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이 쌓아올린 공든 탑 와르르 무너뜨린 '정시 확대 방안'
-알고 보면 '학종'보다 위선적인 '수능 정시'
-재학생 아닌 N수생들만 좋은 '수능 정시 확대'
-하위권 고교, 학교 기능 상실 우려
-수능 정시 확대, 중위권 이하 학생들에게 결정적 타격
-상위권 재학생, 졸업생만을 위한 '수능 정시'…설 자리 잃은 하위권 학생들

지난 11월 28일 교육부는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서 ‘학종 및 논술 비율이 높은 서울 소재 대학의 수능 비율을 40%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은 최근 불거진 고위공직자 및 국회의원 자녀의 입시 특혜, 비리 의혹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교육 공정성을 바로세우겠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교육 현장에선 깊은 우려와 탄식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본지는 '정시 확대'와 관련한 전주고 권혁선 교사의 의견을 가감 없이 싣고자 한다. <편집자 주>


교사들이 쌓아올린 공든 탑 와르르 무너뜨린 '정시 확대 방안'
일선 고교의 대입 준비 과정은 대개 상위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짜입니다. 전국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동안 교육과정이 입시 중심으로 획일적으로 운영됐고 내신 또한 상대평가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학교는 또래 나눔 수업을 하고 모둠 프로그램을 편성해 토론과 협력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잠자는 학생들을 깨울 수 있었고, 아이들의 잠재된 학업 능력을 향상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은 분명 상위권 학생들만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활동 기록들이 상위권 학생들에게 도움이 됐지만 하위권 학생들에게는 그보다 더 큰 선물이 됐기 때문입니다.

학생부종합전형을 실시하는 지방 사립대학에 지원한 학생들에게는 이런 사소한 교과 세특 기록 하나하나가 매우 소중한 자료가 됐습니다. 상위권에서는 0.1등급 정도를 올릴까 말까 하는 학생부 기록이 하위권 친구들에게는 0.5등급 정도를 올려주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이를 생각하며 올해 450여 명의 세특사항을 작성했습니다. 한마디로 죽을 맛이었지만 하위권 학생들에게 미칠 영향력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성의를 다해 상세하게 기록하려 애썼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의외의 사실은 기록에 어려움을 겪는 쪽은 오히려 상위권 학생들이란 것입니다. 의생명 계열처럼 높은 수능 최저와 내신을 요구하는 학교나 학과에 진학하기를 희망 친구들의 경우, 성적은 상위권인데 모둠 활동과 토론·협력 학습에 소극적이거나 마지못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씁쓸하게도 요즘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이런 학생들을 ‘교사의 갑질 때문에 억지로 학교활동을 하는 불쌍한 아이들’로 묘사하고 있더군요. 상위권 학생들의 협력과 소통이 있으면 수업의 질이 훨씬 더 높아질 수 있음에도 이런 학생들이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을 때면 교사는 심한 좌절감을 느낍니다.

알고 보면 '학종'보다 위선적인 '수능 정시'
앞으로 수도권 대학의 정시 비율이 40%까지 늘어납니다. 하지만 여전히 지방 상위권 학생들은 학종을 노릴 것입니다. 물론 정시도 대비할 것입니다. 문제는 학종 비중이 줄었기 때문에 내신 비중이 증가할 것이고, 소위 비교과라고 표현되는 과정들이 대폭 정리돼 변별력이 대폭 떨어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봉사활동은 현 중2 학생들부터는 학교활동만 학생부에 기재하게 되는데, 학교에서 할 수 있는 봉사활동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동아리 활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경쟁이 엄청나게 치열해질 것입니다. 참고로 우리학교 탁구부에는 4명의 학생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기 종목인데도 참여할 수 있는 학생 수가 너무나 적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학종은 매우 위선적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고 보면 수능은 더 위선적입니다. 예를 들어 물리학과 진학을 꿈꾸는 학생에게 물리II 과목은 전공과 연계된 중요한 과목입니다. 하지만 이 과목을 수강하는 것이 내신이나 수능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면 가차 없이 버립니다. 그리고 희망 전공과 큰 관련이 없지만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합니다. 이렇게 보면 '학종'과 '수능 정시' 둘 중 정시가 훨씬 위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절대 안합니다.

재학생 아닌 N수생들만 좋은 '수능 정시 확대'
정시가 40% 이상으로 확대되면 일단 학종 등급 컷이 대폭 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추가 합격의 폭도 그만큼 줄어들 것입니다. 아마 면접 준비도 지금보다 더 치열해질 것입니다.

서울권 대학에 진입하기 위해 요구되는 내신이 현재는 2말 3초 등급대라면, 아마 1말 2중반 등급대로 상향 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공포의 트라이앵글 이상으로 학생들의 학습 부담은 엄청나게 커질 것입니다. 학생들은 우왕좌왕할 것입니다.

'정시냐, 학종이냐'를 놓고 학교는 편한 방향을 택할 것입니다. 일단은 수시가 좋다고 하겠지만 실제로는 정시 중심으로 운영할 가능성이 큽니다. 솔직히 말해서 교사 입장에서 볼 때 학종은 쏟는 에너지에 비해 금전적으로 얻는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수능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해도 성적은 졸업생을 절대 따라가지 못할 것입니다. 수능은 N수생이 재학생보다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천운이 따라 찍기에 성공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학생이 수능에서 원하는 점수를 얻기란 쉽지 않습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수능은 재학생들에게는 최저 등급을 맞추기 위해 보는 시험이었습니다. EBS 연계로 난도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고 봅니다. 과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반적으로 난도가 낮아졌습니다.

그런데 향후 수능 정시 비중이 높아지면 문제 난도 역시 급상승할 것으로 보입니다. 작년 수능 때처럼 영어 난도가 높아지면 수능 최저를 맞추지 못하는 낙오자들도 급증할 것입니다. 결국 재학생들에게는 '정시 수능 비중 확대'가 희소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위권 고교, 학교 기능 상실 우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이번 교육부 결정으로 인해 공교육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수능 정시가 확대돼 수능 대비 문제풀이 중심 수업을 했지만 재학생들이 얻는 것이 없으면 학생들은 다시 학종으로 몰릴 것입니다.

그때는 수능 정시도 학종도 아닌 얼치기 학종이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그리고 학종 무용론이 퍼져갈 것입니다. 학종이 폐지돼 공교육이 수능 중심 문제풀이 교육으로 퇴행하기를 바라는 부류들이 원하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학종이 이렇게 망가져가는 사이, 많은 학생들이 수능 정시로 입시 방향을 선회할 것입니다. 수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은 학급은 수업 분위기가 매우 좋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수능 정시 준비로 옮겨가면서 수업 분위기는 심각하게 나빠질 것입니다.

상위권 학생들의 학교수업 외면은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이들은 전보다 더 심하게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해오고, 수업 시간은 모자란 잠을 보충하는 데 쓸 것입니다. 이런 학생들을 보는 교사들의 가슴앓이는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한마디로 '책상은 없고 침대만 있는 학급'으로 교실이 변해 갈 것이라는 말입니다.

수능 정시 확대, 중위권 이하 학생들에게 결정적 타격
상위권 학생들을 위해 학교는 내신 점수를 산출하고 또 수능 중심의 수업을 할 것입니다. 그 외에 달리 해줄 것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중위권 이하의 학생들은 애매해집니다.

이미 내신은 포기했고 내신을 대체할 수단은 수능밖에 없는데, 어려워진 수능은 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며 도전해 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런 친구들은 후행 보충을 위해 학원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상위권 학생들보다 중위권 학생들이 더욱 큰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지금도 수시를 포기하고 수능 정시를 하겠다고 방황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 수가 더욱 늘어날 것이고, 수능 앞에서 좌절하는 학생 수도 그만큼 증가할 것입니다.

상위권 재학생, 졸업생만을 위한 '수능 정시'…설 자리 잃은 하위권 학생들
결국 수능 정시는 상위권 재학생과 졸업생들만을 위한 대입 수단이 될 것입니다. 나머지 90% 학생들에게는 수능 정시 확대가 결코 긍정적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이들 10%를 위해 나머지 90%를 희생시켜야만 운영될 수 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대세에 따라 움직일 것입니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고교학점제도 수능 정시 확대로 인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학교 분위기를 흐리게 할 가능성이 높은 예체능 교육과정 편성을 최소화하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절대평가를 기반으로 한 재시험이나 재이수 등 하위권 학생들의 학업역량을 올려줄 프로그램은 형식적으로만 운영될 것입니다.

서울 유수 대학의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대학에서 수업을 해보면 서울 강남 출신과 정시 출신 학생들이 눈에 띈다고요. 그런데 좋은 의미로 눈에 띄는 게 아닙니다. 출석에만 연연할 뿐 수업은 뒷전이고 팀 활동에도 건성인 학생들 중 강남 정시 출신이 많다는 겁니다.

이런 학생들은 성적 평가에 반영이 되지 않는 특강에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기 발전이 아닌 오로지 성적 관리만을 위해 대학에 다니는 것입니다. 수능 정시 확대는 이런 학생들을 대거 양산해낼 것입니다. 정부가 원하는 대학의 미래가 이런 모습인지 묻고 싶습니다.

역사 교사인 저도 알고 있는 수학과 물리의 기본인 도미노의 원리를 정작 교육 정책을 만들고 집행해가는 관료들이 모릅니다. 당연히 나비 효과와 같은 미적분은 더욱 모릅니다. 이들이 이해하는 교육은 그저 1+1=2 정도의 수준일 뿐입니다.

*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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