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평가에서 학종 규모 항목 슬그머니 삭제..다음 정권 눈치보기?

   
▲ 제주교육과학연구원 '제주과학탐구아카데미' [사진 제공=제주교육청]


교육부, 대학 평가에서 학종 선발 비율 항목 슬그머니 삭제
교육부가 대학 재정 지원사업에서 그동안 유지해 왔던 평가 지표를 변경하는 식으로 학생부종합전형 확대에 제동을 걸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부는 2월 말 발표한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기본계획’에서 지원대학 선정 평가 기준을 대폭 변경해, 학종 확대라는 대학의 대입전형 기본 방향을 역행시키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은 고교교육을 내실화하고 학생과 학부모의 대입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대입전형을 고교교육 중심으로 개선하는 대학들을 선정해 지원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교육부가 발표한 기본계획을 살펴보면 올해는 평가 유형에 기존의 I유형과는 별개로 지방 중소형 대학 대상의 II유형를 신설하고, I, II유형의 평가 지표를 다르게 설정했다.

눈에 띄는 점은 I유형의 경우 지난해 평가에서 ‘학생부 위주 전형 규모와 운영 적절성’을 평가 지표로 선정해 가장 높은 배점인 30점을 둔 것과 달리, 올해는 ‘학생부 위주 전형 운영 내실화 정도’를 평가하는 것으로 변경하고, 배점도 5점을 낮춘 25점으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그동안 학생부 위주 전형, 그 중에서도 학생부종합전형을 확대하는 대학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이런 평가 기조 아래 지원금을 배분해 왔다. 그런데 교육부가 갑자기 올해부터 학생부 전형 규모를 평가 항목에서 빼고, 대신 내실화 정도를 평가하겠다고 말을 바꿔, 사실상 학종 선발 비율을 축소하고 학종을 위축시키려는 목적이 아니겠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추가선정평가' 지표 중 학생부 위주 전형 항목

   
▲ 출처=교육부


지방 중소형 대학은 학종 안 해도 된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지방 중소형 대학 대상의 II유형에서는 학생부 위주 전형이 아니라 ‘지역 및 학교 여건을 고려한 대입전형 운영 노력’을 평가 지표로 놓고, 30점이라는 높은 배점을 둔 점도 논란을 더하고 있다. 더구나 구체적인 평가 내용을 살펴보면 학생부교과전형 규모와 운영 사항 등이 주가 되고, I유형에 있는 입학사정관 여건(20점) 항목도 빠져있다는 점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결국 지방 대학으로 하여금 전형이 까다로운 학종을 버리고 고교 내신만으로 쉽게 선발하는 학생부교과 중심으로 전형을 운영하도록 교육부가 판을 깔아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부의 이 같은 정책은 이제야 뒤늦게 시작된 지방 대학의 학종 선발 확대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물론 학종을 운영하는 대학에 대해서는 학종 내실화 노력 등을 평가한다는 단서 조항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있으나 마나 한 조항이 될 공산이 크다. 지방 대학에 대한 교육부의 평가가 학생부교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대학이 구태여 힘들고 손이 많이 가는 학종을 유지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충남지역 고교의 한 교사는 “지방 중소대학이 학종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방 대학의 평가기준을 달리 한다면, 학교교육에 충실한 학생을 선발한다는 학종의 취지에 공감해 학종을 확대하려고 하는 대학들을 주저앉히고, 대신 편하게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학생부교과에 더욱 올인하는 쪽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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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학종을 축소하기 위한 방침이 아니라, 학종 선발 비율이 높은 수준에 올라온 만큼 학종의 내실화를 꾀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말했다. 또한 “입학사정관 확보 등이 어려워 학종을 운영하지 못하는 지방 중소대학의 경우 지원서조차 제출하기 힘든 상황이라 이들 대학에 맞는 평가 지표를 신설했고, 대학들과도 수차례 협의와 의견수렴을 거친 뒤 검토하고 발표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방 중소 대학이 사업에서 배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 해도, 창의, 인성 중심 교육이라는 교육 지향성에 역행하는 쪽으로 평가 지표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교육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지방 중소 대학이야말로 학생부교과 중심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학종 선발 비율 항목과 입학사정관 여건 항목 등에 큰 비중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지방 대학의 학종 선발 비율이 높아지고, 지방 고교들의 지식 암기 중심 학습환경이 학종을 기본으로 한 창의, 인성 중심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지방 중소 대학에도 형평성 있게 지원 혜택을 주려고 한다면, 수도권 대학과 지방 중소 대학을 따로 묶고, 학종 중심 평가 후 성적에 따라 지역별로 따로 지원금을 나눠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구 비슬고 현계욱 교사는 “지방 대학의 입사관들은 무기계약직보다 2년제 계약직이 월등히 많아 고용 안정성이 대단히 낮고 그 수도 서울권 대학들에 비해 현저히 적어서, 학종 선발 인원만 무조건적으로 늘린다면 입사관이 5명 이내인 많은 대학들이 현실적으로 제대로 전형을 운영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교육부는 지방 대학이 학종의 양적인 팽창에만 열 올리지 않고, 입사관의 신분 안정성을 보장하고 입사관 수를 늘려가는 가운데 학종 선발 비율을 확대해 가는 등 학종 운영에 충분히 내실을 기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이를 평가해 지원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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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지방 교육환경 개선에 찬물 부은 격
또한 교육부는 대학과 충분한 협의를 거쳤다고 하지만 일선 고교와의 협의는 매우 부족했다는 것이 교사들의 지적이다.

충남의 한 고교 교사는 “교육부가 대학 측과만 일방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것이 아니라 일선 고교와도 충분한 토의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사는 “교육부의 이런 일방통행식 행정은 이제야 겨우 학종 중심으로 맞춰진 일선 고교의 교육과정과 입시지도 방향을 흔들며 고교에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교육부는 학종 비율이 커질 만큼 커졌다고 하지만, 지방 대학 쪽을 보면 최소한 5~10% 정도는 확대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진단하며 “지방 쪽에는 이제 막 학종을 시작하는 대학도 있고, 학종이라는 이름만 붙였을 뿐이지 실제로는 학종이 아닌 전형을 운영하는 대학도 있는데, 이를 제대로 평가하고 관리해 지방 대학에도 학종이 튼실하게 자리 잡을 수 있게 하는 것이 교육부의 의무”라고 밝혔다.

결국 교육부의 이번 발표는 창의, 인성을 중심으로 교육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그동안의 방향성을 버리고, 절망적인 교육 현실을 외면한 채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교육부 관계자가 대학들에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사업 외의 다른 대학 지원 사업에 대해서도 설명하면서 “대학 평가에서 수시·정시 비율을 고려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 중앙일보 보도를 통해 밝혀져, 교육부의 ‘학종 죽이기’가 단발성으로 그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대권 주자들, 입으론 '4차 산업혁명' 외치지만 현실은 '암기 위주 수능' 떠받들어
한편, 학종을 두고 교육부가 이처럼 급작스럽게 방향을 선회한 것에 대해 다음 정권을 염두에 둔 눈치작전이 벌써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국회에서는 이미 지난 국감 때부터 학종 확대에 대한 비판이 나왔고 학부모들의 학종 확대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등, 학종을 계속 확대해 나가는 것에 압박이 있어 이를 수용한 측면은 있지만, 다음 정부 눈치 보기는 절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1318 대학진학연구소 유성룡 소장은 "정권이 바뀌기도 전인데 정부 기관이 앞서서 눈치를보는 것은 좋은 처신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유 소장은 "교육부와 교육계가 학종만을 두고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먼저 각 전형의 적정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를 교육 주체들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공개적으로 제대로 논의하는 것이 먼저"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런 논의가 없다 보니 정부, 대학, 고교, 학생, 학부모들의 의견이 모두 제각각인 채 서로 다른 말을 할 수밖에 없고, 대선 주자들의 교육 정책도 뜬구름 잡기 식이 되기 쉽다.

대선 후보 중 많은 수가 학생부종합전형 축소와 정시 확대라는 정책 기조를 내세우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학종을 축소하고 정시를 확대하겠다는 대선 주자들이 말로는 ‘4차 산업혁명’에 충실히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정시 확대와 학종 축소가 바람직한 ‘4차 산업혁명’ 대비의 방향과 정확히 대척점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도 여전히 대선 주자들 대부분이 모순적인 발언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교육 정책에 대한 대선 주자들의 준비가 얼마나 허술한 상황인지를 알 수 있다.

입으로는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정작 내세우는 교육 정책을 살펴보면 창의, 인성 중심의 학종을 배척하고 산업화 시대에서나 유용했을 암기 중심의 수능 전형을 앞세우고 있는 대선 주자들의 발언은 실소를 부르는 난센스에 가깝다. 불과 2개월 밖에 남지 않은 대선 국면이다. 대선 주자들은 하루 빨리 청소년들에게 희망에 찬 미래를 선물할 수 있는 교육정책을 숙고해 주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은 진정한 교육 발전을 위해 암기 중심, 성적 줄 세우기 중심의 수능 체제 대신 창의, 인성 중심의 미래대비형 학종 체제의 정당성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이해시키고, 노무현 정권 말 최초로 태동한 학생부종합전형이 정권이 여러 번 바뀌면서도 창의, 인성 교육이라는 일관된 교육 목표 아래 꾸준히 성장해온 기세를 끝까지 이어가는 것이다. 교육은 미래를 위한 준비여야 하지,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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