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동포 위해 민족 프로젝트 창업

   
▲ 내성문은 청해진 내성 중심에 위치한 출입문으로 외성문과 함께 방어의 기능을 맡는다.[사진 출처=문화재청]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의 조화

장보고의 삶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1) 평생을 도전하는 벤처 정신으로: 그는 처음 신라라는 숨막히는 신분사회의 벽에 막히자 과감하게 개인의 창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넓은 대륙 당나라로 건너간다. 그곳에서 무령군의 소장으로서 작은 성공을 이룬 그는 노예무역으로 고통받는 동포를 구하는 민족 프로젝트를 스스로 기획하고 창업해낸다. 그 누구보다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는 삶을 산 것이다.

다시 해적 소탕에 성공한 뒤에는 1만명의 군사력과 총체적 역량을 모아 청해진 무역선단으로 전환한다. 나중에 왕족 김우징을 도와 왕성 공격에 나선 것도 그의 도전정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 역사상 이처럼 매 상황마다 도전 정신으로 헤쳐나간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지 않은가?

(2)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의 조화: 그는 이미 1200여년 전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의 조화를 성공시켰다. 민족주의자도 국제주의적 시야와 철학을 가져야 한다. 그는 그것을 가르친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거꾸로 국제주의도 민족주의와 만나야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는 교훈도 가능하다.

(3) 지경학(地經學)의 대가: 그는 청해진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해서 그곳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동아시아 삼국무역의 중심지역이기 때문에 그곳을 거점으로 해적 소탕이라든가 삼국무역도 가장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곳이 신라 중앙권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비정치적 거점을 확보하는 것을 용인받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그는 지리와 경제를 잘 읽은 탁월한 지도자이다.

(4) 외부확장형 인물: 그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영역을 새롭게 기획해서 선점하는 식으로 성공을 거두는 유형이다. 당나라로의 도항, 해적 소탕 기지로서의 청해진 기획, 해적 소탕 뒤 청해진의 무역선단으로의 재빠른 변신 등이 다 그렇다. 그런데 그가 신라의 전통적인 중앙권력으로 진출 방향을 돌린 것은 이런 자신의 장점을 망각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땅이 아니라 기성 진입자가 수백년 동안 득시글거리며 피를 빨아먹고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 기득권으로 방향을 돌리면서 장보고는 좌절한다. 그리고 단 한번의 좌절이 그의 죽음으로 직결된다.

   
▲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입학처 http://goo.gl/FZ1vLX

해양왕국의 꿈은 왜 꺾였는가
(5) 패배하지 않아본 자의 방심: 그는 늘 성공 가도만을 달려왔다. 그 결과 평민 출신으로 ‘감의군사’ ‘진해장군’이라는 지위에까지 오른다. 신라 역사상 전례가 없는 신분 파괴적 계급 상승을 기록한 것이다. 늘 성공만을 구가한 결과 그는 쉽게 사람을 믿는 단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위장 잠입한 옛 부하 염장의 칼에 찔리고 만다. 믿는 사람에게 찔리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청해진이 무너지고 해양왕국의 꿈이 꺾인 것이 슬프고 슬플 뿐이다. 한국 역사에서 바다는 그렇게 막혀버렸다.  

대륙으로 퍼져나간 신라인들

장보고가 살던 9세기 무렵 중국에는 신라인 거주지역이 광범하게 퍼져 있었다. 가장 많이 신라인들이 몰려 살던 곳은 산둥반도를 비롯해 추저우(楚州), 롄수이(漣水), 양저우(揚州) 등 창장강 유역과 화이수이강 유역이다.

산둥반도는 한반도와 가장 가깝다는 지리적 특성과 그 배후에 많은 인구들이 모여 있어 시장성이 높은 지역이고, 양저우는 ‘바다의 실크로드’를 따라오는 이슬람 상인들의 최종 기착지였다. 전체적으로 신라인들은 당나라의 동해안을 따라 산둥에서 저장성 닝보에 이르기까지 퍼져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이런 해안도시에서 큰 강과 운하를 따라 흘러들어가고 있다.

당시 당나라는 당에 체류하는 이민족의 지위를 법적으로 보호해주는 율령을 제정하는 등 개방적이고 국제적인 정책을 취했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 많은 사절단과 상인, 유학생, 종교인들이 몰려들었다. 자장, 의상, 혜초, 지장이나 최치원 등이 당나라로 간 것도 다 이런 흐름에 따른 것이다.

신라인들은 곳곳에 ‘신라방’ ‘신라촌’으로 불리는 외국인 거주지역(‘번방’)을 형성했다. 자신들의 행정 업무를 위해 ‘구당신라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그 관리자로 신라인을 임명했다. 일본 승려 옌닌이 쓴 <입당구법순례행기>에 ‘총관’ ‘압아’로 나오는 직책은 다 이것을 지칭한다.

신라인 사회는 자신들의 정신적 구심점으로서 거주지역마다 불교 사찰을 두었다. 대표적인 것이 장보고가 산둥반도 문등현 적산촌에 세운 법화원이다. <…순례행기>에 따르면 서기 839년 11월16일부터 이듬해 정월 15일까지 법화원에서 법화경을 강의했는데, 이것이 끝날 무렵에는 신라인 남녀 신도 250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경전 강의나 예배하고 복을 비는 방법은 모두 신라 풍속대로 했다는 것이다.

당시 신라인들은 목탄운송업, 조선업, 선박수리업, 상업, 농업 등에 종사하며 청해진 무역선단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한다. 정보 취합과 전달, 유통 지원 등 다양한 형태의 활동이 <…순례행기>를 통해 확인된다. 신라인들은 대단히 진취적인 기상을 발휘하며 대륙으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온+오프 항해지도::
▶중학생용

-<장보고-역사학자 33인이 추천하는 역사인물 동화7> 김종상/파랑새어린이
-<역사스페셜5> KBS역사스페셜/효형출판

   
 


▶▶대학생 이상
www.changpogo.or.kr

-<해상왕 장보고> 최광식 외/청아출판사
-<천년 전의 글로벌 CEO 해상왕 장보고> 한창수/삼성경제연구소
-<장보고 시대의 해양활동과 동아지중해> 윤명철/학연문화사
-<장보고와 청해진> 손보기/혜안
-<중국정사조선전2> 국사편찬위원회

*에듀진 기사 원문: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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