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독립투사, 조명하 의사의 조국 독립의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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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의 원수를 갚았노라. 아무 할 말은 없다. 오늘 이 순간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단지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저세상에 가서도 독립운동을 계속하리라.”

1928년 10월 10일 오전, 일제 처형장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의 독립을 염원했던 한 독립운동가의 유언. 지금까지 우리 가슴을 울리는 이 유언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바로 대만에 방문한 일본 육군 대장을 향해 단검을 던지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조명하’ 의사입니다. 
 

-이 기사는 초등 잡지 <톡톡> 2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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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가슴 속에 ‘조국 독립’의 열망이 피어오르다!

조명하 의사는 1905년 4월 8일 황해도 송화군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보통학교를 중퇴한 그는 운 좋게 군청의 서기로 취직하고 결혼도 했죠.

일본의 울타리 안에서 꽤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같은 황해도 출신 독립운동가인 김구, 노백린 선생의 얘기를 듣고 자란 그의 가슴에는 이상하게도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순종의 장례식 때 조문을 온 사이토 총독 암살을 시도한 송학선 의사와 각지에서 들려오는 의열단의 의거 소식을 들으며 그는 마침내 조국의 독립이야말로 가슴 속에 공허함을 채워줄 열망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길로 조국 독립을 향한 먼 길을 떠났습니다. 행여 가족들을 보면 마음이 흔들릴까 염려한 것이죠. 그는 떠나며 조카에게 “공부 열심히 해라. 그래야 일본놈들에게 속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안정 버린 고행길…일본에서 견딘 인고의 시간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일본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떠난 그는 일본 오사카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전기회사나 상점, 공장 등 온갖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돈을 벌고, 밤에는 오사카 상공전문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식민지 출신이었던 조명하 의사는 엄청난 차별과 괴롭힘 속에서도 조국의 독립만을 생각하며 의지를 굳혔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홀로 조국 독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는데요. 이곳에서 계속 있어봐야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조명하 의사는 중국 상하이에 있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기로 마음먹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상하이로 곧바로 향하면 자신의 신분이 고스란히 노출돼 훨씬 삼엄한 감시를 받게 될 위험성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조금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대만을 거쳐 상하이로 향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뜻밖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
당시 대만은 일본이 지배하며 중국 침략의 발판으로 삼던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대만에도 이미 많은 일본인들이 살고 있었죠. 이곳에 도착한 그는 찻집에서 일하며 일제의 지배를 받는 대만에게 깊은 공감과 연민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매일 조국 독립을 가슴 깊이 새기며 상해로 떠날 준비를 하던 그에게 엄청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히로히토 일본 천황의 장인이자, 육군 대장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가 대만의 군부대에 방문한다는 소식이었죠.

단 한 자루 칼에서 뻗어 나간 뜨거운 조국 독립의 의지
그는 소식을 듣자마자 구니노미야 대장의 암살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마침내 1928년 5월 14일, 독약을 바른 단도를 가슴에 품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구니노미야가 탄 차량이 타이중 도서관 앞을 지날 때 그는 몸을 날려 구니노미야를 향해 품고 있던 칼을 던졌습니다. 칼은 구니노미야의 목덜미를 스치며 지나갔고,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그곳에서 조명하 의사는 당당히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당시 구니노미야는 목에 가벼운 상처만 입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독이 온몸으로 퍼졌습니다. 결국 그는 이 상처가 원인이 되어 패혈증으로 사망했습니다.

칼을 던진 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체포된 조명하 의사는 그 해7월 18일, ‘황족위해죄 및 불경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3개월 뒤 스물네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죠.

조명하 의사의 특별함은 그 어떤 조직에도 소속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독립운동을 실천했다는 점입니다. 가슴 속의 공허를 채울 뜨거운 열망이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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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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