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의 다스뵈이다 전우용 교수 "양승태 같은 X, 김앤장 같은 X"이 최악의 욕 돼야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이 일본 전범기업의 소송대리를 맡아 양승태 사법부와 강제징용 재판을 논의한 정황이 확인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특히 대법원의 수장이었던 양승태가 직접 김앤장과 수시로 접촉한 정황까지 드러나 충격이 더했다.

설상가상으로, 헌법재판소가 일본 전범기업에 불리할 수 있는 판결을 낼 것을 우려해 양승태 사법부가 헌재의 기밀 정보를 몰래 빼돌려 김앤장에 건넨 정황까지 밝혀졌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 24일 법정 구속됐다. 

이와 관련해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유튜브 방송 ‘다스뵈이다’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김앤장의 행태를 역사적인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시했다. ‘다스뵈이다’ 42회에 출연한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는 청산되지 못한 친일사상이 현재 기득권세력의 욕망과 일치한다고 봤으며, 또한 이들을 반헌법세력이자 반국가세력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짧은 설명만으로는 고개를 갸웃할 이들도 있겠지만, 전 교수가 풀어놓는 역사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돈과 욕망이 최고의 가치가 돼 버린 한국 사회에서 정의와 인도주의, 동포애를 되살려야 함을 일깨우는 방송이기에, 전우용 교수와 김어준 총수의 대화 전문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해 드린다. 명확한 내용 전달을 위해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약간의 편집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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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 총수: 제가 교수님을 모신 이유는 하나예요. 최근에 강제징용과 관련해서 일본 강제징용 전범기업 변호를 대리한 김앤장이나 외교부나 양승태가 관여한 과정들을 보면 뭔가 외교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라든가 법률대리인이니까 어쩔 수 없이 했다, 이게 아니고 정말 진심을 다했구나, 라는 게 느껴져요. 근데 그 뿌리가 뭐지?

예를 들면, 나치 전범자를 변호하는 유태인 변호사는 직업윤리가 있어서 변호를 해야 한다는 내적갈등이 있을 수 있으나, 그런 게 느껴지기는커녕 억수로 적극적이야. 제가 든 생각은 우리나라 기득권, 그런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 평균적인 규범과 이렇게 동떨어져 있나. 이것을 물어보려고 해요 그런데 우리 교수님은 ‘토착왜구’라는 표현도 쓰셔서 모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전우용 교수: 토착왜구의 저작권이 나에게는 없어요. 누구에게 들었는지 어디에서 봤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이걸 좀 짚어보죠. 김앤장이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나 전범기업들을 변호하면서 유리하게 재판결과가 나오도록 견마지로를 다했는데, 이것을 친일이라고 봐야 하느냐, 그 사람들이 일본인을 위해서 일했느냐, 아니면 그냥 돈을 위해서 했느냐.

저는 친일파라는 이름이 개인적으로는 좀 탐탁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 표현은 마치 훈구파, 노론벽파처럼 이미 역사 속에 묻힌 이름 같거든요.

그래서 먼저 친일파라는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죠. 친일파라는 이름도 사실은 일본인들이 지었어요. 우리가 지은 이름이 아니에요. 갑신정변이 났을 때 일본 언론에서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사람들,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 이런 이들을 세 가지 이름으로 불렀어요.

우리가 잘 아는 개화파가 하나고, 이 사람들이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도한다고 해서 독립당, 그리고 일본을 더 좋아한다고 해서 친일당 혹은 친일파 이렇게 불렀어요. 그 반대편을 개화의 반대말로 수구파, 그리고 독립의 반대말로 사대당. 그리고 친일파의 반대말로 친청파 이렇게 불렀어요.

친일파의 유구한 역사 
친일파라는 이름은 1884년에 처음 출현해요. 이후 20년 동안은 사회적으로 많이 통용된 단어는 아니에요. 당시 조정안에는 러시아에 가까운 쪽, 미국에 가까운 쪽, 일본에 가까운 쪽, 중국 청나라에 가까운 쪽이 다 나뉘어져 있었지만, 백성들은 어느 한 나라가 압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세력에 지원을 받을 것인가를 선택 가능하다고 봤어요.

그러다가 친일파라는 사람들이 특별히 우리사회 최대의 악이다, 라고 인식되기 시작한 건 러일전쟁 이후 을사늑약(1905년, 외교권 박탈)이 나고 나서. 드라마 미스터 썬샤인의 중요한 시대적 배경으로 된 군대해산, 고종양위, 의병봉기 이런 것들이 일어난 때부터예요.

이 때 자진해서 자발적으로 우리가 친일파라고 스스로 선언하는 세력이 튀어나와요. 이들이 일진회라고 해서 송병준-이용구 등 그 동학의 일부와 보부상 일파가 합쳐져 만들어 놓은 일종의 관제단체였어요. 그리고 이들은 일본 헌병을 도와서 의병을 진압하는 데 앞장을 서게 되죠.

1907년 8월에 공립신보라고 하와이에서 발행된 신문에서 친일파를 다음과 같이 정의를 해요. '일본에 의지하여 우리나라를 팔고, 일본에 의지하여 우리 황상폐하를 능욕하며, 일본에 의지하여 우리 동포를 학살하니 사람의 낯 하고 짐승의 마음을 가진 자들이다'.

이게 친일파에 대한 정의예요. ‘일본에 의지해서 나라를 팔고 주권자를 능욕하고 우리 동포를 학살하는 자들이다.’ 이게 친일파에요. 그러니까 인면수심인 자들이죠.

친일파에 대한 이 정의가 그 무렵부터 생기게 되죠, 일제강점기 내내, 기본적으로 ‘일본에 의지해서 우리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이다’라는 대중적 관념이 형성이 된 거예요.

이완용이 친일파라고? 친미, 친러, 친일 두루 거친 통합매국 기회주의자

   
▲ 전우용 교수 [사진 캡처=유튜브 딴지방송국]

근데 친일파에는 두 부류가 있어요. 첫 번째는 보통 친일파 하면 떠오르는 행태를 보인 이들이죠. 대표적인게 일진회를 만들었던 송병준이라든가 친일파의 대명사로 알고 있는 이완용이라든가 을사오적을 말하죠.

이들에 대한 대중적 적대감, 반감이 어느 정도였냐면, 을사늑약을 체결했던 학부대신 이완용, 외무대신 박제순을 매국노의 대표적인 이름으로 불렀어요.

일제강점기에는 종로 일대에 쭉 상가가 들어서 있었어요. 조선시대부터 이미 들어서 있던 거죠. 당시 화장실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 길에 소와 말이 하루에 수천 마리씩 지나다녔으니, 길은 이미 똥밭이죠. 일제 강점기에 그래도 군데군데 공중변소를 강압적으로 설치하는데, 그 공중변소의 별명이 ‘이박식당‘이었어요. 이씨와 박씨가 밥 먹는 식당. 이완용과 박제순은 똥개같은 놈들이다. 이런 얘기죠.

‘매국노’ 하면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첫 번째 대상은 ‘이완용’이에요. 매국노이자 친일파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대상인데, 근현대사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많이 아시듯 이완용은 처음부터 친일파는 아니었어요.

이완용을 보면 육영공원을 졸업했고, 영어 배웠고, 주미 공사관에서 소위 외교관으로 근무했죠. 친미파였죠. 영어 잘했고요. 또 아관파천 무렵에는 독립협회 회장을 했고요. 그때는 친러파의 영수였어요. 그랬다가 러일전쟁 나고 일본이 이기게 되니까 친일파로 돌았죠. 그러니까 친일파라고 하면 이완용이 저승에서 굉장히 기분나빠 할 거예요. 자기는 친미, 친러, 친일을 두루 역임한 통합파인 거죠. 다 돌았어요.

이완용이 죽기 전에, 자신의 조카에게 이렇게 유언을 남겼다는 말도 있어요. "지금 내가 세계 돌아가는 형국을 살펴보니 다음엔 미국의 시대가 될 것이다. 너는 미리미리 준비해서 세상이 바뀌었을 때 부디 친미파가 돼라."

사익추구 기회주의자 '직업 친일파' 
그러니까 이 사람은 친일파가 아니에요. 친일파라는 단일 규정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이기는 편이 우리 편, 철저한 기회주의자에요. 자기 개인, 혹은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공동체 국가 또는 민족이 입게 될 심각한 피해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에게만 이익이 되면 된다 식의 철저한 사익추구 지상주의자죠.

이런 사람이 굉장히 많았어요. 일진회 회원이 스스로 100만 명이라고 주장했는데, 그 정도는 안 되지만. 그 사람들이 일본이 먼저 얘기하기 전에 합방 청원을 하고 그랬어요. 일본이 좀 우리를 집어 삼켜주십시오, 어차피 망할 거니까. 먼저 망하게 해달라고 빌자. 혹시 아느냐 이런 거죠.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나서 온 백성이 만세 불렀을 것 같죠. 아뇨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사과하러 간답시고 진사 사절단을 조직해서 일본으로 갔고요.

심지어 이토 히로부미 동상 건립한다고 동상 추진위원회를 만들었어요. 1909년에 만들어져요. 자칫했으면 한반도 최초의 동상이 이토 히로부미의 동상이 될 뻔했어요. 일본이 허가를 안했어요, 다른 한국인들이 이토 동상을 훼손할까 봐요.

자 이렇게 사익추구 지상주의, 사익극대화를 최상의 가치로 두는 것이에요.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사상의 특징이에요. 우리는 이런 사람을 직업적 친일파라고 불러요. 직업이 힘센 쪽에 붙는 게 직업이에요. 돈 많이 주는 쪽에 무조건 봉사하는 게 직업 친일파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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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못나서 나라 망한 것" 이광수 식 민족 계량주의 친일파
두 번째 부류로 좀 더 고차원적인 친일파가 있어요. 역사학계에서는 ‘민족 계량주의 친일파’라고 불러요. 나라가 망했어요. 나라가 망했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나라가 망한 것은 우리가 못나서 망한 거라고 처음에 그렇게 하죠. 우리 민족이 못나서 망했다. 우리 민족이 못난 점이 뭘까. ‘단결력이 부족하고 사대주의적이다’ 일종의 자학사관 비슷한 거죠.

그런 생각들을 해요. 우리가 약한 민족이라서, 우승열패 적자생존 경쟁의 세계에 약하고 모자라고 못 배우고 무식한 자들이 당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니냐. 그러다 보니 상황이 너무 비참해. 어떻게 해야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힘을 길러야 한다. 힘을 기르려면 민족성을 개조해야 한다’라는 거예요. 이광수 식 생각이었어요. 2.8독립선언서를 쓴 사람이고 3.1운동시절에는 상해에 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서 독립신문 집필도 한 사람인데. 변절했다고 하는데 사상의 일관된 발전이었어요.

어떻게 발전했냐면, 처음엔 그랬어요.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고쳐서 훌륭한 민족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건데, 거듭나려면 뭔가 보고 배워야죠? ‘아시아에서 제일 잘 나가는 민족이 어떤 민족이냐? 일본 민족이다. 그러면 우리 민족의 약점을 버리고 일본 민족의 장점을 배우면, 우리도 강한 민족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 처음엔 그래요 우리의 약점을 버리고 일본의 강점을 배우자.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생각을 한 걸음만 더 넘어가면 돼요. 일본을 자꾸 배워서 닮아 가면 그 다음엔 뭐예요? 우리가 이름 바꾸고 언어 바꿔서 일본인이 되면 그걸로 되는 거 아니냐, 이렇게 돼버리는 거죠. 자기 정체성을 부정해 버리는 거죠.

아 내가 잘못 생각했다. ‘한민족을 개조해서 좀 더 나은 민족으로 만들어보려고 애를 썼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그냥 일본 민족이 되면 되는 거 아니냐. 그게 황국신민의 논리와 바로 맞아버린 거예요.

한국인이 황국신민이 되면 더 이상 할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가선 이름도 일본 이름으로 바꾸고 스스로 자랑해요. 나는 요즘 꿈도 일본말로 꾼다고. 철저하게 일본인이 되는 거죠. 자기만 그리 되는 게 아니라 한국인들에게도 그렇게 얘길 해요. 일본인이 되는 게 아시아 1등 민족이 되는 길이라고. 한국인이 모두 일본인이 된다면 무슨 근거로 한국인을 차별할 수 있겠느냐고, 일본인이 됐는데.

그가 본 일본 민족의 장점이 뭐냐, 라는 건데 그게 다른 게 아니었어요. 아주 단순하게 얘기하면 돈 잘 버는 민족이라는 뜻이었어요. 먼저 실력을 기르고 나중에 독립을 하자. 이런 논리로 갔다가, 이제 독립을 포기하고 그냥 일본 민족이 되자, 로 빠져 들어가죠. 근데 이것도 근본에서는 똑같아요.

이광수는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피적포이술’이라고 설명을 해요. 적을 피하고 먹이를 얻는 기술, 그가 생각하는 교육의 목표에요. 도덕성, 올바른 가치관, 연대, 배려, 예의, 공동체의식 이런 건 교육이 가르칠 부분이 아니에요.

똑같아요. 앞에 기회주의적 친일파 사람들과. 그들 역시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게 올바른 삶이다. 그러기 위해선 어떤 짓을 해도 괜찮다 이런 철학을 갖고 있었어요. 이게 해방 이후까지 내려 왔던 거예요.

양승태와 김앤장 '이완용·이광수 식 사익추구 지상주의자들'
핵심은 똑같아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예요. 바로 내 이익이다. 사익추구 지상주의 이게 첫 번째예요. 두 번째, 이 세상은 모두 자기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싸우는 전쟁터와 같다. 두 번째 생각이 그래요.

이 전쟁터에서 약육강식, 우승열패, 적자생존, 동물진화의 원리가 그대로 관철된다. 경쟁 만능주의에요. 그러니까 경쟁에서 진 패자는 말이 없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면 최고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이익을 실현하는 길이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이번에 보였던 김앤장이라든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라든가 그와 결부되어서 일본의 전범기업들 편에 서도록 도와주었던 이런 사람들의 생각도 똑같아요.

전범기업이든 그들이 우리 선조들을 얼마나 악랄하게 괴롭혔든 그건 관계없어요. 이미 지난 일이고 당장에 나에게 이익이 된다면 또는 장래 나에게 큰 이익이 된다면 열심히 해서 이겨주는 것이 올바른 일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식민지 지배를 청산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 친일파는 다 죽었어요, 문제는 그런 사상들 그런 생각을 자식들도 그렇게 따라간다는 거죠. 그 사람들이 성공모델이었으니까요. 자식들이 그렇게 다 따라간 거죠.
 

   
▲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전우용 교수 [사진 캡처=유튜브 딴지방송국]

유치원 사태, 사익추구 지상주의자들이 만든 비극 
(적지 않은) 유치원 경영자의 마인드가 그런 거예요. 내가 다른 거 할 수 있지만, 아이들을 밝고 건강하기 키우기 위해서 좀 덜 벌어도 더 보람되고 중요한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유치원 사업을 하는 게 아니에요. 이걸 하면 국고보조금도 나오고 이 건물을 다른 용도로 쓰는 것보다 수익률이 더 높겠다 이런 판단을 하는 사람이 많은 거예요.

그렇게 하니까 문제들이 생겨요. 그럼 이 사람들이 친일파야? 친일파는 아니죠. 그냥 돈만 많이 벌면 나에게 이익이 된다면 그것이 옳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김어준 총수: 사회적으로 단절됐다면 그런 식으로 살면 안 되겠구나, 라고 사회적 교훈이 되었을 텐데 그게 안 되었어요. 

▶전우용 교수: 이것도 있고요. 사실은 우리가 약속을 했어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의거의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서 민족적 단결을 공고히 하고” 이게 제헌헌법에 들어갔던 구절이에요.

그러면서 이게 제헌헌법에서부터 들어가 있던 구절로 정의, 인도, 동포애 이게 왜 나왔냐면, 이게 정확해요. 대한민국의 약속이에요. 과거 친일파를 정의한 말이 일본에 의지하여 우리나라를 팔고 우리 동포를 학살하니, 사람의 낯 하고 짐승의 마음을 가진 자들, 이죠.

짐승의 마음에 반대되는 것이 인도주의예요. 그런 인도를 지키는 게 정의이고 우리 동포를 사랑하는 게 동포애잖아요. 헌법에 이것을 적어놓은 것이고, 친일과 관련된 역사적 가치관, 역사적으로 형성돼 있던 일본적 가치관을 완전히 끊어내자는 선언을 그렇게 했어요.

우리 민족이 가져야 할 것은 첫 번째 정의감, 두 번째 인도주의예요.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세계인권선언이 태어나면서 모든 인간은 존엄권을 가진다, 라고 했죠. 그게 인도주의예요. 약하다고 해서 약자를 위디스크의 양 모씨처럼 돈 좀 있다고 그렇게 막 때리고 이것 자체가 반인도적인 거란 말예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동포를 사랑해라. 일본의 전범기업들에게 강제로 끌려가서 인간 이하 대접을 받으면서 혹독하게 고생했던 당했던 피해 입었던 사람들은 우리 동포이고 선조들이란 말예요. 그 동포애가 없는 거잖아요. 김앤장이 한 것은 인간의 도리를 모르는 일을 한 것이니, 당연히 정의감이 없죠.

​정의, 인도주의, 동포애 외면하고 이완용식 처세술 가르치는 사회 

이게 말하자면 우리가 말하는 친일파라고 하는 사람은 다른 말로 하면 그동안 이 사람들이 해왔던 가치관에 따라 처신해왔던 행동 양식, 돈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염치도 인도도 정의도 따지지 않고 무슨 일이든 다 하는 금전만능주의, 그건 우리 헌법 위반이에요. 반국가세력이라고요.

친일파를 민족 반역자라고 부르잖아요. 지금 이런 행위가 정의도 동포애도 부정하고, 위배되게 하는 행동 자체가 우리 헌법적 약속을 어기는 반헌법 세력이죠. 그래서 여전히 반역행위라는 거죠.

이런 것이 친일파라고 봤으면 좋겠어요. 이완용은 죽은 지 오래됐고요. 지금은 없어요. 우리가 청산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남긴 행동 패턴, 문화, 관행 이런 적폐예요.

저도 늘 들으면서 살았어요. 정의로운 척하지 마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대세에 휩쓸려 살아라, 니 먹을 거 챙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 등등, 친일파 닮으라고. 서점에 가서 성공한 사람들의 몇 가지 습관이니 있잖아요. 다 보세요. 책 볼 것 없어요. 그냥 이완용 전기를 읽으면 돼요.

이완용만큼 그 가르침에 충실하게 살아온 사람이 없어요. 일치감치 영어 배웠죠, 인간관계 잘 다져놨죠. 스펙 잘 쌓았죠. 기회를 보면 잡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눈치 빠르게 세상의 변화를 잘 파악해 따랐어요. 성공하는 사람의 습관을 그대로 따라갔어요. 근데 가보니까 이완용이야.

개인적으로 성공했어요. 대한제국에선 총리대신을 했고,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까지 했어요. 그리고 후손한테 많은 돈을 물려줬죠.

지금 우리 사회가 역사책에선 이완용을 막 욕하는데 실생활에 필요한 이른바 처세술의 영역에서는 이완용처럼 되라고 가르치고 있어요. 이완용은 육영공원이라고 최초로 생긴 영어교육기관의 1기 입학생이거든요. 그 당시에 영어유치원 다닌 거예요. 조기 미국 유학을 가서 주미 한국공사관 참찬관을 했어요. 돌아오자 바로 높은 자리에 올라갔어요. 바로 그랬던 거거든요.

양승태·김앤장, 정의·인도주의·동포애 부정한 '현대판 친일파' 
이번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김앤장을 만나서 실제로 협의까지 해가면서 비밀도 주고 어떻게 하면 재판에서 이길 것인지 서로 짜고, 그렇게 하면서 전범기업들을 편들었다, 그럼 우리가 이렇게 인식해야죠.

1907년도 우리 선조들이 인식했던 것처럼 이건 인면수심이다. 이건 단순히 돈 벌기 위한 범죄 정도가 아니라 인간성에 대한 범죄고요. 인간이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이죠. 우리 헌법을 부정한 반역행위예요. 정의도 인도도 동포애도 다 부정했잖아요.

우리가 친일잔재 청산에 과거사 단죄에 실패하면서, 친일의 마인드로 동포애나 정의, 인도도 다 버리고 오직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저렇게 살면 안 된다고 하는 하나의 선례를 만들었어야 되는데 만들지 못했다는 거잖아요.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깨달았으면 만들어야죠.

▶김어준 총수: 양승태부터 확실하게 만들어야죠. 김앤장도 그렇고요.

▶전우용 교수: 이런 행위를 심지어 한 나라의 헌법을 수호하는 대법원장이란 분이…. 도대체 헌법 전문을 안 읽었나 봐요. 아니면 읽어도 이해를 못하는 거죠. 정의가 뭔지, 인도주의가 뭔지, 이해를 못하고 법률만 외웠나 봐요. (헌법에 적힌 가장 중요한 가치) 그걸 어겼어요.

사법적으로 어떻게 처리가 되든 일단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엄정한 단죄가 필요하다는 거죠. 그러한 행위 자체가 이완용과 같은 행위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돼요.

이완용이 죽었을 때, 그 당시 그때만 해도 동아일보가 조금 괜찮았어요. ‘살아서 누린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으나, 이제부터 겪을 일이 얼마나 끔찍할지 겪어봐라’ 이런 거였거든요.

그 예언이 맞았어요. 그로부터 90년이 지나도록 우봉 이씨 집안에서 어지간만 하면 같은 이름 지을 만도 한데, 비슷한 이름을 가진 국회의원이 한 분 있기는 하죠. 자기 자식에게 완용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가 없어요. 앞으로 이런 일도 (양승태 김앤장으로) 이름을 안 지을 정도로 기억해야 해요. 앞으로 백 년 동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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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친일파' 역사와 사회의 엄정한 단죄 필요하다 
▶김어준 총수: 이미 애 이름을 양승태로 지었으면 어떻게 합니까?

▶전우용 교수: 요즘에는 이름 많이 바꾸잖아요. 더 이상 존경할 만한 사람으로 기억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이완용을 존경하는 사람들이 그 시대에 많았어요. 총리대신도 지내고 했으니까 돈도 많고.

근데 1945년부터 1950년까지 5년 동안에는 ‘이완용 같은 놈’이 제일 심한 욕이었어요. 일제강점기 시절 아까도 말씀 드렸다시피 이완용 박제순 같은 이름은 개와 같은 뜻이었어요. 이박식당이라고 했던 것처럼요.

우리가 시민활동을 하는 것처럼, 일제강점기시절 공중변소에 이박식당이라는 이름 써놓는 게 시민의 실천 활동이었고요. 이박식당이라고 부르는 게 시민들 애국운동이었어요. 그렇게 불러서 아예 못을 박아버리는 거죠.

‘네가 아무리 돈이 좋아도 아무리 명예가 좋아도 아무리 입신양명이 좋아도 이완용처럼 돼서는 안 된다’고 자식들에게 가르치는 거였어요. 그런 가르침의 방식은, 굉장히 다양한 자발적이고 대중적인 창의로 발성될 수 있어요. 노래를 만들 수도 있고요. 

이완용이 풍수설에서도 조예가 있어서 제일 좋은 곳에 묫자리를 썼어요. 근데 해방되고 나니까 그 동네 학교에서 일부러 이완용 무덤으로 소풍을 가요. 애들한테 저기가 이완용이 무덤이라고 하면 무덤에 올라가서 뛰어 놀아요. 그래서 후손들이 몰래 이장해가서 어디에 뒀는지 지금은 이완용 묘가 없어요. 그런 거거든요. 민족 반역자에 대한 대중의 응징이었어요.

여론재판 이라고 이런 반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정말 이 문제에 관해서는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인간의 기본에 대한 배신이고, 헌법가치를 짓밟는 행위였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시민적 차원에서 잊지 않고 또 어떻게든 이 문제를 털어버려야겠다 우리 역사 속에서, 이런 의식을 가지고 나가야 되는 게 필요하지 않겠나.

▶김어준 총수: 양승태 같은 놈, 혹은 김앤장 같은 놈.

▶전우용 교수: 제가 김어준 총수 보고 성이 김씨라고 해서 앤장이라고 부른다고 하면 화를 내야죠. 그렇게 잊지 않아야 할 것 같아요. 변호사가 돈벌이 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 이런 식으로 계속 넘어가거든요.

"양승태 같은 X, 김앤장 같은 X"이 최악의 욕이 되는 사회 돼야
갑질이라는 것이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잔재 중 하나라고 저는 보거든요. 신분제가 해체되면 사라졌어야 됐는데 안 사라져요. 왜냐하면 신분제가 해체된 이후에도 민족 대 민족이라는 신판 신분제가 출현했기 때문이고. 그 속에서 마름 노릇하던 사람들, 일본의 앞잡이 노릇 하던 사람들이 자기가 일본인인 것처럼 행동하던 문화가 여전히 강고하게 뿌리 내린 채 넘어오기 때문에 나타나던 현상의 하나라고 보거든요.

사실 적폐라는 게 미세먼지 비슷한 거예요. 내 폐에도 쌓여요. 그럼 밖에 있는 것만 청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도 청소해 나가야 하거든요. 나는 저렇게 살면 안 되겠다. 내 자식도 저렇게 가르치면 안 되겠다.

▶김어준 총수: 이런 것을 부끄럽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죠.

▶전우용 교수: 이완용 후손이 아직도 돈은 많아요. 그렇지만 우리 아버지 이완용이다, 우리 할아버지 이완용이다, 얼굴 내밀고 못 살아요. 그런 거죠. 그런 문화가 돼야죠. 해방 이후에도 지금에도 지속되고 있는, 인간은 사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선택을 해야 하는 이기적인 동물이다, 이것이 바로 이완용이에요.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가용한 모든 자원을 총동원한다, 그것이 부도덕하든 부정의하든 반인륜적이든. 이런 사상을 가지고 (행동한) 바로 이 사람들이 친일파에요. 반헌법세력, 반국가세력이고 반역자다, 이런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김어준 총수: 제가 오늘 모신 것은 그 뿌리는 이렇게 된 거야, 라고 사건과 사고를 얘기해줄 줄 알고 그랬는데. 제가 사실은 설득돼 버렸어요. 처음엔 저도 직업윤리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사실 처음엔. 근데 이건 너무 하잖아.

선을 넘었어요. 법정에서 열심히 싸운 것이 아니라 장외에서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범기업을 위해 뛴 거거든요. 이거 정말 진심을 다했네. 그래서 교수님이 생각났어요. 오늘 해설을 해줘 감사드립니다. 

*해당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PpCmmty_WS0

*사진 설명: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전우용 교수 [사진 캡처=유튜브 딴지방송국]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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