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형 수능전형인가, 21세기형 학종인가

   
▲ 대입 지원전략 수립 입시설명회 개최 [사진 제공=부산교육청]

누가 수능을 공정하다고 하는가
처음으로 4지선다형 시험 방식을 고안한 사람은 이 방식이 지금처럼 시험의 보편적인 형태로 자리 잡게 될 줄 몰랐던 것으로 알려진다. 4지선다형, 혹은 5지선다형 시험 방식은 산업화 시대에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같은 목표를 위해 경쟁하는 많은 사람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줄 세울 수 있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근대교육이 시작된 이래 4지선다형 시험은 필수가 됐다. 지금까지 학교는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워 평가해 왔다. 성적이 나빠 경쟁에서 뒤쳐지는 학생들의 자존감은 무시됐고,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이 교사들의 관심과 학교의 거의 모든 상까지 독식했다. 결국 학교는 성적 중심으로 서열화된 사회의 축소판이 돼 갔다.

학생부종합전형의 장점을 설명하는 기사에 달린 반대 댓글들을 보면 대개 ‘학종은 공정하지 않은 전형, 수능은 공정한 전형’이라는 전제를 깔고 말한다. 기사 댓글뿐이 아니다. 학생이나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보면 절반 이상이 ‘학종보다 수능이 공정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수능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공정한 대입 선발 방식일까. 한 마디로 말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수능전형이 공정하지 않은 이유로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문제 난이도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진다

   
▲ 수원대학교 입학처 http://goo.gl/OI0ptt

수능이 어렵게 출제되면 상위권 학생들에게 유리하고, 쉽게 출제되면 하위권 학생들이 이득을 보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다. 시험이 어려울수록 상위권과 하위권의 성적차가 크게 벌어져 변별력이 높아지고, 반대로 시험이 쉬울수록 상위권과 하위권 차가 줄어들어 변별력이 낮아진다. 매년 치러지는 수능 난이도에 따라 울고 웃는 학생들이 달라진다. 말 그대로 '수능 복불복'이다.

변별력 확보라는 명목으로 고교 교과과정을 충실히 밟은 학생이 절대 풀지 못할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고, 그 한두 문제로 등급이 갈리는 것이야말로 수능의 불합리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둘째, 찍기 실력에 등급이 좌우된다
현재 수능은 5지선다형 문제가 기본이 되는 시험이다. 따라서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해도 잘만 찍으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구조다, 모든 문제를 찍어서 맞힐 수는 없다 해도 헷갈리는 몇 문제들을 요령 있게 잘만 찍으면 평소보다 좋은 점수를 받게 된다. 결국 잘 찍었는가 못 찍었는가가 등급을 결정하고 대입 당락을 좌우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두 문제를 찍어서 맞히느냐 못 맞히느냐에 따라 1만 순위 이상 밀리거나 당겨지는 것을 생각하면, 수능을 복불복 전형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셋째, 학교나 교사간 역량 차가 너무 크다
학교나 교사의 역량에 따라 학생들의 성적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학종만이 아니다. 특히 사교육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학교 수업 중심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가르치는 교사의 역량에 따라 등락이 갈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서울에 있는 A고교의 생물 교사는 입시의 달인으로, 수능 예상문제로 100문제를 추려 수업 시간에 풀어주었다. 수능 시험을 치른 결과 20문제 중에 15문제가 예상문제에서 출제됐고, 이 교사에게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모두 높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B고교의 생물 교사는 시간 때우기식 수업으로 일관하며 학생들의 수능 준비에 아무런 도움이 돼주지 못했다. 더한 사례도 있다. C학교의 생물 교사는 “학원에서 다 배워 왔을 테니 알아서 공부하라”며 수업시간에 자율학습을 시키고, 학원에 안 다니는 학생들에게 학원 교습을 종용했다.

A고교와 B, C고교에 다니는 학생들 중 비슷한 학업역량을 가진 학생들을 놓고 비교해 봤을 때, A고교 학생은 학교 수업에만 충실해도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던 반면, B, C고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학원 수강을 해야만 했다. 가정 형편 상 학원 수강이 어려운 학생들이 이런 교사들 때문에 좋지 않은 수능 성적을 받았다면, 이래도 수능을 공정한 평가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20세기형 수능전형인가, 21세기형 학종인가
수능전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정성과 거리가 먼 요소가 너무나 많은데도, 아직도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수능=공정’ ‘학종=불공정’이라는 잘못된 공식을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하고 있다.

   
▲ <나침반36.5도> 정기구독 http://goo.gl/bdBmXf

더구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나갈 인재로 성장해야 할 지금의 학생들의 잠재역량을 평가하는 데 수능전형은 대단히 부적합한 도구다. 창의력, 협업능력, 리더십,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인성, 전공적합성 등이 학생 선발에서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되고 있고, 이런 능력들이 진정한 학생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교과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암기하고 있는가로 학생의 역량을 평가하려 하고, 그런 평가방식으로 얻은 결과를 공정한 진짜 실력이라고 믿는 것은 21세기를 살아갈 학생들을 20세기식 잣대로 재단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반면 학종은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내신성적뿐 아니라 창체활동, 독서활동, 동아리활동, 진로활동 등을 함께 보고 학생들을 평가하는 다면적 평가방식을 쓰고 있다. 그래서 학종을 통해 특정 분야에 대한 우수성을 보여 합격할 수도 있고, 항목별 역량이 고루 우수해서 뽑힐 수도 있다.

개중에는 낮은 성적을 가지고 3배수 또는 5배수를 모집하는 1차에 합격했다가 2차 면접에서 빼어난 전공 적합성을 어필해 합격하는 경우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선발된 학생들을 단지 운이 좋아 합격했다고 깎아내리곤 한다. 하지만, 이런 학생들은 학업능력은 다른 학생들보다 약간 떨어질지 몰라도 그 외의 다른 역량은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에 대학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서도 높은 학업성취도를 유지하고, 졸업 후 취업률도 다른 전형 학생들보다 높다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상위권 대학일수록 학종 선발비율을 높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학은 학업능력만을 가지고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나가서 필요한 기본적인 역량을  파악해 학생을 선발한다. 사회에 나가면 국영수탐 등의 학업능력은 그 사람이 가진 여러 역량 중 아주 작은 일부가 될 뿐이다. 학업능력만 가지고 진로활동을 할 수 있는 분야는 교사나 강사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교사나 강사들조차도 오로지 학업능력 하나만 뛰어나다고 해서 '능력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사나 강사에게는 자신의 학업능력보다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한 역량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학업능력은 학생이 가진 능력 중 일부일 뿐 전부가 될 수 없다. 사회에 나가 진로활동을 해야 할 학생들에게 정작 필요한 역량은 학업능력이 아니라 위에서 열거한 창의력, 협업능력, 리더십,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인성, 전공적합성 등이다. 

학종 문제, 보완이 필수과제
물론 학종에도 불공정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비슷한 역량을 가진 학생이라도 어떤 학교에 다니고 있는지, 어떤 교사를 만나는지에 따라 학생부 기재 내용이 달라진다는 점이 학종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원인 중 1순위로 꼽힌다.

더구나 학종은 5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로 정답자와 오답자를 명확히 가를 수 있는 정량적 평가가 아니라, 학생의 학교생활 태도와 활동내용, 전공적합성, 인성, 리더십 등을 교사의 시각에서 정성적으로 평가해 학생부에 기재하고, 이 학생부를 기준으로 학생의 역량을 평가한다. 그러다 보니 학생부를 잘 써주는 학교와 교사를 만나면 합격하고, 아니면 불합격하는 ‘복불복 전형’이라도 한다.

이처럼 수능과 학종 모두에 불공정성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이 교육의 방향성이다. 어떤 방향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할지를 생각하면 정답은 명확해진다.

암기 능력과 찍기 능력으로 성적이 가려지는 수능으로는 창의적 발상과 유연한 사고가 요구되는 미래를 이끌어갈 역량있는 인재를 선발하기 힘들다. 따라서 '공정한 수능'이라는 거짓된 프레임을 깨고 나와, 학종을 기본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와 함께 학종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찾고 이를 해결해 가는 것이 바람직한 입시의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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