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지키는 '면역', 과하면 '독' 된다?
내 몸 지키는 '면역', 과하면 '독' 된다?
  • 김해림 기자
  • 승인 2019.06.10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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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르기 쇼크 현상 발견한 생리학자, 샤를 리셰
-학생 길잡이 중고생 진로·진학 월간지 '나침반 36.5도' 다시보기

“이 제품은 새우, 게, 밀, 대두, 땅콩, 계란, 우유, 토마토, 복숭아, 돼지고기를 사용한 제품과 같은 제조시설에서 제조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식품을 살 때 이 같은 문구를 발견한 적이 있을 것이다. 적힌 것들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 비슷한 식품들이다.

‘식품 등의 표시 기준’에 따라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식품에 적혀있는 이 문구는 2004년 식약청 고시 제2003-27호로 시행됐다.

처음 시행했을 때는 가금류의 난류, 우유, 메밀, 밀, 땅콩, 대두, 게, 돼지고기, 고등어, 복숭아, 토마토 등 11개 품목에 한해서만 표기됐지만, 현재는 호두, 잣, 키위, 굴, 닭고기 등의 품목이 추가되며 총 24개로 늘어났다.

그렇다면 이 문구들은 소비자에게 도대체 무엇을 알리려고 하는 것일까? 

- 이 기사는 <나침반 36.5도> 매거진 3월호 p.92에 4p 분량으로 수록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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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위협하는 알레르기 질환 아나필락시스
이 같은 문구는 바로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한 정보지만, 식품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목숨과도 직결된 매우 소중한 정보다.

특정 물질에 대한 과민반응으로 나타나는 알레르기는 심할 경우 전신에 쇼크를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급작스럽게 발생하는 심각한 알레르기 과민반응을 ‘아나필락시스(anaphylaxis)’라고 하는데, 이 질환이 밝혀지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알레르기 쇼크로 사망하더라도 그 원인을 알지 못해 단순한 급사로 치부하곤 했다.

그러나 한 과학자의 모나코 여행이 아나필락시스를 발견하는 결정적 계기가 돼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과연 그는 누구일까?

‘면역’ 연구하던 생리학자, 샤를 로베르 리셰 박사

▲ 샤를 로베르 리셰 [사진 출처=wikipedia]
▲ 샤를 로베르 리셰 [사진 출처=wikipedia]

아나필락시스를 최초로 발견한 이는 프랑스 생리학자 ‘샤를 로베르 리셰’다.

1850년 8월,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리셰 박사는 파리대학의 교수이자 외과 의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의학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의사를 목표로 공부하던 청년 시절 리셰 박사는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생리학으로 방향을 돌리고 생리학을 전공했다.

의학 박사 학위와 물리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하며 공부에 열의를 보이던 그는 1887년 파리대학 의학부 생리학 교수로 활동하며 각종 전염병에 면역을 가질 수 있는 혈청요법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면역된 동물의 혈청을 다른 동물에 주사함으로써 항체를 얻어 면역을 획득하는 방법을 알아낸 것이다

모나코 여행에서 운명적인 생물을 만나다
면역을 연구하던 그가 아나필락시스를 발견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모나코 여행’ 덕분이었다. 동료 학자들과 모나코로 요트 여행을 떠난 리셰 박사는 모나코의 알버트 왕자를 만나게 됐다.

알버트 왕자는 리셰 박사와 그 동료들에게 한 가지 커다란 고민을 털어놓았다. 바로 ‘작은부레관해파리’ 때문이었다.

작은부레관해파리는 작은 풍선처럼 귀여운 모양의 해파리다. 신비롭게 생긴 이 해파리는 생긴 모습과 달리 해변에서 보면 바로 도망쳐야 할 정도로 강한 독성을 지녔다. 쏘일 경우에는 통증이 심하고 구역질이 나며 심할 경우 실신하거나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런데 모나코를 찾은 관광객들이 예쁘게 생긴 이 해파리를 만지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이 다수 발생하게 된다. 관광 왕국이었던 모나코 입장에서는 이 해파리가 큰 골칫덩어리였던 것이다. 

알버트 왕자는 리셰 박사와 그의 동료인 프랑스 해양생물학자 폴 포르티 박사에게 이 해파리의 독에 대한 연구를 해볼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모나코의 협조를 받아 대서양에서 해파리 독에 대한 선상 실험을 진행한 리셰 박사는 큰 흥미를 느껴 파리에 돌아가서도 연구를 계속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파리에서는 이 해파리를 구하기가 어려워 대신 독소의 구성과 효과가 비슷한 말미잘 독으로 연구를 이어갔다.

뜻밖의 연구 성과, '면역계의 ‘방어’가 독이 될 수 있다?'
말미잘 독을 개에게 주사해 치사량을 조사하던 리셰 박사는 어느 날 뜻밖의 결과를 얻었다. 처음에는 말미잘 독을 맞고 회복한 개들이 두 번째는 독을 주사하자마자 과민반응을 일으키며 죽어버린 것이다.

이는 1차 감염 이후 같은 종류의 감염이 일어나면 면역의 원리로 인해 감염에 대한 민감성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현상이었다.

리셰 박사는 연구를 계속하며 이 현상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일어나는 반응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즉, 우연히 발생한 예외적인 현상도 아니라는 것이다.

리셰 박사는 투여된 독소가 과민반응을 일으키기까지 3~4주의 잠복기가 필요하며, 독소의 종류나 동물에 관계 없이 저혈압,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현상에 대해 ‘아나필락시스’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아나필락시스는 ‘ana(반대라는 의미)’와 ‘phylaxis(방어라는 의미)’를 합친 단어로, 면역계가 방어한다는 것이 오히려 그 반대로 나쁘게 작용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리셰 박사, 알레르기로부터 인류를 구하다
리셰 박사가 발견한 아나필락시스는 알레르기에 대한 개념이 등장하기도 전의 일로, 이 때문에 리셰 박사는 ‘알레르기 연구의 아버지’라 불리게 됐다.

생리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로 꼽히는 아나필락시스는 이후 개인의 특이 체질 등에 대한 연구가 시작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 

리셰 박사는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191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또한 그에게 해파리 연구를 제안하며 아나필락시스 발견의 시작점이 되었던 모나코 정부는 리셰 박사의 노벨상 수상을 기념하기 위해 1953년 기념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알레르기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 평소 즐겨 먹는 땅콩, 복숭아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어야 했던 사람들에게 리셰 박사의 연구는 커다란 의미일 수밖에 없다.

아나필락시스의 발견으로 현재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던 그의 업적은 분야를 넘나드는 왕성한 호기심과 끈질긴 노력으로 빚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 <나침반> 3월호 해당 페이지 안내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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