐험가의 길을 걸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2. 긴 말 대신 철저히 준비한다
- 어렸을 때 그의 사진은 다소 병약해 보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탐험가가 되겠다는 목표에 맞춰 매일 같이 많은 시간을 투자해 철저한 체력단련에 나섰다.
- 그는 남극점에 도전할 때도 남극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감추고 철저히 준비했다. 당시 최고의 해군력과 항해기술 그리고 인적자원을 갖춘 영국이 자신의 남극행을 알면 방해할 것을 대비해 조용한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3. 가장 실질적인 방법만을 믿고 찾아낸다
   
▲ 아문센의 유년 시절 모습
- 25세에 남극 탐험선에 탔다가 한겨울 동안 얼음에 갇혔을 때, 그는 보급품이 동나는 것을 두려워해 식량을 극도로 아끼는 선장과 달리 물개를 적극적으로 사냥해 선원들을 먹여 살렸다.
- 남극 탐험 때도 그는 말로 끄는 종래의 탐험대와 달리 이누이트처럼 개를 이용해 수송하고, 식량이 부족할 때는 과감하게 썰매개 일부를 잡아먹는 결단을 내렸다.

4. 좋은 대원이나 파트너를 찾는 데 뛰어나다
- 어떤 탐험을 할 때라도 그는 좋은 사람을 뽑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 나중에 북극점을 비행선으로 통과하는 계획을 세웠을 때도 그는 가장 유능하고 풍부한 재정능력을 지닌 파트너를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 북극점 통과 비행도 그가 이탈리아의 유능한 조종사를 선발하지 않았다면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5. 대원들이 자신을 믿고 따르도록 노력한다
- 그는 대원을 뽑으면 모든 것을 철저히 준비하도록 전략과 계획을 세우고 점검했다.
- 아울러 자신을 포함한 모두에게 공정하게 일을 배분해 대원들이 누구나 그를 신뢰하도록 이끌었다.
- 그 결과 대원들은 그의 젊은 나이와 상관없이 그를 ‘진짜 대장’이라고 불렀다.

6. 기다린다
- 극지 탐험은 문명으로부터의 완전한 단절이다. 모든 것을 철저히 준비해도 얼음에 갇혀 한겨울을 견뎌내야 할 때도 많다. 그때마다 그는 참고 기다리는 데 성공했다.
- 북극해 북서항로를 개척할 때도 얼어붙은 북극해가 녹아 탐험선이 항해할 수 있을 때까지 그는 3년이나 기다렸다.


*본 기사는 <나침반 36.5도> 2017년 1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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