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나침반36.5도_ 8월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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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청소년 진로 학습 인문 시사 매거진 <나침반36.5도> 8월호에 수록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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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1,000년의 세계를 보면 인류의 가장 큰 혁명을 점화하는 가장 뚜렷한 후보는 문명 발상지인 중국이나 중동이지, 분명 유럽은 아니었다. 그러나 18세기 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섬유, 수송, 제철과 관련한 연이은 혁신의 힘으로 유럽 전역은 폭발적으로 경제 성장을 하기에 이른다.

산업혁명이 중국이나 중동이 아닌 영국에서 시작된 원인은 무엇에 있을까? 이러한 의문점을 두고 연구자들은 지리, 제도, 종교, 유전자의 차이를 지적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미국 버지니아대학교의 토마스 탈헬름(Thomas Talhelm) 연구진은 쌀농사를 하는 지역과 밀농사를 하는 지역의 문화적 차이를 이유로 들고 있다.

동양은 ‘나보다 우리’ 서양은 ‘우리보다 나’
여기 원숭이와 판다, 바나나가 있다. 그중에서 서로 가까운 것끼리 2개만 묶어 보라고 하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동양권에 사는 사람들은 중 상당수는 원숭이와 바나나를 묶을 것이다. 원숭이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가 바나나라는 사실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양인들 중 상당수는 원숭이와 판다를 묶는다. 원숭이와 판다는 동물이라는 공통점을 지녔기 때문이다. 동양인과 서양인에게 ‘철길, 기차, 버스’, 이 세 가지 보기를 던져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동양인은 ‘철길 위에서 달리는 기차’라는 식으로 기능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반면, 서양인은 ‘교통수단’이라는 추상적인 공통점을 중심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즉, 동양인은 각 개체 간의 관계와 그 사이의 상호 관계를 중시하는 전체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짙고, 서양인은 개체 간의 상호 관계를 따지기보다는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에 익숙하다.

이런 특징은 문화권 전체에 나타난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양 문화권에서는 부분보다 전체를,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한다. 이들은 대게 협동심이 강하고 상호의존적인 성향을 나타낸다. 이에 반해 유럽을 비롯한 서양 문화권에서는 추상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하며, 개인적인 경향이 있다.

벼농사와 밀농사가 만든 사고방식의 차이
탈헬름은 서로 다른 농경문화가 사고방식의 차이를 낳았다고 말한다. 약 8,000년 전부터 경작되기 시작한 벼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확연하게 갈라놓는 결정적인 매개체로 작용하게 된다. 밀이 주식인 유럽과 달리, 서남아시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시아는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다.

   
<사진:나침반36.5도 8월호 캡처>

쌀은 고온 다습한 기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일조량과 강수량이 적은 유럽은 사실상 대규모의 쌀농사가 어렵다. 또한 잡초와 병충해에도 약하기 때문에 밀 관리에 비해 들이는 노동력이 두 배 이상 된다.

벼농사는 수 세대에 걸치면서 집단주의를 낳았고 ‘쌀 문화’를 형성했다. 벼는 물이 고인 논에서 자라므로 물을 끌어오고 공급하는 관개기술이 필요하다. 물을 끌어오려고 물길을 내는 일에는 많은 사람의 힘이 필요하고, 끌어온 물을 여러 농가가 나눠 써야 한다.

이렇게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협동과 집단을 중시하는 정서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벼농사를 하는 지역에서는 이웃 간에 협업을 할 수 있는 상호의존적인 문화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쌀 생산지에서는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통제하기 위해 중앙집권적 왕권 국가가 형성됐다.

이에 비해 밀은 다소 춥고 건조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특성을 지녀 유럽에서 많이 재배됐다. 또한 물이 없는 맨땅에서도 잘 자라고, 노동력도 쌀농사의 절반 정도만 있으면 된다. 이처럼 밀농사는 혼자서도 관리가 가능해 노동력이 동원돼야 할 자식을 많이 낳을 필요도 적었다.

이렇게 밀농사를 많이 하는 유럽에는 자연히 개인적주의적인 문화가 형성됐고, 작은 마을단위의 도시국가가 발달할 수 있었다. 쌀·밀이 혼재하는 나라 중국 쌀농사와 밀농사권의 문화적 특성은 한 나라 안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탈헬름은 중국의 남부와 북부 지역을 주목했다. 중국은 수세기 동안 중국의 양쯔강을 경계로 남쪽 지방에선 벼농사가 지배적이었고 북쪽 지방에선 밀농사가 주를 이뤘다. 그는 구이저우·푸젠·쓰촨성처럼 벼농사가 주를 이뤄 농토의 대부분이 논인 지역의 주민이 지린·산시성 등 밀농사 위주인 지역의 주민에 비해 혼전 성관계와 혼외정사, 동성애에 훨씬 더 포용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을 하나 했다. 커피숍 안의 의자를 좁게 배치한 다음 사람들이 그 좁은 공간 사이를 어떻게 지나가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주어진 환경에 맞춰 적응하는 쌀 문화 지역 사람들과, 환경을 자기 의지대로 조절하는 밀 문화 지역 사람들의 태도를 비교 관찰하는 연구였다.

이때 공간을 좁게 만드는 데 사용한 의자는 사람들이 쉽게 옮길 수있는 가벼운 나무의자다. 연구진은 실험에 앞서 쌀 문화권 사람들은 의자를 그대로 둔 채 자기 통로를 비집고 들어가고, 밀 문화권 사람들은 의자를 치우고 지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험 결과는 그들의 가설과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쌀 지역에서는 약 6%의 사람들이 의자를 옮긴 반면 밀 지역에서는 약 16%의 사람들이 의자를 옮기게 하고 지나갔다. 연구진은 이 실험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의 도시에서도 똑같은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쌀 문화권인 일본에서는 8.5%의 사람들이 의자를 치운 반면 미국에서는 그 비율이 20.4%로 높게 나타났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연구에 홍콩이 포함됐는데, 홍콩은 중국의 대도시인 베이징과 상하이보다 1인당 GDP가 약 3배에 달할 만큼 시장 자본주의가 발달한 곳이며, 한때 영국의 식민지로서 서양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지역이다.

그럼에도 실험 결과 홍콩의 주민들은 서양과 자본주의의 특징인 개인주의적 성향보다는 쌀 문화 지역의 특징인 상호의존적 성향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에 연구진은 자본화나 근대화의 차이보다는 쌀 문화와 밀 문화의 차이가 여전히 중국인들의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밀 문화는 상업발달 원동력으로 작용, 다음 세대의 주인은 누가 될 것인가?
밀은 쌀에 비해 영양가가 낮아 고기와 우유 같은 식품을 부가적으로 섭취해야 생명유지에 도움이 된다. 때문에 밀 문화권 사람들은 길을 만들고 대규모로 식량을 거래할 수 있는 상업 위주의 문명이 발달할 환경이 있었다.

유럽이 해외 식민지 개척을 주도하게 된 것도 주식인 빵이 장기간 보관에 용이하기 때문에 군인이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식량 부족 문제를 겪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동양은 먼 거리를 이동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은 수행하기 어려웠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침략하기 위해 100만 대군을 이끌고 왔지만 식량과 군수품을 옮기기 위한 100만 명의 추가인력이 필요했다고 알려진다. 반면, 몽고는 빠른 이동수단인 말과 함께 그들의 주식인 말린 고기와 우유가 있었기에 아시아를 넘어 유럽을 정복할 수 있었다. 주식이 세상을 바꾼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렇게 기후와 풍토가 만들어낸 주식의 생산방식은 문화의 차이를 가져오게 되고 상업발달을 촉진시켜 산업의 혁명을 가져올 수 있었다.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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