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 만점 맞고도 하버드대에 떨어지는 이유
▲ 충남 중·고등학생 미술축제에 참가한 학생들 [사진 제공=충남교육청] |
SAT제도 대변화, 혼란은 없다
SAT, 즉 미국의 대학입학 자격시험은 절대평가로 실시된다. 2015년까지는 ‘Critical Reading’ 800점, ‘Math’ 800점, ‘Writing’ 800점으로 총 2,400점 만점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2016년부터는 ‘Critical Reading’에 ‘Writing’ 섹션이 흡수돼 ‘Evidence-Based Reading & Writing’이라는 하나의 섹션으로 합쳐지고 만점이 800점으로 조정되면서, ‘Math’ 800점까지 더해 총 1600점 만점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최근 전 세계적으로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Writing’ 섹션이 ‘Reading’ 섹션에 흡수된 이유는 무엇일까. ‘Writing’ 섹션은 단어나 문법 중심으로 시험문제가 출제돼, 암기 위주 학습으로 단기간에 고득점을 올릴 수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 따라서 동양인 유학생들이 고득점을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섹션으로 인식돼 왔다.
미국 교육당국은 이런 풍토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단기간의 암기식 학습으로 고득점을 올리는 방식은 미래인재 선발과 양성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Reading’은 전보다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Reading’ 지문을 통해 어휘 능력을 확인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지문이 출제되고 분량도 많아졌다. 이에 따라 새 SAT에서 고득점을 얻기 위해서는 단기간의 암기 학습으로는 익힐 수 없는 독해능력과 논리력이 필수가 됐다. 이로 인해 기존의 방식으로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인 학생들에게는 매우 불리한 시험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SAT 시험 제도가 대폭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두고 불합리하다거나 불필요한 변화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단순히 말하자면 SAT 성적이 대입의 당락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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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의 학생에게 100가지의 교육법이 있다
세계 최고 대학이라고 일컬어지는 미국 하버드대학교는 그들만의 입학사정관제 방식으로 매년 1,600~2,000명의 신입생을 선발한다.
하버드대의 합격자 중 중간 성적대 50%의 SAT 점수는 2,400점 만점에 2,350점부터 2,070점 사이에 걸쳐 있다. 그렇지만 합격자의 25%는 이보다 높고, 역시 합격자의 25% 정도는 이보다 낮다. 백점 만점 점수로 환산하면 97점보다 더 높은 학생이 25% 있고, 86점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학생도 25%나 된다는 얘기다.
미국의 학생, 학부모, 교사들은 하버드대의 고유한 선발 방식으로 인해 SAT 만점을 받은 학생일지라도 탈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입학사정관제 방식이 교육 주체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교육계 지도자들은 진정한 교육이란 “100명의 학생에게 100가지의 교육법이 있다”는 전제 하에 이뤄진다고 말한다.
실제로 미국의 초중고는 학생 개개인의 재능을 키워가도록 하는 방식으로 학생을 가르치며, 대학도 입시 전형에서 이 같은 요소를 고려하고 있다. 단순한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진로 설계 아래 창의력, 의사소통능력, 협업력, 비판적 사고력 등을 다진 미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대학마다 고유의 인재상을 설정해 그에 걸맞은 인재를 찾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소위 SAT/GPA의 일률적인 커트라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이 Mid-50 range, 즉 중간 50% 합격점수를 발표하기는 하지만, 편차가 대단히 커서 유의미한 통계가 되지 못한다.
미국 입시에서도 학교성적이 가장 비중 있게 평가되지만, 우리나라처럼 단순히 성적 줄 세우기 식의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그러하듯 자신이 수강하고 싶은 교과 과목을 듣는 학생수가 적어 내신 등급에서 손해를 보게 된다는 이유로 해당 교과 수강을 포기하는 일이 없다.
오히려 미국의 대학은 자신의 진로나 흥미에 맞는 교과를 선택해 적극적으로 학습하는 학생에게서 도전정신과 지적 호기심 등을 읽어낸다. 이때 성적은 부차적인 것이 된다. 미국은 등급과 관계없이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을 선발하려 하지, 등급을 올리기 위해 불필요한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을 원하지 않는다.
▲ 호서대학교 입학처 http://goo.gl/gd3a2b |
대입 학생 선발을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하는 이유
미국 대학이 이처럼 고유한 입학사정 방식을 고수할 수 있는 이유는 대입이 전적으로 대학 자율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국가는 수능 성적으로, 고교는 교과 9등급제로 학생들의 줄을 세우고 대학에 이 순위에 맞춰 학생을 선발하라는 압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학생 선발에 대한 대학의 자율권은 설 자리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대학이 창의력, 의사소통능력, 협업력, 비판적 사고력 등 해당 대학의 인재상에 부합하는 미래 역량을 갖춘 학생들을 선발하고자 해도,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수능이나 교과 등급을 내세우며 성적 중심의 선발만이 공정하고 객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외면하기 어렵다.
올해 7월에는 2021학년도 대입 수능개편안이 확정된다. 이 개편안은 2018년도에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부터 적용된다. 교육 관계자들은 수능개편안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한쪽에서는 수능을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수능을 없애거나 자격고사화해서 대입에 수능 성적 줄 세우기를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대학의 자율적인 대입 선발 환경은 우리 교육계에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 대학이 우리나라의 학생부종합전형과 유사한 종합전형을 운영하면서도, 각자 추구하는 인재상에 맞춰 어떤 간섭이나 통제 없이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그 자율성이 사회적으로 존중되고 인정받는 것은 우리 대입 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도 일치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4차 산업혁명기의 초입에 든 현재, 더 이상 반복 암기 중심의 교육환경에 우리 학생들을 내몰아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반복 암기 학습의 ‘끝판왕’인 수능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갈수록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 우리 교육계에 필요한 것은 학생부종합전형이 제도적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일선 고교에서 학생부종합전형 중심의 교육과정을 시행하도록 하는 것이며, 대학에 학생 선발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그래야 학생들이 반복 암기 학습 환경에서 벗어나 다양한 활동 속에서 진로를 탐색하고 사회적 경험을 쌓으며, 그런 가운데 창의력, 의사소통능력, 협업력, 비판적 사고력, 인성 등을 키워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은 미래를 규정한다.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무섭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미래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가장 우선시돼야 할 일은 바로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교육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842
▲ 학부모 필독서 '달라진 입시, 새판을 짜라!' https://goo.gl/VKISh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