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작년 수능 이어 6월 모평까지 '고교 교육과정 위반'한 초고난도 문항 출제
-수능 주관하는 정부기관이 버젓이 법 위반

수능 시험을 준비 중인 수험생들 [사진 제공=전남교육청]

2019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국어·수학 영역 난도가 심각하게 높은 수준으로 출제되면서 ‘역대급 불수능’을 겪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원성이 끊이지 않았다.

더욱이 출제 문항 가운데 국어 3문항 ·수학 12개 문항이 정상적인 고교 교육과정을 받은 학생들이 풀 수 없게 출제됐다는 비판 속에,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까지 진행 중인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 모의고사에서도 소위 ‘킬러 문항’이라고 불리는 초고난도 문항 출제가 여전히 계속된 것으로 드러나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입시기관에서는 6월 모평 중 수학 가형과 나형 모두 2019학년도 수능과 비슷하게 어렵게 출제됐다고 설명한다. 특히 수학 가형은 전년도 수능보다 훨씬 어려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킬러문항을 포함한 5~6개 문항 난도가 지나치게 높았다는 것이다. 

6월 모평 수(가) 표점 최고점, 작년 수능보다 12점이나 높아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6월 모평 문제를 분석한 결과, 특히 수학 문항에서 고교 교육과정을 위반한 문제들이 출제된 것으로 조사됐다. 

시험 난이도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표준점수를 비교해 보면 이런 경향이 뚜렷이 드러난다. 

표준점수는 원점수의 우열, 상대적 서열을 볼 수 있는 점수로, 각 영역별 평균과 표준편차를 적용해 원점수가 어느 위치에 해당하는가를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시험이 어려울수록 다른 과목과 같은 원점수를 받더라도 표준점수는 높게 나온다. 반대로 시험이 쉬우면 표준점수는 낮게 나타난다. 

통상 표준점수 만점이 140점 이상인 경우 ‘어려운 수준’, 130~135점인 경우 ‘변별력을 확보한 수준’, 130점 이하인 경우 ‘쉬운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6월 모평에서 수학 표준점수 최고점을 살펴보면, 가형이 145점으로 지난해 수능이 133점인 것과 비교해 12점이나 높았다. 나형은 141점으로 지난해 수능 139점보다 2점이 높았다. 

이처럼 표준점수만 비교해도 이번 6월 모평 수학 영역이 2019학년도 수능보다 난도가 훨씬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가형은 표준점수 최고점이 12점이나 상승해, 최상위권 학생들의 고통이 어느 때보다 컸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 2019학년도 수능과 6월 모의평가의 수학 영역 표준점수 최고점 비교 

6월 모평 수(가) 29번, 교육과정 성취기준 벗어난 ‘위법 문제’ 
고교 현장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교사들은 6월 모평의 4점짜리 문항이 지난해 수능보다 훨씬 어렵게 출제돼 대부분의 학생이 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4점 배점인 수학 가형 29번 문항을 살펴보면 고교에서 정규 수학교육만 받아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고난도로 출제돼, 고교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29번 문항은 벡터를 이용해 움직이는 점에 대해 그 영역을 구하고, 벡터 내적의 최댓값과 최솟값까지 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보면, 벡터의 내적의 뜻을 알고 구하는 정도, 그리고 벡터를 이용해 직선과 원의 방정식을 구하는 정도를 기준으로 잡고 있다. 

따라서 29번 문제에서 요구하는 움직이는 점에 대해 그 영역을 구하고, 벡터의 내적의 최댓값과 최솟값까지 구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한참 벗어난 문제라는 결론이 나온다. 

■ 2020학년도 6월 모의평가 수학 가형 29번 문제 

■ 수학 가형 29번 문항과 관련한 교육과정 성취기준 

평면벡터의 성분과 내적 
① 위치벡터의 뜻을 알고, 평면벡터와 좌표의 대응을 이해한다. 
② 두 평면벡터의 내적의 뜻을 알고, 이를 구할 수 있다.
③ 좌표평면에서 벡터를 이용하여 직선과 원의 방정식을 구할 수 있다. 

6월 모평 수(나) 21번, 교육과정 성취기준 벗어난 ‘위법 문제’ 
수학 나형 21번 문항 역시 정상적인 고교 수업만 받아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항으로,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문항은 함수에 관한 문제로, 교사들은 주어진 조건이 모두 생소하고 교과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라고 말한다. 

특히 조건 (가)에서 함수식을 세 개의 구간으로 분류해 제시한 것, 조건 (나)에 주어진 두 개의 함수방정식 등은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이라 교과서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함수방정식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대학별고사의 고교 교육과정 위반 여부를 판정할 때도 위반으로 판정하고 있는 내용이라 더욱 심각한 문제다. 평가원 스스로도 교육과정을 위반했다고 판정하는 함수방정식 문제를, 자신들이 주관하는 6월 모평에 버젓이 출제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교육걱정은 “학생들이 도형의 대칭이동이나 평행이동을 배우고는 있지만 이런 함수방정식을 배우지는 않는다”라며 “특수한 문제집이나 대학교 수학을 공부하지 않은 학생은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 2020학년도 6월 모의평가 수학 나형 21번 문제 

교육과정 성취기준과 비교해 봐도 21번 문항이 교육과정 범위와 수준을 벗어났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교육과정 성취기준은 함수의 뜻을 알고 그 그래프를 이해하며, 합성함수를 이해하고 구하는 정도로 설정돼 있다. 하지만 21번 문항은 함수를 세 구간으로 나눠 정의하고, 대칭성이나 평행이동에 관한 성질을 함수방정식으로 제시했다. 이는 정규 교육과정은 물론이고 그 어떤 교과서에서도 다루지 않는 내용이다.

■ 수학 나형 21번 문항과 관련한 교육과정 성취기준 

함수 
① 함수의 뜻을 알고, 그 그래프를 이해한다. 
② 함수의 합성을 이해하고, 합성함수를 구할 수 있다. 
③ 역함수의 뜻을 알고, 주어진 함수의 역함수를 구할 수 있다. 

정신 못 차린 '교육과정평가원'…국가기관부터 정도 지켜야 
수능에서 고교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가 출제되면 고교 교육에 심각한 왜곡이 발생한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문제에 대비하려면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사교육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문제가 정부의 수능전형 확대 정책과 맞물리면서, 이제야 정상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학교 교육을 다시 황폐화시킬지 모른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수능전형 비중이 커지고 문제도 어려워지면 학생들은 예전처럼 실제 학습은 학원에서 하고 학교에서는 잠을 자는 ‘일반고 슬럼화’ 현상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또한 사교육 시장에 소모되는 막대한 시간과 자본이 이미 사회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인 상황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고, ‘부익부 빈익빈’으로 인한 교육 기회의 불평등 문제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난도 수능이 교육환경을 왜곡하는 것을 바로잡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수능 문제를 출제할 때 정상적으로 고교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를 내면 된다.

정부를 비롯해 수능과 모평을 출제하는 평가원, 학평을 출제하는 시도교육청, 수능 연계교재를 출간하는 EBS 등 관계기관과 기업이 기본만 지키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더구나 고교 교육과정 내에서 수능이나 모평, 학평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사항이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에서 공교육을 담당하는 초ㆍ중ㆍ고교의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 교육관련기관의 선행교육 및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출연기관으로서 그 누구보다 법을 준수해야 할 평가원이 나서서 고교 교육과정을 위반한 고난도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평가원의 뼈를 깎는 반성과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사진: 수능 시험을 준비 중인 수험생들 [사진 제공=전남교육청]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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