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금강 하류 군산 지역 배경, 부조리한 사회상 풍자와 냉소로 그린 작품

   
 

1930년대 금강 하류에 위치한 항구 도시 군산은 쌀을 사고 파는 일을 하는 미두장(米豆場)이 중심이 돼 일제의 경제적 수탈이 이루어진 곳이다. 이러한 배경을 중심으로 조선인들은 모함과 사기, 살인 등을 겪으며 점차 신체적, 정신적 파멸에 이르게 된다. 마치 온갖 잡다한 것들이 흘러들어와 맑았던 물이 지저분하게 혼탁해지는 모습처럼 말이다. 1930년대의 부조리한 사회상을 풍자와 냉소로 엮은 채만식의 대표작 <탁류>를 읽어 보자.

줄거리/탁류

군산에 미두라는 투기 노름이 성행하던 시절, 군의 고원을 지낸 정 주사(정영배)는 식민지 시대라는 역사적·사회적 변동기를 거치며 도시 하층민으로 전락하게 된다. 시대의 탁류 속에 휩쓸려 미두를 시작했으나 가산만 탕진하게 된 정 주사는, 돈에 대한 탐욕 때문에 마을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자신의 딸 정초봉을 사기꾼이자 호색한인 은행원 고태수와 결혼하라고 강요한다.

제중당이라는 약국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초봉에게는 장래가 촉망받는 애인 의학도 남승재가 있었다. 그러나 초봉은 자기 자신을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고태수와 결혼한다. 초봉은 결혼후 얼마 되지 않아 꼽추인 장형보의 흉계로 남편을 잃는 아픔을 겪는다.

이후 초봉은 약국 주인이었던 박제호의 유혹에 못 이겨 그의 첩이 된다. 이러한 상황을 겪는 가운데 초봉은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딸을 낳는데, 그때 장형보가 나타나 자신이 딸의 친부라고 하며 박제호에게서 초봉을 빼앗다시피 한다.

자신의 모든 불행이 장형보 때문임을 깨달은 초봉은 마침내 그를 죽이고 자신도 목숨을 끊으려 결심한다. 그렇지만 동생 정계봉과 남승재가 만류해 포기하고, 결국 경찰에 자수하기로 한다.


본문 읽기/탁류

1. 인간기념물
금강(錦江)…….
이 강은 지도를 펴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동께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 가지고는- 한강이나 영산강도 그렇기는 하지만-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번 비행기라도 타고 강줄기를 따라가면서 내려다보면 또한 그럼직할 것이다. 저 준험한 소백산맥이 제주도를 건너보고 뜀을 뛸듯이, 전라도의 뒷덜미를 급하게 달리다가 우뚝…… 또 한번 우뚝…… 높이 솟구친 갈재와 지리산 두 산의 산협 물을 받아 가지고 장수로 진안으로 무주로 이렇게 역류하는 게 금강의 남쪽 줄기다. 그놈이 영동 근처에서는 다시 추풍령과 속리산의 물까지 받으면서 서북으로 좌향을 돌려 충청좌우도의 접경을 흘러간다. …(중략)
 
   
▲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입학처 http://ipsi.dongguk.ac.kr

백마강은 공주 곰나루에서부터 시작하여 백제 흥망의 꿈자취를 더듬어 흐른다. 풍월도 좋거니와 물도 맑다. 그러나 그것도 부여 전후가 한창이지, 강경에 다다르면 장꾼들의 흥정하는 소리와 생선 비린내에 고요하던 수면의 꿈은 깨어진다. 물은 탁하다. …(중략)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그러나 항구라서 하룻밤 맺은 정을 떼치고 간다는 마도로스의 정담이나, 정든 사람을 태우고 멀리 떠나는 배 꽁무니에 물결만 남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갈매기로 더불어 운다는 여인네의 그런 슬퍼도 달코롬한 이야기는 못 된다.


2. 생활 제일과(第一課)
정거장에서 들어오자면 영정으로 갈려 드는 세거리 바른편 귀퉁이에 있는 제중당(濟衆堂)이라는 양약국이다. 차려 놓은 품새야 대처면 아무 데고 흔히 있는 평범한 양약국이요, 규모도 그다지 크지는 못하다. 그러나 제중당이라는 간판은, 주인이요 약제사요 촌사람의 웬만한 병론(病論)이면 척척 의사질까지 해내는, 박제호(朴濟浩)의 그 말대가리같이 기다란 얼굴과, 삼십부터 대머리가 훌러덩 벗겨져서 가뜩이나 긴 얼굴을 겁나게 더 길어 보이게 하는 대머리와, 데데데데하기는 해도 입담이 좋은 구변과, 그 데데거리는 말끝마다 빠트리지 않는 군가락 ‘제기할 것!’ 소리와, 팥을 가지고 앉아서라도 콩이라고 남을 삶아 넘기는 떡심과…… 이러한 것들로 더불어 십 년 이짝 이 군산바닥에는 사람의 얼굴로 치면 마치 큼직한 점이 박혔다든가, 핼끔한 애꾸눈이라든가처럼 특수하게 인상이 박히고 선전이 되고 한, 만만찮은 가게다.
 
   
▲ 기적의 성적향상 노트 <스터디 워크북> http://365com.co.kr

가게에는 지금 제호의 기다란 얼굴은 보이지 않고, 초봉이가 혼자 테이블을 타고 앉아서 낡은 부인잡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초봉이는 시방 집안일이 마음에 걸려 진득이 있을 수가 없다. 종시 돈이 변통되지 못하면 어찌하나 싶어 초조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잊고 앉아 절로 시간이 가게 하느라고 잡지의 소설 한 대문을 읽는 시늉은 하나 마음대로 정신이 쏠려지지는 않았다. 기둥에 걸린 둥근 괘종이 네시를 친다. 벌써 네신가 싶어 고개를 쳐들면서 가볍게 한숨을 내쉬는데, 마침 헙수룩하게 생긴 촌사람 하나가 철 이른 대팻밥모자를 벗으면서 끼웃이 들어선다. “어서 오십시오.” 초봉이는 사뿐 일어서서 진열장 뒤로 다가 나온다. 가게 사람이 손님을 맞이하는 여느 인사지만 말소리가 하도 사근사근하면서도 뒤끝이 자지러질 듯 무령하게 사그러지는 그의 말소리가, 약 사러 들어선 촌사람의 주의를 끌어 더욱 어릿거리게 한다.

초봉이의 그처럼 끝이 힘없이 스러지는 연삽한 말소리와 그리고 귀가 너무 작은 것을, 그의 부친 정주사는 그것이 단명(短命)할 상이라고 늘 혀를 차곤 한다. 말소리가 그럴 뿐 아니라 얼굴 생김새도 복성스러운 구석이 없고 청초하기만 한 것이 어디라 없이 불안스럽다.티끌 없이 해맑은 바탕에 오뚝 날이 선 코가 우선 눈에 뜨인다. 갸름한 하장이 아래로 좁아 내려가다가 급하다 할 만치 빨랐다. 눈은 둥근 눈이지만 눈초리가 째지다가 남은 것이 있어 길어 보이고, 거기에 무엇인지 비밀이 잠긴 것 같다. 윤곽과 바탕이 이러니 자연 선도 가늘어서 들국화답게 초초하다.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웬일인지 위태위태하여 부지중 안타까운 마음이 나게 하던 것이다. …(후략)
 시방(時方) | 지금. 말하는 바로 이때에
 
   
▲ <학부모가 꼭 알아야 할 대입 노하우> http://365com.co.kr/goods/view?no=116

7. 천냥만냥
…(전략) 처음 김씨가 혼담을 내놓았을 때에 정주사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태수의 정체는, 시방처럼 선명한 자격은 보이지 않았고, 매우 막연한 것이었었다. 그렇던 것이 김씨가 이야기를 한 가지씩 한 가지씩 해가는 대로 차차 선명하게 미화되어 가기 시작했었다. 그것은 마치 캔버스 위에서 화필(畵筆)이 노는 대로 그림의 선과 색채가 한 군데씩 두 군데씩 차차로 뚜렷해지다가, 마침내 훤하게 인물이 나타나는 것과 같았다. 정주사의 머릿속에서 조화를 부리기 시작한 태수의 영상은, 그가 ‘전문대학’을 졸업했다는 데 이르러서 비로소 선명해졌고, 다시 정주사한테 장사 밑천을 대준다는 데서 완전히 미화되어 버렸었다. 골고루 골고루, 대체 요렇게 마침 감으로 똑 떨어진 신랑감이 어디 가서 다른 집 몰래 파묻혔다가 대령하듯이 펄쩍 뛰어나왔는가고 생각하면, 자꾸만 꿈인가 싶어진다. …(중략) 태수의 눈찌가 좀 불량해 보이는 것이랄지, 사람이 반지빠르고 건방져 보이는 것이랄지, 더욱 무엇보다도 마음 찜찜한 구석은 그가 조건 붙은 새장가를 들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미심다운 것, 이런 것들은 다 모른 체하고 슬슬 넘겨 버린다. 죄다 관주를 주어 놓고서, 정주사는 어떻게 해서 누가 준 관주라는 것은 상관 않고, 사윗감이 관주인 것만을 기뻐한다. …(중략)

아무튼 그래서 정주사는 시방 크게 만족하여 가지고 콩나물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그는 바로 며칠전에 이 콩나물고개를 이렇게 넘어가면서 초봉이의 혼인과 및 그 결과에 대해서 공상을 했었고, 하던 그대로 모든 일이 맞아떨어진 기쁨을 안고서 오늘은 이 고개를 넘느니라 생각하면, 이놈 콩나물고개란 놈이 신통한 놈이로구나 싶어 새삼스럽게 좌우가 둘러보여지는 것이다. “자아, 그래서 돈이 생기면…….” 느긋하게 궁리를 하면서 정주사는 천천히 집을 향하고 걸어간다. 대체 얼마나 둘러 주려는고? 한 오륙백 원?…… 오륙백 원 가지고야 넘고 처져서 할 게 마땅찮고…… 아마 돈 천 원은 둘러 주겠지. 혹시 몇천 원 척 내놓을지도 모르고. 한데, 무슨 장사를 시작한다?…… 싸전? 포목전? 잡화전?…… 그런 것은 이문이 박해서 할 것이 못 되고……. 가만히 미두를 몇 번 해보아? 그래서 쉽게 한밑천 잡아? 에잉! 그건 못쓰지. 그랬다가 만약 실수나 하고 보면, 체면도 아니려니와 모처럼 잡은 들거린데 방정을 떨어서야……. 그러면 무얼 해야만 하기도 수나롭고 이문도 박하잖고 두루 괜찮을꼬? …(후략)
 
   
▲ <명문대 합격생 학생부 대공개> http://365com.co.kr/goods/view?no=4

12. 만만한 자의 성명은……
…(전략) 제호는 부채질을 하면서 무엇이 그리 기쁜지 연신 싱글벙글 좋아한다.

“……자아 밥 먹더라구. 퍽 시장했을 거야! 그새 여러 날 걱정으루 지내느라구 무얼 변변히 먹지두 못했을 텐데.” 밥상 앞에 가 무릎을 뉘고 앉으니까, 하녀가 간드러지게 공기에다 밥을 퍼올린다. 초봉이는 두 손으로 덤쑥 받는다.

“어여 먹어요. 많이 배불르게 먹어요. 인전 아무 걱정두 할라 말구서 잘 먹구 맘두 편안히 가지구 그래요. 마침 목간을 했으니깐 그걸루 과거는 말끔 씻어 바린 요량을 하구 말이지, 허허 제기할 것…….” 초봉이는 그렇기는 커녕 비누가 없어서 때도 못 씻은걸 하고 속으로 웃었다. “……자아 어서 먹어요…… 원 저렇게 이쁜 사람이, 원 그런 악착스런 일을 당하구 그리다니, 에이 가엾어!…… 가엾어 볼 수가 없단 말야, 허허허허, 제기할 것…….”

초봉이는 이건 바로 어린애를 어르듯 한다고 서글퍼서 우습지도 않았다. “……자, 난 반주를 한잔…….” 제호

 

   
▲ 대입전략서 <2020 수시·정시 백전불태>
사전 예약 클릭! http://www.365com.co.kr/goods/view?no=73

 

   
▲ '나침반 36.5도' 11월호, p.72 '일제 강점기, 맑은 금강은 어떻게 '탁류'가 되었나?'




 
*사진 설명: [사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027
-본 기사는 청소년 진로 학습 인문 시사 월간 매거진 <나침반36.5도> 11월호에 수록됐습니다.
-더욱 다양한 기사는 <나침반36.5도> 매거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기구독 신청 바로가기]

   
▲ 중·고생 진로진학 매거진 월간 <나침반 36.5도> 정기구독 신청 http://365com.co.kr
저작권자 © 에듀진 인터넷 교육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