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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뉴욕 타임스퀘어 공연[사진 출처=tampabay.com​]​

첫눈에 널 알아보게 됐어
서롤 불러왔던 것처럼
내 혈관 속 DNA가 말해줘
내가 찾아 헤매던 너라는 걸

우리 만남은 수학의 공식
종교의 율법 우주의 섭리
내게 주어진 운명의 증거, 너는 내 꿈의 출처
Take it, take it 너에게 내민 내 손은 정해진 숙명...

방탄소년단이 부르는 DNA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방탄소년단 이외에도 한류는 우리가 갖고 있는 경제적인 수준에 비해서 일찍부터 아시아, 유럽 최근에는 북미와 남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알려져왔다. 경제적으로 일찍부터 부강했던 일본도 만화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문화가 유럽이나 북미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다만 음식문화로 초밥과 정도만 알려져 있지 특별히 음식문화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졌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최근에는 유튜브의 먹방까지 한류의 컨텐츠는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도 널리 알려지고 있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듯 한류가 왜 이렇게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지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DNA를 규명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 이런 문제는 우리 역사를 우리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이다. 한류 스타들도 잘 알지 못하겠지만 우리 민족의 DNA에는 원래 ‘신명나는 문화를 만들었던 DNA’가 우리들 핏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예전부터 우리 선조들로부터 내려오는 DNA가 있다. 우리 고대 사료들을 보면 대부분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 풍습에서 기인한다.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우리가 천손 민족이다’라는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손 민족들은 특징은 이스라엘 민족처럼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고려 중기 이후에 유학자들이 득세하기 시작하고, 그 이후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득세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부분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유학 사대주의 관점은 중국을 높이는 중화사대주의를 말한다. 그 후 식민사학자들의 사대주의는 일본을 떠받는 친일 사대주의가 있다. 이 두 가지 사대주의가 들어오면서 우리가 우리 주체적인 역사관이 많이 상실됐다. 

그럼에도 날 때부터 우리 민족은 원래 천손 민족인 것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중국 만주 지역이나 하북성 일대에 요하문명 홍산문화라고 불리는 여러 유적지를 답사해보면, 그 유적지들의 특징이 다들 수천 년 전, 만 년 전부터 쭉 내려오는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천 유적들이 있다. 그 제천 유적은 원형도 있고 네모난 방형도 있다. 

옛날 사람들이 원형은 우주, 하늘을 상징하고, 방형은 땅이 네모났다고 생각했으니까 지구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위에 당시 제정일치 시대에 제사장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이것이 원형인 하늘의 하늘 ‘천’, 방형인  땅‘지’, 사람 ‘인’해서, 천지인 하나로 합일돼서 하늘에 제사지내는 천손사상이 우리 민족에게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자료로는 중국의 삼국지 위지동이전이라든지 후한서에 일부 사료들이 남아 있다. 부여에는 영고라는 제천풍습이 있었고, 고구려는 동맹 이라는 풍습이 있었고, 예에는 무천, 춤출 ‘무’에 하늘 ‘천’자를 써서 무천이라는 제천풍습의 기록들이 사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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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영고는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천 풍습인데 은나라 정월에 제천 제사를 지낸다. 은나라 정월이라는 것은 12월이다. 은나라는 동이족 국가다. 동이족 국가 은나라가 천하를 장악하고 난 다음에 자기네가 달력을 만들어서 제후국들에게 반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여에서 영고라는 제사를 지내는 것은 부여가 동이족 은나라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부여의 영고를 비롯해서 여러 고대국가들의 제천기록을 보면 집단으로 모여서 즐기는 행사이다. 후한서 부여 영고 기록을 보면 “여러 날 동안 음주 가무한다. 술 마시면서 춤추고 논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라고 이 영고 행사 때에는 죄수들을 석방하고, 흰옷을 입고 100일을 숭상한다는 기록들이 중국 기록에 남아 있다. 

이러한 것을 보면 부여의 영고는 10월에 은나라 정월에 하늘에 제천을 지내는데 엄숙한 부분도 있겠지만 의식이 끝나면 제천행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같이 술 마시고 춤추고 흥겹게 놀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고구려의 동맹도 마찬가지다. 고구려는 10월에 동맹을 제사지내는데 동맹은 고구려 시조를 추모하는 그런 행사였을 것으로 해석된다. 고구려 시조는 자기 자신이 천제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 사람들은 아주 한자로 “희, 가무를 즐긴다.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즐긴다”라는 기록들이 있다. 그러면 밤중에 무리를 지어서 춤추면서 이렇게 술 마시면서 논다하는 그런 기록들이다. 

이런 기록들을 보면 우리 각 나라들의 공동체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시조에게 제사를 지내고 난 다음, 같이 술 마시면서 흥겹게 놀았던 그런 풍습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에도 무천이라고 10월에 제천 행사를 하는데 춤출  ‘무’에 하늘 ‘천’자의 행사이니까, 그야말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다 같이 모여서 춤추는 것이다. 이것도 중국 기록을 보면 "주야로 음주가무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중국의 예에 관한 기록에는 특이한 게 있는데 ‘호랑이를 신으로 모신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단군 사화에 나와 있는 곰과 호랑이 이야기 중에 ‘예는 호랑이를 숭상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삼한에서는 5월과 10월에 천신제를 지냈다는 기록들이 있는데 5월에는 씨를 뿌리고 나서 파종하고 나서 다 같이 모여서 집단적으로 모여서 춤추고 역시 마찬가지로 주야, 낮과 밤으로 음주가무를 한다는 기록들이 있다. 그래서 5월에 지냈던 삼한에서 지냈던 행사가 단오제로 지금 이어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삼한에서 행했던 제천 행사를 보면 연일 주야로 술 마시고 춤을 추는데 중국 기록들을 보면 수십 명이 서로 땅을 밟고 차고 막 해가면서 손과 발이 서로 상응했다. 손과 발을 같이 움직였다라고 하는 것은 집단적으로 춤을 추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이 볼 때 부여, 고구려, 예, 삼한 이쪽 사람들이 며칠 밤낮을 술 마시면서 서로 춤추고 노래하고 하니까 특이했다. 아주 특이하니까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기록상으로는 이때 나타나지만 그 훨씬 이전에 홍산문화 때부터 나타났던 제천행사가 쭉 지금까지 이때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런 문화가 우리 민족 속에 있고, 이런 DNA가 지금의 신한류를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삼한에는 소도라는 것이 있는데 소도에는 나무를 세워놓고 거기에 방울하고 북을 걸어 놨다. 그래서 이 지역은 아주 신성시하는 그런 지역이라 이 지역에 죄인이 들어가면 국가 권력이 잡아가지 못한다고 기록이 돼 있다. 

중국 사람들은 "소도를 부도와 같다"고 기록했다. 부도는 사찰에 가보면 입구에 승려들의 사리를 탑으로 만든 큰 3층 석탑, 5층 석탑 이런 것들이 있고 부도가 그것보다 작은 규모의 탑이 있는데 승려들이 사리로 만든 작은 탑을 부도라고 한다. 

중국 사람들이 볼 때 삼한에 있는 소도는 불교의 탑과 같다고 하는 것이니까 상당히 신성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이 볼 때 소도로 피신하면 못 잡아가니까 잘못이라고 써놨다. 하지만 그때부터 우리는 소도로 들어가면 보호받는 그런 식의 사고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들어가 보호를 받았던 사람들은 주로 어떤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렸거나 하는 사람들이 보호를 받지 않았겠는가라는 생각이다. 처음에는 정치권력하고 하늘의 제사지내는 체천 제사장이 같았다가 이것이 차차 분리되어 가면서 어떤 갈등 과정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사건들 같은 경우, 소도로 들어가면 보호하는 그러한 기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런 소도 같은 경우도 우리가 해석을 할 때는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고유의 영성, 영발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유의 영성이 강한데서 나온 일종의 피난처가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현재까지 우리 민족 속에 지금 노래방이나 다른 나라에 없는 저녁에 모여 술먹는 문화가 아직도 건재한 것은 그런 DNA들이 다 여기에서 응축돼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응축된 DNA들이 현재 한류스타들에게 내려와서 지금 전세계에 퍼져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고조선 다음에 곧 고구려, 백제, 신라가 곧바로 이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실제 사료에 의하면 고조선에는 수많은 제후국(거수국)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부여는 서기전 2세기경부터 고조선의 거수국으로 있다가 고조선이 멸망한 후에는 고구려와 각축을 벌이며 서기 494년까지 존속했던 나라였다. 고조선이 멸망한 후에 3국시대가 아닌 열국 시대로 불러야 한다. (열국: 동부여, 동옥저, 고구려, 읍루, 최씨낙랑국, 대방국, 백제, 한, 금관가야, 신라). 당시 한사군은 발해만 근처 요동에 있었다.

*이 글은 유튜브 이덕일 역사TV에서 참고하여 작성한 기사입니다.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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