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말랐던 역사 ‘이덕일의 한국통사‘
-한국, 중국, 일본의 왕권의 특징

사진: 이덕일 TV
*사진 출처=이덕일 역사TV

중국에서 삼국지나 후한서에서 나오는 동이족이라고 말하는 민족들은 우리 쪽을 말할 때 ‘예맥’이라고 한다. 북경대 총장이었던 중국 역사학자 부사년은 숙신이라는 명칭도 고조선의 다른 명칭이라고 말한다. 

동이에서 갈라져 나온 민족들이 숙신을 말갈족의 선조를 숙신이라도 한다. 말갈족의 후예가 만주족, 여진족이다. 여진족, 말갈족도 다 동이족인 건 말할 것도 없고 거란도 큰 틀에서 보면 동이족이다. 이런 이름들이 동이족 내에 여러 겨레들을 나누는 이름들이라고 볼 수 있다.(*겨레: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민족)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황제집단과 치우집단이 싸우다가 초기에는 치우집단이 승리를 하다 최종에는 황제가 승리한다. 사실 여부를 떠나 치우총은 목을 베서 묻었다는 곳, 다리를 베서 묻었다는 곳 등 중국 여러 곳에 있다. 그중에 중화삼조당이라는 곳에 갔더니 우연히 그쪽에서 치우역사를 연구하는 중국인 학자를 만났다. 한국에는 평소에 치우 분야를 별로 연구한 사람들이 없으니까 만나서 대화를 하면서 느꼈던 것은 혼자 책을 보고 느꼈던 게 상당부분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치우집단이 어디로 갔냐라고 물으니 한 집단은 산동성에 남았고 한 집단은 북방으로 갔고 한 집단은 남방으로 갔다고 말했다. 그래서 산동성에 남은 사람들은 나중에 하화족이 됐고, 북방으로 올라간 사람들이 몽골과 만주와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가고, 남방으로 간 사람들이 지금의 남방에 살고 있는 백족과 묘족이다. 

얼마 전 중국 남방답사를 갔더니 호텔에 복무하는 여성분이 묘족이었다. 묘족이 우리 한국하고 같은 치우의 후손이라는 것을 아느냐라고 물으니 “압니다”라고 했다. 동이족 후예들이라고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것이다. 

중국의 치우연구회 학자가 말한 것처럼 북방으로 올라간 동이족이 중국의 삼국지나 후한서에 나오는 동이열전에 나오는 사람들이다. 

중국 답사를 가보면 놀라는 게 많다. 중국의 히말라야산맥 남쪽 지류에 샹그릴라가 있는데, 거기 무덤 형태들도 전부 다 적석총이다. 홍산문화 얘기할 때 도리이 류조가 적석총을 보고 이게 중국하고 다른 거다라고 했다는 적석총이 그대로 있었다. 이것도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동이족의 이동 경로였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가 중국 답사를 자주 갔는데 우리를 안내하던 사람이 차 안에서 내가 강의한 것을 여러 번 들었으니까 “그럼 우리 중국 중화민족은 어디에서 시작하냐”고 물었다. 

중국의 역사는 전부 다 이족의 역사이다. 우리가 '이'를 ‘오랑캐 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우리를 남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과 같다. '이'는 바로 우리를 뜻하는 것이다. 지금 옥편이나 한자 사전에 나와 있는 오랑캐 이는 고쳐야 한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사전인 ‘설문해자’의 설명에는 ‘사람’이란 뜻이라고 적혀있다. 그것도 큰 사람이란 뜻이 있다. 큰 사람들은 어질기때문에 ‘저 인자의 나라가 있다’는 그런 식의 표현을 하고 있다. 

‘이’자가 처음에는 중국이 자기네 하화족이라고 자기를 설정해놓고 나서, 다른 민족을 폄하하는 용도로 '이'자를 사용한 게 아니라 처음에는 ‘사람’이란 뜻이고, 사람 중에서도 큰 사람이다. 그리고 어진 사람들이다 이런 뜻으로 사용되던 것이다. 

중국이 자기네 중심으로 역사를 만들어 가면서 '이'자를 낮보는 비칭으로 나중에 의미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저도 궁금했기 때문에 하화족의 역사는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하는가?에 대해서 많이 알아봤다. 

그랬더니 이것은 가운데 ‘중’자를 찾아봐야 한다. 중국 할 때 가운데 중자, 이 글자의 시작은 중국의 하은주할 때 주나라, 주나라 사람들의 수도가 낙양인데 황하가 쭉 내려오다가 낙양 북쪽까지 흐른다. 그 낙양과 황하를 '하락'이라고 부르는데 황하할 때 '하'자를 하로 낙양할 때 '낙'자를 따서 '하락‘이라고 부른다. 별로 크지 않은 지역이다. 

그 지역을 주나라 사람들이 '천하지중'이라고 해서 천하의 중심이라고 해서 중국이라는 개념이 거기에서 시작한 것이다. 아마 커봐야 1, 2백 킬로를 넘지 않는 그 정도가 중국이란 나라이고 거기에서 중국의 개념이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주나라는 처음부터 하화족이 아니라 중국 사기에도 '서이'라고 적혀있다. 오랑캐 '이'자를 안 쓰면 그냥 ‘서이’하면 ‘서쪽 민족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주나라가 약간 서쪽인 산서성쪽 사람들이라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이것은 은나라에 대비해서 은나라 쪽에서 볼 때는 은나라보다 서쪽에 있는 민족이기 때문에 서이라고 한 것이다. 이처럼 이들 모두는 다른 민족이 아니라 다 같은 이족이다. 

주나라 때부터 사람들이 자기 자신들을 천하지중, 중국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면서 사방에 민족들을 방위개념으로 나누기 시작한다. 동이, 서융, 남만, 북적 그래서 시작되는 것인데 처음에는 다 같은 민족들이었다. 

예를 들어 요즘도 어떤 집안이 같은 동네에 자라다가, 어떤 집안에서 왕이 나오고 판서가 나오면 “우리는 너희들하고 다르다”라고 계보를 만들고 족보를 만든 것 하고 마찬가지 개념이다. 

주나라 때 중국이란 개념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때 주나라 낙양을 중심으로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고 만들긴 했는데 당시에는 사용이 잘 안 됐다. 그 후 전국시대에도 통용이 안됐다. 주나라 주변이 다 이민족들이고 주나라도 내부 왕권 다툼을 할 때도 이족들을 끌어들여서 정권교체를 했기 때문에 다 뒤섞여 살았었다. 

나중에 공자가 춘추라는 역사서를 쓴다.  ‘춘추’라는 말은 한마디로 '주나라를 중심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말이다. 즉 주나라를 우리가 왕의 나라로 섬기자는 것이 공자의 춘추이다. 그런데 춘추시대에는 각 제후들이 주나라를 무시하고 서로가 합병하던 시절이고 전쟁이 아주 일상화돼 있었다. 그래서 공자는 우리가 전쟁을 멈추려면 주나라 왕실을 다시 추대하는 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이 '춘추대의'이다. 

공자가 주나라를 중심으로 춘추라는 역사서를 썼고 이것이 사마천이 조금 더 개념을 확대해서 주나라 훨씬 윗대인 삼황오제에 나오는 황제부터 시작하는 하화족의 계보를 만들어서 그것이 사마천 자기 자신이 살았던 한나라까지 이어진 것으로 설명한 것이 지금의 중국이란 개념이 확장된 것이다. 

여담으로 말자면 진시황의 진나라, 진나라도 다 동이족 국가이다. 사기에 봉선서에 보면 봉선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봉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그런 계통을 적어놓은 책이다. 그 책을 보면 진나라 왕실에서 소호에게 제사를 지낸다. 그 진나라도 동이족 국가이기 때문에 중원에서 진나라를 다른 오랑캐로 몰기도 했던 것도 그런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중국은 통일국가가 들어서면 강역이 광대하니까 광대한 것을 통일하려면 상당히 강한 왕권이 필요하다. 그래서 중국은 황제와 가까운 것이 제후가 아니라 환관들이다. 그래서 중국은 주로 난을 일으키는 게 환관들이다. 중국왕조는 정권을 잡고 나면 중국은 대부분 폭력으로 뒤엎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정권 잡고 나면 황제권이 엄청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황제 곁에 있는 환관들이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는 왕권이 약한 나라이다. 왕권이 약한 나라들은 신하들이 다하기 때문에 왕을 바꿀 필요가 없어 원래 왕권이 오래간다. 일본은 만세일계라고 일본 천황은 그냥 국가 제사장이다. 실제 다스리는 임금이 아니고 쇼군이 자기가 왕이니까 굳이 국가 제사장을 내쫒을 필요가 없다. 왕은 국가 제사를 지내게 하고 쇼군 자신은 "정치는 우리가 한다”라고 하니까 일본은 지금까지 천황제가 이어져 오는 것이다.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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