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종 축소, 수능 확대로 학교교육 무너지는 건 필연 
-김 입학사정관 “교육을 정치수단으로 삼지 말라” 
-정명근 전 교사 “정시 확대? 있는 자들에게만 과실 돌아가” 
-교육이 사회변화 끌어가지 않으면 학교 교육은 자멸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실정이 교육 분야에서 터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시 대폭 확대를 예고한 뒤로, 학교 현장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았다”며 분노하는 교사들로 들끓고 있다. 

특히 문 정부의 정시 확대 결정 과정에서 교육 최전선에 있는 교사나 대학 입학사정관 등이 낄 틈이 없었다는 게 핵폭탄 급 충격이다. 전적으로 청와대 참모들, 정치 관료들, 교육전문가라는 탈을 쓴 사교육 관련자들의 말에 대통령이 설득 당했다는 것이다.

많은 교사들이 학교와 대학의 존재 이유, 교사와 입사관의 존재 이유를 회의하는 이유다. 우리 교육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대입 제도 방향을 논의하는 데 정작 이를 담당하는 이들이 사교육 관계자들에게도 밀리는 현실이 믿을 수가 없다는 분위기다. 

‘에듀진’은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두 분을 만났다. 진학전문 교사로 36년을 살아온 정명근 전 교사와, 진학 분야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는 김겸훈 한남대 입학사정관이다. 

29년간 영어 교사와 진학부장을 해오던 정명근 교사가 진로진학상담교사로 방향을 튼 것은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아이들의 다양성을 들불처럼 확대해주고 싶다는 희망에서였다. 정 교사는 이후 7년 동안 학생들의 진로진학 상담을 해오다 2년 전 은퇴했다. 

김겸훈 한남대 입학사정관은 한국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 회장을 지낸 인물로, 이 분야에서 손꼽히는 베테랑이다. 이들은 현재 교육계에 파란을 몰고 온 문재인 정부의 대입 정책 ‘우클릭’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김 입학사정관 “교육을 정치수단으로 삼지 말라” 
적어도 문재인 정부는 교육 문제를 가지고 ‘장난질’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김겸훈 입학사정관은 확신했었다. 그런데 이번 대입제도 개편을 말한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시정연설을 듣고 두 귀를 의심했다. 일말의 기대가 와르르 무너진 순간이었다. 

만약 문 대통령의 이번 발표가 정부의 청와대 참모들이 자신들의 경제정책 실패를 덮으려는 꼼수로 대입정책을 손대도록 충동질한 결과라면 이 정부에 기대할 것은 더 이상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백년지대계라는 아이들 교육문제를 선거 놀음판의 판돈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문 정부가 비판하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대입정책에서 일관성은 지켜왔기에 문 정부에 대한 실망은 더욱 크다. 4차 산업혁명과 미래인재 육성이라는 말을 입에 담으면서 굴뚝산업 맹신자인 MB나 박근혜도 안 한 짓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교육부가 짜놓은 대입 제도 개편의 로드맵을 무시한 채 청와대 입맛에 맞게 순서와 절차를 확 뒤집어버리는 것은 힘없는 교육부를 쥐고 흔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청와대가 이처럼 교육부와 교육전문가들을 패싱하고 혼자 북치고 장구 치려면 차라리 교육부를 없애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까지도 한다. 

김 사정관은 “학교는 기업이 아니다. 교육은 효율이 아니다. 교육 문제를 논하는 데 정치가 개입해선 절대 안 된다”라고 강조한다. 

정명근 전 교사 “정시 확대? 있는 자들에게만 과실 돌아가” 
한편, 정명근 전 교사는 정부의 이번 정시확대 조치에 대해 “정시확대로 인한 과실은 특목고, 자사고 학생들의 것”이라며 “가진 자들이 차지한 자리를 더 깔아주는 결과가 돼 미래 교육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단언했다. 

정 전 교사는 특목고와 자사고가 존치된 상태에서 학종이 축소되고 수능이 확대되면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게임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거기다 특목, 자사고가 정말 사라질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이들도 많다. 정부가 특목, 자사고에 대한 일반고 전환을 2025년으로 약속했지만, 실시 여부는 사실상 다음 정부 손에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심정으로는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답답함을 토론한다. 학종이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은 맞지만 어떤 제도든 완벽한 것은 없고, 학종만큼 공교육을 살리고 교육 불평등을 해소해주는 제도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제도 도입 후 이제 막 안정기에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해결해 제도에 완벽을 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제도 자체를 유명무실화하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본다. 

학종 축소, 수능 확대로 학교교육 무너지는 건 필연 
학종 축소, 수능전형 확대는 학교 수업 파행을 필연적으로 불러온다. 지금도 학종 대비에 소홀한 채 수능 대비에 몰두하는 학교들은 수능 대비 문제풀이로 수업을 파행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영어 수업만 하더라도 의사소통 중심의 영어 교육을 하겠다며 수능 영어를 절대평가로 실시하고 있지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문제 난도를 낮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거기에 정시 수능 위주 전형까지 확대가 된다면 영어 절대평가는 유명무실해지고 수업은 다시 예전의 문제풀이 중심 수업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수능 수학 문제, 그 중에서도 특히 킬러 문항은 사교육을 통해 문제 풀이 도사가 된 학생들만 풀 수 있게 출제된다. 개념을 이해하고 응용해보며 거기서 논리력과 사고력, 창의력을 계발한다는 본래 취지와는 멀어도 너무 멀어진 것이다. 

국어 역시 학종 도입 이후로 프로젝트형 수업과 토론 수업 등이 활발해지며 수업이 점차 학생 참여 중심으로 바뀌어가는 상황이지만, 수능정시가 대폭 확대된다면 이런 변화는 무용지물이 된다. 학교는 다시 입시학원 또는 학생 태반이 잠을 자는 곳으로 돌아갈 것이 뻔하다. 

정 전 교사는 대입이 수능 중심으로 간다면 학교 교육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수능 정시에서는 효율 면만 다져보면 학교보다 학원에 다니는 게 훨씬 이득이다. 그래서 배울 것 없는 학교에 다니며 돈과 시간을 낭비하느니, 그 시간에 학원을 다니고 차라리 학교를 없애는 게 낫다는 말도 나온다.

이처럼 사교육 부흥에 기름을 붓고 학교 교육을 뿌리부터 흔드는 수능 확대가 어떻게 공정과 정의를 담보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수능이 공정하고 학종이 불공정하다는 것은 일부 주장일 뿐 엄밀히 따지면 공정한 것도 아니다. 수능 문제 난도에 따라 유불리가 급격히 변화한다. 수학이 너무 쉽게 출제되면 잘하는 학생들에게 불리하고, 너무 어렵게 출제되면 중상위 학생들의 고통이 극심해진다. 

한두 문제를 실수로 틀리면 서열에서 대폭 밀리기 때문에 수능 당일 실수 여부가 대입 결과를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교 3년의 배움의 결과가 당일의 컨디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어떻게 공정하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특목, 자사고 폐지 당연…그러나 교사들 변화 노력 없으면 하향편준화될 것” 
정 전 교사는 특목, 자사고는 당연히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학교가 완벽하고 모든 교사가 학생 교육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아닌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일반고 교사들도 스스로 변화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교사직이 ‘철밥통’이 된 시대이다 보니 교사들 중에는 스승이 아닌 월급 받는 공무원으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한 채 대충 시간만 때우는 식으로 수업을 하고 학생을 교육하는 이들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고교 평준화가 되면 교사들은 더욱 움직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교 교육은 하향평준화의 길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일반고도 스스로 특장점을 개발해 차별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본다. 

정 전 교사에 따르면 충남의 고등학교 대부분이 수험생 중 70% 이상을 학생부 위주 전형으로 대학에 보낸다. 그런데 그 중 학종으로 가는 학생은 5%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학종 대비가 거의 안 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심각한 문제다. 다른 지방 고교도 비슷한 상황인데, 교장의 변화의지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다. 

교육감들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교육감이 대입도 제대로 모르면서 교육을 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지역구에서 학생들이 교과, 종합, 논술, 정시 등에 몇 명이 지원하는지를 확인해보고, 학종 합격률이 5%밖에 나오지 않았다면 학교가 제대로 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교장들에게 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가 학종을 준비한다고 했는데도 합격률이 5%밖에 안 나온다면 마땅히 교육감은 교장을 질책하고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애들 급식만 챙길 것이 아니라 학교의 대입 대비 실태도 교육감이 챙겨야 한다. 교육감도 혼나야 한다. 

수영선수 박태환도 전 종목을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잘하는 주종목이 있다. 대입에서도 마찬가지다. 교과, 종합, 논술, 정시 모든 전형을 준비할 수는 없다. 불가능하다. 이 중 자신의 주종목을 선택해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학생들은 전부 종합에 지원하는데 합격자는 없다. 그렇다면 수업이 잘못됐다는 얘기다. 학교 교육이 틀렸다는 말이다. 

교육이 사회변화 끌어가지 않으면 학교 교육은 자멸 
정 전 교사는 “내 주위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를 비난했어도 나는 단 한 번도 비판하지 않았다. 적어도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대입정책을 쥐고 흔드는 것을 보면 그 과정에서 어떤 합리성도 찾아볼 수 없다. 교육부는 수능 정시 확대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모든 것을 짜 맞춘 듯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정시 확대를 한다면 학교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학원에는 교사보다 더 유능한 족집게 강사가 있으니, 그들에게 배우면 수능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다. 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어진다. 

게다가 개인주의적이고 개성이 더욱 강해진 지금의 학생들은 단체 교육을 받아야 하는 학교란 존재를 오히려 인생의 방해꾼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학교 자퇴 후 학원에 다니며 검정고시를 치르겠다는 학생들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사회변화가 이처럼 엄청난데 우리 교육은 그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교육이 사회변화를 끌어가지 못할 때, 학생들의 다양성과 능력을 계발하고 살려주는 교육이 되지 못할 때 학교 교육은 자멸할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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