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손 내밀지 않는 '방관자 효과'
-도덕적 의무의 법적 전환 '착한 사마리아인 법'

지난 2008년, 미국의 킹스 카운티 병원에서 한 40대 여성 환자가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다 사망했다. 그런데 이 여성은 경련 직후 갑자기 숨진 것이 아니다.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경련이 아닌 병원 응급 대기실 바닥에서 방치된 30분의 시간이었다.

당시 함께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은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경비원과 병원의 일부 스태프들까지 쓰러져 있는 그녀에게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다. 한참 경련을 일으키던 그녀의 움직임이 멎었을 때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1시간이 지나서야 응급팀이 호출됐고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그의 모습은 병원 CCTV에 그대로 녹화돼 세간에 알려져 커다란 충격을 주게 된다. 병원에는 이 환자를 목격한 사람이 그토록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가 차가운 바닥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기사는 '나침반 36.5도' 인문 다이제스트 섹션에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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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도와주겠지…아무도 손 내밀지 않는 '방관자 효과'
다수의 무관심이 한 생명을 떠나 보낸 이 일과 비슷한 사건은 과거에도 있었다. 1964년 미국의 한 주택가에서 일을 마친 뒤 새벽에 귀가하던 키티 제노비스(Kitty Genovese)는 갑자기 나타난 괴한에 의해 흉기에 찔린다.

제노비스는 거칠게 저항하며 비명을 질렀고 애처로운 그의 구조요청 소리에 근처에 있던 아파트 불이 하나 둘 켜져, 38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사건을 목격한다. 하지만 목격자들 중 경찰에 신고를 한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뒤늦게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된 뒤였다. 35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목격자가 있었음에도 그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다.

사회심리학자 존 달리와 빕 라타네는 이 사건을 목격한 38명의 심리를 분석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내용은 대화 도중 상대방이 갑자기 쓰러졌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이들은 사람들을 각각 다른 방에 넣어 헤드폰과 마이크를 이용해 원격 토론을 하게 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1:1로 토론을 하는 경우에는 85%의 학생들이 방에서 뛰쳐나와 상대방이 쓰러졌음을 알렸지만, 1:4로 토론을 진행할 때는 62%만이, 1:7로 진행할 때는 단 31%의 사람만이 상황을 보고했다.

이후 상황을 알리지 않았던 이들에게 이유를 묻자 그들은 대부분 “나 이외 다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상황을 알릴 것이라고 생각해 움직이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사건 이후 심리학자들은 이런 인간의 심리를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 혹은 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이라고 정의했다. 방관자 효과는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그만큼 개인이 부담하는 책임이 분산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방관자 효과는 단순히 ‘책임 분산’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심리학에서는 방관자 효과를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많을수록 ‘내가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도움을 줄 수 있다’라는 생각에 개인의 책임이 분산된다는 ‘책임 분산’이다.

둘째는, 도움을 주러 갔지만 그 일이 알고 보니 별거 아닌 일일 경우에 생길 수 있을 어색함과 쑥스러움, 수치심 등을 우려하는 ‘평가 우려’다. 셋째는, 다른
사람이 돕지 않는 것을 보고 단순히 해당 사건이 대수롭지 않은 상황이겠거니 하고 판단하는 ‘다수의 무지’가 있다.

방관자 효과 발생 원인 세 가지
1. 책임 분산      2. 평가 우려       3. 다수의 무지

가벼워진 방관자 효과, 소셜미디어로 확대되다
한편, 최근 SNS가 발달하면서 방관자 효과는 이제 길 위뿐만 아니라 온라인 상으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 BBC 방송국 기자 제임스 롱맨이 사진 한 장을 업로드한 일이다.

2017년 4월, 롱맨은 ‘Big night (it’s 8am)’이라는 내용으로 기차 안에서 바닥에 피자를 떨어뜨린 채 잠들어 있는 여성의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사진은 무려 2만 1천 건이 넘게 리트윗됐으며, 많은 언론 및 매체에 보도돼 의문점을 불러일으켰다.

‘여성은 출근하던 중이었을까, 아니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을까?’, ‘여성은 그 기차에 얼마 동안 탔을까?’, ‘그 피자는 아직도 먹어도 괜찮은가?’ 등. 롱맨
은 자신이 사진을 게재한 이유는 ‘단지 세상과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가 사진을 찍기 전, 그에게 중요한 건 여성의 상태가 아니었다. 여성이 편안히 잠을 자고 있었는지, 정류장을 지나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몸이 좋지 않아 정말로 기절해 버린 것인지 그에게 그런 일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여성을 발견한 그가 본능적으로 행했던 첫 번째 일은 도움의 손길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트위터에 올리기 위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이처럼 방관자 효과는 어떻게 보면 별일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사진을 올리는 일만큼 가벼울 수도 있다.

도덕적 의무의 법적 전환 '착한 사마리아인 법'
방관자 효과의 사례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드물긴 해도 간혹 방관자 효과를 깨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등장한다. 납치되는 초등학생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구하러 가거나,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고, 길 한복판에서 폭행당하는 사람을 구하는 등 누구도 발 벗고 나서기 힘든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용기를 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도와주겠지’라는 생각에 결과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그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는 ‘방관자 효과.’ 우리 사회에서는 방관자 효과 때문에 도움을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다수 발생하기도 한다.

방관자 효과 현상은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일수록 특히 심각하게 나타난다. 개인주의자들의 심리는 괜히 사건에 휘말렸다가 골치 아파지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고, 어차피 경찰이나 범죄 전문가 등이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관자 효과 현상을 방치하다 보면 단순 개인주의를 넘어서 지나친 이기주의로까지 번질 수 있다. 이에 유럽을 포함한 다수 국가들은 이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도입했다.

강도를 만나 길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구한, 성서 속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서 유래한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으면 처벌할 수 있는 법 제도이다.

프랑스의 경우, 자신에게 특별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고의로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지 않은 자에 대해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구금 및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으며, 폴란드와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등도 구조를 거부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처벌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지난 2016년 ‘재난 또는 범죄로 발생한 상해 등으로 구조가 필요한 자를 구조가 가능한데도 구조하지 않은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는 내용의 ‘구조불이행죄’를 도입하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된 바가 있다(발의는 됐지만 국회 계류중).

또한 사마리아인 법이 없어도 이 법의 정신이 구현됐다고 볼 수 있는 응급 환자에 대한 신고 및 협조 의무, 민형사상 책임 면책 등을 명시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등의 법이 대표적으로 존재한다.

공동체 연대 vs 개인의 자유 '착한 사마리아인 법' 도입 놓고 팽팽한 찬반!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도덕적 의무를 법적 의무로 전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법을 도입하는 것을 둘러싼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법 도입을 찬성하는 측은, 예컨대 물에 빠져 익사 직전인 사람을 발견했을 때 119나 경찰에 신고할 정도의 법적 의무는 무방하다고 주장한다.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서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도입을 반대하는 측은, 개인의 도덕적, 윤리적 판단에 맡길 문제를 무조건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구조 의무를 법적으로 강제하면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할 수 있고,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처벌하는 건 국가 형벌권의 정당한 범위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또 재난과 범죄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 구조가 가능하다는 개념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 등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설명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순수한 도덕적 동기로 타인을 돕지 못하고 사회 전체가 법이 만능이고 처벌이 능사인 ‘형벌만능주의’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민만기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도덕적 의무와 법적 의무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같은 공간에 있었거나 우연히 동행했다는 것만으로 어떤 법적인 책임을 지운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라며 “도덕적 의무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 외 전문가들은 목격하는 방관자를 넘어서 바로 행동에 나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참여의 개념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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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진 기사 원문: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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