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열등생을 구원하는 방법
-‘인생 책’이 독서하는 삶을 만든다 
-책이 생각을 바꾼다 

*사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저는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심정을 잘 압니다. 저 자신이 학습 지진아라고 할 정도로 공부를 못했으니까요. 저는 초등학교 6년 내내 반에서 꼴찌를 다투는 학생이었습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언제나 가장 공부를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영어는 아예 몰랐고, 수학은 구구단을 다 외우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시험지를 풀지 않고 대충 찍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가 공부에 대한 열의가 없거나 반항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저희 부모님이나 담임선생님들도 그랬습니다.

상담하는 걸 가만히 들어보면 ‘애가 특별히 지능이 떨어지는 건 아닌데 공부할 마음이 없다’라는 식으로 해석하셨거든요. 공부할 마음이 없어서 시험 문제를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다고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어린 마음에 ‘나는 정말 바보구나’ 하고 낙담을 했습니다. 사실 제가 시험 문제를 끝까지 읽지 못했던 것은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됐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읽는 게 힘들 정도로 언어능력이 낮았던 탓입니다. 

제가 이런 지진아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몇 번의 계기를 통해 책을 읽는 아이가 된 덕분이었습니다. 

-이 기사는 <나침반> 1월호 '학습 코칭'에 6p분량으로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첫 번째 계기는 초등 5학년 때 찾아왔습니다. 제가 공부를 하도 안 하니까 부모님은 저를 집 안에 가두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야 했고, 그 길로 제 방에 감금이었죠. 그때만 해도 사교육이 별로 없었고 부모님도 공부를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 몰라 저를 그저 방에 가두고 감시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물론 저는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책상과 침대밖에 없는 방안에서 딱히 놀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습장에 남몰래 낙서를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6개월간 매일 서너 시간씩 낙서만 하다 보니 그림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미술시간에 두각을 나타내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크로키 대회에 반대표로 나갈 아이를 뽑는데 제가 최종 후보 세 명 안에 들었던 겁니다. 미술시간에 그린 크로키를 놓고 투표로 반대표를 뽑는 거였는데 제가 압도적 표차로 1등이 됐죠. 하지만 저는 반대표가 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이 투표 결과를 무시하고 우등생인 2등을 반대표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공부를 못해서 받는 차별과 설움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강사 생활을 하면서 공부 못하는 아이만 보면 유독 더 정이 가고 열정을 활활 불태우는 것도 다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일 겁니다. 

‘인생 책’이 독서하는 삶을 만든다 
크로키 사건 때문인지, 낙서를 너무 오래 해서인지 아무튼 저는 낙서에도 흥미를 잃고 말았습니다. 이제 정말 할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긴 시간과 저 자신뿐이었죠.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300권짜리 문고판 소년소녀 명작이었습니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가 출판계에 종사하는 고객으로부터 헐값에 구매한 것이었는데, 그때까지는 거실을 수놓는 장식품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어머니 몰래 그 책 들을 한 권씩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처음 1~2개월간은 책을 읽었다기보다는 구경한 것에 가까웠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초등 5~6학년 수준의 책이었는데, 책이라고는 읽어본 적이 없던 제게는 어려워도 너무 어려웠습니다.

첫 페이지를 조금 읽고 책장을 휘리릭 넘기다 재미있어 보이는 삽화가 나오면 그 페이지를 또 좀 읽는 식으로 책을 훑어보았죠. 그렇게 책을 구경하다가 ‘인생의 책’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위다의 <플랜더스의 개>였습니다. 

별생각 없이 펼쳤다가 저도 모르게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습니다. 정말 희한한 경험이었습니다. 현실 세계의 시간이 멈추고 이야기 속 시간을 살다 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이야기가 어찌나 슬펐던지 저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고, 일주일 넘게 그 슬픔에서 헤어나질 못했습니다. 책이 얼마나 재미있을 수 있는지 처음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책을 한 권 한 권 뽑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에는 300권을 거의 다 읽었죠. 그리고 6학년 2학기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고작 국어 한 과목이긴 했지만 ‘수(90점 이상)’가 찍힌 성적표를 받은 것입니다. 언제나처럼 공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초등 1학년 이후로 제 성적표에서 멸종했던 ‘수’가 돌아온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300권의 책이 학습 지진아였던 저의 언어능력을 또래 평균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그땐 영문을 몰랐죠. 아무튼 저는 적어도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책이 생각을 바꾼다 
두 번째 계기는 중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방학 때 찾아왔습니다. 부모님은 ‘책 읽으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는 주의여서 저에게 책을 사주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용돈으로 책을 살만큼 열정적이지 않았고, 도서관이 뭐하는 덴지도 몰랐기 때문에 책을 빌려 읽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은행원이었던 아버지가 매달 한 무더기씩 가져오는 고객용 잡지와 소책자를 읽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두께가 아주 얇은 학습 수기집이 한 권 있었습니다.

확실치는 않습니다만 제목이 ‘나도 할 수 있다’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열두어 명의 서울대 합격생의 수기가 실려있었는데, 하나 같이 초등학교 시절 심지어 중학교 시절까지 공부를 저만큼이나 못하다가 어떤 계기로 공부에 열정이 생겼고 공부를 잘하게 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13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저는 제가 공부를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책에는 공부를 못하다가 잘 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놀랍도록 설득력 있게 적혀있었습니다. ‘나만큼 바보같은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공부를 잘하게 됐다면 나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책 마지막 장에 적힌 대로 수첩을 하나 구해서 제 목표를 적었습니다. 목표는 반에서 5등이었습니다. 처음 적을 때는 제가 쓰고도 헛웃음이 나오더군요. 60명이 넘는 반 아이들 중에 늘 꼴찌를 도맡아하던 제가 반에서 5등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비웃음을 꾹 참고 수첩에 밤낮없이 목표를 적었습니다. ‘반에서 5등을 하겠다’, ‘평균 90점을 넘겠다’, ‘5등을 하고 말겠어’ 하는 식으로 문구를 바꿔가며 틈만 나면 적고 또 적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목표를 진심으로 믿을 수 있을 때까지 쓰고 또 쓰라고 그 책에 적혀있었거든요. 어차피 공부도 안 하는 거 속는 셈치고 해보자 싶었죠. 겨울방학 내내 다른 것은 안하고 그 수첩만 썼습니다. 무려 두 달 동안 온종일 ‘반에서 5등’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수첩이 요술 수첩이었습니다. 개학 무렵이 되자 제 목표에 대해 확신이 생긴 겁니다. 

등교 첫날 제가 반 배치고사에서 63명 중 61등을 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에게 멸시에 가까운 상담을 받았습니다. 상관없었습니다. 멸시를 하든 말든 저는 어차피 5등 안에 들거니까요.

반에서 5등 안에 드는 애도 호모 사피엔스, 61등인 나도 호모 사피엔스. 같은 호모 사피엔스끼리 능력 차이가 나봐야 얼마나 나겠나 싶었습니다. 교과서를 모조리 외워버리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는 교과서와 참고서를 쌓아놓고 학습 계획표를 짰습니다. 그대로만 하면 그 어떤 바보라도 교과 내용을 모조리 머릿속에 집어넣을 수 있는 계획표였죠. 그리고 하루하루 계획표대로 공부했습니다.

그때 위력을 발휘한 것이 초등학생 시절 감금 상태에서 읽었던 300권의 소년소녀 명작이었습니다. 시험지를 읽는 것조차 못했던 제가 중학교 교과서를 척척 읽고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계획표에 동그라미 표시가 차곡차곡 늘어갔습니다. 가슴이 두근두근했습니다. 이러다가 진짜 일 내겠다 싶은 생각이 들고, 시험이 임박하자 정말 큰일 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첫 시험에서 4등을 했습니다. 머릿속에서 폭죽이 팡 터지는 것 같더군요.

저는 멸시받는 학습 지진아에서 반 평균을 끌어올린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제게 굳건한 자존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소중한 믿음을 갖게 됐죠. 

저는 그렇게 열등생에서 벗어났습니다. 모든 것이 책으로 인한 변화였죠. 이것은 비단 저 혼자만의 특수한 예가 아닙니다. 실제로 교육 현장에 있어보면 이런 변화를 겪는 아이들을 부지기수로 만나게 됩니다.

반대로 낮은 언어능력 때문에 결국 고배를 마시는 아이들도 부지기수로 만나게 되죠. 언어능력이 학습의 엔진이라는 것, 열등생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독서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명확한 사실인 겁니다. 

‘향상된 언어능력 덕분에 공부를 잘하게 됐고, 그래서 잘 먹고 잘 살았다더라’하고 이야기가 끝나면 오죽 좋겠습니까만 제 학창 시절은 다소 스펙타클한 면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1학기 중간고사 기간, 밤에 화장실을 가다가 제가 졸도를 해버렸거든요. 결핵성 뇌수막염이라는 병에 걸린 겁니다. 온몸이 결핵균으로 뒤덮이다시피 했는데 뇌뿐 아니라 폐와 늑막에도 염증이 심한 상태였습니다.

완치를 장담할 수 없고, 완치된다 하더라도 정상적인 지능을 가질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하더군요. 가장 희망적인 경우라 하더라도 완치까지 6~7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치료를 받아야 하니, 사실상 입시는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되도록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수시로 병원을 들락거리고, 간헐적으로 수술을 받고, 조퇴도 밥 먹듯이 했죠. 입시의 관점으로 보자면 위기도 이런 위기가 없는 셈입니다만, 그때도 저를 구해준 것은 책이었습니다. 

■ <나침반> 1월호 해당 페이지 안내  

*에듀진 기사 링크: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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