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30% 확대라고? 실제로는 40% 된다

   
 

교육부의 대입 수능 확대 방침에 따라 앞으로 입시에서 특목·자사고가 절대적으로 유리해져 고교 서열화가 심화되고 사교육 광풍이 불어닥칠 것을 우려하는 교육계의 목소리가 높다. 

교육부는 8월 17일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방향’을 발표하면서 대학에 학생부교과전형 선발비율이 30%가 안 되면 수능정시 선발비율을 30%로 확대할 것을 사실상 강권했다. 교육부가 대학재정지원사업으로 대학의 목줄을 쥐고 있는 터라, 대부분의 대학이 이를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8월 19일에는 포스텍(포항공대) 김도연 총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교육부 방침에 동의할 수 없다"며 "정시를 늘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발표 이틀만에 처음으로 교육부 방침에 반기를 든 대학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포스텍의 반기는 예외적인 상황이란 것이 교육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포스텍은 일반 대학과 달리 정부에서 받는 지원금이 대학 전체예산의 2%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 대학 중에는 포스텍처럼 정부 지원금을 거부할 수 있을 정도로 재정에 여유가 있는 대학이 거의 없다. 게다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전체 모집정원가지 줄고 있기 때문에,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하면 대학 재정난이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대학은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학생부교과전형을 30%로 늘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수능전형을 30% 이상 확대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문제는 입시를 주도하는 상위권 대학들이 대부분 학생부교과가 아닌 수능전형을 확대하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란 사실이다. 교육부가 요구하는 것은 학생부교과 확대가 아닌 수능전형 확대이기 때문이다. 인서울 15개 대학의 2020학년도 입학전형 시행계획을 기준으로 교육부의 30% 원칙을 적용하면 수능 정시에서 늘어나는 인원은 다음과 같다.

■ 15개 대학의 수능전형 변화 예상

   
 

인서울 상위 15개 대학 중 수능전형과 교과전형 비율이 30% 미만이면서 교과전형보다 수능전형 비율이 높거나 두 전형을 전혀 운영하지 않은 대학들은 수능전형 비율을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 해당하는 대학은 경희대, 고려대, 동국대, 서강대, 서울대, 숙명여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양대 등 10곳이다.
 

   
▲ 초·중학생 지식백과 매거진 <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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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는 현재 학생부교과전형 비율은 0%이지만 수능비율은 31.1%로 30%가 넘기 때문에 수능에서 추가로 늘려야 할 인원은 없다.

경희대 역시 학생부교과 선발인원이 없지만 수능에서 23%를 선발하고 있어 30%에 못 미친다. 교육부 방침을 따른다고 봤을 때 경희대는 수능에서 7%p를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고려대는 교과에서 9.6%를 선발하고 있지만 수능에서는 15.9%를 선발한다. 따라서 수능 선발비율을 14.1%p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수능과 학생부교과 모두 30% 미만으로 선발하는 인서울 상위권 10개 대학이 수능을 30% 이상으로 확대할 경우, 수능 모집인원이 2,796명 가량 더 늘어나게 된다.

수시이월 포함하면 수능정시 모집인원은 35~40%로 확대될 것
그런데 실제 정시 수능전형 선발비율과 모집인원은 각 대학이 대입전형 시행계획에 명시한 수치와는 다르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시에서 충원하지 못하고 정시로 이월된 인원까지 더해야 실제 수능전형 선발비율과 인원이 나오기 때문이다. 

상위권 대학 중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의 경우 적게는 전체 모집정원의 3~4%에서 많게는 10%에 해당하는 인원이 수시에서 정시로 이월되고 있다. 연세대는 2017학년도 9.1%(336명), 2018학년도8.2%(297명)에 해당하는 인원이 정시로 이월됐다.

서울대도 2017학년도 6.8%(222명), 2018학년도 5.3%(175명)에 해당하는 인원이 정시로 이월됐으며, 고려대도 2017학년도 3.4%(130명), 2018학년도 4.7%(190명)의 인원이 수시에서 정시로 이월됐다.

따라서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의 2022학년도 실제 정시 수능전형 비율은 교육부 방침인 30% 이상에 수시 이월인원을 더한 수치가 될 것이다. 결국 실제 수능전형 비율은 현행 고려대 15.9%, 서울대, 20.4%, 연세대 27.1%의 두 배 이상인 35~40%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2017·2018학년도 수시 이월인원

   
*2018.1.5 기준 각 대학 발표 자료

수능전형 비율을 약 10%에서 30%까지 대폭 확대해야 하는 대학도 고려대(14.1%), 이화여대(14.0%), 서울대(9.6%), 중앙대(9.5%) 등 5곳이나 된다.

이들 대학은 2014년 이후 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학생부 위주 전형을 확대할 것을 요구해왔던 정부 방침에 따라 수능전형을 축소하고 학생부 위주전형을 확대해 온 대학이다. 그런데 이제는 교육부의  달라진 요구에 맞춰 2022학년도부터 정시인원을 확대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였다. 
 

   
▲ 울산과학대학교 입학처 http://ipsi.uc.ac.kr


수능정시 확대로 특목·자사고 호황…일반고 설 자리 잃는다 
교육부는 새로운 대입정책을 수립하면서 공교육정상화와 일반고 살리기라는 기본 취지에는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밝혀왔다. 하지만 교육부가 그동안 공공연하게 대학들에 정시 확대를 요구해 오고, 결국 2022 대입제도 개편 방향 역시 정시 확대로 못박고 나서자, 일선 교육 현장에는 교육부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올해 고1부터 적용된 2015 개정 교육과정과 학종 확대가 맞물리며 교실 수업이 학생 참여와 토론, 체험 중심 수업으로 변화해 가려던 차에, 교육부가 정시수능 확대라는 찬물을 끼얹은 셈이기 때문이다. 

정시 확대 정책이 특목·자사고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것은 입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특목·자사고 학생들은 학종이 확대되기 전까지는 수능전형의 넓은 문을 통해 내신이 낮은 학생들도 상위권 대학에 다수 진학할 수 있었다. 특목·자사고 입시 광풍도 결국은 높은 수능전형 비율이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하지만 수능전형 비율이 줄어들고 학종 비율이 확대되면서 내신의 중요성이 커지자, 내신에 부담을 느낀 중3 학생들이 특목고 진학을 꺼려하는 분위기로 대반전됐다. 그와 동시에 수능체제 아래서는 대입실적이 좋지 않았던 일반고가 학종 확대의 흐름을 타고 상위권 대학 합격자를 다수 배출하기 시작했다.

학종 대비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선 일반고를 중심으로 수업에도 대반전이 일어났다. 수능 대비 암기와 문제풀이 중심에서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주창하는 창의·융합 수업, 학생 참여와 토론, 체험 중심 수업으로 변화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2022 대입제도 개편 방향이 정시 확대로 결정되면서, 일반고는 다시 수능 광풍 시절처럼 입시학원 내지는 사설학원에 시달린 아이들이 와서 쪽잠을 자는 곳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또한 '수능 과목 중심의 지식 편식 현상’을 개선하겠다며 도입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은 도입과 동시에 실패한 정책이 될 위험에 빠졌다. 
 

   
▲ 기적의 성적향상 노트 <스터디 워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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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계자는 "교육부의 수능확대 방침은 전국 시도교육청이 표방하는 혁신학교 확대 정책에 제동을 거는 것은 물론이고,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수업과 평가로 혁신하려는 교사에게도 수능 중심의 지식암기 교육으로 돌아가라는 부정적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학교 교실, 학원 수업에 지쳐 쪽잠 자는 곳으로 다시 돌아가나 
더구나 특목·자사고는 전통적인 수능정시 강자인데다, 교육과정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 최근에는 이들이 가진 학종 대비 노하우가 일반고를 앞지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위권 학생들은 특목·자사고에 가서 학종을 준비하다가도 내신이 좋지 않으면 수능정시로 만회할 수 있게 돼, 학종과 수능정시로 가는 길이 모두 보장된 특목·자사고 진학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서울의 한 일반고 교사는 "우리 대입정책은 곧 우리 교육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 정책의 여파가 유치원에까지 이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수능 확대 방침에 따라 사교육이 날개를 달 것"이라며, 그동안 수그러들었던 특목·자사고 대비 입시학원이 호황을 맞아, 초·중학생들을 태운 특목·자사고 대비 학원버스가 도로를 빽빽이 메울 것"이라고 한탄했다. 

앞으로 대입에서 자사고와 특목고가 더 좋은 입시실적을 낼 것이 확실한 이상, 자사고와 특목고에 들어가려는 초중학생들의 입시경쟁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학원은 학부모들에게 더욱 강력한 자사·특목고 마케팅을 펼칠 테고, 초·중학교 학생들이 자사·특목고 합격을 위해 새벽까지 학원과 과외에 시달리는 입시 지옥이 다시 펼쳐질 상황이다. 

이 같은 교육 환경 변화는 일선 중고교까지 덮쳐, 학생부종합전형의 확대가 열어준 공교육정상화의 길은 다시 수렁으로 향하게 됐다. 최근 대입에서 학종 준비를 착실히 해온 일반고를 중심으로 대입실적이 좋아지고 있었던 것도 이제 의미가 퇴색해 버렸다. 고교 서열화가 극심해지면서 수능 대비를 잘하는 학교가 다시 명문학교의 지위를 가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한 일반고 교사는 자신의 SNS에 최근의 사태에 대해 비통한 심정을 드러내며 이 같이 썼다.
"학부모들은 더 이상 '일반고 진학이냐, 특목·자사고 진학이냐' 하는 문제로 헷갈릴 필요가 없게 됐다. 교육부가 직접 해답을 내려주었기 때문이다. 특목·자사고 진학이 답이라고. 철학도 신념도 없이 눈치만 보던 교육부가 우리 교육을 10년 전 과거로 퇴행시켰다." 

* 사진 설명: 학업성취도평가 시험을 치르고 있는 학생들 [사진 제공=충북교육청]
*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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