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은 약육강식을 말하지 않았다!

현대사회는 종종 적자생존의 시대, 약육강식의 구조를 지닌다고 일컬어진다. 이는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한 ‘사회진화론(사회적 다윈주의)’에 근거한 것이다.

18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유행했던 사회진화론에 따르면, 인간 세상에서는 마치 동물세계의 포식자와 피식자가 존재하듯 약자와 강자가 존재하고, 기술 등의 발전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은 도태되며 ‘우월한’ 인간이 살아남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더 나아가 국가나 혹은 문명들 사이에서도 강한 국가가 약한 국가를 지배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겨지게 됐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진화론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으며 극복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기사는 <나침반 36.5도> 매거진 10월호 '인문 다이제스트'에 4p분량으로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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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에 대한 오해,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은 환경에 잘 적응(適應)한 생물체가 살아남는다는 의미로 다윈의 진화론을 한마디로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할 점이 하나 있다. 적자생존이라는 말은 ‘더 강하고 우수한 생물이 살아남는다’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이성을 유혹하기 쉬운 매력적인 색과 무늬를 가졌고 쉽게 병들지 않는 종의 나비 A가 있다. 반면, 눈에 잘 띄지 않는 색과 무늬를 가진데다가 감염병에도 취약한 종의 나비 B가 있다.

▲ 찰스 다윈(1809~1882) [사진 출처=wikipedia]

우리는 보통 A 나비 종이 더 우수한 생물이라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A 나비는 눈에 띄는 무늬 때문에 새들의 공격을 받아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결국 살아남은 B 나비는 A 나비보다 짝을 만나 번식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와 중앙아메리카 지역에는 낫 모양의 적혈구 ‘겸상적혈구’를 가진 이들이 많다. 겸상적혈구는 유전자 이상으로 인해 말 그대로 적혈구 모양이 원형이 아닌 낫 모양으로 변형된 것이다.

낫 모양의 적혈구는 정상 적혈구보다 산소를 운반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이를 가진 사람들은 심각한 빈혈을 유발한다. 그런데도 아프리카 지역에 겸상적혈구를 가진 사람들의 수가 건강한 사람 못지않게 상당수 있다.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말라리아 때문이다. 말라리아 원충은 체내 적혈구를 파괴하는 특징을 가졌는데, 정상 적혈구와 달리 겸상적혈구는 쉽게 파괴하지 못한다. 때문에 정상적혈구를 가진 사람들은 일찍이 말라리아에 걸려 목숨을 잃고 겸상적혈구를 가진 많은 이들이 살아남아 대를 이어가는 것이다.

다윈이 말하는 ‘진화(evolution)’는 이처럼 단순히 환경에 잘 적응해 번식하는 것일 뿐, 진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진화는 정해진 목적 즉, 방향성 없는 우연한 변화에 가까우며 여기에 절대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열등해 보이는 변이도 언젠가 최적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다윈이 말하는 진화다.

사회진화론 “약육강식은 자연의 이치”
다윈은 ‘진화’가 ‘생명의 진보’로 오해를 살까 우려했다. ‘진화’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멀리한 결과, 진화는 <종의 기원> 여섯 번째 개정판에서야 처음으로 등장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달랐다. 그는 진화와 진보를 동의어로 사용했다. 다윈과 달리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한 이는 바로 다윈과 동시대를 살았던 영국의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다.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사회의 발달 과정은 생물이 진화하는 모습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상태에서 더욱 복잡한 형태로 변화한다고 보았다. 생물체의 기능이 분화하거나 통합하는 것처럼 사회도 발전하면서 그 기능이 분화하거나 통합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수한 ‘강자’가 열등한 ‘약자’를 압도하고 ‘적자생존’하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였다.

“사회는 단순한 상태에서 복잡한 상태로 진화하며,
더 발달된 사회가 덜 발달된 사회를 지배하는 적자생존의 원칙도 적용된다”
- 허버트 스펜서

사회진화론의 탄생 배경
사회진화론은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걸까? 19세기 영국은 산업혁명 이후 생겨난 엄청난 빈부격차로 인해 사회적 불안감이 만연한 상태였다. 부르주아 계급과 같은 부유층들이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동안 노동자 계급같은 빈민층은 하루 16시간 이상의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며 최소한의 생존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비참한 생활을 했다.

스펜서는 언젠가 억눌린 민중들의 분노가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폭발할 것을 알았기에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혁명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경제적 방법을 진화론에서 찾았다.

스펜서는 부족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발전해오면서 유럽만이 문명사회에 이르렀고, 기타 지역은 여전히 미개사회에 머무른다고 서술했다. 인간을 문명인과 미개인으로 나눈 그는, 문명적으로, 인종적으로도 우월한 문명인이 이득을 얻고 그렇지 못한 미개인이 손해를 입는 것은 매우 자연적인 현상으로 보았다.

18세기의 진화론은 오늘날과 달리 여러 개였고 아직 누구의 학설이 타당한지 검증되지 않았다. 다윈의 진화론도 그 중 하나였다. 따라서 사회진화론은 한창 식민지를 확장해 나가고 있던 유럽 열강 및 지배계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사회적 불평등을 구조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능력과 운명에서 기인한 것으로 여기게 했으며, 제국주의와 식민지 건설, 후진국 착취 등을 정당화하는 주장의 근거로 이용됐다.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인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일본 등은 인간을 문명-미개인으로 구분하고 이들에게 ‘문명을 전파한다’라는 명목 하에 인종차별을 일삼았다.

사회진화론의 오류
스펜서가 사회 이론에 생물학 이론을 차용하면서 현실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는 그럴듯하게 설명됐다. 그러나 실제 다윈 진화론의 요지와는 다르게 엉터리로 해석된 사회진화론으로 인해 많은 인간들은 죽음에 이르게 된다.

사회진화론은 진화론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동물계에 적용되는 논리가 인간계에도 무조건 적용될 거라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사회진화론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원칙에 입각하는데, 이 이론에서 정의한 ‘적자’는 ‘적응해서 살아남은 자’가 아닌, ‘강한 자’이다.

하지만 다윈은 생태학적 환경에 앞서 개체가 가진 속성만으로 적자를 정의하지 않았다. 육지에서 상어가 적자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적자생존을 잘못 이해하면 ‘우수한’ 인간은 살아남을 가치가 있고 ‘열등한’ 인간은 도태되는 게 당연한 즉, 인류가 평등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될 수 있다.

적자생존의 법칙을 제대로 적용해 보면, 인간은 인간보다 약한 바퀴벌레나 곰벌레(water bear)보다도 빨리 멸종할 가능성이 높다. 스펜서는 ‘유기체가 단순한 세포에서 시작해 복잡하게 진화’하는 법칙이 사회 이론을 포함해 온 우주에 적용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생물 진화론에서는 단순한 생물체가 복잡하게 변하는 경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생물체가 단순한 형태로 변하는 양방향성을 갖는다. 사회도 마찬가지로 복잡한 형태로 변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이나, 질병, 자연재해, 경제 하락 등으로 오히려 퇴보하거나 멸망할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로 이어진 사회진화론
18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주류 이데올로기로 영향력을 떨치던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취를 감추었다. 제국주의 시대는 끝이 났고 1970년대까지 식민지였던 나라들도 대부분 독립했다. 또한 나치의 유대인 학살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도 금기시 됐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스펜서의 사상은 ‘신자유주의 경제’라는 이름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신자유주의 경제는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한다. 이에 따라 개인은 능력에 맞는 보상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계층 간 빈부격차도 심해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외면한다. 빈곤을 개인의 열등함, 게으름에서 기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정부의 복지정책은 낭비이며 사회발전을 저해한다고 여긴다.

1등 지상주의, 무한 경쟁 등을 최고의 가치로 삼은 채 모두가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안타까운 현실로 내몰려 있다. 하지만 사회는 능력이 없는 약한 자를 밟고 올라선다 해도 언제든 그 승자가 다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약자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처럼 인간 사회는 단순히 과학법칙 몇 가지로는 설명될 수 없는 매우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사회를 건강하고 오래도록 존속시키려면, 강자가 약자를 밟고 일어서는 것이 아닌, 서로를 존중하고 인간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나침반 36.5도> 10월호 해당 페이지 안내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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