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는 대로 열심히 살아온 K는 ‘잉여인간’이었다

본 기사는 청소년 진로 학습 인문 시사 매거진 <나침반36.5도> 6월호에 수록됐습니다.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이 좋은 직장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는 누구나 한다. K는 자타가 인정하는 그런 학생이지만 대학 졸업을 몇 주 앞두고 걱정 반, 질투심 반으로 혼돈에 빠졌다. 지난 4년 동안 강의 한번 빼먹은 적 없이 성실하게 공부하며 우수한 성적을 유지해온 K는 취업을 하려고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보냈지만 아직 무소식이다. 반면, 같은 전공을 하고 같이 졸업하는 K의 친구는 4년 동안 밥 먹듯 강의를 빼먹고 학점은 바닥을 쳤지만 이미 풀타임 일자리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부업으로 창업을 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했다.

2015년, 영화 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뉴욕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졸업생 여러분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해냈습니다. 그리고 완전 X 됐습니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졸업생의 현실을 비꼰 것처럼, K는 “이번 생에서 나는 X된 것이 아닌가” 라는 의구심에 빠져있다.

K는 성실, 근면, 노력으로 점철된 전형적인 모범생이다. 그러나 K는 자신이 시대착오적인 신념에 빠진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칭찬과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아온 모범생일수록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실패하면 어쩌나 라는 생각으로 모험을 꺼려한다. 늘 ‘조심해라’, ‘주의해라’, 그리고 ‘안전한 길을 택하라’라는 조언에 따라 살아온 K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대학 생활을 했다.


그러나 세상은 안전추구 보다는 모험을 하는 자에게 포상한다. 만일 미켈란젤로가 안전성만 생각했더라면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이 아니라 마룻바닥에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리고 바닥에 그린 그림은 청소가 되어 지워졌을 것이다.

현실은 수잔 콜린스의 소설 <헝거 게임>에서 묘사된 험난하고 위험한 투기장과 같다. 각지에서 선발된 경쟁자들이 사막과 황무지를 아우르는 거대한 경기장에서 죽을 때까지 싸워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자가 승자가 되는 잔인한 게임과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은 모험을 즐기는 학생을 위한 기관도 아니요 승자를 키우기 위한 기관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대학은 헝거 게임 같은 무한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는 낙오자를 양산하는 시스템이다. 학생으로부터 4년 동안 학비를 받은 대학이 졸업자에게 건네주는 것은 학생 이름이 새겨진 학위 수료증이다. 그런데 졸업생들은 그 졸업장이 자신을 무능한 인간으로 전락시키는 결정적인 요소임을 눈치 채지 못한다.

특히 K처럼 모범생일수록 졸업장은 현실 상황을 가리는 암막 커튼 역할을 한다. 우수한 학점, 졸업장이 취업과 곧바로 연결된다고 믿는 것은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 시대에서 통했던 신념이다.


과거 한국의 군사정부가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아래 전 국민에게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를 합창 시키고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라는 교육헌장을 암기 시켰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정부는 오직 교육이 경제발전의 밑거름이라고 가르치고,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시에 따라 반항이나 저항 없이 묵묵히 일하는 기술자와 관리를 키우는데 집중했다. 학생들에게 쓸데없는 생각은 금물이었고, 아무런 질문 없이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만이 목표로 주어졌다. 이런 획일적인 방법으로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아 체제에 순종, 충성하는 학생은 칭찬을 들었고, 엉뚱한 생각, 쓸데없는 공상으로 혁신, 개혁을 도모하는 학생은 불순분자로 몰렸다.


그런데 창의와 혁신이 주도하는 오늘날에도 과거의 획일적인 가르침과 신념이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다. 이러한 신념을 가진 이들을 우리는 ‘잉여인간’이라고 부른다. 잉여인간이 수시로 듣는 소리는 이렇다. “우리는 딱히 자네가 필요하지 않고, 자네 없이도 회사를 잘 운영할 수 있고, 자네가 없으면 더 잘 돌아간다.”

잉여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을 예방하고 헝거 게임에서 승자가 되려면 뉴욕대학의 매튜 메이휴 교수 연구팀 자료를 살펴볼 것을 권한다. 3천 7백 명의 대학 졸업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대학 학점이 높을수록 창의와 혁신 능력이 떨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지능력 중심의 시험으로 평가하는 제도에서는 학생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자 노력하기보다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아무런 질문 없이 순응하는 추종자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K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삼무(三無)’, 즉, 무저항, 무반항, 무반응이다. 
 

   
 

*에듀진 기사 원문 :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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