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빽이 없어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

   
▲ SFC 출신으로 국제 컬렉션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장형철 패션디자이너

패션디자이너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유학은 당연히 가야하고, 학과는 무조건 의상 디자인학과 등등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여기 이 모든 고정관념을 깨고 당당히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가 된 사람이 있다. 바로 Ordinary people의 장형철 디자이너이다. 그가 패션디자이너가 되기까지의 과정부터 앞으로의 계회까지, 낱낱이 파헤쳐봤다.

Q: 처음 패션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처음 시작은 요리로 출발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무엇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부모님께서 요리를 한번 해보라고 하셔서, 고3때에 직업전문학교의 위탁교육으로 요리과정을 1년 동안 배웠습니다. 이후 호원대학교 식품조리학과를 들어가게 됐고, 대학교 2학년까지 학업에 열중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대한민국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휴학을 하고 군대에 입대하게 됐습니다.

군 복무기간 중 새로운 도전을 고민하다

군대는 현역으로 가게 됐는데, 아버지께서 직업군인이셔서 어렸을 때부터 부대 안 아파트나 관사에서 생활했습니다. 군대는 저에게 너무나 익숙했고 공병부대 생활은 강인한 체력과 정신을 갖도록 해주었습니다. 군대라는 곳은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곳이었기에, 제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입니다. 저는 20살 이후부터 패션에 남달리 관심이 많았고 쇼핑을 할 때에는 시간가는 줄 몰랐으며, 입고 꾸미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패션을 제대로 공부해보자”라고 결심하고, 무작정 여기저기 정말 열심히 알아보았습니다. 결국 제가 좋아하는 일은 저의 대학 전공이 아니었던 거죠.

   
▲ 서울패션직업전문학교

서울패션직업전문학교에서 나의 꿈을 찾다

목표가 확실해지니 이제 서울패션직업전문학교가 교육부 국가평생교육진흥원 학점은행제 교육기관으로 학위취득이 된다는 사실과 실무위주의 교육을 한다는 것을 알고 전역 후 서울패션직업전문학교로 일종의 편입학을 하게 됐습니다.

학점은행제의 교육이 저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2년 동안 공부했던 식품조리학과의 학점을 버리지 않고 교양과 일반선택과목으로 학점을 전환해 학점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맞지 않았던 대학생활의 2년을 버리는 시간이 아닌 제가 원하는 것을 빨리 마무리 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라고 할 수 있는 24살에 새로운 도전을 했던 만큼 빨리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학위를 마무리하고 싶었던 저에게는 아주 적합한 제도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늦었다고 생각 하지 않고 처음 보는 교재와 수업에 날이 새는 줄 모르고 재밌게 공부했습니다. 방학 때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패턴과 봉제과정에 대해 보충수업도 받았는데,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들을 매일 반복해 연습하고 공부했습니다.

Q: 본인의 브랜드를 탄생시키기까지의 과정이 어떻게 되나요?

은인을 만나다

이렇게 꾸준히 열과 성을 다하던 때에 방학 보충수업을 듣던 사람 중 한 사람을 만나게 됐는데 현재‘beyond closet(비욘드 클로젯)’의 고태용 디자이너였습니다.

학교 졸업을 앞두고 beyond closet 고태용 디자이너가 패션 브랜드 회사를 시작하겠다고 해서 함께 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고태용 디자이너 브랜드 beyond closet에서 4년간 근무하면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참가 한다는 서울컬렉션을 8번이나 경험했고 패션기업 및 대학교들과 30여회의 콜라보레이션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좀 더 진취적인 일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불현 듯 들게 됐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결국 회사를 퇴사하게 됐습니다. 퇴사 후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제 이름을 건 브랜드를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만의 브랜드를 탄생시키다

집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저를 받쳐줄 수 있는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오로지 실력하나로 승부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생교육을 통해 배웠던 패션에 관한 지식들과 4년간 일했던 경험들을 기반으로 제 브랜드를 창업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초기자본금은 대출을 받아, 제 이름을 건 브랜드 ‘Ordinary people’을 설립하게 됐습니다. 정말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밤낮없이 일에 매달렸고, 열심히 한 보람이 있어 1년 후 대출금을 모두 갚게 됐고, 2년째 되던 해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서울컬렉션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Q: 서울패션컬렉션, 뉴욕패션컬렉션 등 어떻게 그런 대단한 기회를 단기간에 잡을 수 있었나요?

모든 패션디자이너의 꿈인 ‘서울패션컬렉션’런웨이에 서다

서울컬렉션은 패션디자이너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입니다. 누구나 쇼를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남성복은 한국대표로 5명을 뽑는 곳으로, 그 수많은 경쟁자중 5명 안에 들어야만 무대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컬렉션 심사는 3차에 걸쳐서 진행됐고, 2013년 3월 1일 드디어 발표가 났습니다.

“Ordinary people 합격!”

3월 2일 부터 컬렉션을 준비했습니다. 3월 26일이 컬렉션이었기 때문에, 24일 밖에 안남은 시점에서 이제까지 배워 왔던 모든 것들을 집중적으로 발휘해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이번에는 기간이 너무 짧아서, 지금부터 준비하기엔 힘드니까 다음 시즌에 데뷔해라”

하지만 저는 자신 있었습니다. 군대에서 배웠던 것들을,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을, 회사에서 배웠던 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발휘해 해냈습니다. 25착장 80아이템으로 서울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컬렉션이 끝나고 패션잡지 ARENA에서 선정한“서울컬렉션”을 성공적으로 개최한 8명의 디자이너 중 한명으로 뽑혔습니다.

   
▲ <나침반36.5도> 정기구독 http://goo.gl/bdBmXf

그 시작은 현재 진행형이 돼 서울컬렉션에 총 7회 참가했고 2016년 10월에 동대문 DDP에서 개최되는 8번째 컬렉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서울컬렉션 무대에서 더 나아가 SBS에서 패션디자인 프로젝트 프로그램 ‘패션왕’에 출연하는 기회도 가지게 됐습니다. 이때에 많은 언론과 대중들에게 더욱 각인이 되면서 ‘장형철’이라는 이름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패션계에 제 이름을 걸고 도전한지 2년 만에 이뤄낸 결과였습니다.

이탈리아, 남성복 박람회에 한국대표로 선발돼 참가하다.

이탈리아는 남성복의 본고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Pitti Uomo’라는 세계 남성복 박람회가 해마다 개최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최고의 바이어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로 남성복을 하고 있는 디자이너들이라면 반드시 참가하고 싶은 박람회입니다.

저는 남성복을 시작하고 3년 뒤인 2014년에 한국을 대표하는 남성복 디자이너로 선발돼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회 연속 참가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더욱이 바이어들에게 호평을 받아 많은 수주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디자이너로 자리매김을 하는 세계적인 무대에 진입하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의 기적,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의 무대‘뉴욕패션컬렉션’에 진출하다.

제 브랜드를 런칭한지 4년째에 저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습니다.

전 세계의 패션디자이너들이 꿈꾸는 뉴욕 컬렉션을 진출해 세계시장으로 진입하고 싶었습니다. 2015년 정부지원기관인 한국컨텐츠진흥원 후원으로 진행된 concept Korea에서 한국 남성복 디자이너 2명을 뽑아서 뉴욕컬렉션 진출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는 도전했고 대한민국 남성복 대표 디자이너 중 1명이 됐습니다. 보통 경력 10년차 이상이 되는 디자이너들이 도전을 하는 곳이었는데 저는 4년차에 과감하게 도전했고 그 결과 최연소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러한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출발할 때에 나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어떠할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당당하게 컬렉션을 진행했고 New Classic Sportism이라는 평가로 전 세계 각지에서 온 바이어들과 패션잡지사의 에디터들에게 찬사를 받으며 감각 있고 실력 있는 디자이너로 인정돼 2015년, 2016년에 연이어 뉴욕컬렉션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Q: 패션계에서는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돈, 학벌-이 존재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 유리천장을 깰 수 있었습니까?

학력·스펙의 벽을 넘어 실력과 능력으로 우뚝서다

같이 컬렉션 했던 사람들을 보면 해외에서 공부한 유학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학점은행제 출신으로서 “서울컬렉션”에 당당히 입성했습니다. 이제 패션을 시작한지 8년 정도 됐습니다.

패션계에선 학벌도 중요하다고 하고 또한 돈도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저는 그런 것들이 없어서 더욱 더 실력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능력과 실력만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패션을 공부하는 많은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누구든지 본인의 전공과는 무관하게 평생교육을 통해 의식주 중의 하나인 ‘옷’은 배울 가치가 있고 도전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일깨워준 디자이너라고 자부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그 편견과 싸워서 스스로 해냈습니다. 패션이라는 장르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돈 많고,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제가 배운 패션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입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좋은 옷은 누구든지 접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나만의 소신으로 롯데홈쇼핑에도 진출해 누구든지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디자이너가 만든 브랜드라는 이미지로 대중들에 어필돼 매출 300억이라는 놀랄만한 매출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Q: 앞으로의 목표는 어떻게 됩니까?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비상하다

이제 저의 목표는 세계 패션시장 점령입니다.

서울컬렉션의 지속적인 참가로 많은 바이어들과 연결이 돼 중국시장 진출도 가능하게 됐습니다. 가장 세계로 비상할 수 있는 무대인 뉴욕에서도 ordinary people이라는 이름으로 K-fashion에 대한 위상을 드높이고 글로벌한 패션 디자이너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정통 유럽인들의 패션박람회 Pitti uomo에도 참가해 많은 수주의 결과를 내었습니다. 또한 Pitti uomo를 통해 현재 남성패션의 본고장이자 정통 클래식을 보여줄 수 있는 Milano Collection을 2016년에는 도전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현재도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저는 현실에 안주해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세계시장에 문을 두드리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끈질긴 노력으로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대한민국 장형철의‘ Ordinary people’이 되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방황하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다

2016년 현재 청년실업문제가 대한민국의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이 시점에, 저 ‘장형철’이라는 사람이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나마 꿈과 희망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바뀌었고, 돈과 빽이 없어도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는 것을 젊은이들이 깨달았으면 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특별한 삶 또한 살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간다면 자기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은 이뤄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장형철’이 있게 해준 부모님과 서울패션직업전문학교,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학점은행제라는 평생학습(국가평생교육진흥원)제도와 저를 인정해준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 에듀진 기사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865

 

   
▲ <2018 수시 백전불태> 출간 https://goo.gl/7JtU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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