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교사, 교장이 함께 만든 교육1번지의 기적

   
▲ <사진=방배중학교>

점심시간,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축구 토너먼트 게임을 하고 있다. 꽉 들어찬 관중석에서 연이어 환호와 함성이 터져 나온다. 마치 국가대표 경기를 보는 것 같다. 축구를 하는 학생도 경기를 보는 학생도 모두 주인공이다.

교실 복도 창문으로 경기를 보는 여학생들이 비눗방울을 날리며 꺄르르 웃음꽃을 피운다. 데자뷰...잊고 있었던 옛 중학생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에 학교를 찾은 학부모의 얼굴에 미소가 감돈다.


방배동 엄마 보고 통칭 ‘교육 1번지’라는 대치동 엄마가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방배중 학부모는 미쳤나봐. 왜 공부를 안 시켜?” 그런데 그 미친 학부모가 한국 최고라는 강남지역에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문화의 혁명, 교육의 혁명을 이뤄내 가고 있다.

서래마을은 여느 동네와 다른 특징이 있다. 서울에 오는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기에 학교 바로 앞에 프랑스학교까지 있다. 그렇게 학교 주변에 다양한 인종과 함께 프랑스풍이 많이 배면서 여러 특색이 더해졌다. 예술이 있는 동네, 조용한 동네, 사랑과 배려가 있는 따뜻한 동네, 학원가나 퇴폐적인 문화가 없는 동네....

이 서래마을의 한가운데 있는 학교가 방배중학교(교장 이명호)다. 하지만 이 학교가 얼마 전까지 강남 속의 ‘오지학교’로 평가절하 돼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주면 사람들은 놀라기 일쑤다. 강남의 중학교이면서도 주변 학교보다 교육성과가 확연하게 떨어지자 학교가 속한 강남 5지구를 빗대어 오지중의 오지학교로 불렀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보라. 2014학년도 고등학교 진학현황을 보면 전체 학생수 232명 가운데 과학영재고 3명, 과학고 1명, 예술고 1명, 외국어고 2명, 마이스터고 1명, 전국단위 자사고 7명(하나고 3명, 민사고 2명, 김천고 1명, 천안북일고 1명), 서울형 자사고 21명으로 강남 최고 수준의 중학교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장 공모제를 통해 초빙교장을 모셨다는 것이다. 둘째로 교사와 교육과정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셋째로 학부모를 교육의 제3자가 아닌 교육주체자로서 인식하고 학부모의 공감과 협력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그러나 더 핵심적인 것은 이런 협력을 통해 한 차원 높은 공존의 교육문화를 이룩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행복한 교육을 통해 인성과 실력이 동시에 향상되고, 학교 주체들이 헌신적으로 협력해 학력 신장까지 이뤄낸 것이다. 바로 교육문화 분야에 뚜렷한 한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서래마을 스타일’을 만들어낸 것이다.

방배중은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알만 한 사람들한테는 은퇴를 앞둔 교장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학교로 치부됐다. 그러다 보니 열정 있는 교사는 오면 떠나가고 싶어 하고 학부모들은 그저 내 자녀는 저 학교에 가지 말았으면 하며 피하는 학교가 돼 가고 있었다. 그렇게 ‘5지구의 오지학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학교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온 인물이 있다. 항상 뒤쳐져 있는 이 학교에 교육청은 공모교장을 초빙하기로 하고 여기 뽑힌 사람이 지금의 변화를 이끈 이명호 교장이다.
 

   
▲ 이명호 방배중 교장

이교장은 가장 먼저 학교의 현재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부동산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시장조사를 했다. “근처 중학교에 아이를 넣고 싶은데 어느 학교가 좋아요?” 돌아오는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방배중학교만 피하면 돼요!”

그 이후 가장 좋은 학교, 가장 행복한 학교를 만들자는 목표를 설정한 이교장은 교장실에 부동산 지도를 놓고 매일 방배중학교의 위치를 확인하며 방배중을 강남의 최고의 학교로 키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섶에 눕고 쓸개를 씹는다는 뜻인 와신상담(臥薪嘗膽)을 떠올리게 한다.

이명호 교장이 처음 학교에 부임했을 때 학교내의 상황은 어렵기 짝이 없었다. 무엇보다 학력수준이 높은 교육엘리트층과 서민층이 공존하는 지역이라 문화의 차이가 너무 컸다. 학교정책의 타겟과 눈높이를 어느 쪽에도 제대로 맞출 수 없는 학교에 대해 학부모들은 불신하기 일쑤였다.

이교장은 학교를 바꾸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힘도 필요했지만 학부모의 도움도 절실히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학부모가 학교를 믿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방배중의 미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학부모는 교장이 바뀌었다고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교장을 중심으로 점차 교사들도 열과 성으로 학교를 변화시키려 하는 모습을 1년여 동안 지켜보던 학부모들은 학교 쪽의 진심을 이해하게 되면서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교장이 공모교장 2년째 되는 해에 지금의 회장인 이경선 회장이 학부모회를 대표하게 되었다. 이경선 회장은 교장과의 의견교환을 통해 자녀가 다니고 있는 방배중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다.

“방배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빈부와 성적, 문화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최대한 많은 학부모가 공평하게 학교 일에 참여하도록 해야 학교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빈부의 차이가 있거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차이가 존재하면 같은 학부모라도 끼워주지 않는 문화가 우리네 현실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방배중 학부모회는 이런 이기적인 ‘따로 따로’를 깨고 ‘함께’를 선택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것이 서래마을의 교육혁신, 서래마을 스타일의 비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시험 마친 날, 학교운동장은 서래마을 한마당

중간고사건 기말고사건 시험이 끝나는 날 방배중 운동장에선 작은 축제가 펼쳐진다. 남녀 학생들 모두가 버블축구와 함께 학부모회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먹고 시험의 스트레스를 날린다.

시험이 끝나면 어두운 PC방에 들어가 자신의 스트레스를 날리는 학생들을 위해 학부모가 제안하고 교장이 적극 찬성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학생들은 운동장에서 한바탕 마음껏 뛰어 놀게 해주고 학부모가 만들어 준 음식을 함께 먹는다.

학부모들도 혹시나 교사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최대한 조심스럽게 준비했지만 학부모회의 진정어린 손길에 교사들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풍경은 우리네 학교 풍경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교복 단속에 걸리지 않도록 미리 옷매무새 만져주는 학부모

어느 날 학교 앞에서 새로 전근 온 생활부장이 복장단속을 하고 있었다. 8명의 학부모가 나섰다. 학생들에게 교복단속 사실을 미리 알려주며 “하늘은 맑고 푸르다. 사랑한다”고 쓴 메모지를 붙인 사탕을 주고 교복 옷매무새를 만져 주었다.

새로 온 생활부장은 이러한 학부모들의 행동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자기 앞을 지나가는 학생들의 잘 만져진 교복과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에 금세 깨닫는다. ‘다음에는 솜사탕으로 해도 좋겠네요’라는 제안까지 스스럼없이 나온다.

나눔과 배려를 능동적으로 실천하는 학생들

어느 강사가 동남아 오지에서 광산노동자로 일하면서 1일 3천원을 받는 학생들 이야기를 했다. 방배중학생들은 그들을 위해 몽땅 연필을 모아 그 오지에 보내주게 된다. 단순히 보내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곳 학생들에게 정성껏 마음을 담은 손 편지를 작성해 함께 보낸다. 이런 자발적인 학생들의 활동은 계속 이어진다. 2차로 가방도 비닐도 없어 비오는 날은 책이 다 젖는 학생들을 위해 집에 남는 보조가방도 모두 모으기 시작한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그렇게 커가고 있었다.
 

   
 


특히 이교장은 학교문화와 풍토가 개별화되어 있어 학교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부모가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교육도 본질을 보면 학부모의 의식과의 전쟁이다. 학교는 믿음만 주는 자율책임 경영을 한다. 현재는 성적이 조금 뒤처져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도 “스몰스쿨”을 만드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고 그들을 믿고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면서 만든 프로그램이 ‘리더십프로그램’이다.

특히 이교장은 학교문화와 풍토가 개별화되어 있어 학교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부모가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교육도 본질을 보면 학부모의 의식과의 전쟁이다. 학교는 믿음만 주는 자율책임 경영을 한다.

현재는 성적이 조금 뒤처져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도 “스몰스쿨”을 만드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고 그들을 믿고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면서 만든 프로그램이 ‘리더십프로그램’이다.

방배 다문화 커뮤니티 주도세력들은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도록 대승적 접근을 해주어 빈부 차이가 뚜렷하면 서로의 문화에 끼워주지 않고 끼리끼리 문화를 만들어가는 다른 학교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방배중은 아직도 최상위 성적을 내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차이를 인정하지만 차별을 두지 않는 문화가 살아있다. 현재는 성적이 부족할 수 있지만 미래가 부족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선진교육문화이고 서래마을 스타일인 것이다.

방배중은 학부모, 교사, 교장이 함께 만들어낸 우리 교육문화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낸 작지만 소중한 모델이다.

이경선 학부모회 회장은 최근 학부모들 사이에 큰 고민이 있다고 한다. 이명호 교장이 내년 2월이면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방배중의 학부모들은 한국에 새로운 학교풍토를 만들어 낸 서래마을 스타일의 성공여부는 그 정신과 철학, 실천의 지속성에 있다고 판단한다. 서래마을은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 교육계의 문제를 한꺼번에 안고 있었던 지역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하나가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방배중을 진정한 명문중학교로 키워가는 이때에 수장이 그만두면 또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우리 교육의 한계 앞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학교에 서열위주의 교육문화가 아닌 공존의 문화, 서래마을의 특징인 따뜻한 문화를 방배중에 이식시킨 이명호 교장을 한 번 더 연임하게 해 달라는 학부모의 간절한 소망이 서래마을을 뒤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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