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학력 정의부터 바꿔야…소양과 역량을 평가하라

충청북도교육과학연구원 '충북자연관찰탐구대회'에 참가한 학생들 [사진 제공=충북교육청]

교육부가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크게 늘고 있다며 사실상 일제고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기초학력을 내실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초1부터 고1까지 학생들의 학력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전수조사를 위해 모든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한다는 것이니, 결국은 일제고사를 부활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교육계의 시각이다.

2017년과 2018년의 학업성취도 평가는 그전과 달리 중3과 고2학생 전체인원의 3%를 표집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실시한 학업성취도 평가가 전수평가, 즉 일제고사 방식으로 이루어져, 시·도간 학교 간 서열화가 조장되고 경쟁이 심화돼 교육과정이 파행 운영되는 등 큰 부작용을 불러왔다는 비판이 증폭됐다. 이 때문에 교육부가 평가 방식을 표집평가로 바꾼 것이다. 

일제고사 부활의 신호탄을 쏜 교육부에 대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교육부 스스로 전수평가 방식의 문제를 인정해 놓고도 다시금 전수평가를 대안으로 들고 나온 것은 대단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기초학력 정의부터 바꿔야…소양과 역량을 평가하라 
‘기초학력’에 대한 교육부의 낡은 인식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기초학력’이란 학생이 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성취기준을 충족하는 학력을 말한다.

여기에는 읽기, 쓰기, 셈하기뿐 아니라 협동 능력, 배려심, 공감 능력, 예술적 감수성 등 다양한 소양과 능력이 포함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학교 교육과정은 국어, 영어, 수학 등의 교과 지식을  위주로 학생을 평가하고 있다. 

OECD가 주관하는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가 자주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하는 시대적 상황에 맞게 ‘소양’과 ‘역량’에 초점을 맞춰 평가를 실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PISA는 PISA 2003 조사에서 문제해결력을, PISA 2012에서 컴퓨터 기반 문제해결력을, PISA 2015에서는 협력적 문제해결력을 평가항목에 추가했고, PISA 2018에서는 글로벌 역량을 추가하면서 핵심역량에 기반한 다양한 영역의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또한 평가 방법에 있어서도 단순한 지필 평가에서 벗어나 컴퓨터 기반 평가 2015년 조사부터 전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시대적 흐름에 맞는 평가 영역과 방법에 대한 고민이 교육부의 방안에는 담겨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전교조는 “지금껏 우리 교육이 ‘학업성취’ 중심으로 운영돼 온 결과 학업 성취도는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학업 흥미도는 최하위권을 기록해왔다”며 “진단의 초점을 ‘학업 성취도 높이기’가 아닌 ‘학업 흥미도 높이기’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학생 중심의 참여·토론 수업 등 미래형 혁신교육으로 교육환경이 변화하면서, 세계 꼴찌 수준이던 학생의 ‘학교생활 행복도’가 2015년 54.6%에서 2018년 61.3%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이 사실을 외면한 채 기초학력 저하 수치 자체만 강조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교육운동단체인 교육희망네트워크는 “교육 선진국들이 단순 학업성취도 수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학생의 행복과 성장에 교육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호기심과 흥미, 창의성 같은 21세기 미래역량에 직결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학 등에서 부진 비율이 10%를 넘은 것은 어떤 의욕도 흥미도 느낄 수 없는 ‘수포자’ 비율이 늘어났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수학 학력 저하, 수능 킬러문항과 과도한 시험범위가 주 원인
특히 수학 학력이 떨어지는 현상은 수학에 대한 자신감, 가치, 흥미, 학습의욕 등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지 않으면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교육걱정)은 “현재 수학교육의 정상화를 방해하는 가장 큰 원인은 킬러문항으로 대변되는 수능 수학의 문제 수준과 시험 범위가 정규 교육과정만 받아서는 대비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영재학교와 과학고의 경시대회성 수학 입시문제 출제가 중학생들에게 과도한 학습 부담을 유발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때문에 수학 학습 부담이 초등학생에게 그대로 전달돼 초등학생 때부터 수학을 포기한 학생들이 양산된다는 것이다. 

사교육걱정은 “교육부는 수학 기초학력 부족현상의 근본 원인인 수능 킬러문항 출제와 과도한 시험 범위, 영재학교와 과학고의 경시대회성 입시 문제 출제를 즉시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초등 저학년 위주로만 기초학력 지원 내실화 방안을 만들 것이 아니라 초등 고학년과 중․고교 수학교육가지 아우른 정규수업 내실화 방안을 만들고, 수학교사의 수업 전문성 향상을 위해 3~4년 이상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을 주문했다. 

일제고사 부활, 문재인정부 교육공약과 정면 배치 
한편 교육부가 문재인정부의 ‘실현된 교육공약 1호’인 ‘일제고사 표집전환’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듯한 대책을 내놓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교육 관료들이 현 정부의 국정 지지도가 정체된 틈을 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제고사 부활’ 등의 기초학력 내실화 방안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다.

교육희망네트워크는 “사실상 일제고사인 전수조사를 비롯해 기초학력 내실화 방안에 들어있는 진단보정시스템, 선도학교 확대, 프로그램 연구 등은 학생이 아닌 관료들에게 예산과 자리 등의 수혜를 주는 것”이라며 “지방분권화 시대를 맞아 자신들의 권한을 시도교육청으로 이양하라는 거센 압력 속에서 자신들의 기득권, 주도권,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한 위기감 조성용 대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번 파동을 초래한 박백범 차관 이하 교육부 기초학력보장과 담당자들을 경질하고 문책해야 한다”고 교육부 조직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거기에 국정교과서 파동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일제고사 및 결과 공개를 의무화하는 ‘초중등교육법 제9조 제1항, 4항 개정 법률안’을 발의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전교조 충남지부는 “일제고사를 의무화하고 결과까지 공개하는 것은 지역 간, 학교 간 줄 세우기와 경쟁을 더욱 심화시키겠다는 뜻”이라며 “이는 대다수 국민의 뜻과 요구를 무시하는 오만하고 무지한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뿌리 깊은 입시 중심 교육 풍조 속에서 그간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던 학습부진 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또한 부진아 구제는 교육 복지 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육부가 내놓은 해결방안이란 것이 학생들에게 더 큰 학습 부담을 지우고 교육 정의에서도 멀어지는 것이어선 곤란하다. 또한 교육은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진: 충청북도교육과학연구원 '충북자연관찰탐구대회'에 참가한 학생들 [사진 제공=충북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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