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GDP, 국제신용평가, 노동생산성…모두 한국이 일본 앞질러 
-한국이 일본 앞서는 이유, 국민 힘으로 쟁취한 민주주의 덕분 
-21세기 한국의 경쟁력 ‘열린 문화’ 

*사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경기가 침체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경제의 저력을 보여주는 통계가 발표돼 화제가 됐다. 지난 3월 3일(현지시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한국이 일본을 처음으로 앞선 것이다. 이는 올해로 3·1운동 101주년이자 광복 75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의 크나큰 역사적 성취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반세기 만에 이러한 뜻깊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또한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이 기사는 <나침반> 4월호 '커버스토리'에 8p분량으로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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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GDP, 국제신용평가, 노동생산성…모두 한국이 일본 앞질러 
2019년 한국이 2017년 구매력 기준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처음으로 일본을 추월했다. 지난달 3월 3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구매력평가(PPP) 기준 각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발표 결과, 전체 35개국 가운데 한국은 19위, 일본은 20위를 차지했다. 

자세한 수치는 2017년 한국은 4만 1,001달러, 일본은 4만 827달러였으며, 2018년 잠정수치 결과에서도 한국은 4만 2,136달러, 일본은 4만 1,364달러로 나타나 전년도보다 더 많은 격차를 벌린 것이다. 

2017년 순위를 3년 후인 2020년에 발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구매력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1인당 GDP 평가는 여러 나라의 물가 변동률이나 소득 증가율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통계를 내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 OECD가 발표한 연도별 구매력 기준 1인당 GDP 추이 

이미 전문가들은 2019년 8월, 환율, 물가 수준을 감안한 구매력평가(PPP, Purchasing Power Parity)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23년쯤 일본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보다 훨씬 앞서 일본을 3년이나 앞지른 것이다. 구매력평가 기준은 물가와 환율 모두를 고려한 통계로 식민지배를 당했던 한국이 지배자였던 일본을 앞지르고 이를 OECD가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꾸준히 줄여왔던 전체 경제 규모 격차도 소폭 벌어질 전망이다. 2018년 기준 한국의 명목 GDP는 올해 1조 6천570억 달러이고, 일본은 5조 1천760억 달러로 3.1배 좁혀졌다. 불과 1980년만 하더라도 한국이 650억 달러, 일본이 1조1천50억 달러로 17배 차이였지만 한국이 더 빠른 속도로 몸집을 키우며 1994년 10.8배, 2005년 5.3배 등으로 꾸준히 줄여온 것이다. 

명목 GDP에서 반영되는 인구수는 일본의 인구는 약 1억 2천만 명, 한국은 약 5천200만 명으로 2배가 약간 넘는다. 

한국에 뒤처진 일본 “참담하다” 
한편,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 역시 일본보다 두 단계나 높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AA’로, 일본은 ‘A+’로 보고 있다. 무디스는 한국을 ‘Aa2’로, 일본을 ‘A1’로 각각 평가한다. 피치는 ‘AA-’로 한국을 평가했지만, 일본은 두 단계 낮은 ‘A’ 등급이다. 

이는 물가와 환율 모두를 고려한 통계로 한국이 50년 만에 일본을 앞지르고 이를 OECD가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50년 만에 경제력으로 일본을 앞지른 한국의 눈부신 성장에 일본 지식인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노구치 유키오 와세다대 교수가 일본 경제전문주간지 <다이아몬드>에 쓴 글에는 “1인당 GDP에서 일본의 지위가 낮아져 한국에 추월당한 것에 대해 충격적이고 참담하다”고 표현돼 있다. 

또한 일본 일부 언론에선 “역사적으로 볼 때 지금의 한국은 사상 최강이다”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무렵만 해도 일본의 1인당 GDP는 미국보다 높았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일본의 낮은 노동생산성을 들었다. 일본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58.5%에 지나지 않고, 한국 외에 터키와 슬로베니아에도 뒤처져 있다는 것이다. 

3월 8일 일본 웹매거진 웻지인피니티에는 <마이니치신문>의 사와다 가쓰미 외신부장의 <반일한국이라는 환상>이란 책을 소개하는 내용이 실렸는데, 기사에선 ‘OECD가 발표한 2018년 1인당 GDP와 구매력 평가에서 일본을 제쳤으며, 한국에는 삼성과 LG, 현대자동차 등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이 있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처럼 국제기구에서 활약하는 인재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최근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언급하며 ‘수십 년 전 지금의 한국을 상상한 일본인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한편, 한국에 대한 신구 세대 간의 극명한 평가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한국의 문화 콘텐츠에 주목하고 화장품과 같은 인기 제품들을 SNS에 공유하는 등 한국을 동경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중년들은 혐한 몰이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일본은 지금 ‘한국 혐오’가 일상 

*일본의 한 언론사가 한국, 이탈리아, 독일 ‘의료붕괴 지옥’이라며 날조 뉴스를 보도했다. [사진 출처=zakzak.co.jp]

30년 전 일본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운동을 매일 TV로 접하면서 “왜 그렇게 한국은 시끄러운지 모르겠다”며 폄하했다. 그러나 일본의 이러한 태도는 최근까지도 현재진행중이다. 오히려 일본 내 혐한정서는 과거와 비교했을 때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덜하진 않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뉴스거리를 찾아 매일같이 보도하는 일이다. 특히 최근 코로나 사태만 봐도 전 방위 언론사에서 한국이 의료붕괴 지옥이라고 날조 중이다. 

차량에 탄 채로 코로나 검사를 받는 한국식 선별 진료, 이른바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 검진을 두고 ‘이렇게 검사를 하면 감염자가 늘어날 확률이 높다’고 비난하다 독일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서 이 방식을 채택하자 ‘정해진 시간에 차에 탄 채로 검사를 받는 것은 의료진과 환자의 감염을 최소화 한다’며 뒤늦게 말을 바꾸며 드라이브 스루 방식을 채택한다. 

겉보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일본,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걸까? 사실 1990년대 일본은 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해 그들의 부흥된 경제적 역량을 마음껏 누리던 시대였다. ‘도쿄시(東京市) 땅을 모두 팔면, 미국 전체 땅을 살 수 있다’라거나 ‘일본의 1개구(區)만 팔아도 캐나다 땅 전체를 살 수 있다’라는 말이 돌 정도로 일본의 경제적 성공을 마음껏 즐기는 시대였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는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정치다. 일본의 국회는 보수 정당인 자민당을 중심으로 하는 의원내각제로 이루어져 있다. 현행 일본 의원내각제는 1947년 규정됐으며, 자민당은 1955년부터 60년이 넘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기간을 원내 1당으로 존재하고 있다. 

거의 1당 독재와 다름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의 영향으로 훗날 경제적인 부분에서 한국에 뒤처지는 결과가 나오리라는 상상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국이 일본 앞서는 이유, 국민 힘으로 쟁취한 민주주의 덕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주도한 3·15 부정선거를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 [사진 출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787년,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당시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 시절, 윌리엄 S. 스미스라는 옛 혁명군 동지에게 보낸 편지 하나를 보냈다. 편지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한두 세기마다 발생하는 약간의 인명 손실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유의 나무는 때때로 애국자들과 압제자들의 피를 먹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의 나무에 주는 천연 비료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여기서부터 나기 시작한다. 바로 한국의 현 민주주의가 수많은 국민들의 피와 눈물을 먹고 자랐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은 살아온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는 공것(공짜)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두환 정권 때 신군부의 내란조작 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았고, 그 이전인 박정희 정권 때는 자신의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그를 처리하려던 박정희에 의해 일본에서 납치를 당했다가 풀려난 적도 있다. 

한국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1960년 이승만과 그의 일당들이 저지른 부정선거에 항의해 3·15 마산의거가 일어나 경찰의 발포로 7명이 사망하고, 870명이 부상당했다. 

마산 시위에 참가했던 17세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것이 발견되면서 시위는 더욱 격화됐고, 이후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산돼 4·19 혁명을 촉발하기에 이른다. 

1987년 1월 전두환 정권 때에는 서울대생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당시 내무부 치안감이었던 박처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박종철 학생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 책상을 ‘탁’ 치니 갑자기 ‘억’ 소리를 내며 사망했다”라는 발표를 해 국민을 분노하게 했다. 

그해 6월에는 연세대생 이한열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다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고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다 결국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6월 항쟁과 6·29 선언의 도화선이 됐다. 

얻어걸린 일본의 민주주의 

*일본 아마존 사이트에서 팔리고 있는 혐한 서적들 [사진 출처=amazon.co.jp]

반면 일본의 민주주의는 손쉽게 얻어진 공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에 패망한 일본은 1945년 10월부터 1952년까지 4월까지 6년 반 동안 연합군 최고사령부(General Headquarters, GHQ)의 통치를 받았다. GHQ의 최고사령관은 그 유명한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이었다. 

미국은 일본을 이른바 ‘농업 국가’로 구축하기 위해 군비축소, 경제재건을 기조로 13개의 강도 높은 법령을 발표한다. 바로 이때 일본에 ‘민주주의’가 도입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일본을 개혁하려는 순간 한국전쟁(1950)이 발발한다. 한국전쟁의 물류기지와 병참기지 역할을 하던 일본은 전후(戰後) 사라졌던 모든 공업기술이 단 3년 만에 복구된다. 이렇게 하늘에서 민주주의가 떨어진 뒤 곧바로 이어진 한국의 전쟁으로 인해 일본은 경제적 부흥기를 다시 맞게 된다. 

이후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으로 불리는 베트남 전쟁(1960~1975)으로 인해 경제부흥이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일본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천운이 일본에게 왔다’는 것이다. 신이 보내준 바람, 가미카제(神風)다. 

과거 1270~1280년 즈음 일본으로 몽고군이 침략하려 했는데 그때 태풍이 불어 몽고군이 육지에 상륙하지 못한 적이 있다. 이때부터 일본은 애국주의를 강조할 때면 가미카제라는 말을 사용한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말, 가미카제 특공대라는 자폭 공격대를 편성해 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위기를 맞을 때마다 늘 상상도 못 한 기회가 찾아와 기사회생했던 일본.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가미카제 정신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이유다. 

그러나, 1990년 중반부터 일본 경제는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20년 아니 30년, 40년이 넘게 이어질 가능성이 보이는 경기침체가 본격화된 것이다. 경제의 거품이 빠지자 일본은 점차 ‘우경화’ 노선을 택한다. 특히 2012년부터 내각총리대신 아베가 집권한 이후 더욱 급격히 우경화되기 시작했다. 

일본 서점에는 버젓이 혐한 서적으로 구성된 별도의 판매대가 있고, 하루가 멀다 하고 거리 곳곳에서는 혐한 시위가 발생한다. 언론사와 예능에서는 늘 한국의 일거수일투족을 내보내며 깎아내리기 일쑤다. 과거의 전쟁 특수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혐한이 아니면 안 되는 방송과 서적이 나올 수 있도록 자민당, 아베 정권이 그렇게 유도한 것이다. 

*일본 혐한 시위 [사진 출처=scmp.com]
*일본 혐한 시위 [사진 출처=scmp.com]

이 모든 문제는 일본 민주주의의 주체 세력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래서 과거 군국주의 시대의 망령이 부활하려는데도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다. 아베의 외할아버지는 역시 총리를 지냈던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다. 그리고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정한론자인 요시다 쇼인, 기시 노부스케다. 

일본은 살인, 약탈 등 끔찍한 전쟁 범죄를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반성은커녕 피해자인 척 이미지 메이킹을 해 왔다. 이 과정에서 ‘식민지배로 한국의 경제를 살렸다’, ‘731부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난징대학살은 없었다’ 등 적극적으로 역사왜곡을 하며 자신들을 미화했다. 

침략과 관련된 역사교육을 전혀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전쟁 세대가 아닌 지금의 50, 60대 이하 사람들은 과거를 모른다. 잘못된 역사교육을 받은 일본인들은 점차 한국, 중국 그리고 그들의 식민지였던 동남아시아와의 갈등이 심화될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 분명하고 덮는다고 덮어질 수도 없는 일이지만 일본은 그것을 부정하며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지난 2006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 대학교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민주주의를 일궜습니다. 한국은 이제 민주주의의 튼튼한 뿌리 위에서 세계의 큰 봉우리가 될 것입니다. 반면 일본은 민주주의를 스스로 일구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 군국주의에 사로잡혀 급격히 우경화되고 주변국과 큰 갈등을 일으킬 것입니다.” 마치 과거에서 역사를 부정하고 외면하며 점차 우경화돼 가는 현재의 일본을 바라보고 이야기한 것만 같다. 

한국과 일본의 국가 GDP는 일본의 인구가 많아 쉽게 넘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앞으로 적어도 1인당 GDP, 그리고 국민들의 의식수준은 한국이 일본의 2배 이상 격차를 벌릴지도 모른다. 

더욱이 현재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과 지도력은 과거처럼 부국강병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단순한 부국강병론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이어지는 제국주의와 열강 각축의 시대에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그것은 제1, 2차세계대전을 거치며 완전히 파산했다.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꽃피는 나라일 때만이 국제사회에서 진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흔들림이 없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우리 손으로 쟁취한 세계 몇 안 되는 나라이며 아시아에서는 유일무이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 가치가 얼마나 소중하며 지켜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얻어걸린 민주주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켜나가야 한다. 

21세기 한국의 경쟁력 ‘열린 문화’ 

*K-pop 위상을 높인 글로벌 아이돌 BTS [사진 출처=seventeen.com] 

현대는 철저히 문화(文化)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자동차 1백만 대를 수출해 벌어들일 돈을 미국은 <어벤져스> 같은 영화 한 편으로 벌어들인다. 

문화는 일반적으로 한 사회의 주요한 행동 양식이나 상징체계를 말한다. 인류학에서 문화의 정의는 사회 전반의 기술, 예술, 관습, 양식 등 보다 광범위한 것들을 가리킨다. 특히 문화는 음악, 미술, 문학, 연극, 영화와 같은 예술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현대 사회에서는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다른 문화 분야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류는 지금 역사상 가장 커다란 문명사적 변화를 겪고 있다. 인류의 운명을 좌우해 온 자본과 노동, 천연자원이라는 눈에 보이는 물질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과 정보, 문화 창조력이 국가와 인류의 미래를 좌우하는 시대로 바뀌는 혁명의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지식수준이 우열을 판가름하고 국가 경쟁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자본과 상품, 서비스의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각국의 문화도 자연스레 딸려가고 있다. 

인간이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모습은 이제 우리 생활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각 나라만의 역사적인 건축물이나 미술 작품을 보기 위해 해외를 방문하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 나라에서 즐기고 있는 스포츠나 대중문화를 즐기기 위해 방문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렇게 나라를 방문하게 되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 머무는 동안 접했던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 새롭게 인식되게 된다. 자동차, 화장품, 의류, 가전제품 등 우리 사용하고 있는 모든 것과 관련돼 있다. 

'한국의 문화'도 최근 20여년 전부터는 특정 국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히트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온라인 게임 경기를 보기 위해, PC방, 카페를 경험하기 위해, K-pop의 본고장, 드라마의 현장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일 등은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니다.

그만큼 대중음악, 게임, 드라마, 영화 등의 분야에서 괄목한 만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외국인, 특히 아시아인이라면 꿈도 못 꿨던 아카데미상을 무려 4개 (국제영화상,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나 받아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또한 가수 BTS는 신드롬에 가까운 대중음악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K팝 사상 최초’란 타이들을 달고 다니는 BTS가 유발하는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 현대경제연구원은 “BTS로 인해 한국을 방문하는 연간 외국인 관광객 수는 80여만 명이 넘고, 소비재 수출액은 11억 달러가 넘어 이렇게 생성된 생산유발효과가 연간 4조 1400억 원에 달한다.”라고 추정했다.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은 한 줄기 빛조차 없었던 식민지 시대 마지막 소원으로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가리켜 주는 예언자적 통찰인 것이다. 생존 차원을 벗어나면 모든 것이 문화이며, 이제는 문화를 빼고 정치도 경제도 논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이러한 문화를 만들어가고, 소비하며 성장하는 ‘문화 대국’의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주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 한국인들의 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보편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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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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