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수립 100주년, 다시 보는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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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의 정신은 자유, 평등, 박애입니다. 프랑스혁명으로 인해 전복된 왕정은 이후에 다시 복귀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혁명은 완전히 성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만큼은 세계사적 의미에서 민주주의에 큰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죠.

프랑스는 혁명 100주년을 맞이해 1889년 세계 만국박람회를 개최합니다. 그리고 에펠탑을 건축하기에 이릅니다. 프랑스혁명이 민주주의 역사에 끼친 영향은 지대한 만큼, 우리 역사에도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3.1운동’ 입니다. 3.1운동은 제국주의에 맞선 최초의 민중운동이었습니다. 우리가 이어받은 3.1운동의 정신은 헌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초등 잡지 <톡톡> 4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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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나타난 3.1운동 정신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읽어보면 3.1운동 정신인 정의, 인도, 동포애가 우리가 지켜야 하는 핵심가치입니다. 정의, 인도, 동포애(인류애)는 ‘짐승처럼 살지 말고 인간답게 살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답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 친구들 가운데 약자가 있다면 약자를 돌봐주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헌법에 있다니 놀랍지 않나요?

헌법 전문 읽어보기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해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해,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해 개정한다.

세계 속의 3.1운동, 어떻게 기록됐나?
박은식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3.1운동에 참여한 시위인원은 약 200여만 명입니다. 사망자는 7,509명, 부상자는 15,850명이었으며, 체포된 사람은 45,306명이나 됩니다.

1919년 당시 조선의 인구는 2000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 국민의 10%가 넘는 인원이 참여한 엄청난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 당연히 세계의 언론들도 주목했습니다. 1919년 당시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 국제적 위상이 높아져 한층 자만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초기의 평화적 시위대에게 학살을 가한 사실이 국제적으로 폭로된 사건이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콧대가 꺾였습니다.

‘뉴욕 타임즈’는 3.1운동에 대해 "조선인들이 독립을 선언했다. 알려진 것 이상으로 3.1운동이 널리 퍼져나갔으며, 수천여 명의 시위자가 체포됐다" 고 보도했습니다.

AP통신은 "독립선언문에는 '정의와 인류애의 이름으로 2천만 동포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있다' 고 명시돼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 외에도 샌프란시스코의 ‘이그재미너’, 파리의 ‘앙탕트’, 런던의 ‘모닝 포스트’, 상해의 ‘민국일보’는 물론, 러시아와 남미 등 각국의 언론이 앞 다투어 3.1운동을 다루었습니다.

워싱턴 타임즈 1922년 3월 5일자 4면에는 "일본이 한국을 총검으로 노예처럼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98명의 여자를 학살하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워싱턴 타임즈에는 사진도 있었는데, 당시 미국 사업가 로버트 워드가 3.1운동 이후 일제의 학살 장면을 찍은 사진과 목격담이 실려 있었습니다.

영국의 주한영사였던 윌리엄 M. 로이즈는 조선인들의 문화를 말살시키려 하고 군대를 동원해 진압한 것에 대해서 비판했습니다.

직접적인 제제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정치인들 역시 일본이 국제 연맹에 들어가지 말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3.1운동은 전 세계에 타전된 긴급하고 매우 중요한 뉴스였던 것입니다.

세계사를 뒤흔든 3.1운동의 여파
조선의 3.1운동이 전 세계에 전해지자 식민통치에 신음하고 있던 다른 식민지 국가들에서도 민족독립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919년 일어났던 중국의 5.4운동 역시 3.1운동에서 자극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은 조선에 대한 인식들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3.1운동 이전 중국은 조선이 일본에 식민지가 되었음에도 일제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고 있는 무능한 사람들이라고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은 정작 자신들부터 양심을 가지고 행동하지 못함을 반성하고, 중국 내에서도 항외세 및 항일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도의 초대 총리를 지낸 자와할랄 네루 역시 영국에 의해 투옥되었을 때 딸인 인디라 간디에게 보내는 편지에 3.1운동과 유관순 열사를 찬양하며 이들을 본받기를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또한 일본 역시 영국과 다를 바 없는 제국주의 국가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보낼 정도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대만의 독립운동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3.1운동, 아시아의 역사로 대우도 달라져야
이처럼 3.1운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전세계사적인 사건임에도 정작 우리는 그 영향을 축소했습니다. 일제가 물러가고 난 후 일제 부역자들이 한국 초대 정부의 권력을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상이지만 그게 역사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 필요합니다. 또한 3.1운동을 국내행사로만 끝낼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절을 겪었던 아시아 각국과 공동으로 기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3.1운동의 정신이 된 정의, 인도, 동포애(인류애)는 인류의 삶의 가치에 더 크게 자리 잡아 가야할 덕목입니다. 프랑스처럼 100주년을 맞이해 3.1혁명의 발원지인 서울 한복판에 기념 건축물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는 일이죠.

4월 11일은 임시정부수립일입니다. 임시정부는 3.1운동으로 인해 생긴 망명정부입니다. 그리고 그 정신인 정의, 인도, 동포애를 담아 현재의 대한민국의 헌법에도 담겨 있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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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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