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동요' 부활해야 한다!

   
▲ [출처=클립아트]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유년기 누구나 한번쯤 불러봤을 익숙한 이 동요는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로 알려져 있는 ‘반달’(윤극영 요·곡, 1924년)이다. 그로부터 한 세기의 시간이 흐른 지금, 동요는 100살이 다 되어간다.

1920년대 탄생한 동요는 1930년대 들어서며 활짝 피어났다.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으로 우리말로 된 동요를 부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만들 수도 없었던 불행한 시절이었는데도 말이다.

일제의 눈을 피하기 위해 어두운 밤을 틈타면서까지 우리 동요를 절박하게 전파했던 이유는 우리 동요를 부르지 못하는 어린이들의 앞날에 대한 걱정과, 동요를 통해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려는 뜨거운 갈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 이후 동요는 우울하고 어두운 노래에서 밝고 씩씩한 노래들로 전환하게 된다. 이렇게 한 세기 동안 민족의 숨결을 고이 간직해온 동요는 현재 우리말을 탄압했던 일제 강점기보다 더 극심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상업시대가 시작되면서 가요, 팝, CM송 등의 음악이 등장해 어린이들에게 자극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는 곧 동요의 위기로 이어졌다. 1970년대에는 KBS의 ‘누가누가 잘하나’가, 1980년대에는 ‘방송창작동요대회’가 상업적인 물결 속에서도 동요를 나름대로 지켜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1990년대 들어서면서 시청률 지상주의로 잇따라 ‘예산 부족’등의 이유로 폐지됐다.

이 시대의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듣기에도 민망한 가요를 따라 부르고, 춤을 따라 춘다. 동요의 위기는 곧 어린이가 어린이다울 수 있는 권리를 빼앗고, 자극적인 상업음악에 길들여지도록 바꿔놓았다.

10년 후의 대한민국, 이대로 괜찮을까
<딸년, 아들놈, 애새끼>로 불리던 아이들에게 ‘어린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준 소파 방정환 선생은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라!”고 외쳤다. 어린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여기고 장차 세상을 이끌어갈 꿈나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동요 없이 자란 지금의 어린이들이 이대로 어른이 되었을 때 과연 그들은 꿈과 희망이 넘치는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동요의 빈자리를 상업음악으로 채우고 있는 그들의 미래는 얼마나 끔찍한가?

   
▲ 겨울나무(한혜선), ‘그러니까 딩가딩’ 시집 중에서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쓴 글이다. 발 시린 겨울나무와 그 발치를 덮고 있는 하얀 눈에서 따뜻한 겨울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다. 나무를 사람처럼 여기고 걱정하는 순수한 마음과 귀엽고 참신한 상상력으로 아이들은 어린이만의 풍부한 감성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10년 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꿈을 꿀 수 있는 힘을 준다.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통속적인 가요를 따라 부르게 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들은 동요를 부르면서 자라야 한다. 꿈이 없는 어린이들은 꿈이 없는 미래를 살아간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 이 시대를 살았던 어른들에게 어린이들이 들을 노래가 없는 역사를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을 묻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동요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사는 지혜로운 어른들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혜선

현) 한국쓰리엠어린이집 원장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유아교육 전공
(사)한국문인협회 회원
인하대학교 아동학과 • 명지전문대 유아교육과 겸임교수 역임
‘그러니까 딩가딩’(2015)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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