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과 관찰로 철학과 과학의 빅뱅 시대를 열다!

   
▲ 라파엘로 산치오 작 '아테네 학당', 고대 대학자들을 한 자리에 모은 상상화로 철학을 상징한다[사진:위키피디아]

예수도 태어나지 않았던 기원전 고대를 살다 간 아리스토텔레스! 그가 2천년도 훨씬 지난 현재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유는 바로 ‘진리를 바라보는 눈’에 있다. 경험과 관찰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며 고대 그리스철학에 한 획을 그은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눈’으로 나의 존재를 바라보고, 나의 가치를 찾는 시간을 가져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발자취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는 북부 그리스의 트라키아 지방에 있던 마케도니아의 스타게이라에 위치한 명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17세가 되자 아테네로 떠나 그의 스승인 플라톤의 학원 ‘아카데메이아’에서 공부하기 시작해 플라톤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년간 아테네에 머물렀다.

플라톤이 죽은 뒤에는 아테네를 떠나 에게 해, 소아시아, 그리고 그 지역의 해안 지방 등을 여행하면서 생물학, 특히 해양 동물학 분야의 많은 경험적 지식을 얻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342년,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포스 2세의 요청으로 왕자 알렉산드로스의 가정교사가 됐다.

이때 왕자에게 <일리아스>를 추천했는데, 이 책에 큰 감동을 받은 알렉산드로스가 훗날 왕이 돼서도 항상 곁에 간직하는 책이 됐다고 한다. 아테네가 마케도니아의 영향 하에 들어가자 아테네로 돌아와서 ‘리케이온(Lykeion)’이라는 학교를 세우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강의와 연구에 종사했다.

지금 남아 있는 저작의 대부분은 이 시대의 강의노트이다. 그는 물리학, 형이상학, 시학, 생물학, 동물학, 논리학, 수사학, 정치학, 윤리학 등 다양한 주제로 책을 저술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뒤 마케도니아가 분열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의 미움을 사게 됐다. 아테네를 정복한 마케도니아 출신인데다 마케도니아 왕의 스승이기까지 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결국 아테네의 신을 모독했다는 누명을 쓰고 아테네에서 추방당해 칼키스라는 섬으로 가서 연구를 계속하다 이듬해 사망했다.

서양 학문의 시조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 이 대학자들은 가히 놀라운 철학과 사상으로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세기를 관통해 현재까지도 활발한 연구를 통해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학문이 서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시조라 주장할 만큼 서양 학문의 역사에서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된 사람’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실제로 모든 서양 학문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초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아테네의 시대적인 배경을 보면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기원전 5세기 초부터 아테네가 번영하기 시작하며 그리스의 민주정치와 문화가 절정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기원전 5세기말,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번영과 쇠퇴가 교차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서서히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문제로 돌아갔다.

소크라테스 역시 우주론적인 관심보다는 폴리스를 포함한 인간 사회의 질서와 평화를 위해 정치, 윤리 문제에 자신의 철학적 관심을 두었던 철학자이다. 플라톤 역시 소크라테스의 제자답게 윤리학, 신학, 정치학에 초점을 맞췄으나 여기서 출발한 탐구 정신이 과학 분야로 번져갔다.

일리아스 | 기원전 762년에서 50년 전후로 쓰여진,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문학 중 가장 오래된 서사시.

   
▲ 울산과학대학교 입학처 http://goo.gl/uPKmM

스승 플라톤 VS 제자 아리스토텔레스
그렇다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였기 때문에 많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반면에 서로간의 철학관에는 차이점도 많다. 플라톤 사후에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통해 "친구와 진리는 모두 소중하지만, 친구와 진리가 다르다면 진리가 더 존중하리라."는 말을 통해 스승인 플라톤과 학문적으로 결별을 선언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이견을 가지는 대표적인 이론인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알아보자.

이데아(idea)란?
플라톤 철학의 중심 개념으로 ‘보다, 알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이데인(idein)’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데아는 구체적 현상, 감각으로 느껴지는 사물의 형상을 가리키는 ‘에이도스(eidos)에 반대되는 말로, 마음의 눈으로 통찰되는 사물의 순수하고 완전한 형태를 가리킨다. 모든 존재와 인식의 근거가 되는 항구적이며 초월적인 실재를 뜻한다. 근대에는 인간의 주관적인 의식, 곧 관념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됐다.

 

플라톤의 이데아론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목수가 만든 실제 탁자와, 목수가 만들려고 했던 탁자에 대한 생각이나 개념 사이의 관계에 주목했다. 목수는 자신의 생각 속에 있는 탁자와 동일하게 탁자를 만들려고 하겠지만, 재료 상 한계로 인해 관념 속의 탁자를 그대로 재현해낼 수 없다. 따라서 목수가 몇 개의 탁자를 만들어도 모두 완전히 동일할 수 없다.

목수와 탁자의 관계를 ‘조물주’와 ‘우주’의 관계로 유추해 생각해보면, 조물주도 생각과 계획에 의해 우주를 만들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우주는 재료에 내재된 한계로 인해 항상 불완전한 복제품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조물주의 생각, 계획 속 우주가 ‘이데아’가 되고, 완전한 개념을 포함하는 이데아의 영역이 탄생한다. 그리고 만들어진 우주는 이데아의 완전한 실현이 아닌, 이데아가 불완전하게 복제되는 물질세계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데아’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
플라톤은 현실세계를 ‘이데아의 모방’으로 여겨 감각의 역할을 무시하고 수학적인 면을 중시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는 물질 속에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감각과 경험을 강조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경험주의적 자연관의 밑바탕에는 자연에는 질서가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한마디로 ‘경험한 사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작업’을 함으로써 자연의 숨겨진 질서를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개'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플라톤에 의하면 실제로 ‘완벽한 형태의 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개’의 속성들이 개별적인 개들 속에 불완전하게 복제될 뿐이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개들을 관찰하면 사람들이 ‘개’라 부르는 일련의 특질을 공유하고 있기에 이 속에서 진정한 ‘개’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 자체를 거부했다고 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이데아와 사물의 관계를 보는 관점이 달랐기 때문에 학문적 견해를 달리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확장하면서 이에 경험적 근거를 더 보강한 학자로 보아야 한다.

철학·과학에 새 장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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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는 그가 아테네에서 추방당하면서 대부분 소실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아있는 저서들은 자신의 생각을 강의하기 위해 정리한 강의노트와 미 출판용 저서들이다. 따라서 독자와 소통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일이 해석하고 그 뜻을 유추하며 읽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과학 연구에 있어서 물리학, 천문학, 화학, 생물학 등 전 분야에 폭넓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벗어나 경험과 관찰을 바탕으로 하는 현실적인 탐구를 중요하게 여겼는데, 바로 이를 통해 관념에서 벗어난 과학적 방법론과 논리학 등 실증적 학문이 빛을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전까지의 학문에서도 물론 연구와 관찰은 있었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본격화했다는 점에서 대단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생물학자로서의 면모
경험주의적인 자연관과 자연의 질서를 강조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엇보다도 생물학 분야에서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가 집필한 생물학 분야의 저술은 현존하는 그의 전체 저술 가운데 5분의 1이 넘는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120종의 어류와 60종의 곤충을 포함해서 500종이 넘는 동물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그는 동물 해부를 실시해서 생물학에 대한 지식을 얻었으며, 그 당시 물고기와 동일하게 분류했던 고래도 구별해서 서술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생물학에 매진한 이유 중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의 형상과 그 목적에 주목했는데 생명이 없는 물체들에 비해 살아있는 생물이 이에 대한 훨씬 더 많은 증거를 제공해주기 때문이었다.

이는 그의 저서를 통해서도 강하게 나타난다. 그는 동물학 저술에서 각 기관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목적론을 강조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존 우연성에 입각한 세계관을 가진 학자들이 주장했던 ‘자연의 무질서’를 논박하고 조화와 질서를 추구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는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각자의 속성으로 결정되는 목표를 향해 발전하는 ‘목적의 세계’이며, 질서 있고 조직화된 세계였던 것이다.

화학자로서의 면모
목적론을 강조했던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모든 운동에는 '운동 원인'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이 운동 원인을 물질을 구성하는 4개의 원소인 물, 불, 공기, 흙에서 찾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4개의 원소 특징을 뜨거움과 차가움, 젖음과 건조함으로 나누었다. 그래서 차갑고 젖은 성질을 물, 뜨겁고 건조한 성질을 불, 뜨겁고 젖은 성질은 공기, 차갑고 건조한 성질은 흙으로 보고, 물이 끓는 이유에 대해 ‘물이 차가움 대신 뜨거움을 얻어 공기로 변환되는 것’이라 설명했다.

이런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소설은 후대 물질의 성질을 변환시켜 새로운 성질의 물질을 만들 수 있다는 연금술을 탄생시켰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4원소를 지상계를 이루는 물질로 보았고, 천상계를 이루는 물질은 제 5원소인 ‘에테르’로 구성돼 있다고 보았다.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로서의 면모
아리스토텔레스의 5원소에 입각한 물질의 구성은 천상계와 지상계에서 운동의 차이를 발생시킨다. 천상계와 지상계에는 자연스러운 운동이 존재하는데, 지상계를 이루는 물질은 가라앉거나 뜨는 성질이 있어 시작과 끝이 있는 직선 운동이 자연스러운 운동이다. 반면 천상계는 시작도 끝도 없는 완전한 운동인 등속 원운동이 주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러운 운동은 물체가 지닌 본래의 속성인 반면, 비자연스러운 운동은 반드시 외부의 운동 원인이 접촉해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상계와 지상계에는 엄격한 구별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천상계는 변하지 않고 완전하며, 지상계는 변화가 있어 불완전하기 때문에 생성과 소멸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의 혜성을 천상계가 아닌 지상계의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기상학 영역에서 다루었다. 이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원한 우주’는 우주의 시작점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영원하다고 믿었다. 따라서 이 점은 훗날 중세 시대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는 기독교의 신학과 충돌하기도 했다.

윤리학자로서의 면모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사물과 생물이 질료와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질료는 ‘무엇인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을 말하고, 형상은 ‘질료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예를 들어 씨앗이 질료라면 나무는 형상이다. 그리고 나무가 질료라면 종이가 형상이고, 종이가 질료면 책이 형상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이 육체와 정신으로 구성돼 있고, 육체는 질료, 정신은 형상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그의 ‘정신’에 관한 설명은 서양의 인간관을 정립하는 초석이 됐다. 그는 정신에 대해 동·식물과 인간의 것을 다르게 보고, 식물적 정신, 동물적 정신, 이성적 정신으로 구분했다. 식물적 정신은 영양 섭취와 생육적인 기능만 가능한 것, 동물적 정신은 감성지각과 운동 기능이 더해져 식물적 정신보다 한 단계 높은 것으로 보았다. 마지막으로 최상의 단계가 인간에게만 유일한 이성적 정신이다.

이성적 정신은 언어로 소통하게 하고, 정사와 선악을 판단해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무엇보다도 이성적 정신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인간은 이성을 지녔기에 인간이다.’라는 서양의 인간관을 정립하는데 공헌했다.

인문학자로서의 면모
스승인 플라톤은 ‘시인 추방론’을 주장하며 문학을 비판했다. 그는 문학이 이데아의 모방인 현실세계를 또 다시 모방했기 때문에 2차적 모방’이라 규정하며 천시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 에 반대하며 문학을 옹호하는 ‘시학’을 저술했다. 그는 플라톤이 문학을 현실세계의 ‘모방’이라고 말한 것에는 동의했지만, 그 ‘모방’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에 대해 ‘사람은 어릴 적부터 모방적 행동 성향을 타고났고, 모방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그는 현실세계를 모방하는 문학을 오히려 역사보다 더 보편적인 것으로 보고, “역사는 개별적인 것을 다루지만 서사시는 보편적인 것을 다루므로 시가 더 철학적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말의 뜻은 ‘시학’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는 우연한 인간의 행동이나 특별한 상황, 개별적인 일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을 ‘역사’로 보았다.

반면 ‘문학’은 이 역사에 개연성과 필연성이 작용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과 ‘반드시 일어나는 일’ 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런 ‘개연성과 필연성의 법칙’으로 문학의 보편성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적인 서술구조로 이루어진 문학을 역사보다 더 철학적인 것으로 보고, 문학의 존재 가치를 내세웠다.


*에듀진 기사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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