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학의 북극성, 따뜻하고 그리운 민속 재현
- 슬픔 속 감각적 이미지 피어나

백석은 18세 어린 나이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로 당선되며 문단에 등장했다. 25세였던 1936년 1월, 백석은 시집 <사슴>을 100부 한정판으로 발간하는데 이 시집은 금세 동이 났다. 당시 백석보다 다섯 살 어렸던 시인 윤동주 역시 이 시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다 겨우 빌려 필사해 곁에 두었다고 한다. 백석은 그야말로 ‘시인들의 시인’이었다.

그러나 화려할 것만 같았던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광복 후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에 정착했던 시인은 사회주의 문학의 정치성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국영협동농장으로 쫓겨나 양치기로 일해야 했다. 남한에서는 월북 작가라는 오명 속에 그의 작품이 오랫동안 출판금지를 당해 1988년 해금 조치 이후에야 우리에게 알려졌으며 북한에서 1963년 사망한 것으로 국내에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북한에서 농사일을 하며 문학도들을 양성하다가 1996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혀져 놀라움을 주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많은 시인들이 인정하고 존경하는 한국문학의 북극성 백석. 오늘은 백석의 시 세계를 함께 들여다보자. 

- 이 기사는 <나침반 36.5도> 매거진 1월호 p.94에 8p 분량으로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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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 방언의 마술사’ 따뜻하고 그리운 민속을 재현하다

▲ 백석 시인 [사진 출처=조선일보]
▲ 백석 시인 [사진 출처=조선일보]

백석의 초기 시는 풍속지를 연상시킬 만큼 한국인의 삶, 특히 유년기에 체험했던 전통적인 식생활과 놀이가 독특한 기법으로 다양하게 녹아들어 있다. 누구에게나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하고 향토적인 분위기와 그리운 민속의 재현 등 생활 속의 정취가 진실하게 풍겨나는 것이다.

백석은 일제강점기 피폐해진 민중들의 삶을 바라보며, 잃어 가는 우리네 민속과 언어를 작품에 모아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서글픈 사연을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보여주는 한편, 기록을 저장하듯 사라져 가는 우리의 풍속과 음식을 시의 소재로 삼았다. 또한 평안도와 함경도 일대의 방언과 속어를 시어로 삼기도 해 이 때문에 그를 ‘부족 방언의 마술사’라고 칭하기도 한다.

[백석 시 대표작 읽기]

<여우난곬족>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 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 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려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엄매 사춘누이 사춘동생들이 그윽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뽂운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부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여우난곬족>은 어린 화자가 명절날 아침부터 그 다음날 새벽까지 큰집에서 목격하고 경험한 일들을 순차적으로 그리고 있다. 어지럽고 숨 가쁘게 이어지는 서술방법은 어린아이들이 보고 느낀 사실을 첨삭 없이 진술하는 어법과 흡사하다.

이 시의 어린 화자는 명절날 큰집에서 만난 친척들과 먹은 음식, 함께 한 놀이 등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든 장면들을 낱낱이 열거한다. 유년 화자의 시선을 통해 자연스럽게 강조되는 음식과 놀이의 재현은 토속적인 가족 공동체를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환기한다.


<모닥불>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시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게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세상에 버림받고 소외된 것들이 모여 작지만 따뜻한 불을 피우고 있다. 새끼 오리, 헌신짝, 소똥, 개니빠디, 짚검불……. 모닥불은 세상으로부터 업신여김 당하고 쓸모없는, 그래서 더욱 보잘 것 없는 것들로 불을 피웠다. 그리고 모닥불 주위에는 버려진 물건들만큼이나 초라한 이들이 와서 언 몸을 쬐고 녹인다.

이들은 신분의 높낮이, 나이나 가족, 심지어 인간과 동물의 구분도 없다. 모닥불이라는 구심점을 향해 둥글게 모여 앉은 모두가 평등하다.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며 가슴 속의 서러움마저도 녹아내리게 하는 것이 바로 모닥불이다. 모닥불은 고통스럽고 서러운 몽둥발이가 된 할아버지의 ‘슬픈 역사’마저 뜨겁게 녹여 내린다.

*개니빠디: ‘개의 이빨’이라는 뜻의 평북사투리


<여승>

여승은 합장을 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늬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리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꿩도 설겨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여승>은 한 여인이 남편과 자식을 잃고 여승이 되는 과정을 묘사하며 식민지 민중들의 삶에 드리워진 비극을 말한다. 그녀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여승이 된 게 아니다. 갈 곳이 없어서 여승이 됐다. 여인과 여승 사이를 가르는 거리에서 시인은 끝 모르는 슬픔을 느낀다.

여인과 대화할수록 시인의 서러움도 그만큼 깊어진다. 시인은 여승이 되기 전에 여인을 만난 적이 있다. 평안도에 있는 어느 깊은 산 금점판에서 여인은 파리한 모습으로 옥수수를 팔았다. 십 년 전에 돈 벌러 나간 남편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나이 어린 딸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자꾸만 보챘다. 여인은 보채는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가족을 모두 잃고 여승이 된 여인의 삶은 마치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과도 같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는 진술로 시인은 고단한 삶에 지쳐 활기를 잃은 당대 민중들을 표현한다.
 

대림대학교 입학처 https://www.daelim.ac.kr
대림대학교 입학처 https://www.daelim.ac.kr


시대를 초월한 감수성, 슬픔 속에 피어난 감각적 이미지
백석을 다른 시인들과 구별 짓게 만드는 요소는 유난히 쓸쓸함과 그리움과 자책과 슬픔이 배어나는 그의 독특한 감수성에 있다. 백석이 마주하고 그려내는 삶의 이야기는 가끔 아늑하고, 때로 비참하며, 자주 쓸쓸하고 서럽다.

그러나 백석의 시가 비단 슬픔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감각적인 이미지와 동화적 상상력 등 독특한 기법으로 세련된 감각을 획득하고 시의 스펙트럼을 확장한다. 시각이미지와 청각이미지 정도에 갇혀 있던 종래의 이미지 표현의 테두리를 크게 확장시킨 것이 백석 시가 가진 또 하나의 중요한 성과이다.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흰 바람벽이 있어>는 이야기 시이지만 뛰어난 영상미를 현현한다. 어느 저녁 아무도 없는 좁은 방, 기껏해야 천장 정도 떨어진 곳에 시인의 외로운 생각들이 흰 바람벽에 새겨져 있다. 시인은 자신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떠올리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보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늙은 어머니와 사랑하는 사람이 영화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고 자신의 쓸쓸한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시인을 지독하리만치 쓸쓸하게 만들었던 생각들이 흰 바람벽을 배경으로 또 한 번 영사되고, 그런 시인을 위로하려는 듯 흰 바람벽엔 다시 글자가 새겨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릴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흰 바람벽이 있어>는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된 ‘문장’지 마지막 4월호에 발표됐다. 그래서일까, 이 시는 당대 시인들이 느꼈던 무력감을 표현해 시인을 위해 쓴 노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현현하다: 명백하게 나타나거나 나타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에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눈 내리는 밤 주막에서 소주를 마시며 사랑하는 여인인 나타샤에 대한 그리움을 표출한 연시(戀詩)이다. ‘나타샤’라는 이름이 주는 이국적이고 감미로운 정서 위에 ‘흰 당나귀’와 ‘눈’의 이미지가 호응하면서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상상의 연정을 표출한다. 맑고 투명한 언어와 이미지가 전통적인 연시와는 차별된다.

“단 한번 부딪힌 한 순간의 섬광이 바로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의 시작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매듭이 없는 슬픈 사랑의 실타래는 이미 그때부터 풀려가고 있었다.” - <내사랑 백석> 중

이 시의 주인공 ‘자야’는 이렇게 말했다. 백석과 자야는 눈이 푹푹 쌓인 길을 오고가며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나 백석은 부모의 독촉으로 억지 결혼을 해야 하는 조선의 사내이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을 벗어나 자야와 함께하고 싶었던 백석은 그녀에게 만주로 떠나 자유롭게 살 것을 제의했지만 자야는 끝내 그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백석은 만주로, 자야는 경성에 남게 되면서 이별하게 되고 잠깐의 이별은 전쟁의 분단으로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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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진실로 슬프고 근심스럽고 괴로운 탓에 이 가운데서 즐거움이 그 마음을 왕래하는 것입니다.” - 백석

백석은 삶의 무게를 버거워하면서도 고향과 친지와 연인과 추억과 옛정, 두고 온 모든 것을 끊임없이 떠올리고 읊조렸다. 언젠가 백석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시인은 온갖 슬프지 않은 것에도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기에 그랬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사랑으로 슬픔으로 마음이 가득 찰 때 시를 읽는 것인지도 모른다.


'백석 (1912~1996)'

본명은 백기행으로, 방언을 즐겨 쓰면서도 모더니즘을 발전적으로 수용한 시들을 발표했다. <통영>, <고향>, <북방에서>, <적막강산> 등을 발표했고 지방적·민속적인 것에 집중해 특이한 경지를 개척하는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는다.

 

■ ‘나침반 36.5도’ 1월호 p.94~p101 페이지 미리보기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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