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100주년] '임시정부 입법기관'에도 7인의 여성의원 있었다
[임정100주년] '임시정부 입법기관'에도 7인의 여성의원 있었다
  • 이지민 기자
  • 승인 2019.04.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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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 전신인 '임시의정원'은 1919년 4월10일 개원했다. 각 지방을 대표하는 의원의 수는 총 57명이었으며, 중등교육을 받은 만23세 이상의 남녀만이 의원이 될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의원들 중 절대 다수는 남성이었으나,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항일투쟁에 헌신한 여성 의원들의 족적도 남아 있다.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정에 따르면 임시의정원에서 활동한 여성 의원은 김마리아·양한나·최혜순·방순희·김효숙·지경희·신정완 지사 등 모두 7명이다.

1대 김마리아 의원 민족계몽운동에 힘쓰는 집안에서 자란 김마리아(1892~1944) 선생은 일본 동경여자학원 유학 당시인 1919년 동경 2·8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귀국 후 5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에는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결성,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전달하거나 투옥된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에도 힘썼다.

이 일로도 체포돼 옥살이를 한 뒤인 1921년에는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의정원의 홍해도 대의원으로 선출됐다. 당시 독립신문은 이 일을 '선거계의 신기원'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해 "여자로서 의원에 당선된 것은 우리 선거계에는 물론 이번이 처음일 뿐더러 세계열국을 통하여서도 이것이 아직 몇 째 안 가는 희귀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1933년 귀국한 김마리아 선생은 민족 의식을 고취하는 계몽활동을 꾸준히 전개했으나, 고문 후유증이 재발해 1944년 3월13일 조국 광복을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고 순국했다. 정부는 1962년 김마리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2대 양한나 의원 양한나(1893~1976) 선생은 마산의신여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당시 항일맹휴를 주도했다. 일본 요코하마신학교에서 수학한 뒤 중국으로 망명, 쑤저우여자사범대학에 학적을 두고 대한민국임시정부 경상도대의원을 지냈다.

그는 1922년 임시정부 특사로 밀입국하다 붙잡혔으나 곧 석방됐고, 이듬해 다시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1936년 부산YWCA를 창설하고 유치원을 경영하는 등 사회복지사업 일선에서도 활동했다.

그는 광복 후인 1946년 제1기 여자경찰간부로 임용됐으며, 이듬해 3월에는 초대 수도여자경찰서장에 취임했다. 양한나 선생에게는 1976년 국민훈장 동백장이 추서됐다.

7일 오후 경기 고양시 덕양구 국립여성사전시관에서 열린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여성독립운동가, 미래를 여는 100년의 기억'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강애란 작가의 '여성독립운동가 시리즈'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2019.3.7/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3대 최혜순 의원 최혜순(1900~1974) 선생은 간호사 출신으로 일찍부터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펼쳐 왔다. 그는 임시정부 국무위원인 김철과 혼인해 상하이에서 부부 독립운동가로서 활약했다.

그는 1931년 9월 만주사변 대책 협의를 위한 조선인각단체대표회의에 애국부인회 대표 자격으로 참석, 회계 책임자로 선출됐다. 그해 12월 제23회 임시의정원에서는 전라도 의원으로 선출돼 1933년 2월까지 활동했다.

1933년에는 상해한인애국부인회 집사장으로 3·1운동 기념일 등에 관한 인쇄물 작성·배포를 주도했다. 이후 상하이에서 조산병원을 경영하며 독립자금 마련에 힘썼다. 최혜순 선생에게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4대 방순희 의원 방순희(1904~1979) 선생은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백산소학교 교사로서 한인사회 2세들에게 민족 교육을 가르쳤다. 소비에트 당국의 한인학교 폐쇄 정책 시행 이후에는 국내로 귀국해 북풍회 등에 가입하고 반 제국주의 혁명 운동을 전개했으나, 일제의 치한유지법 발효로 감시 대상으로 지목됐다.

그는 여기서 굴하지 않고 중국으로 망명, 임시의정원의 일원으로서 독립운동에 활발히 참여했다. 1939년 임시의정원 함경남도 대의원으로 선출된 뒤에는 임시정부의 국제승인을 얻기 위해 대소련 외교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한국독립당의 중경구당 간부, 한국애국부인회의 부주석, 대한민국 임시정부 선전부원으로 활동하는 등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시의정원의 의정활동을 했다. 방순희 선생에게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7일 오후 경기 고양시 덕양구 국립여성사전시관에서 열린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여성독립운동가, 미래를 여는 100년의 기억'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2019.3.7/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5대 김효숙 의원 김효숙(1915~2003) 선생은 5세 때 아버지 김붕준 선생을 따라 온 가족이 상하이로 망명한 뒤, 광둥성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을 조직했으며, 1941년에는 임시의정원 강원도 대의원에 당선됐다. 한국 광복군이 창설되자 입대해 항일전을 전개하기도 했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6대 지경희·7대 신정완 의원 지경희 선생(1910~미상) 선생은 1942년도 함경도 대의원으로 선출됐다. 지경희 선생의 행적에 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어 정부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신정완 선생(1917~2001)은 독립운동가이자 초대 국회의장을 역임한 해공 신익희 선생의 외동딸로, 3·1 운동 이후 부친을 따라 중국 각지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그는 1943년 10월 남편 김재호와 함께 임시의정원 전라도 대의원으로 선출돼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활동했다. 광복 후에는 고국으로 돌아와 한국외대, 숙명여대에서 중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1968년 독립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을,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 사진: 국가보훈처가 김마리아 선생을 2019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전했다. 선생은 미국에 유학 중인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여성 독립운동 단체인 근화회를 조직하고, 국내에서도 종교 모임과 강론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등의 운동을 했다. (국가보훈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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