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위권 학생들의 희망' 적성고사는 폐지

   
 

이변은 없었다.

올해 초부터 수능 확대 의지를 공공연하게 표출해왔던 교육부가 2022학년도 대입부터 수능 선발 비율을 3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못 박았다. 또한 중위권 학생들의 희망으로 여겨졌던 적성고사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8월 17일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정부서울청사 서울별관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2학년도 대학입학 제도 개편 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수능 30% 확대,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으로 대학 고삐 잡는다
교육부는 대학이 수능 위주 전형 비율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도록 권고하고,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을 통해 이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수시 학생부교과전형 선발 비율이 30% 이상이 대학은 자율에 맡긴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은 그동안 대학의 학생부종합전형 선발 확대에 견인차 역할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는 학생부종합전형이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을 줄인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이에 교육부는 학종 선발 비율을 확대한 대학에 사업비를 지원하고, 대학은 이 지원비로 입학사정관 인건비와 전형 연구비, 운영비를 충당해 왔다.

그런데 교육부는 이번 발표에서 학종과 대척점에 서 있는 수능 전형 비율 확대를 기준으로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확고한 교육 철학의 바탕 아래 실시됐던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이 하루아침에 이현령비현령의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를 두고 교육부가 확고한 교육 철학 없이 여론전에 휩쓸려 자충수를 뒀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대학으로서는 교육부의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등 지원사업에 탈락하면 대학 운영에도 악영향이 되고, 또한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입학 정원 축소에 민감한 대학들로서는 결정권을 쥐고 있는 교육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학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수시 적성고사 폐지 “중위권 학생만 차별”
논란이 됐던 수시 적성고사전형 존폐 문제는 결국 폐지로 결론이 났다. 이로써 사실상 중위권 학생들이 수도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희망이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 초·중학생 지식백과 매거진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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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고2 자녀를 둔 학부모 A씨는 “교육부가 학생들의 재도전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수능전형 비율을 확대한다고 했지만, 수능으로 재도전 기회를 보장받는 것은 사실상 상위권 학생들”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수능 확대로 상위권 학생들의 재도전 기회는 키워주면서, 중위권 학생들의 재도전 기회인 적성고사전형은 폐지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2 수능 문·이과 구분 폐지
기하, 과학II 선택과목 채택…“창의 협업 수업 사실상 불가능”

2022학년도 수능은 문·이과 구분 없이 치르게 됐다. 국어·수학·직업탐구는 공통형과 선택형 구조로 개편한다. 국어 영역은 공통과목으로 독서, 문학을, 선택과목으로는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 중 한 과목을 선택해 치르게 된다.

수학 영역은 공통과목으로 수학I, 수학II를, 선택과목으로는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중 한 과목을 선택해 치른다. 사회·과학·탐구 영역은 사회·과학 계열 구분 없이 사회 9과목과 과학 8과목 총 17개 과목 중에서 2과목까지 선택해 치른다.

문제는 교육부가 진로선택 과목을 수능 출제 과목에서 제외하기로 했던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진로선택 과목인 기하와 과학II 4개 과목을 수능 과목으로 채택한 것이다. 기하와 과학II 과목을 수능 과목으로 해야 한다는 일부 수학·과학 교육 관계자들의 주장을 교육부가 그대로 수용한 결과다.

하지만 사교육걱정없는 세상 등 교육시민단체에서는 “수능에 진로선택 과목이 채택되면 학교에서 가르칠 내용이 과다해져,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목표인 학생 참여 중심 수업이나 토의·토론 학습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며 이들 과목의 수능 과목 채택을 극렬히 반대해 왔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려면 학교 수업이 단편적인 교과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에서 창의력과 협업적 문제해결능력을 키워주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기도 일반고의 B 교사는 “교육부가 수능 선발 비율을 확대하고 진로선택 과목을 수능 과목으로 채택함으로써,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를 스스로 훼손하는 결과를 만들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제2외국어·한문 절대평가 
수능-EBS 연계율 70->50%로 축소 
한편, 2022 수능에서는 과목 쏠림 문제가 있는 제2외국어와 한문은 절대평가로 전환되고, 그 외 과목은 현행과 동일하게 상대평가로 치러진다.

지나치게 높은 연계율로 학교 수업을 파행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수능-EBS 연계율은 기존 70%에서 50%로 축소하고 과목 특성에 맞춰 간접 연계로 전환된다.
 

   
▲ 광주대학교 입학처 http://iphak.gwangju.ac.kr


학생부 수상경력 개수 제한, 소논문 기재 안 한다 
자율동아리는 학년당 1개만 
이날 발표에서는 대입제도 개편과 함께 학생부 기재 개선 사항도 함께 발표됐다. 먼저 학생부에 기재할 수 있는 수상경력 개수에 제한이 생긴다. 자율동아리는 학년당 1개만 적을 수 있고, 동아리명과 동아리에 대한 간단한 설명만 기재할 수 있다. 소논문은 학생부에 기재할 수 없게 됐다.

학생부 기재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기재 분량을 축소하고, 교육청과 학교가 의무적으로 학생부 점검계획을 수립해 시행한다. 더불어 성적 조작, 시험지 유출 관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모든 고교 평가관리실에 CCTV 설치도 추진한다.

교사가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근무할 수 없도록 하고, 부득이한 경우 평가 관리 업무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규정을 마련해 평가결과의 신뢰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자소서 문항 통합, 글자 수 축소
대학, 학종 평가기준 공개한다

자기소개서는 문항을 통합하고 글자 수를 축소한다. 학생들의 작성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대필과 허위작성이 확인될 경우에는 의무적으로 탈락시키고, 합격한 뒤 적발되면 입학이 취소된다.

대학 선발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학생부종합전형 평가기준을 대학들이 공개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대입정보포털에 제공한다. 입시가 끝난 후에는 대입전형별로 신입생들의 고교 유형과 지역 정보를 대학알리미에 공시한다. 입시 부정과 비리가 발생할 경우 학생의 입학을 취소하고 대학에 행정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근거법 규정도 만든다.

수시 면접은 학생부 확인면접을 원칙으로 하고, 학생에게 부담되는 제시문 기반 구술고사를 최소화하도록 유도한다. 다만 부득이하게 구술고사를 실시할 경우에는 고교 교육과정 범위 내에서 출제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공교육정상화법에 따라 시정명령이나 모집정지 조치를 내린다. 출신고교 블라인드 면접 도입도 함께 추진한다.

이날 발표를 두고 일선 고교들은 대부분 뒤숭숭한 분위기다. 올해 고1부터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며 학생 참여와 토론 중심 수업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수능 영향력을 키우는 교육부의 발표는 개선이 아닌 개악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경기 지역 C교사는 "수업은 참여와 토론 중심으로 하라고 하면서, 정작 대입에서는 수능을 확대하겠다고 하니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교육부가 과연 백년지계를 맡아 할 만한 철학과 능력이 있는 곳인지 의문"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 사진 설명: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사진=e브리핑]
*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774

   
▲ 중등 진로진학 매거진 <나침반36.5도> http://365c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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