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경영자’ 부처의 4가지 경영 마인드 
-자비와 평등을 내세운 종교, 불교 
-설법 단념하려 했던 부처, 그가 마음을 돌린 이유는? 

*사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사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불교는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힌두교와 함께 세계 4대 종교의 하나다. 불교는 우리나라 역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 처음 들어온 뒤, 백제, 신라에 전래됐고, 고려 시대에 이르러서는 국교로 지정됐다. 

백성들은 불교의 힘을 빌려 국가를 지키고자 하는 ‘호국 불교’ 사상을 품었고, 위태로운 나라를 구하겠다는 믿음 하나로 부처님의 말씀을 한 자, 한 자 새긴 8만 장의 정교한 대장경판을 완성했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많은 나라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불교는 어떻게 2,600여 년을 살아남아 세상에 널리 확산될 수 있었을까. 그 원동력이 과연 무엇인지 현대의 경영과 경제의 관점으로 조명해 본 불교에 대해 알아보자. 

-이 기사는 <나침반> 5월호 '인문 다이제스트'에 6p분량으로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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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와 평등을 내세운 종교, 불교 
인도 왕자였던 석가모니는 어느 날 길을 지나던 중 밭일에 찌들어 있는 여윈 농부, 처참한 모습의 병자, 관에 있는 시체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궁 안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하던 석가모니에게는 이 모든 게 매우 낯선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인도인의 생활을 지배해 온 신분제 ‘카스트 제도’. 현재 법적으로 폐지됐으나, 아직까지도 많은 인도인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 관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살았던 기원전 6세기의 인도는 상업이 발달하면서 빈부격차가 커졌고, 성별에 따른 차별도 극심했다. 게다가 ‘카스트제도’라는 신분제도 탓에 신분에 따라 사람들을 달리 대우했다. 이런 사회적 차별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자신을 구원해 줄 새로운 종교에 목말라 있었다. 

불평등한 인도 사회의 현실을 깨닫게 된 석가모니는 오랜 고민 끝에 풍요로운 생활과 왕자 신분을 버리고 29세에 수행을 시작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했다. 

그의 나이 25세가 되던 해, 49일간의 명상을 하던 석가모니는 어느 순간 진리를 깨닫게 된다. 그때 깨달은 세상의 이치를 신분, 빈부, 성별에 상관없이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전달했다. 그런 그의 가르침은 수많은 제자들을 통해 여러 곳으로 전파됐는데, 이것이 바로 자비와 평등을 내세운 종교 ‘불교’다. 

설법 단념하려 했던 부처, 그가 마음을 돌린 이유는? 

*석가가 성불한 보드가야의 마하보디. 가장 유명한 불교 성지이다. [사진 출처=wikipedia]

‘깨달은 자’ 부처는 그 무렵 한 가지 어려운 문제로 궁리를 거듭했다. 자신이 깨달은 바를 중생들에게 전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주저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발견한 진리는 극히 난해해 보통의 이해력으로는 도저히 미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법을 설교해주어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며,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파가 되지 못해서 결국 소리 없이 묻혀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부탁한다. 

‘성자여, 법을 설해주소서. 반드시 깨닫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옛날부터 마가다국에서는 때묻은 자들이 부정한 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감로의 문을 열어주소서. 무구한 부처님의 법을 사람들에게 들려주소서.’ 


부처는 연꽃이 가득한 연못을 보았다. 어떤 연꽃은 물속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있어서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고, 어떤 연꽃은 수면 위로 올라와 활짝 꽃을 피웠고, 어떤 연꽃은 수면 위로 올라오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부처는 사람도 이 세 종류의 연꽃과 같다고 느꼈다. 오류와 잘못된 가르침의 노예가 된 사람, 진리를 발견한 사람, 아직도 진리를 찾고 있는 사람이다. 세 번째 부류, 그러니까 아직 갈 길을 정하지 못한 사람들은 가르침이 필요한데, 이런 사람들이 세속에는 훨씬 더 많다. 이 사람들은 조금만 도움을 주면 구제될 수 있다. 부처는 세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법에 주력하기로 결심한다. 

‘탁월한 경영자’ 부처의 4가지 경영 마인드 

첫째, 직접 나서 설법에 주력 
2,600여 년 전 세상 사람들은 아직 부처가 이 세상에 출현한 것도, 나아가 그가 자신들을 위한 설법을 단념하려고 한 것도 모르고 있었다. 불교적 논법에 따르면, 인류가 자신들이 인식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의 한도 안에서만 만날 수 있는 진리를, 영원히 놓쳐버릴 수도 있었던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려 있었던 셈이다. 

이때 내린 부처의 결심 하나가 결국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는다. 이 결심을 내렸다는 사실 자체로 부처가 얼마나 ‘탁월한 경영자’인지를 보여준다. 21세기에 이르러 인류를 다시 만날 수 있던 이유, 그것을 현대적 경영논리로 표현해 보면 ‘아이디어를 아이디어 자체에 그치지 않은 채 사업으로 연결하고, 직접 경영을 통해 높은 수익을 올리는 회사’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성별·신분 차별 없는 교단 운용 
“4가지 종족이나 계급은 그 사람의 혈통이나 신분으로서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사람이다. 누구든지 번뇌가 없어지고 수행을 통해 생사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완전한 지혜를 얻어 해탈의 도를 이루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사성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진리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것이기 때문이다.” - '사문과경' 중 

두 번째, 경영자로서 석가의 위대성은 그가 교단을 만들어서 운용했다는 데 있다. 특히 이 교단은 인도의 카스트제도에 따른 신분 차별 없이 누구나 환영했으며, 여성도 받아들이는 파격을 보였다. 이러한 점은 불교가 세계 종교로 확장을 할 수 있도록 조직적 측면에서도 확실하게 뒷받침하는 부분이다. 

초기 석가의 설법 이후 불교에 귀의한 제자들과 신도들은 불교 공동체 ‘상가(Sangha)’의 구성원이 된다. 출가한 남자 승려 ‘비구’, 출가한 여자 승려 ‘비구니’, 출가하지 않은 남자 신도 ‘우바새’, 출가하지 않은 여자 신도 ’우바이‘라는 4부대중(四部大衆)이 상가를 이룬다. 

맨 처음 석가의 설법을 듣고 출가한 첫 출가자인 야사스와 함께 신자가 된 야사스의 부모는 인도 사람도 아닌 데다 카스트제도로는 평민인 바이샤 출신이었다. 나중에 석가의 수제자가 된 우팔리는 이발사였으며 하층 계급인 수드라 출신이었다. 나아가 석가는 자신을 길러준 이모이자 계모인 마하프라자파티를 최초의 비구니로 교단에 받아들였다. 

교단을 운용함으로써 불교는 석가의 입적 이후에도 하나의 종교적 정체성을 유지한 채 그 뒤 수천 년을 헤쳐 나가는 생명력의 추진 엔진을 갖게 된다. 교단이 중심이 돼 석가의 가르침을 하나로 모으고, 교단의 분열을 교정하기 위해 소집된 제1차 결집(고승들의 회의체)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결집은 다시 100년 뒤 제2차 결집으로, 다시 100여 년 뒤 제3차 결집으로 이어지면서 불교 경전의 성립과 불교 세력 확장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다시 현대적 경영논리로 해석하면 ‘주주총회와 이사회 등의 조직을 갖춘 주식회사로 발전시킴으로써 기업의 연속성과 확장성을 결정적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평화를 추구하는 교리 

*일본 신오인(親王院)에서 소장 중인 있는 고려 불화 미륵하생
경변상도 [사진 출처=wikipedia]

“원한을 품고, 괴로움을 갖고, 탐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살고 있지만, 우리는 원한 없이, 괴로워함 없이, 탐냄 없이 살아나가자.” - '법구경' 중 

세 번째 석가의 위대성은 ‘평화주의의 원칙’이다. 기본적으로 석가는 교단과 세속의 영역을 구별했다. 교단이 세속의 권력을 추구하는 식의 제정일치는 제시하지 않았다. 세속 대중이 교단에 귀의하는 것도 설법 이후 사람들의 자발적 결단에 의존한 성격이 강하다. 예외가 있다면, 석가가 자신의 아들 라훌라를 출가시킨 것을 비롯해 가까운 친척들을 적극적으로 출가토록 한 것이다. 

이와 함께 다른 종교도 배척하지 않았다. 석가는 입적을 얼마 앞두고 인도의 강대국 마가다국의 왕이 브리지족을 상대로 전쟁을 하려는 것을 막으려 설득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7불쇠법’을 밝히면서 종교적 관용을 제시한다. 전쟁을 막으려 했고, 그 전쟁을 막는 논리적 근거로서 ‘안팎의 종묘와 각양각색의 종교를 존경해야 한다’라는 가르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평화주의적 원칙이 없었더라면 불교가 2,600여 년을 거치며 살아남아 이처럼 세상에 널리 확산될 수 없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불교의 평화주의적, 무저항주의적 관점이 불교의 생명력의 토대를 이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성격을 현대 경영논리로 표현한다면 ‘독점을 추구하지 않는 등 기본적으로 독점 체제를 반대하고, 공정경쟁의 룰에 충실했다’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생태주의적 대안경제의 길 제시 
“몸뚱이는 하나인데 머리가 둘인 새가 있다. 공명조라는 새다. 한쪽 새가 독약을 먹자 온몸에 독이 퍼져 다른 한쪽 새도 함께 죽었다.” - '불본행집경' 중 

네 번째 위대성은 생태주의적 대안경제의 길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현대의 경제는 사실상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함축하고 있는 ‘사냥문화’의 속성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 세상을 ‘나 자신’과 ‘나 이외의 사물’로 구별한 다음 필요와 욕망의 매개에 따라 ‘나 이외의 사물’을 나가서 잡아들이는 문화이다. 

그 결과 현대는 갖가지 문제점에 봉착해 신음하고 있다. 성장의 부작용으로서 환경의 파괴, 사막화의 급격한 확산, 국가 간·계급 간·세대 간 불균형의 확대, 전쟁과 불안정성의 증대 등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숱한 위기 징후가 포착된다. 

이 과정에서 제시되는 여러 대안경제 가운데 불교의 방식이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생명과 생태에 대한 존중, 욕망의 절제를 지향한다. 모든 생명체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한 몸으로 자타불이(自他不二)적 관계이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를 보호하고 구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단순한 생명존중이나, 생태주의적 지향이라는 단계를 넘어 더 근본적으로 현대 인류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적극적 해결책으로 진지하게 평가되기 시작했다. 

현대 경영논리로 보면 ‘자원의 유한성에 대한 철저한 자각을 전제로,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우리를 마음 깊은 곳으로 이끌어 지혜와 진리의 길을 보여주고 깨달음의 경지로 이끄는 불교. 더디지만 큰 발걸음으로 지난 2,600여 년을 이어온 것처럼 새로운 울림으로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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