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연구원 "EBS-수능 연계는 고교 수업 파행 주범"

   
▲ 부산 모 고등학교 3학년 수학 시간. 교사(녹색 원 안)가 전체 50분 수업 중 10분만 강의하고 나머지 40분은 EBS 인강(붉은색 원 안)을 틀어 논란을 빚었다. [사진=YTN뉴스 캡처]


'EBS-수능 연계' 폐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여당이 2021학년도 수능부터 EBS-수능 연계 방식 폐기를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와 교육계가 술렁이고 있다.

EBS-수능 연계는 사교육비를 줄이고 교육 기회를 공평하게 확대한다는 취지로 시행돼 왔다. 하지만, 연계 비율이 70%를 넘어가면서 일선 고교의 학교 수업이 EBS 교재 문제풀이 시간으로 변질되는 등 공교육 파행을 유발하고 있어,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현재 중3 학생이 치르게 될 2021학년도 수능은 2015 개정 교육과정 아래 고교 교육을 받은 수험생들이 치르는 첫 수능시험이다. 따라서 2021 수능은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EBS-수능 연계 폐기 추진 보도는 뜨거운 감자가 될 수밖에 없다.

‘현 중3부터 수능·EBS 연계 폐지 추진’ 제하 기사를 보도한 한 일간지는 “여권이 EBS-수능 연계 폐지를 추진하고 있으며,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의 교감도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본지 취재 결과 이 보도는 사실과 차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기사에 언급된 보고서를 발표한 민주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민주연구원의 ‘2015 개정 교육과정 적용에 따른 2021학년도 수능 개편 방향에 대한 제언’ 보고서는 정책 제언 성격으로 작성됐으며, 국정위와의 교감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민주연구원은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격인 정책 연구소다.

민주연구원의 보고서는 EBS-수능 연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토의토론 수업이 이루어지기 위해 EBS-수능 연계 정책은 제고돼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연구원 관계자는 “수능 영향력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EBS 수능 연계가 현재와 같이 진행된다면 학교 수업은 EBS 교재 문제풀이 시간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라며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EBS 수능 연계를 폐지하거나 연계율을 제시하지 않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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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수능 연계 방식, 고교 교실 입시 학원화의 주범
보고서 주장대로 EBS-수능 연계 방식은 고교 교실을 입시 학원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학생들이 EBS 영어 교재의 영어 지문 해석본을 달달 외워 시험을 보는가 하면, 수업 시간에 교사가 수업은 안 하고 EBS 동영상 강의를 틀어놓는 등 곳곳에서 많은 문제점이 노출돼 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번 보고서가 ‘공평한 교육 기회 확대’냐 ‘공교육을 살리고 학생들에게 미래사회에서 필요한 창의성과 융합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냐’를 놓고 어디에 힘을 실어야 할지 갈팡질팡해 왔던 교육계에 진지한 토론의 물꼬를 텄다는 사실이다.

EBS-수능 연계 제도의 미덕은 초만원이던 입시학원에서 학생들이 빠져나가 TV 앞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교육 환경이 열악한 농산어촌 학생들에게 공평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을 받아 왔다.

하지만 도입 취지와 달리 학교 수업시간이 EBS 교재 풀이 시간으로 전락해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못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창의·융합 교육이라는 개정 교육과정의 원칙이 일선 학교에서 정면으로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가 교육과정 개정에 나선 것은 문·이과 구분으로 인해 지나치게 편중된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 학생들이 미래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기관리 역량’, ‘지식정보처리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 등 핵심역량을 학교에서 키울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고교 수업이 여전히 일방적인 강의·문제풀이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이런 수업으로는 미래역량을 키우는 학생들의 성장 과정을 발견하고 기록해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교육계에서도 찬반이 갈린 양상이다. 경기 지역 고교의 A교사는 “애초에 EBS-수능 연계를 도입한 취지를 살리는 것이 맞다"며 "EBS-수능 연계 방식을 폐기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서울 지역 고교에 재직 중인 B교사는 “대입에서 수시로 10명 중 7명 이상을 선발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학교 수업을 수능 대비 문제풀이 위주로 진행하는 것은 난센스"라며 "수업 방식을 수능 문제풀이 중심에서 학생 참여 중심의 토론·토의식으로 바꿔가야 하며, 이를 위해 EBS-수능 연계는 철회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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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연구원, 수시·정시 동시 시행과 최대 지원 횟수 줄이는 방안도 제안
민주연구원 보고서는 이밖에도 수능 시행 시기를 고교 3학년 10월로 현행보다 한 달 정도 앞당기고, 수능 이후에 수시와 정시를 동시에 실시하며 최대 지원 횟수를 줄이는 방안을 제안했다.

현재 수험생은 수시전형에서 6회, 정시전형에서 3회 지원할 수 있다. 수시와 정시 시행 시기가 다르고 지원 횟수도 많아, 사실상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시는 상향지원하고, 안 되면 정시로 하향지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연구원 관계자는 "현 제도의 취지는 수시와 정시 중 학생들이 자신에게 맞는 전형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준비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처음 취지는 사라지고 학생들이 수시와 정시를 모두 준비해야 하는 입시 이중고에 시달리게 됐으며, 학생 스스로 전형을 준비하기 어려워 사교육의 힘을 빌리는 경우가 많고 전형비 부담도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입시를 총 9회 준비해야 하는 학생들의 입시 부담을 줄이고 사교육과 비용 억제를 위해, 수시, 정시 구분 없이 최대 지원 횟수를 정하고, 횟수는 현재보다 줄이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총 지원 횟수를 6회로 정하면, 수시에 3회, 정시에 3회 지원을 하거나, 수시에 6회 혹은 정시에 6회를 모두 쓰게 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총 지원 횟수를 줄이는 것을 두고 전형 기회가 줄어든다는 측면에서 비판하고 있지만, 수험생의 총 지원 횟수는 공평하게 똑같이 줄어드는 만큼 문제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 

얼마 전 부산의 한 고교에서 수학 수업 시간에 교사가 수업 내내 EBS 인강을 틀어놓은 사진이 SNS를 통해 퍼져 큰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이 교사는 평소에도 수업을 EBS 인강으로 대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모습은 비단 일부 고교에서만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전국의 수많은 고교에서 오늘도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란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학생의 학업 부담을 줄이고 사교육을 억제하며 대입전형을 간소화한다는 원칙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EBS-수능 연계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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